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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토요일 오후.

  퇴근하여 집에 들어오니, 아무도 없다. 쉬는 토요일이 아니어서 근무를 하였다. 텅 빈 집이 왠지 처연하게 만든다. 집사람은 이웃 집 김치 담는 일을 도와주러 갔고 아이들은 모두 바빠서 외출한 것이다. 정적이 내려앉은 공간에 나 홀로 있다는 느낌이 묘하였다. 조용한 공간의 안내에 따라 마음이 따라간다.

 

 

소리가 없는 공간에 익숙하지 않았기에 이상한 느낌이 생기는 것이 분명하였다. 사람들 사이에서 부딪히며 소리 속에서 살고 있다가 갑작스레 아무 소리도 없는 공간에 들어서니, 낯설다. 처음에는 익숙하지 않아 불안하고 두렵기까지 하였다. 그러나 이내 그런 마음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새로운 세상에 들어서게 된다.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나만의 시간을 가져본 것이 얼마만인가? 몸과 마음에 따닥따닥 붙어 있는 때들이 시나브로 떨어지는 느낌을 갖게 된다. 묵은 때를 털어버리는 일은 개운한 일이다. 몸과 마음을 잡고 놓아주지 않는 구속에서 벗어나는 느낌을 갖게 된다. 그렇게 가벼울 수가 없다. 가벼움에 마음이 한결 싱그러워진다.

 

 

일상에 쫓겨 잊어버리고 있던 일들이 하나하나 살아난다. 반복되는 생활 속에서 무엇이 그리도 바빠서 놓아버리고 있었는지 스스로 이해할 수가 없다. 내 안을 들여다보면서 나를 반추해보는 일이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었다. 그 동안 소홀하였던 나에 대해서 미안함을 진솔하게 사과한다. 문득 떠오르는 생각이 있다.

 

'삼천천에 억새가 빛나고 있을 텐데--.'


  집 앞에 있는 시내다. 도심 한 가운데를 흐르면서 시민들에게 삶의 활력을 불어넣어주는 곳이다. 가까운 곳에서 살고 있으면서 게으른 탓으로 나가보지 않은 것이 6개월도 넘었는가 보다. 겨울이 다가오고 있는 삼천천의 모습이 갑자기 보고 싶어진다. 참을 수 없는 욕구로 인해 카메라를 들고 나섰다.

 

 

옷깃 사이로 들어오는 바람 기운이 제법 쌀쌀하다. 그러나 차가움에서 느낄 수 있는 상쾌함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3 분 정도를 걸으니, 삼천천에 들어설 수 있었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올 수 있는 곳이었다. 그런데 왜 그렇게 자주 오지 못하였는지, 모를 일이다. 모두가 게으른 탓이다.

 

 서쪽으로 향하고 있는 햇살을 받고 있는 냇물은 여유로 넘쳐나고 있었다. 흐르는 물은 은빛으로 빛나고 있었고 물 한 가운데에는 새들이 한껏 삶을 음미하고 있었다. 반짝이는 물 사이를 헤엄치고 있는 청둥오리의 모습이 그렇게 유연할 수가 없다. 거기에다 하얀 몸매를 자랑하면서 서 있는 왜가리의 모습 또한 우뚝하기만 하다.

 

 

"야 ! 아름답다."
  바람에 흔들리고 있는 억새들이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바로 위에서는 자동차들이 홍수를 이루고 있었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가는 가을의 마지막을 빛내고 있는 모습이 그렇게 돋보일 수가 없다. 흔들릴 때마다 햇살을 받고 빛나고 있어서 마음을 꽉 잡아버린다. 마치 그리운 사람을 놓아줄 수 없다는 듯한, 몸짓으로.

 

  한 해의 끝자락에서 바라보는 억새의 모습은 그리움을 키워준다. 그리움은 잊을 수 없는 사람에 대한 애틋한 정이다. 그리움의 대상이 되는 사람은 시 공간을 초월하여 먼 곳으로 떠나갔지만, 내 마음에서는 보내지 못한 사람이다. 야속하게 떠나간 사람이지만 영원히 보낼 수 없는 사람에 대한 사랑의 표현이다.

 

 

  눈부시게 빛나고 있는 억새들의 모습에서는 보낼 수 없는 그리움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나에게서 멀리 떠나갔지만 마음으로는 영원히 보낼 수 없는 마음을 그대로 나타내고 있었다. 눈앞에 어른거리는 그리운 사람을 떠올려본다. 아픔은 이제 삭아졌다. 고통은 세월 따라 멀어졌고 그 진액만이 남아 감미로움이 만져진다.

 

  억새 속에서 그리움 사람을 떠올리곤 은은하게 밀려오는 감정에 푹 젖어버렸다. 그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나만의 시간과 나만의 공간에서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며 즐기는 행복 속에 푹 빠져버렸다. 앞으로는 나만의 시간을 좀 더 많이 가져야겠다. 내 안을 탐험하며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는 즐거움이 이렇게 큰 줄 처음 알았다. 억새들의 몸짓이 그렇게 부드러울 수가 없었다.

덧붙이는 글 | 사진은 전주시 삼천동 삼천천에서


태그:#삼천천, #여유, #그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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