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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 없이 살다보니, 더구나 지난 7일 발생한 태안 앞 바다 대형 유조선 기름 유출 사고로 말미암아 거의 혼이 빠진 상태로 지내다 보니, 금세 일주일 전 일이 되어버렸지만, 지난주 수요일(5일) 저녁에 특별한 경험 한가지를 했다.

 

 '새터민 초청 위로 및 화합대회'라는 이름의 행사에 참석하여 북한 탈출 '새터민'들과 처음으로 만남을 갖고 저녁식사를 함께 한 일이다.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태안군협의회(회장 이종국)가 10여 전부터 최근에까지 북한을 탈출해 와서 서산과 태안 지역에 자리를 잡고 생활하고 있는 새터민 33명을 초청하여 가진 행사였다. 관광버스를 한 대 대절하여 하루 동안 관광지가 많은 태안군의 이곳저곳을 구경시켜 주고, 읍내 음식점에서 만찬을 했는데, 모든 비용을 이종국 현 회장이 단독으로 부담했다.

 

 

이 뜻깊은 행사에는 진태구 태안군수와 이용희 군의회의장, 최상환 태안해양경찰서장, 서산경찰서 한윤우 정보보안과장, 태안의 최고 원로 유지이신 김언석 고문을 비롯한 태안 평통위원 다수가 자리를 함께 했다.

 

그리고 서산경찰서의 정보보안과 직원들도 여러 명 자리를 함께 했는데 새터민들과 친밀한 관계인 정보과 직원들의 모습에서 각별한 인상을 받았다. 그들은 새터민들이 남한 사회에 잘 적응하도록 격려하고 위로하며, 특히 생활정착을 돕는 일에 신경을 많이 쓴다고 했다.

 

 만찬을 나누기 전에 간단한 국민의례에 이어 이종국 평통 협의회장이 인사말을 했고, 한윤우 서산경찰서 정보보안과장이 격려사를, 진태구 태안군수와 이용희 군의회의장이 축사를 했다. 그리고 김언석 고문이 건배 제의를 했다.

 

 한윤우 정보보안과장은 서산경찰서장을 대신하여 격려사를 하면서 새터민들의 여러 가지 현실적인 어려움을 소개하고, 새터민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말을 많이 했다. 그런 그는 만찬을 할 때는 누구보다도 자리를 자주 옮기며, 새터민들과 술잔을 많이 나누었다.  

 

 그런 그를 비롯하여 새터민들과 어울려 식사를 하고 즐겁게 술잔을 나누는 정보과 직원들을 보면서 나는 고마운 마음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정보과 직원들과 나 사이에 간간이 긴장 관계가 빚어지기도 했던 과거 독재정권 시절도 나는 즐겁게 회억할 수 있었다.

 

 만찬이 거의 끝나갈 무렵 색다른 취흥을 얻으신 김언석 어른께서 또 한번 자리에서 일어나 건배 제의를 하면서 특별한 약속 한가지를 했다. 다음에는 자신이 내년 봄쯤에 또 한번 북한 새터민 초청 위로잔치를 마련하겠다는 약속이었다.

 

 태안의 최고 원로 유지이신 분의 그런 약속에 모든 이가 박수로 호응했고, 새터민 여러 명이 일어나서 감사를 표했다. 나 역시 진심으로 감사했다. 이런 뜻깊은 자리가 일회성 행사로 끝난다는 것은 너무도 아쉽고 무의미하다는 생각을 하던 참이었다. 새터민들과 다시 만나 즐겁게 어울리는 시간을 또 한번 가질 수 있게 된 사실이 정말로 기뻤다.

 

 그런 기쁨 때문에 나는 술 한잔을 더 했고, 어느 정도 취흥을 얻자 스스로 일어나서 한윤우 정보과장에게서 마이크를 받아들고 시낭송을 하고 노래를 불렀다. 지금이 5월은 아니지만, 그리고 친일파 시인의 이름이 별로 사랑스럽지는 않지만, '향수'를 나누기 위한 뜻으로 노천명의 '푸른 5월'을 낭송하고, 이은상과 홍난파의 가곡 '옛동산에 올라'를 불렀다.

 

 

 33명 새터민들의 이목을 내 한 몸에 집중시키며, 그리고 감동이 어리는 그들의 표정을 보면서 시를 읊고 노래를 부르는 것은 정말 색다른 기쁨이었다. 그런데 나는 내 카메라를 너무도 잘 간수한 나머지 다른 사람에게 사진 촬영을 부탁하지 못했다. 그래서 난생 처음 북한 탈출 새터민들 앞에서 시를 읊고 노래를 부르는 내 모습을 그만 카메라에 담지 못하고 말았다.

 

 북한 세터민들의 이런저런 모습을 카메라에 많이 담았지만, 그것을 인터넷 공간에서 마음대로 활용할 수 없는 사실도 많이 아쉽다. 40대 중반의 새터민 정 아무개씨는 마이크를 잡고 인사말을 하면서 이런 말을 했다.

 

 "고향을 버리고, 부모 형제와도 생이별을 하고, 북한의 체재가 싫어서 목숨 걸고 북한을 탈출해온 새터민들의 슬픔을 이해해 주십시오. 우리도 고향 생각 많이 합니다. 고향이 그리워 눈물지을 때도 많습니다. 하지만 북한의 체재가 싫어서, 자유의 땅으로 내려와 서산이나 태안을 제2의 고향으로 삼고 사는 이상 열심히 대한민국과 서산 태안을 사랑하며 살겠습니다. 도와주십시오."

 

 박수를 받은 그는 새터민들의 여러 가지 현실적인 어려움 중에서 두어 가지 경험 사례를 소개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는 내게 새터민들 사진을 인터넷 공간에 올리지 말 것을 부탁했다. 이미 사진 활용을 자제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나는 그에게 조금도 걱정하지 말라는 말을 했다.

 

 

 

 이런저런 아쉬움 가운데서도 나는 이종국 태안 평통협의회장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표했다. 그가 평통협의회장에 취임하자마자 그런 아이디어를 생각해냈다는 사실도 고마웠고, 모든 비용을 단독으로 부담하여 행사를 연 사실은 정말 고맙고도 미안했다.

 

 난생 처음 서른 명이 넘는 북한 새터민들과 저녁을 함께 한 것을 하느님께 감사하고, 내년 봄쯤에 다시 만날 수 있으리라는 것을 기꺼워하면서, 9시쯤 버스에 오른 새터민들과 기쁘게 헤어질 수 있었다. 2007년 12월 5일은 내게 의미 있는 날이었다.

덧붙이는 글 | 2007년 12월 현재 북한 탈출 새터민들은 총 10,705명에 이른다. 이중에서 남자는 4,155명이고, 여자는 6,550명이다. 연간 1000여 명~2000여 명씩 입국을 했고, 현재 충남에 거주하고 있는 새터민은 291명이다. 
 
 새터민들의 56%는 북한에서 무직.피부양자 처지였고, 36%는 노동자였다. 전문대 졸업 이상의 학력를 가진 이는 21%이고, 79%는 고졸 이하 학력이다. 자립이 상대적으로 용이한 20대는 26%이고, 30대는 34%이다.    


태그:#새터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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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태안 출생. 198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중편「추상의 늪」이, <소설문학>지 신인상에 단편 「정려문」이 당선되어 문단에 나옴. 지금까지 120여 편의 중.단편소설을 발표했고, 주요 작품집으로 장편 『신화 잠들다』,『인간의 늪』,『회색정글』, 『검은 미로의 하얀 날개』(전3권), 『죄와 사랑』, 『향수』가 있고, 2012년 목적시집 『불씨』를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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