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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아침, 자욱한 안개 속을 헤치고 충남 연기군 서면에 위치한 청라2구 마을을 찾았다. 그 동네 이상훈씨 댁에서 김장을 담근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이웃과 함께 김장하는 날 풍경을 사진으로 담기 위해 나선 길이다.

 

청라2구는 전형적인 농촌 마을로 주민들이 가족 같은 분위기에서 오순도순 정답게 모여 살고 있다. 예전부터 가끔씩 일 때문에 이 동네를 방문하곤 하는데, 옛 어른들이 나눠주던 인심과 따뜻한 정을 그대로 대물림 하고 있는 아름다운 마을이다.

 

특히 대소사를 이웃들과 함께 나누는 모습은 이 동네의 가장 큰 매력이다. 오늘 김장을 담그는 이상훈씨 댁에 도착하자, 황색 대문 사이로 분주하게 김장 담그는 어르신들의 모습이 보인다.  마당에 들어서자 구수한 입담으로 반갑게 맞아주신다.

 

알맞게 잘 절인 배추를 커다란 고무 대야에 넣고 두 사람이 짝을 이루어 배추 속을 넣는 장면은 고향에 온 착각이 들 정도로 정겹다. 단지 변한 것이 있다면, 예전에는 커다란 항아리가 준비되어 있었는데 지금은 김치냉장고 용 김치통이 대신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다.

 

빨갛게 버무린 김치를 보자 나도 모르게 침이 꿀꺽 넘어간다. 예전에는 넓은 마당을 가득 메우고 백포기, 이백포기는 보통이었다. 그만큼 김치 소비가 많아 김장하는 날이 연중 큰 행사의 하나였다. 요즘은 옛날처럼 이웃이 다 함께 모여서 차례대로 돌아가며 김장을 담그는 정경이 흔치 않다. 대부분 가족끼리 적당한 양만큼 담기 때문이다. 그만큼 김치 소비가 적어졌고, 대형 김치공장에서 완전하게 가공하여 배달하는 김치를 먹는 경우가 많아진 까닭이다.

 

다행히 오늘 방문한 집에는 이웃들이 마당을 가득 메운 채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며 맛깔스런 김치를 담고 있다. 마당 한 편에 있는 헛간에는 이엉처럼 엮인 시래기가 햇살과 바람을 벗 삼아 내년을 준비하고 있다. 대보름날 요긴하게 쓰일 임무를 완수하기 위한 모습 또한 멋스럽다. 또 마당 한 편에 있는 절구통이 시골의 운치를 더해준다.

 

김장속이 다 채워질 무렵, 김이 모락모락 나는 고기 한 접시와 방금 담은 맛깔스런 김치가 한상 차려져 마당으로 나온다. 머리를 떼낸 김장김치를 손으로 길게 쭉 찢어 고기 한 점을 얹어 입에 넣으면 둘이 먹다가 셋이 죽어도 모를 정도로 맛이 기막히다.

 

김장을 지켜보던 아저씨는 뒷짐을 지고 밖으로 나가더니 동네 어르신들을 모시고 왔다. 김장김치와 함께 이웃과 술 한잔도 기울이고 따끈한 밥 한 끼 나눠먹기 위해서다. 한 분 한분 늘어나는 이웃들과 함께 마당에 앉아 음식을 나눠먹으며 정담을 나누었다. 마루 뒤에 있는 방안에서는 큰 상이 다시 차려지고 있다. 김장을 끝내고 수고하신 분들과 함께 밥을 먹기 위해서다. 이 얼마나 정겹고 아름다운 장면인가.

 

하얀 쌀밥에 빨갛게 버무린 김치를 쭉 찢어 얹어 먹다 보면, 고봉으로 꾹꾹 눌러 푼 밥 한 사발을 뚝딱 해치우게 된다. 바로 코앞에서 도둑맞은 기분이다. 이웃과 함께 즐거운 마음으로 나눠먹는 밥이기에 방안에 웃음과 함께 이웃 사랑이 가득 넘쳐흐른다.

 

사진을 찍기 위해 방문한 나에게도 커다란 통으로 김장김치를 가득 담아주시는 어르신들, 그들을 뒤로 하고 가슴에 훈훈한 정을 안고 돌아왔다. 얻어온 김치 통 뚜껑을 열자 김치 속에서 함께 어울려 나누던 정과 사랑이 행복으로 물들며, 얼굴 가득 미소를 짓게 한다.

 

태그:#김장, #농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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