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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두 번째로 만든 노화 ‘아옹다옹 배춧잎’은 성공작이었다. 첫 번째 만들었던 노화는 효도를 권장하는 계몽적인 내용이어서인지 다 읽으신 어머니가 “세상 사람들이 오대 다 같나. 세상일이 내 맘 가트믄 걱정 할끼 머 있노”하고는 재미없어 했기 때문에 두 번째 노화는 어머니가 익숙한 시골 풍경과 농사일을 바탕으로 해서 환상 이야기를 만들었다.

 

‘아옹다옹 배춧잎’을 만들게 된 것은 얼갈이배추에 물을 주면서 있었던 일이 계기가 되었다. 그날은 배춧잎이 자꾸 내게 칭얼댔다. 물줄기에 흙이 튕겨 올라와 배춧잎 뒤쪽에 말라붙는다고 투덜대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게 아니라고 궁색한 변명을 하면서 하나하나 씻겨 주게 되었는데 이번에는 배춧잎 뒷면이 자기도 하늘 구경 좀 시켜 달라는 것이었다. 평생 땅만 내려다보고 사는 것은 불공평하다고.

 

 

그걸로 두 번째 노화가 만들어졌는데 성공작(?)인 된 것이다. 성공작이라고 하는 것은 노화를 매개로 어머니의 유장한 옛 기억이 되살려지고 나랑 깔깔대고 웃으면서 즐거운 시간을 만들 수 있어서다.

 

재미를 붙인 내가 세 번째로 만든 노화가 '요즘 할머니들의 유행'이다. 200자 원고지 25매 정도 되는 이야기인데 이 작품은 어머니에게 더 큰 인기를 얻었다. 이 작품을 만들 때 역시 계기가 있었다.

 

어머니 옷장에는 서울 큰집에서 입다 가져 온 옷들이 있었는데 거의 합성수지로 된 것들이었다. 합성수지 옷은 피부건강에도 안 좋을뿐더러 오줌을 실수하셔도 흡수도 못하고 그냥 고여 있었다. 입고 벗을 때 정전기도 일어났다.

 

나는 어머니 옷을 속옷이건 겉옷이건 모두 고급 모직으로 바꾸어 가고 있었는데 속옷은 황토나 양파껍질로 천연염색을 해서 입혀 드리고 있었다. 그러나 어머니는 멀쩡한 옷을 놔두고 왜 옷을 사 오냐면서 야단을 치기 때문에 쉽지가 않았다.

 

“돈이 마느닝깨 별 지랄을 다 하고 있어. 나 죽으믄 다 불지를 꺼 좋은 옷 입으믄 머 해?”

이런 식으로 화를 내시기까지 했다.

 

그래서 나는 세 번째 노화에서 천연섬유인 목화로 만든 무명이나 누에고치로 만드는 명주, 삼베나 모시 같은 옷감에 대한 이야기를 만들어 요즘 할머니들이 이런 옛날 옷을 유행처럼 많이 입는다고 했다.

 

인터넷에서 사진이나 그림을 구해서 포토샵으로 보정작업을 해 넣으니 진짜 책처럼 편집이 되었다. 문제는 칼라인쇄와 제본이었다. 그렇잖아도 내가 만든 노화 책을 볼 때마다 “이거는 책이 와 이런노? 빳빳하지도 않고”하면서 책 앞뒤를 뒤집어 보시곤 해서 이번에는 장수군청까지 가서 제본기를 빌려 제본을 했다.

 

까만 제본링으로 책을 엮고 표지는 투명한 피브이시 전용지을 썼다. 역시 남의 프린트에서 첫 장은 칼라 인쇄를 했다. 이렇게 해서 진짜 책처럼 모양새를 갖추고 보니 효과가 컸다. 어머니는 읽고 또 읽으셨다. 어머니 이야기인 듯싶은 익숙한 줄거리가 책에 나오는데다 동네 이름이나 등장인물의 택호도 아는 것들이니 그동안 보던 동화책들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호감을 가지셨다. 이런 식이었다.

 

“야야. 이것 봐라. 이 책에도 해동띠기가 나오네? 그 참 해동띠기를 어찌 아라쓱꼬?”

 

우리 동네 사시는 해동댁 아주머니를 무심코 등장시켰는데 그 아주머니와 우리 어머니 사이에 내가 전혀 몰랐던 옷 사연이 있었던 것이다. (34회에 계속)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한국농어민신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치매#부모모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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