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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문역. 하루 승차 인원이 1만명 정도 되는 비교적 한적한 역이다.
 신이문역. 하루 승차 인원이 1만명 정도 되는 비교적 한적한 역이다.
ⓒ 김대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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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지하철 1호선 신이문역은 비교적 통행량이 적은 편이다. 지난해 기준 하루 평균 승차 인원이 1만1397명이었다. 2003년 이후 해마다 줄고 있다.

1호선 역인 서울역(5만7231명, 4호선, 철도공사 구간 미포함), 종각역(5만2145명)을 비롯, 2호선 역들인 강남역(9만2419명), 잠실역(7만3759명, 8호선 구간 미포함), 삼성역(7만3402명), 신림역(7만247명), 선릉역(5만8536명, 분당선 미포함), 3호선 고속터미널(6만2075명, 7호선 미포함) 등과 비교하면 역 크기가 잘 드러난다.

1호선 서울시 구간내 32개 역 가운데 신이문역보다 승차 인원이 적은 곳은 도봉역(6143명), 방학역(1만185명), 녹천역(5948명), 월계역(7075명), 신길역(8728명, 5호선 1859명), 시흥역(1만914명) 등 여섯 개 역뿐이다.

신이문역 주변엔 이처럼 집들이 역 가까이 바짝 붙어 있다.
 신이문역 주변엔 이처럼 집들이 역 가까이 바짝 붙어 있다.
ⓒ 김대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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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문역 1번 출구(한국예술종합학교 방향) 쪽으로 나오면 도심 역에선 좀체 보기 힘든 한가한 풍경을 보게 된다. 역 주변에 노점이 몇 개 있고, 바로 옆엔 집들이 바짝 붙어 있다. 어떤 집은 지하철 선로를 막고 있는 담과 불과 1m 정도 떨어진 곳도 있다. 1, 2층 집들이 섞여 있는 동네엔 군데군데 기와집이 보인다. 여기가 이문3동이다.

이문이란 이름은 마을에 도둑을 지키는 이문(里門)이 있었기 때문에 붙었다. 방범초소인 셈인데, 신이문역(新里門驛) 또한 이문동에서 비롯한 이름이다. 근처에 망우선 이문역(里門驛)이 있어 '신이문'이 됐다. 이문역은 이문차량기지가 생기면서 2004년 7월 5일 사라졌다.

신이문역에서 1km 정도 걸으면 한국예술종합학교가 나온다. 옆 동네가 석관동이다. 99년부터 2001년까지 일 때문에 이 동네를 종종 찾곤 했다. 당시 '서울에 이렇게 한가한 대학 동네가 있다니'하면서 놀랐던 기억이 난다. 12월 초 다시 한 번 그곳을 찾았다. 그리고 10여년 전이나 크게 달라진 게 없는 모습에 또 한 번 놀랐다.

골목이 푸근한 이유, 사람과 자전거만 다닐 수 있는 넓이

골목길과 자전거.
 골목길과 자전거.
ⓒ 김대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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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9일 신이문역에 가기 위해 3호선 홍제역에서 지하철에 자전거를 실었다. 12.5kg짜리 작은 자전거라 지하철에 싣기가 편하다. 물론 아주 가벼운 것은 아니지만, 이 정도는 운동하는 셈이라 생각했다.

다섯 구간을 간 뒤 종로3가역에서 1호선으로 갈아탔다. 자전거가 귀여워서 그런지 자전거 가격을 묻는 어르신들이 많다. 손자에게 사주려고 하시나 보다. 자전거를 흘깃흘깃 보는 사람들도 많다. 김혜수가 나온 TV 광고가 생각난다. "기분이 참 좋습니다."

아홉 구간을 더 가니 신이문역이다. 역에서 내리는 사람이 별로 없다. 1번 출구로 나와서 동네 여행을 시작했다. 이 곳에도 역시 재개발 바람이 불고 있다. '이문제2구역주택재개발추진준비위원회'가 붙인 벽보가 붙어 있다. 한 주민은 '내 집 주고 내가 살 수 없는 개발 결사 반대한다'라는 플래카드를 내걸었다.

골목이 참 푸근하다. 넓이가 딱 사람 둘 정도 들어갈 정도다. 자동차는 들어갈 수 없다. 오로지 사람과 자전거만 통행할 수 있다. 역시, 자전거가 많다. 짐을 싣고 다니는 자전거, 통학용 자전거, 꼬마들이 타고 다니는 자전거 등 종류가 다양하다. 자동차가 들어갈 수 있는 골목도 있지만, 간신히 들어갈 수 있는 크기다.

골목에서 자전거를 타는 아이들.
 골목에서 자전거를 타는 아이들.
ⓒ 김대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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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의 푸근함과 골목 넓이는 관계가 깊다고 본다. 자동차는 들어갈 수 없는 곳, 그래서 좁은 골목에선 아늑함을 느끼는 게 아닐까.

어떤 골목은 너무 좁아서 자전거를 끌고 들어갔다 진땀을 뺀 곳도 있다. 집과 지하철역 담 사이에 있는 좁은 통로였는데, 아마 집과 지하철역 사이를 떼면서 생긴 공간인 듯 보였다.

벽에 널린 빨래가 눈길을 끈다. 낙서도 보인다. 어느 벽엔 놀이용 그림이 그려져 있다. 아마 놀이를 하기 전에 벽에 미리 연습용 그림을 그린 모양이다.

골목길을 다니면서 재활용 지혜 앞에서 감탄할 때가 많다. 장판을 깔고 남은 조각을 창문에 덧대거나 음료수병을 잘라서 환풍구로 쓴 집을 봤다. 쓰레기가 되느냐, 좋은 도구가 되느냐는 이처럼 주인 마음에 달린 법이다. 어느 집 대문 위엔 인형이 하나 놓여 있었다. 자칫 삭막할 수 있는 담이 이 인형 하나로 환해진다.

쓰레기 문제는 골목 동네라면 어디서나 보인다. 'CC 카메라 작동중, 벌금 백만원'이라고 누가 담벼락에 크게 써놓았다. 하긴, 쓰레기 문제는 이미 골목 동네나 아파트 단지를 불문하고 대한민국 사회 어디서나 나타난다.

독구말9길에 이르자 아주 오래된 집들이 한 곳에 모여 있다. 20~30채 정도는 되는 것 같다. 회색 지붕도 있고, 파란색 지붕도 있다. 2~3층 빌라 사이에 있는 기와집들이 무척 이색적이다. 빌라가 기와집을 감싸주는 것 같기도 하다.

북이문길, 기와집과 나무 전봇대가 어우러진 곳

북이문길에선 나무전봇대를 종종 볼 수 있다.
 북이문길에선 나무전봇대를 종종 볼 수 있다.
ⓒ 김대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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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형적인 골목 동네는 북이문길에 들어서면 볼 수 있다. 좁고 변화가 심한 골목, 막혔는지 통하는지 모호한 넓이의 골목이 나타난다. 물론 상당수가 기와집이다. 골목길이 하늘로 치솟는데, 중간쯤에서 아래를 내려다 보면 기와의 바다를 볼 수 있다. 북촌이나 누상 누하동에서 보는 것과 같은 감동을 느낄 수 있다.

이 동네 기와집들은 길 건너편 아파트 단지와 비교돼 더욱 도드라진다. 이문동은 신이문역 중심으로 90년대 중반 일제히 재개발이 이뤄졌다. 당시 이문동 일대는 삼표연탄 등 연탄회사들의 야적장이 몰려 있었다.

다 같은 기와집 같아도 자세히 보면 조금씩 다르다. 우선 색깔부터 다르다. 어떤 집은 회색이고 어떤 집은 붉은 색이다. 파란색 지붕도 있다. 1자형 지붕이 있는가 하면 L자로 꺾인 곳도 있다. ㄷ자로 두 번 꺾인 지붕도 있다. 비슷해 보이면서 다르다. 조금씩 다르면서 어울린다.

동네에선 나무 전봇대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집이나 기둥은 콘크리트를 쓰고, 도로엔 아스팔트를 까는 게 보편화된 요즘 나무 전봇대는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는 물건이다. 나무 전봇대 옆에 자전거가 세워져 있는데, 무척 자연스럽다.

이 곳 골목길은 다양하다. 계단식 골목길이 있는가 하면, 그냥 흘러내린 길도 있다. 중간중간 홈을 메운 흔적도 많이 보인다. 급하게 길을 만들어놓고, 비가 와서 무너져 내리면 그때 마다 보강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인상 깊었던 것은 원뿔형 계단이었다. 원뿔형 계단 세 개에 반원형 계단 하나를 붙인 형태였는데, 다른 곳에선 못 본 형태였다.

북이문길 기와집 동네
 북이문길 기와집 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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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대기 부근에 가게가 하나 있다. 골목 슈퍼다. 처마 밑에 매단 천에 보일 듯 말듯 이름을 써놓았다. 작게 써놓은 이름도 소박하고 '골목 슈퍼'란 이름도 정감이 넘친다. 골목 슈퍼 주양 옆으로 난 골목길이 모두 좁다.

한 골목은 막다른 곳인데, 가난한 자취생들 여럿이 모여 살 것 같은 느낌이다. 10여년 전 봉천동에서 이런 골목집을 본 적이 있다. 이문동과 석관동은 맞닿아 있다. 이문동은 동대문구이고 석관동은 성북구다. 이 동네를 구경하다 보면 동대문구와 성북구를 자연스레 넘나들게 된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석관동 캠퍼스, 2006년 대한민국 건축 대상 받은 곳

석관동 캠퍼스. 지난해 대한민국 토목 건축 대상을 받았다.
 석관동 캠퍼스. 지난해 대한민국 토목 건축 대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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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예술종합학교 석관동 캠퍼스(미술원, 연극원, 영상원, 전통예술원) 주소는 성북구 석관동 산1-5다. 이곳은 원래 옛 국가안전기획부와 안기부 건물 부지였다. 안기부가 1995년 9월 서울 서초구 내곡동으로 옮겨가면서 학교가 들어서게 됐다. 석관동 캠퍼스는 지난해 대한민국 토목 건축 대상을 수상했다. 이 한적한 대학 캠퍼스를 둘러보는 것도 나름대로 맛이 있다.

학교서 언덕 쪽을 올려다 보면 경희대학교가 보인다. 여기서 도로를 따라 가면 외국어대학교가 보이고, 그 다음이 경희대학교다. 이쪽 길이 나름대로 대학교 밀집 지역인 셈이다.

학교 옆에 있는 왕릉은 의릉이다. 국가안전기획부와 안기부가 있었던 탓에 1996년 5월 1일이 돼서야 비로소 일반에 공개됐다. 의릉은 장희빈 소생으로 조선 20대 국왕인 경종과 계비 선의왕후가 묻힌 곳이다. 경종은 숙종의 맏아들로 즉위 4년만인 37세에 세상을 떠났다.

북이문길 골목길
 북이문길 골목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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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곳까지 보고 나면 신이문역에서 시작한 이문동, 석관동 골목 여행은 어느 정도 마무리된다. 이 곳엔 서울에서 보기 힘든 골목길이 많이 남아 있는 편이다. 언덕을 끼고 있어 전망이 좋다. 게다가 번잡하지 않아 한가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아마 이 곳 골목길이 아름다운 길로 소개된 적은 없을 것이다. 그리스 산토리니 골목길은 유명 관광지로 소개해도, 우리나라 골목길은 불량주택이 모인 곳으로만 소개된다. 이에 대해선 건축가 승효상이 한 말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내가 감명을 받았던 금호동 달동네는 이미 없어졌다. 그런데 하늘 아래 가장 아름다운 동네라고 하는 산토리니와 비교해 보면 산토리니 공간구조와 금호동 달동네의 공간구조가 전혀 다를 바가 없다. 오히려 금호동 달동네에 눈이 오면 훨씬 더 아름답다. 산토리니에는 이미 관광객들이 많아서 그 진정성이 없어졌다. 하지만 달동네는 아직도 아귀다툼하는 삶이 있기 때문에 훨씬 더 건전하다. 남루해서 그렇지 눈이 오는 날에는 훨씬 아름다운 공간이 된다. 산토리니가 아름다운 이유는 아랫집의 지붕이 자기 집의 테라스가 되고, 옆집 벽이 내 집의 벽이 되고, 앞에 있는 도로가 앞집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통로가 되기 때문에 모여 살고 있는 삶의 모습이 공간적으로 아름답다는 것이다." - <이코노믹 리뷰>(2007년 12월 4일)의 이로재 대표 승효상이 말하는 '이 시대의 건축'


태그:#골목, #미니벨로, #신이문역, #이문동, #석관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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