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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에 보면 <요리 강좌>가 넘친다. 요리를 못하는 나를 위해서 이런 정보들은 정말 고맙다. 하지만 나는 딱 한 가지 불만인 것이 있다! 이런 정보들에서 보이는 음식들은 그야말로 화려하고 먹기 좋아 보인다. 또한 그대로만 하면 다 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러나 실제로 사람이 하다 보면 어디 그렇던가. 그래서 나는 <언젠가 성공할 중모의 요리 강좌>를 쓰고자 결심했다. 본래 남을 본받는 것도 중요하나 ‘타산지석’도 분명히 필요한 법이다. 남이 잘못한 것을 보면 같은 실수를 하지 않을 수 있을 터. 역사를 배우는 것도 그 때문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나는 ‘언젠가 성공할 ’ 실패 투성이의 요리 강좌를 이 곳에 풀어놓고자 한다! 그리고 그 요리들만이 들려줄 수 있는 삶의 이야기를 주제넘게 한 마디 정도 덧붙여보고자 한다. <기자주>

 

“모두들 무모한 도전이라 했다.”

 

모 광고에 나오는 말이다. 무모한 도전은 실패하면 말 그대로 무모한 도전이지만 성공하면 용기 있는 도전으로 뒤바뀌는 법이다. 바로 그것을 말해주는 광고! 나도 이에 힘을 입어 지난 주말 역시 ‘무모한 도전’을 해보았다. 사실 뭐 그리 거창한 것은 아니다.

 

바로 ‘김장’에 도전한 것이다. 중국에서 살다 보니 느끼한 음식을 자주 접하게 되고, 이 때문에 김치가 굉장히 그리운 경우가 많다. 그런데 만들어 놓은 것을 사다 먹다 보니 재정 상황을 상당히 악화시키는 데 알게 모르게 도움(?)을 주고 있었다. 중국에서 그깟 김치 사 먹는게 뭐 그리 비싸냐고?

 

맞다. 비록 중국이 하루가 다르게 물가가 치솟고 있으나 야채, 과일만큼은 여전히 우리나라에 비해 엄청나게 싼 것은 사실이다. 문제는 한국인들을 대상으로 한 장사들은 안타깝게도 재료 등 원가 기준이 아닌 구매자의 구매 능력 기준으로 가격이 매겨진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특정 회사에서 꼬박꼬박 월급을 받아서 먹고 사는 사람이 아닌 나로서는 적지 않은 부담으로 느껴질 때가 많다.

 

그리하여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이 바로 직접 배추를 사다가 김치를 담가 먹자는 것! 커다란 배추 하나 사서 만들어 먹으면 훨씬 오래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긴 한데 단 삼 초만에 마음이 바뀌고 말았다.

 

내가 아주 어렸을 적에는 어머니께서 동네 아주머니들이랑 같이 김장을 하셨지만,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부터는 김장이 아닌 사 먹은 기억이 난다. 물론 그 동안 저축도 하면서 생활에 여유가 생겼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몸도 본래 그리 건강하신 편도 아니었고 나이도 있으시다보니 김장을 하시는 게 힘에 부쳤던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물론 나는 아직 30까지 1년하고도 약간의 더 시간을 남긴 팔팔히 살아있는 젊은 청춘이지만 쉽게 도전할 생각이 들지 않았다. 어린 시절 보았던 그 커다란 통 속에 잔뜩 들어 있는 배추들을 떠올리니 절로 고개가 살래살래 흔들어졌다.

 

그래도 계속해서 사다 먹자니 재정 부담이 만만치 않을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고민 끝에 생각해 낸 것이 바로 깍두기였다! 깍두기는 분명 배추보다 크기도 작고 만드는 법도 간단할 것이 틀림없었기 때문이다. 바로 인터넷에 들어가 깍두기 만드는 법을 검색해보았다. 요리법도 아닌 깍두기 만드는 법이 없을까 하는 걱정을 비웃기라도 하듯 다양한 종류의 요리법이 화면을 가득 채웠다.

 

굵은 소금, 고춧가루 외에 다양한 재료와 양념을 필요로 하는 요리법이 많았으나 다른 것은 다 무시하기로 했다. 다 외우기도 힘들었고, 그 양념을 다 사서 해 먹느니 차라리 사다 먹는 것이 낫겠다 싶은 생각도 들었기 때문이다.

 

첫 번째로 해야 할 일은 바로 무 다듬기! 일단 무 겉껍질을 벗겼다. 겉껍질에 영양소가 많아 살짝 벗기라는 조언도 있었지만, 무시하고 발가벗겨 버렸다. 그 후에 원형으로 무를 자르고 다시 자주 보던 깍두기 모양으로 무를 잘라 모양을 만들었다. 다음에는 무에다 굵은 소금을 뿌려 줄 차례였다.

 

 

여기서부터가 문제였다. 굵은 소금을 무에 뿌려준 후 무가 숨이 죽을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었다. 아, 정말 대체 어떻게 기다리라 말인가! 본래 기다리는 시간을 견디기 힘들어 요리를 어려워 하는 나로서는 이 기다리는 시간이 있는 것이 참으로 괴로웠다. 마음 같아서야 뿌리자마자 다음 단계로 넘어가고 싶었지만, 오랜 시간 기다리지 않고 멋대로 요리를 하면 맛이 없어진다는 걸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기에 참고 기다리기로 했다.

 

그런데 그렇게 기다리기로 하고 나서 다른 일을 하다가 무를 소금에 절여 놓았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어버렸다. 오후 2시경에 절인 무를 오후 7~8시가 다 되어서야 생각해내었다. 속된 말로 그야말로 무가 ‘소금에 쩔어 있으면 어쩌지?’ 하는 걱정이 앞섰다.

 

아 잠깐! 무가 숨을 죽이고 나면 다음 단계로 가는 것 아니었던가. 그렇다면 얼마나 기다려야 하는 것이지? 비록 5~6시간이 지났지만 내 선택이 옳았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처음 봤던 요리법을 다시 보았으나 시간 관련 내용은 없고, 오로지 숨 죽을 때까지만 기다리라는 내용뿐이었다. 이런 뭐 한 경우가 있나! 숨이 언제 죽는지 나 같은 요리 초짜가 어찌 안단 말인가.

 

어쨌든 거의 6시간이 지났으므로 무를 어서 빨리 소금으로부터 구출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이건 또 무슨 조화인가. 아까 부렸던 굵은 소금들이 다들 자취를 감추어버렸다. 아니 그렇다면 그새 녹아서 무에 스며들었단 말인가. 혹시나 싶어 무 하나를 집어 들어 맛을 보았다.

 

 

“으악! 퉤! 퉤!”

 

그야말로 내 생애 처음 먹어본 ‘짜고 또 짠 무’였다. 씻으면 짠 맛이 빠질 것 같아 물로 씻기 시작했다. 한 번 무를 다 씻고 나서 먹어 보았으나 결과는 여전히 최고의 짠 맛이었다. 그래서 씻고 또 씻고, 씻고 또 씻고를 계속 반복하다 결국 짠 맛이 빠지지 않자 그 상태로 깍두기를 만들어 보기로 했다.

 

혹시 아는가. 고춧가루 양념이 묻으면 맛이 달라질지. 우여곡절 끝에 고춧가루 양념이 완성되고 드디어 무에 묻히기 시작했다. 고춧가루 양념 만드는 법이 빠졌다고? 사실 나도 모른다. 때마침 찾아온 친구가 소금에 절은 무와 죽을 둥 살 둥 전쟁을 하는 내 모습이 불쌍해보였는지 그동안 대신 만들어 준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친구와 나의 합작품 무가 완성되었다. 옷이 날개라고, 우리 무도 고춧가루 양념을 입었으니 짠 맛은 날아가고 달콤하고 매운 멋진 맛이 완성되어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살짝 고개를 들었다. 그러나 유치원에서 꿀을 먹고 ‘단 맛’이라고 대답해야 하는 발표회에서 ‘꿀맛이에요’라고 너무도 정직하게 답변했던 내 입맛은 역시 거짓말을 하지 못했다.

 

“으..으...아 짜! 짜!”

 

먹자마자 계속해서 물을 들이켜야만 했다.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무려 무 세 개나 쓴 깍두기를 그대로 쓰레기통으로 보내야 하나? 아니면 눈물을 머금고 이 짠 맛을 참아가며 먹어야 할까? 두 쪽 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그 때 친구의 한 마디가 나를 구원해주었다.

 

“이거 일단 좀 익을 때까지 두면 짠 맛이 좀 사라지지 않을까?”

 

믿기 힘들었으나 친구의 의견을 따르기로 했다. 그리고 그 다음날 바로 일어나서 깍두기 맛을 다시 보았다. 결과는?

 

“으..으..으아 짜! 짜! 물! 물!”

 

이랬다. 요리법에 보니 만들고 나서 일주일 정도 기다려야 한다는데 당장 먹을 반찬이 없는 나로서는 바로 깍두기를 먹어야만 했다. 그랬기에 지금 당장 맛없는 깍두기를 휴지통으로 유배보내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으나 참았다. 일주일까지는 기다려보자고.

 

그리고 오늘 점심, 갑자기 라면이 먹고 싶어 라면을 끓여먹었다. 라면을 먹다 보면 생각나는 김치, 김치 대신 내가 만든 깍두기가 생각났지만 쉽게 뚜껑을 열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래도 없는 것보다 낫겠지 하며 한 입 베어문 깍두기. 결과는?

 

“어, 맛있는데!”

 

정말 의외였다. 어제까지만 해도 그렇게 짜던 깍두기 맛이 단 맛도 나고 약간 매운 맛도 나게 맛있게 변해 있었다. 짠 무는 지난 이틀 동안 내가 다 먹은 것이었을까. 하지만 지난 이틀 동안 맛보느라 먹은 무도  많아야 10개를 넘지 않은데 이상하지 않은가.

 

 

그렇다면 친구 말처럼 시간이 흘러 맛이 익어 그렇게 되었다는 것 아닌가. 허 거 참 오묘한 이치로다. 역시 기다린 보람이 있긴 있었다. 그리고 이번에도 역시 별 거 아닌 음식이 내게 준 교훈은 남달랐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고, 깍두기는 익을수록 제 맛을 내는 것처럼 사람인 나도 익을수록 마땅히 더 나은 모습으로 변해가야 하는 거 아닐까?’

 

깍두기도 먹고, 삶의 교훈도 얻고 좋다! 헉, 그런데 내일 깍두기를 먹는데 다시 짠 맛이 느껴지면 어쩌지?


태그:#깍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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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넓게 보고 싶어 시민기자 활동 하고 있습니다. 영화와 여행 책 등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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