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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 그려진 계단. 금화시민아파트에서 금화장2길쪽으로 가다 보면 보인다. 이와 같은 그림을 이 동네서 몇 번 더 볼 수 있다.
 꽃이 그려진 계단. 금화시민아파트에서 금화장2길쪽으로 가다 보면 보인다. 이와 같은 그림을 이 동네서 몇 번 더 볼 수 있다.
ⓒ 조정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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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로마 신화에 보면 아주 길이 복잡해서 누구라도 들어가면 빠져나올 수 없는 길이 있다. 그곳엔 괴물 미노타우로스가 살고 있어서 길을 찾다가 힘이 빠진 사람을 잡아먹었다. 유일하게 살아나온 인물이 바로 영웅 테세우스. 그를 사모하는 크레타 왕녀 아리아드네가 준 실을 풀면서 들어갔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이 미로는 바로 크레타 섬 지배자인 미노스가 만든 미궁이다.

충정로동과 북아현3동길은 미로와 같다.
 충정로동과 북아현3동길은 미로와 같다.
ⓒ 김대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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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정로동과 북아현3동을 돌아다니면서 미궁을 떠올린 것은 이 곳 길이 그만큼 미로 같았기 때문이다. 자동차가 주요 생활수단이 되면서 좁고 구불구불한 골목길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게 됐다.

빨랫줄처럼 곧고 넓은 길이 대세인 요즘 충정로동과 북아현3동에서 길을 누비는 즐거움을 느꼈다.

충정로동과 북아현3동은 안산 자락에 있다. 안산은 서울 내사산(內四山, 옛 한양 경계를 이루던 북악산 낙산 남산 인왕산) 중 서쪽 산인 인왕산 아래 있다.

북에서 한강을 보고 쭉 달려온 안산이 북아현3동에 이르면 양쪽으로 쫙 갈라진다. 한쪽 다리 꼭대기에 있는 동네가 충정로동이고 안산이 갈래로 나뉜 가운데에 쏙 들어가 있는 동네가 북아현3동이다.

충정로동, 북아현3동을 가는 방법에는 몇 가지가 있다. 한성과학고등학교 옆길을 타고 쭉 올라가다 안산 산허리길을 타고 쭉 가는 방안, 영천시장에서 천연뜨란채 아파트 뒤로 올라가는 방안, 경기대학교 쪽으로 올라가는 방안, 아현역으로 추계예술대학교쪽을 바라보고 가다 산길을 타는 방안이 있다. 어딜 가든지 모두 경사가 가파르다. 땀 흘릴 각오를 해야 한다.

서울에 눈이 내린 11월, 12월 초 두 번에 걸쳐 충정로동과 북아현3동을 찾았다.

69년 세워진 아파트, 곧 역사 속으로 사라져

금화시민아파트. 1969년에 세워졌다.
 금화시민아파트. 1969년에 세워졌다.
ⓒ 조정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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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정로동으로 들어서기 전에 꼭 봐야 할 곳이 있다. 충정로동 근처 천연동에 있는 금화시민아파트. 69년에 지은 아파트다. 원래 19동 850가구인 큰 단지였지만, 지금은 두 개 동만 남았다. 블로그 '여비의 서울수도 600년'(http://blog.paran.com/ee1536/16166727)에 가면 당시 지은 19동짜리 금화시민아파트와 산 꼭대기에 따닥따닥 붙은 집들을 볼 수 있다.

그 당시엔 최신 주택이었겠지만, 지금은 아주 남루한 상태다. 사람 나이로 39세. 그다지 많은 나이도 아니다. 아파트가 빨리 늙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람보다 훨씬 빨리 늙는다. 사람은 이제 한창 활동한 나이지만, 아파트는 이제 퇴역을 준비해야 할 시기다.

그런 점에서 아파트는 참 슬프다. 대를 이어 오래오래 살 곳이 못된다. 추억을 묻기엔 삶이 너무 짧다. 아파트의 삶은 도시의 변덕스러움을 닮았다.

지난 98년 12월 금화시민아파트는 붕괴위험 건물인 E급 건물로 판결된 바 있다. 당시 서울시는 주민들을 대피시키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또 9년. 금화시민아파트는 오래지 않아 철거될 상태다.

서울에선 제일 맏형 아파트가 될 이 건물에 들어서면 계단마다 놓인 아파트를 볼 수 있다. 복도마다 가득한 짐과 나무 문짝, 밖에 놓인 장독 등은 요즘 만들어진 아파트에선 도저히 볼 수 없는 풍경이다. 겉은 허름하지만 옥상에서 본 풍경은 놀랍다. 서울 사방이 한 눈에 들어온다. 전망이 좋다고 알려진 남산보다 한 눈에 들어오는 범위가 더 넓다. 서울을 보고 싶거든 꼭 금화시민아파트에 올라가 보시기를.

여기서 자전거를 타고 금화장2길 사거리까지 쭉 내리막길을 달리면 충정로동이다. 경사가 가파르니 브레이크를 잘 잡으면서 내려가야 한다. 금화장2길 사거리에서 금화장2길로 들어선 뒤 근처 적당한 곳에 자전거를 묶어두고, 골목 탐험을 시작하면 된다.

기와 지붕과 슬레이트 지붕이 모여 있는 동네
 기와 지붕과 슬레이트 지붕이 모여 있는 동네
ⓒ 김대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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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길 좌우는 모두 내리막길이다. 그래서 골목 여행을 하려면 계속 오르락내리락하게 된다. 경사를 따라 1, 2층짜리 집들이 놓여 있으나 어느 집이 다른 집 시야를 가리지 않는다. 어디서나 옥상에 오르면 서울이 내려다 보인다. 고층빌딩이라면 몇몇 집만 누릴 수 있는 복이다.

기와 지붕과 슬레이트 지붕이 섞여 있다. 어떤 지붕은 천으로 덮었다. 가끔씩 옥상이 있는 양옥집이 섞여 있다. 공간 활용 측면에선 옥상이 있는 양옥이 좋겠지만, 기와 지붕이나 슬레이트 지붕이 어디 실용 목적 뿐이겠는가.

<그 골목이 품고 있는 것들>이란 책에서 글을 맡은 황인숙은 "지붕 위에 쏟아지는 빗소리만큼 상쾌한 건 없다. 지붕을 씻어 내리는 빗소리를 듣고 있으면 머리를 감는 것처럼 개운하다"고 표현했다. 이런 기분은 기와지붕 집에서 제대로 느낄 수 있다.

기와집 골목 동네에선 골목이 곧 빨래를 너는 곳이다.
 기와집 골목 동네에선 골목이 곧 빨래를 너는 곳이다.
ⓒ 조정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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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와집이 많은 골목동네에선 지붕에 빨래를 널 만한 공간이 없다. 말릴 만한 것은 전부 골목에다 내건다. 옷도 내걸고 양말도 내걸다. 말려서 국거리나 반찬거리로 쓸 야채도 내건다. 골목은 통로이자 건조대인 셈이다. 그런 점에서 기와집이 주를 이룬 골목동네에서는 내 살림살이를 동네 사람들에게 고스란히 드러낸다.

기차길 옆 기와집들, 타임머신 타고 70년대로 이동

금화장2길, 능안1, 2길, 능동길, 능동3길이 대표 미로길이다. 끊어질 듯하면서 이어지고, 이젠 끝이겠거니 싶은데 또 이어진다. 바로 서서는 빠져나가기 힘든 골목도 있다. 끝없이 내려가고, 끝없이 올라간다. 갑자기 휘어졌다 옆으로 빠지는데, 쭉 따라가다 보면 갑자기 막히는 곳이 있다. 여기가 철도길이다. 아래로 기차가 지나가는데, 바로 경의선이다.

충정로동과 북아현3동 옆을 경의선이 지나간다. 사진을 찍은 곳이 충정로동, 멀리 보이는 곳이 북아현3동이다.
 충정로동과 북아현3동 옆을 경의선이 지나간다. 사진을 찍은 곳이 충정로동, 멀리 보이는 곳이 북아현3동이다.
ⓒ 조정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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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의선 서울 구간은 서울역, 신촌역, 가좌역, 수색역 등 네 군데다. 서울역을 제외한 세 개역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아주 고즈넉한 곳이었다. <봄날은 간다>의 촬영장소이기도 했던 수색역은 2005년 2월 28일 헐렸고, 신촌역은 최근 대형 쇼핑몰이 들어서면서 예전의 고즈넉한 분위기는 사라진 상태다.

기차길 옆으로는 기와집들이 일가를 이루고 있다. 타임머신 타고 70년대로 순간 이동이다. 기차가 지나가길 기다리며 사진을 찍고 있는데, 슬며시 문이 열린다. 아이 세 명이다. 사진을 찍고 있는 어른 두 명이 신기했던 모양이다. 아이들 얼굴에 호기심이 가득하다. 뭔가 물어보고 싶어 입을 오물거리다, 문을 슬며시 닫는다.

잠시 발걸음을 옮긴 다음 다시 사진을 찍었다. 제일 큰언니로 보이는 아이가 뛰어나와 뭔가 질문을 던질 듯하다가 입을 닫는다. 질문을 하라는 특명을 받은 모양인데, 영 쑥스러움이 많다. 싱긋이 웃고, 자리를 떴다.

골목이 많은 이 곳에선 중간중간 쉴 수 있는 평지형 공간이 군데군데 있다. 그 중엔 사진처럼 평상이 있는 곳도 있다.
 골목이 많은 이 곳에선 중간중간 쉴 수 있는 평지형 공간이 군데군데 있다. 그 중엔 사진처럼 평상이 있는 곳도 있다.
ⓒ 조정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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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이 많은 이 곳에선 중간중간 쉴 수 있는 평지형 공간이 군데군데 있다. 그 공간에 놓인 평상을 봤다. 위치로 봐선 누구네 집 평상 같진 않다. 아마 이 길을 지나는 사람들 쉬어가라고 내놓은 모양이다. 말없는 배려다. 평상을 내놓은 이의 마음씀씀이가 느껴진다.

추계예대 뒤쪽길은 북아현3동인데, 여기선 손바닥만한 간판을 단 가게를 봤다. '공주식품'. 종이로 갈겨 쓴 간판 크기는 겨우 종이 크기. 자신을 알리기 위해 더 크고, 더 화려한 간판을 만드는데 혈안이 된 시대. 오죽하면 아름다운 간판 운동까지 할까. 그런데 이 곳 간판은 지극히 겸손하다. 몇 발자국 걸어서 본 가게는 아예 간판이 없다. 하긴 동네사람이 손님일 이 동네서 큰 간판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싶다.

왼쪽 벽에 조그많게 붙은 게 가게 간판이다.
 왼쪽 벽에 조그많게 붙은 게 가게 간판이다.
ⓒ 김대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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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은 집과 구멍가게, 이발소, 목욕탕, 약국 등 여러 가지가 어우러져 만들어지는 삶 공동체다. 그 중 하나만 빠져도 뭔가 허전하다. 골목이 자꾸 무너지는 이유는 사람들이 자동차를 타고 멀리 가기 때문이다. 물건을 사러 갈 때는 큰 마트에 가서 자동차에 잔뜩 사가지고 돌아오고, 감기에만 걸려도 시내 큰 병원에 간다. 목욕탕에서 씻는 대신 찜질방 나들이를 한다. 이래저래 골목에는 집만 남고, 집만 남은 골목은 아파트 동네로 바뀐다.

전차 달리던 시절 번성하던 영천시장, 정이 있는 곳

충정로동과 북아현3동을 구경하면서 고개 두 개를 올랐다. 어느새 오후 5시 30분. 짧은 겨울 해는 이미 자취를 감췄다. 금화시민아파트에서 독립문 쪽으로 내려가면 영천시장(靈泉市場)이 나온다. 아주 오래된 재래시장이다. 원래 인근 독립문공원 쪽에 있던 약수터 물이 좋아 영천(靈川)이라고 부르던 데서 비롯했다.

영천시장. 전차가 다니던 시절, 마포에서 출발한 전차가 막바지로 서던 곳이다.
 영천시장. 전차가 다니던 시절, 마포에서 출발한 전차가 막바지로 서던 곳이다.
ⓒ 조정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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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나 지금이나 시장은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에 발달하기 마련이다. 영천시장은 옛날 전차가 서던 곳이었다. 마포에서 출발한 기차가 영천(독립문)에서 끝났다. 종점인 셈이다. 전차는 1968년 11월 30일 사라졌다.

코미디언 배삼룡이 쓴 <한 어릿광대의 눈물젖은 웃음>이란 책에 영천시장에 대한 언급이 나온다. "66년 서울 서대문 영천 시장 근처에다 코미디 연기학원을 내게 된 것이다"라고 밝히고 있다. 이 기록에 따르면 영천시장의 나이가 적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영천시장엔 일흔쯤 된 할머니가 운영하는 허름한 순대 머리고기 집이 하나 있다. 저녁을 먹으러 들른 날 60대 어르신과 마침 자리를 함께 하게 됐다. 어르신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8시 30분쯤 나왔다. 할머니께서 "이제 쉬어야겠다"며 장사 끝내겠다고 밝히셨기 때문이다. 어르신과는 근처 공중화장실에서 다시 만났다. 어르신은 술을 한 잔 사줄 테니 따라오라고 하셨다.

영천시장에서
 영천시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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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세상을 떠난 시인 천상병과 어울렸다는 어르신은 옛날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정신없이 듣다 보니 1시간이 금세 훌쩍 지났다. 어르신은 "나 혼자 이야기를 해서 미안한데…"라며 "자네들도 이야기를 해보게"라고 권하곤 하셨다. 별로 이야기하고 싶지가 않았다. 어르신 이야기가 워낙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그 분은 나이 일흔쯤 된 할머니가 운영하시는 가게 단골이라고 하셨다. 한 번씩 가서 팔아줘야 마음이 편하시다는 거다. "9시 가까워오면 장사 그만하겠다고 손님 내쫓는 할머니가 뭐가 좋냐"고 덧붙이지만, 할머니를 타박하는 말투가 아니다. 그게 정이다. 골목에서 얻을 수 있는 행운이란 이런 것이다. 도시는 계속 과거를 지우며 달리지만, 골목엔 도시의 기억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오늘도 살아있는 기억 한 편을 만났다.


태그:#골목, #미니벨로, #충정로, #북아현3동, #금화시민아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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