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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이, 인절미! 부산 가자!"
"뜬금없이 부산은 왜?"
"공.연.보.러!"


설득 따윈 필요 없었다. 친구 인절미와 난 아침 6시 15분 부산행 열차에 바로 몸을 실었다. 1년에 한 번, 마치 발작처럼 어떤 이유로든 부산을 가지 않으면 향수병에 시달린다. 대부분은 할머니 댁에 가는 것이지만 이번 부산행의 핑계는 평소 좋아하던 밴드 지하드의 전국투어 마지막 공연. 물론 서울 공연을 이미 보았지만 부산 공연에선 게스트 밴드로 평소 쉽게 만날 수 없는 부산 밴드 바크하우스가 참여하기 때문에 겸사겸사~

어둠을 가르는 열차에 몸을 맡기고 앉아 있으려니 참고 있던 심장 저 깊은 곳의 뜨거운 한숨이 훅- 하고 토하듯 뱉어져 나왔다. 허했다. 사실 바로 이틀 전, 몇 달간의 집필 작업을 끝낸 것도 이번 부산행을 시도한 이유 중 하나였다. 아직 경험이 적은 나로선 긴 작업 끝의 탈고, 그 후엔 병처럼 따라붙는 공허함을 메울 무언가가 절실하다. 제2의 고향과도 같은 부산에서 보는 공연은 어쩌면 이 허기와 같은 공허함을 달래주지 않을까 하는 바람.

그 누가 따를소냐, 저 카리스마를.
▲ 바크하우스 그 누가 따를소냐, 저 카리스마를.
ⓒ 바크하우스 공식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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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브 공연을 찾는 사람들

부산 대학교 인근의 라이브 클럽 무몽크. 저녁 7시에 시작되는 공연을 위해 많은 이들이 줄지어 기다리고 있었다. 지방 공연이라지만 관객은 가지각색. 우리처럼 서울 혹은 다른 지역에서 온 이들도 많았고 전국 투어의 모든 공연을 찾아갈 만큼 열성적인 이들도 있었다. 또한, 부산에 뿌리를 둔 부산 지역 록/메탈 동호회 사람들과 소식 듣고 찾아온 개인 관객들도 많이 보였다.

보통 이런 메탈 공연장을 찾는다 하면 어린 학생들이나 20대들을 떠올리곤 하는데 뜻밖에 30대 이상의 '어른' 관객들이 더 많다. 가수 신해철이 어느 인터뷰에선가 "우리나라의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레드 제플린을 알려줄 의무가 있다"라고 말했는데 이렇게 공연장을 직접 찾아 함께 음악을 느낄 수 있는 중장년층들이 늘어날수록 우리나라 록/메탈이라는 장르가 힘을 얻게 되지 않을까.

공연 중간, 막간 연주곡 타임.
▲ 베이스와 기타 공연 중간, 막간 연주곡 타임.
ⓒ 지하드 공식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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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돈 1만 원을 입장료로 지불하고 들어서면 그리 넓지 않은 내부가 '놀 준비가 되어 있는' 관객을 맞이한다. 그 누구의 간섭도, 정해진 규칙도 없이 그저 마음이 가는 대로 각각의 취향대로 음악을 '즐기면' 된다.

이날 역시 빙의된 연주로 관객들을 쓰러뜨리셨다.
▲ 기타리스트 박영수씨 이날 역시 빙의된 연주로 관객들을 쓰러뜨리셨다.
ⓒ 지하드 공식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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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비가 비싸다는 말이 많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유명 뮤지션의 내한공연이나 국내 정상급 뮤지션일 때나 통하는 말이지 이러한 작은 클럽 공연은 8천 원에서 2만~3만이 고작이다. 그리고 어떤 공연은 맥주나 음료를 한 병씩 주기도 하고 공연 밴드의 CD나 티셔츠를 선물하는 입장권 추첨도 있다. 나 또한 이 날 공연에서 지하드 밴드의 티셔츠를 받았다.

그렇다면, 계산은 나온다. 1~2만 원 하는 공연비로 관객은 40~50명. 이래저래 차 떼고 포 떼고 나면 남는 게 없다는 말. 이 정도 되면 관객이 돈을 내고 입장하는 것이 아니라 밴드가 돈을 쓰고 '공연 보러 오세요' 가 되는 것.

인디밴드라서 그런 것이 아니냐고 묻는다면 좀 더 상세히 알려드릴 수 있다. 텔레비전에 간간이 얼굴을 드러내는 나름 인지도 있는 밴드의 공연은 수백 명의 관객이 줄지어 입장할 것 같지만 대부분은 온라인 상으로 MP3을 내려받아 듣거나 가수의 미니홈피를 찾아 들어가기 바쁠 뿐이고 정작 한 번의 공연도 가지 않은 이들이 부지기수다. 그렇기에 관객 수는 3자리를 넘기는 경우가 거의 없다.

"얼굴은 알려졌지, 공연한다고 홍보는 해놨지, 그런데 관객 20명 왔다고 하면 오히려 공연한 걸 숨기고 싶을 때도 있어요. 뒤에서 쑤군대거든요. 학예회 했느냐고."

재작년, 연재기사 '자유정신 부활 시대, 음악의 힘'에서 인터뷰 한 모 밴드가 했던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들에게 헬로윈이나 스트라토바리우스를 운운하며 노력하라고 채찍질하기엔 싹이 틀만 한 농지부터가 무척 척박한 것이 사실이다.

또한, 알게 모르게 우리나라 밴드 중에는 세계시장에 내놔도 뒤떨어지지 않을만한 뮤지션들이 많다. 과연 일부 대중들이 어디서 뭘 찾아 듣고 무조건 국내 록/메탈이 한참 멀었다고 끌끌끌 혀를 차는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찾아도 잘 찾아야지, 검색어 잘 돌려서…)

느낀다, 느낀다… 그 분이 오신다!!!
▲ 빙의 중이신 베이시스트 장종권씨 느낀다, 느낀다… 그 분이 오신다!!!
ⓒ 박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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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아 보아요~!

부산 밴드인 '바크하우스'가 이날 공연의 시작을 알렸다. CD와 라이브의 느낌은 참 달라서 집에서 듣는 음악이 아무리 좋아도 라이브 공연을 본 후 박수가 절로 나와야 진정 '팬'이 되곤 한다. 그래서 음원으로만 듣던 이 부산밴드의 라이브를 직접 보고 싶었다.

"오길 잘했다."
"그러게, 종합선물세트다!!!"


이 날 거의 실신 직전의 연주를 보여준 드러머 심동린씨. 소녀팬들 가슴에 또 불 붙었을 듯…
▲ 흠뻑 젖은 드러머 이 날 거의 실신 직전의 연주를 보여준 드러머 심동린씨. 소녀팬들 가슴에 또 불 붙었을 듯…
ⓒ 지하드 공식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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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작스런 부산 원정이 헛되지 않을 만큼 열정적이고 신나는 무대였다. 워낙 라이브 무대에서 잔뼈를 다진 이들이라 흔히 신문기사에서 볼 수 있는 '가창력 논란'에 휩쓸릴 걱정은 없다. 잘하느냐 못하느냐가 아닌 얼마나 잘하느냐를 논할 수 있는 무대는 관객들의 귀를 업그레이드 시켜준다.

이윽고 이번 공연의 메인인 '지하드'의 무대가 시작되었다. 보통 바로크 메탈이라 불리는데 장르에 대해서는 파고들어가면 나도 아는 게 없어 허덕댄다. 사실 그간 난 음악을 듣는 데 있어서 편식을 좀 하여 말로는 '모두다 사랑한다' 하면서 펑크나 그런지, 블루스 쪽만 주로 들어왔다.

반면 함께 간 인절미는 주로 파워메탈이나 하드록을 듣는 취향이라 내게 간혹 권해주기도 하였으나 '고속도로처럼 뻗기만 하시는 곡들은 일하면서 듣기 어려워요, 자제 부탁~!'이라며 거부를 해왔었다. 그런데 이런 나의 철저한 방어를 깨워준 것이 지하드라는 밴드였다.

내가 알고 있던 세상 밖의 다른 것을 받아들인다는 건 한 겹의 껍질을 깬다는 의미가 되기도 한다. 물론 그저 취미로 즐기는 음악일 뿐이지만 새로운 무언가를 접한다는 것 자체가 그 얼마나 설레는 경험인가.

기타리스트 박영수씨의 신들린 듯 울어대는 기타 연주 (정말 이분 연주하는 걸 보면 빙의 되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흑), 보컬 김성훈씨의 또랑또랑 카랑카랑한 목소리 (난 똘똘한 목소리라고 혼자 생각한다), 박영수씨와 함께 빙의 되시는 깔끔, 세련 베이스 장종권씨 (본인은 귀여운 베이스가 불리는 걸 원한다고 들었다…훗), 묵묵히 땀에 절어가며 드럼을 연주하지만 언제나 소녀들에겐 메탈계의 정우성으로 본좌급에 통하는 드러머 심동린씨 (끄덕 끄덕…)

이들이 풀어내는 열정은 관객들을 압도함과 동시에 함께 숨 쉬고 관객들의 환호를 끌어냄과 동시에 그 속에 파고든다. 관객과 무대 위 멤버들 모두 땀에 젖고 열기에 취한 광락(狂樂)의 현장. 이런 살아 숨 쉬는 매력이 라이브 공연장에 존재한다.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언제나 관객을 흥분시키는 멋쟁이 보컬 김성훈씨. 공연 전에 관객들에게 '사랑 담뿍 담긴 쪽지'를 전하기도…
▲ 열창!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언제나 관객을 흥분시키는 멋쟁이 보컬 김성훈씨. 공연 전에 관객들에게 '사랑 담뿍 담긴 쪽지'를 전하기도…
ⓒ 지하드 공식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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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2시간. 그 2시간을 위해 부산으로 달려간 걸 누군가가 보면 철딱서니 없는 짓이라 할지 모르지만 난 이번 여행으로 텅 빈속을 다독이며 다시 일상으로 돌아올 힘을 얻었다. 몇 년 전에 여러 가지 이유로 그만둔 음악 연재의 부제처럼 '자유정신 부활 시대, 음악의 힘!!'

속이 메슥거릴 정도로 허한 심장에 하나 가득 에너지를 얻어 돌아왔다. 사람을 다독이고 끌어안으며 살아갈 힘을 주는 것, 그것이 진정 '음악의 힘'이다.


태그:#지하드, #ROCK, #METAL, #바크하우스, #라이브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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