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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린 속에서 늘 재미있는 모습으로 등장하는 배우 권해효씨가 21일 오후 6시30분, 전교조(전국 교직원 노동조합) 안양, 과천지부 선생님들 앞에 섰다. 권해효씨를 따라다니는 수식어는 여러 가지다. 코믹한 배우 권해효 외에 시민운동가, 통일 운동가 등이 그것.

 

권해효씨는 선생님들에게 ‘통일’에 관한 얘기를 들려주기 위해 강단에 섰다. 이날 강연회 제목은 '권해효와 나누는 통일 이야기'. '강연은 재미있어야 한다'는 원칙에 충실했다. 권해효씨의 강의는 어렸을 적 할아버지에게 듣던 옛날이야기처럼 재미있고 구수했다.

 

'일일감옥체험'에서 느낀 당혹감 때문에 시민운동 시작

 

 

민주화 열기가 뜨겁던 80년대 중반 대학을 다녔지만 권해효씨는 집회 현장에서 돌 한 번 제대로 던져보지 못했다. 그 이유는 "학과 공부가 너무 재미있어서" 였다. 그런 권해효씨가 시민운동에 발을 들여놓게 된 것은 96년 무렵이다. 

 

당시 민가협(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에선 양심수 석방과 국가보안법 철폐를 위한 '일일 감옥 체험' 행사를 주관하고 있었다. 그 행사에 참여한 권해효는 0.75평짜리 독방에서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죄수 노릇을 했다.

 

간수 역할을 맡은 사람들은 죄수 역할 맡은 사람들을 끌어내 얼차려를 줬다. 잠시 후 일이 벌어졌다. 보라색 머리띠를 두른 민가협 소속 할머니, 어머니들이 간수 역할 맡은 사람들을 때리며 왜 우리 아들 괴롭히느냐고 울기 시작했다. 그건 체험 행사의 일환이었지만, 실은 사실이었다.

 

순간, 권해효씨는 당혹감을 느꼈다. 할머니들이 그의 손을 잡으며 "내 새끼"하고 우는데, 막상 그는 그걸 보며 불편함을 느꼈다. 시간이 좀 지나고 나니까 그런 것에 적응하지 못하고 불편함을 느끼는 게 부끄럽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오죽 관심도 없고 거리를 두고 있었으면 이 불합리한 상황에서 고작 불편함이나 느낄까! 그때 그 느낌에서 시민운동을 시작했다고 권해효씨는 말했다.

 

전교조와의 인연은 97년 성균관대에서 열린 전교조 행사 때 사회를 맡으면서 부터다. 당시 전교조는 불법 단체 였기에 행사는 원천 봉쇄됐고 권해효씨는 사회를 보지도 못하고 하루종일 성대 근처를 헤매야 했다. 사회를 보지는 못했지만 행사가 끝난 후 전교조로부터 감사패를 받게된다.

 

감사패에는 '통일 조국은 당신을 기억할 것입니다'라고 쓰여 있었다. 권해효씨는 그 글귀에 마음이 꽂혀서 통일 운동을 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

 

통일 운동에 발 벗고 나서게 된 계기는 '2002년 남북 청년학생대회'다. 권해효씨는 축제에 참가한 한 북측 여학생 리설미(당시 18세)가 던진 한마디에 감동받게 된다. 권해효씨가 “평양가면 마중 나올래?”라고 묻자 리설미는 “문을 박차고 나가겠습니다”라고 대답했던 것. 권해효씨는 그 말에 뜨거운 동포애를 느꼈다. 한마디로 감동 먹었던 것이다.

 

다큐멘터리 <우리학교> 보며 부러웠다

 

 

“우리학교를 보면서 부러웠어요. 내 인생에 우리학교 같은 학교와 선생님들이 있었다면 얼마나 행복했을까 생각 했어요.”

 

<우리학교>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든 김명균 감독은 권해효씨의 절친한 후배다. <우리학교>는 김명준 감독이 일본 '홋카이도 조선초중고급학교'의 교원, 학생들과 3년 5개월 동안 동고동락하며 그들의 일상을 그린 다큐멘터리 영화다.

 

<우리학교>는 재일조선인들이 세운 민족학교를 일컫는 말이다. 치마, 저고리를 교복으로 입고 우리 말, 우리 역사, 교육을 고집한다. 그러나 정식 학교로 인정되지 않아 대학에 가려면 별도의 시험을 치러야 한다.

 

권해효씨의 말을 듣고 반가웠다. 그도 내가 느낀 것과 같은 느낌을 받았다는 것에서 반가움을 느꼈다. 지난 4월20일, <우리학교> 를 보고 나 또한 같은 감정을 가졌었다.

 

권해효씨가 지치지 않고 시민운동, 통일운동에 매진하는 이유는 자신의 2세들에게 당당하기 위해서다. 그는 2세들을 돈 많이 드는 사립학교에 보내지 않는다. 또, 외국에 유학 보내는 것도 아니다. 가족들은 서로 살 부비며 살아야 한다는 지론을 가지고 있기에 조기유학은 얼토당토 않은 일이다.

 

고심 끝에 그가 생각해낸 것은 "지금 당장 바뀌진 않겠지만 바꾸려는 노력은 해 봐야겠다"는 것이었다. 나중에라도 2세들에게 "우리 2세들이 살아갈 세상을 위해 아빠는 그래도 노력이라도 해봤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이것이 그가 선생님들에게 밝힌 교육철학이다.

 

6시 30분에 시작된 강연은 7시 30분에 끝이 났다. 이날 강연회에는 전국 교직원 노동조합 안양 과천 지회 소속 교사 약100명이 참석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안양뉴스(aynews.net)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권해효, #통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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