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지난 10월 10일자 스탠포드대학 신문(The Stanford Daily)에는 흥미로운 칼럼이 실렸다. 제목은 이렇다. “Hillary's problem with the 'B-word”. 스튜어트(Stuart Baimel)라는 필자는, 글 머리에 이렇게 질문을 던진다.
 
"힐러리의 '성'(문제가)이 오바마의 '인종'(문제) 보다 이번 선거에 더 큰 이슈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은 놀라운 일"이라고. 이게 무슨 말인가?

 

미국 사회에서는 공개적 논의가 터부시되고 있는 '성차별', '인종차별' 문제가 이번 대선에서 민주당 유력 후보들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것이다. 힐러리는 '여성'이라는 성적인, 오바마는 '흑인'이라는 인종적 약점을 가지고 있다는 것.

 

문제는 이 두 약점 중 오바마의 인종적 핸티캡 보다 힐러리가 '여성'이라는 사실이 더 큰 약점이 될 거라는 것이다. 이해가 되는가? 남녀평등 사회로 소개돼 온 미국사회가 아닌가. 종종 인종 차별이 상존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어 온 우리기에 인종적 편견은 그렇다치더라도, 성적 문제는 선뜻 수긍하기 어려운 얘기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것은 '추론'이 아니라 '사실(fact)'로 나타났다.

 

지난 9일 USA투데이와 갤럽이 발표한 공동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미국내 '기혼 남성'의 55%는 '힐러리에게 투표하지 않을 것'이라고 답했다. 또한 전체 남성응답자의 50%와 여성 응답자의 36%가, 공화당 지지자의 84%가 힐러리에게 투표하지 않겠다고 답변했다.

 

특히 배럭 오바마나 존 에드워드에 대해서는 공화당원 60%가 거부의사를 표명한 것에 비교해보면, 공화당원들의 힐러리에 대한 거부감은 거의 '묻지마' 수준이다. 남녀 불문한 전체 응답자 중에서는 43%가 이번 대선에서 힐러리를 지지하지 않겠다고 밝혔다는데 그 이유가 "개인적으로 싫고, 각종 이슈에 대한 관점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란다. 그 중에서도 방점은 전자에 찍힌다. '개인적으로 싫어서!'  

 

 

필자가 미국에 온 지 석달이 지나고 있지만 부시를 칭찬하는 미국인은 단 한사람도 보지 못할 정도로, 다가오는 대선에서 미국인들의 정권교체 의지는 확고한 것 같다. 부시 대통령에 대한 최악의 지지율에 힘입어 민주당 후보로만 지명되기만 하면 백악관 입성은 '따 놓은 당상'인 듯 보인다.

 

이런 점에서 현재 민주당 후보 중 선두를 유지해 온 힐러리의 당선은 무난하게 보였다. 그러나 '정치는 생물'이라 했던가. 최근 들어 힐러리의 대세론이 흔들거리는 징표가 하나 둘씩 나타나고 있다. 이에는 물론 복합적인 이유가 작용하고 있다.

  
최근 민주당 후보 토론회에서 잦은 말바꾸기와 '짜고 친' 질의 응답이 들통나면서 도덕성에 큰 상처를 입은 것도 한 요인이다.

 

이 외에도 지난 12일 영국 '선데이 타임스'의 보도 '대통령 가족 독식론'도 그의 대세론을 흔들리게 하는 데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힐러리가 재선까지 성공하면, 클린턴 일가와 부시 일가가 돌아가며 백악관을 접수하는 기간이 무려 28년에 달하는 '왕조'가 탄생한다는 논리가 그것이다. 부시 일가 집권 때는 아무런 문제삼지 않다가 유독 지금 힐러리에게 이 논리를 적용하다니, 그녀로서는 분통 터질 일이다.

 

그동안 힐러리캠프는 빌 클린턴의 'two for one'이라는 구호를 표를 얻는 전략의 하나로 사용했었다. 그런데 이게 오히려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고 있는 것이다. 빌 클린턴은 좋아하면서도 힐러리에 대해서는 부정적 태도를 보이는 유권자들도 많아, 이들의 표를 오바마가 어부지리로 흡수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민주당이 본선에서 승리하려면, 유색인종이나 여성 등 전통적인 민주당 지지층에다 부동층 및 공화당 지지자들을 일부 흡수해야만 가능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스탠포드신문에 기고한 스튜어트는 이를 '백인남성'으로 구체화시켜 지적한다.

 

"지난 2004년 존 케리 상원의원(민주당 대선후보)은 백인 남성 투표자의 36%만 얻었을 뿐이다. 이는 기본적으로 앨 고어가 2000년에 얻은 동일한 양이다. 백인남성은 전체 유권자의 39%에 육박한다."

 

결국, 이 백인남성들의 표가 문제라는 것인데…. 힐러리는 이 장벽을 넘을 수 있을까?

 

공화당 진영은 물론 민주당 내 그의 반대진영도 그것을 알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 이러한 그녀의 약한 고리를 잡고 계속 집중적으로 흔들고 있다.

 

 

돌아오자. 앞서 그녀의 성적 정체성이 핸디캡으로 작용한다고 했다. 그런데 이게 '역설적'이다. 그녀의 반대자들은 그녀를 여성이기 때문에 반대한다기 보다는, 힐러리가 여성임에도 '여성답지 않은 여성'이라는 이유를 부각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정적들은, 클린턴 재임시절 백악관에서 르윈스키와의 스캔들이 공개됐음에도 그의 곁을 지킨 그녀를 두고 권력에 눈이 먼 '야망의 화신' '차가운 여자'라는 딱지를 붙인다. 기자회견을 통해 자신의 아내에게 이혼사실을 알린 공화당 후보 줄리아니에게는 상대적으로 관대하다.

 

이는 설사 민주당 후보지명이라는 일 단계 관문을 힐러리가 어렵게 통과한다 하더라도, 만만치 않은 복병이 자리잡고 있다는 것을 말해 준다. 그게 바로 '여성'이라는 핸디캡이라면 믿기겠는가? 자유의 나라, 남녀평등의 나라를 표방하는 미국에서?

 

스튜어트는 이를 두고  "그렇다면 힐러리는 다른 남성 경쟁자들과는 다르거나 이중적인 기준을 요구받고 있는 것이 아닌가" 반문한다. 그녀가 다른 남성 경쟁자들과 똑같이 정치적으로 행동해도 그녀는 다르게- 부정적으로 예단되고 있으니 하는 말이다. 이어 그는 이렇게 반문하며 글을 맺고 있다. 필자 또한 똑같은 질문을 던지고 싶다.

 

"미국은 진정 여성대통령을 맞을 준비가 되어 있는가?" 

  
만일, 만일이라 했다. 오바마가 힐러리를 제치고 민주당 대선 후보 지명에 성공한다면, 이 질문은 이렇게 바뀔 것이다(이번만큼은 쉬울 것 같던 미국의 정권교체가 이번도 만만치 않은 일이라는 것이다).

 

"미국은 진정 흑인대통령을 맞을 준비가 되어 있는가?" 라고.

 

후기) 이 글을 마무리 지을 무렵, 지난 26일  발표한 '조그비'의 여론조사 결과를 들었다. 이 여론조사에서 민주당 선두주자인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은 줄리아니 전 뉴욕시장 등 5명의 공화당 후보들과 일대일 대결을 벌일 경우 모두 3~5% 차로 패배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현재 2위를 달리고 있는 버락 오바마 상원의원은 공화당 대선주자들과 맞붙을 때 5∼7%포인트 앞서는 것으로 조사됐다. 힐러리의 대권가도에 본격적인 빨간불이 켜진 것이다. 정말 아직 미국은 여성대통령을 맞을 준비가 안되어 있는 것일까?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제주의소리(jejusori.net)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힐러리, #힐러리 클린턴, #미국 대선, #부시, #민주당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2017년 부탄과 코스타리카를 다녀 온 후 행복(국민총행복)과 행복한 나라 공부에 푹 빠져 살고 있는 행복연구가. 현재 사)국민총행복전환포럼 부설 국민총행복정책연구소장(전 상임이사)을 맡고 있으며, 서울시 시민행복위원회 공동위원장, 행복실현지방정부협의회 자문위원을 맡고 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