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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핵문제가 또 다시 중대한 고비를 맞고 있다. 지난 10월 3일 발표된 6자회담 합의에 따라 올해 안에 완료키로 한 북한의 2단계 비핵화 조치 가운데 '모든 핵프로그램 신고' 여부가 불투명해졌기 때문이다.

 

5일까지 2박3일간 북한을 방문하고 중국 베이징으로 나온 6자회담 미국측 수석대표 크리스토퍼 힐 국무차관보는 "차기 6자회담의 연내 개최가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에 들고 들어간 과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돌아왔음을 사실상 시인한 것이다.

 

힐 차관보는 "북한과의 회담 분위기가 매우 협조적이었다"면서도 "어떤 부분에서는 명확한 의견차가 있었다"고 말했다. 그가 말한 '의견차'와 관련, 연말까지 극적인 돌파구가 마련되지 못한다면 6자회담 합의틀 자체가 흔들릴 가능성이 있다.

 

송민순 장관 "북한 핵문제 고비에 와있다"

 

송민순 외교통상부 장관도 6일 오전 대한상공회의소 초청 강연에서 "현재 핵문제는 안정적으로 풀려나가느냐, 삐걱거리는 굴곡을 겪느냐, 고비에 와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완곡한 표현을 쓰긴 했지만, 상당한 '위기의식'이 반영된 말이다.

 

송 장관은 "연말까지 하자고 합의한 것 중 핵시설 '불능화'는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는데 '신고' 부분이 잘 안되고 있다"면서 "연말을 목표로 하되 목표 일자가 맞지 않으면 탄력적으로 조정하면서 현실적으로 맞는 방향으로 해 나갈 것"이라며 일정 재조정 가능성을 시사했다.

 

송 장관은 "미국 정부는 북한이 납득할 수준의 '신고'와 '불능화'를 하면 의회에 북한을 테러국가명단에서 해제하는 통보를 할 준비를 하고 있다"고 소개하면서 "북한이 자신감을 가지고 신고하면 미국도 가게 돼있으므로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고 주문했다.

 

정부 관계자들에 따르면 현재 북-미간에 결정적으로 이견을 보이고 있는 부분은 우라늄농축프로그램(UEP)의 신고문제이다.

 

북한은 우라늄 농축기계인 원심분리기의 재료가 되는 알루미늄관을 러시아 업자 등으로부터 수입한 사실은 이미 미국에 인정했지만, 핵프로그램과는 관련 없는 다른 무기 등을 만드는데 사용했다며 UEP 자체가 신고 대상이 아니라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미국 정부는 2002년 '2차 북핵위기'의 발단이 된 이 문제를 신고에 포함시키지 않는다면 국내적으로 대북 테러지원국 해제 등의 '상응조치'를 취하기 위한 절차를 진행하기 어렵다는 점을 들어 북한측을 설득하고 있다는 것이다.

 

힐 차관보가 평양으로 달려간 것도 북한의 정책결정권자들을 직접 만나 이 점을 설득하기 위한 목적이었다고 정부 관계자는 전했다.

 

우라늄 농축프로그램 신고 둘러싼 입장차

 

북한이 이번에 힐 차관보에게 어떤 입장을 전달했는지는 정확히 확인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미국측에서 나오는 반응을 보면 적어도 최초로 제출할 신고목록에 UEP 문제를 포함시키지 않겠다는 입장은 확고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으로서는 미국이 제기한 UEP의 존재를 공식적으로 부인하는 입장을 취해왔기 때문에 신고목록에 포함시키지 않는 것이 어떻게 보면 당연하다.

 

'신고' 과정은 북한이 목록을 제출한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검증과 보완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따라서 미국이 의심 가는 사항이 있으면 다음 단계에서 제기하라고 요구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미국측은 최초 제출한 신고목록에 UEP가 전혀 들어가있지 않으면 대북 협상파들의 입지가 좁아진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신고’와 ‘불능화’의 상응조치로 북한에 약속한 테러지원국 명단 삭제와 적성국교역법 적용 배제도 추진하기 힘들어진다는 것이다.   

 

힐 차관보는 "북한의 신고목록은 대략적인 초안이라고 해도 완전하고 정확하게 이뤄져야 한다"며 북한의 자세 변화를 촉구했다.

 

톰 케이시 미 국무부 부대변인도 5일(현지시간) 정례브리핑에서 "우리의 관점에서 중요한 것은 북한의 핵신고는 모든 것을 포함해야 할 필요가 있고, 북한이 보유하고 있는 모든 범위의 핵프로그램과 활동을 담아야 한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새로운 협상단계 두려는 포석?

 

핵프로그램 신고 목록에 UEP가 포함돼야 한다는 입장에서는 한국도 미국과 대체로 일치된 입장을 보이고 있다 

 

송민순 장관은 6일 강연회에서 "북한이 지금까지 어떤 핵 활동을 했고 어떤 물질을 갖고 있는지 다 신고해야 한다"며 '성실한 신고'를 강조했다. 백종천 청와대 안보실장도 5일 미국방문을 마치고 돌아와 "미국이나 다른 관련국들이 만족할 수 있는 선의 신고가 나와야 그 다음 단계로 진전할 수 있다"며 북한측을 압박했다.

 

정부 관계자들은 UEP 문제에 관한 미국의 의도가 문제를 '확대'시키는 쪽보다는 '정리'하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말하고 있다. 이미 미국정부 내에서도 우라늄 농축에 관한 당초 정보가 과장됐음을 인정하고, 당초 'HEU(고농축우라늄)'이란 용어도 'UEP'로 수정한 마당에, 북한이 한 때 우라늄 농축을 시도했더라도 '과거의 일' '연구용' 등으로 해명하면 문제는 말끔히 해결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북한이 이런 문제해결 방식에 응할 것이란 조짐은 아직 나타나지 않고 있다. 그 이유는 현재 정확히 확인되지 않고 있으나 대개 두 갈래의 추정이 가능하다.

 

먼저 미국의 의도를 믿지 못해서, UEP를 신고에 포함시키면 새로운 꼬투리를 잡히게 되는 것이 아닐까 의심하고 있을 수 있다. 송 장관이 이날 북한에 '자신감'을 주문한 것은 바로 이런 분석에 기초한 발언으로 보인다.

 

또 하나의 추정은 북한이 UEP 문제를 별도의 협상카드로 분리시키려는 의도 아니냐는 것이다. UEP 문제에 대해 계속 '모호성'을 유지하면서, 핵 폐기 전에 새로운 협상단계를 설정하려는 포석일 수도 있다.

 

북한의 의도는 연말까지의 협상 과정에서 보다 분명하게 드러날 것이다. 이미 '초읽기'에 몰린 협상은 연말까지 남은 기간에 긴박감을 더해 갈 것으로 예상된다. 만약 이 고비를 넘기지 못하고 6자회담 합의가 좌초한다면 한반도에 다시 암운이 드리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태그:#6자회담, #북한 핵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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