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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1월 22일 현재, 지구에서 선거의 열풍에 휩싸인 나라는 한국과 호주다. 한국대선은 D-27이고 호주총선은 이틀 앞으로 다가왔다. 그런데 두 나라의 선거양상이 크게 다르다.

 

무엇이 다르고 어떤 점이 같을까? '호주총선 리포트' 시리즈를 통해서 마지막 '9부 능선'을 넘어가고 있는 2007 호주 총선을 점검해 본다.

 

본론에 들어가지 전에 객쩍은 에피소드부터 소개한다. 기자는 선거운동 중인 존 하워드 총리(68)와 캐빈 러드 노동당 당수(50)를 직접 인터뷰했다. 그때마다 목격한 두 정치인의 공통점은 배가 고픈 상태에서 음식을 급하게 먹는다는 것이었다. 하워드 총리의 경우 저녁 7시에 만났는데 빵 한 쪽을 씹으면서 "이게 점심이야"라며 씩 웃었다.

 

존 하워드 총리의 5차 방어전

 

이틀 앞으로 다가온 존 하워드 총리의 '5차 방어전'이 호주를 후끈 달구고 있다. 그가 호주정치사상 5연속 집권이라는 신기록 달성에 도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1996년, 도전자로 맞붙었던 폴 키팅 전 총리에게서 타이틀을 빼앗아온 하워드 총리는 지난 11년 반 동안 노동당의 도전자들인 킴 비즐리(2회) 당수, 마크 레이썸 당수와 맞붙어 막판 역전극으로 타이틀을 방어했다.

 

그런 과정에서 '선거의 달인(達人)'으로 불리게 된 하워드 총리는 "다음 선수는 누구냐?(Who is the next)"라고 외치면서 막강한 챔피언으로 군림해왔다. 그는 정공법보다는 변칙플레이에 능한 인파이터다. 피차 만신창이가 되는 '진흙탕 싸움'에서 끝까지 살아남는 방식이다.

 

호주노동당(ALP)의 '4전5기'를 위해서 2007년 도전자로 나선 캐빈 러드 노동당 당수는 깔끔한 아웃복싱을 구사하는 정통파다. 게다가 강펀치를 휘두르는 '젊은 철권(鐵拳)'이어서 '늙은 여우' 같은 챔피언 하워드 총리를 바짝 긴장시키고 있다.

 

11월 19일 발표된 뉴스폴의 여론조사 결과는 노동당 지지 54%, 자유-국민 연립당 지지 46%다. 더욱이 부동층의 비율이 10% 미만이어서 존 하워드 총리가 제아무리 '막판 뒤집기의 명수'라고 해도 8%에 이르는 지지율 차이를 극복할 수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5연속 집권이냐, 중앙-지방정부 싹쓸이냐

 

이렇듯 마지막까지 예측불허의 혼전양상을 보이는 것 말고도, 2007 호주총선이 초미의 관심을 끌고 있는 이유 중의 하나는 이번 선거결과에 따라서 호주 정치역사에 새로운 기록이 탄생하기 때문이다. 그건 어느 정당이 승리하든 마찬가지다.

 

보수정당인 자유-국민 연립당이 승리하면 5연속 집권의 신기록이 달성된다. 반대로 진보정당인 노동당이 승리하면 호주의 중앙정부(연방정부)와 지방정부를 독차지하는 진기록을 세우게 된다. 현재 6개 주와 2개 특별자치구의 지방정부는 노동당이 100% 차지하고 있다.

 

한편 존 하워드 총리는 자신의 지역구인 베네롱 선거구에서조차 낙선의 위기에 몰리고 있다. 최근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노동당의 맥신 맥큐 후보(호주 국영 abc-TV 뉴스앵커 출신)에게 52% 대 48%로 뒤지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에 그가 자신의 지역구에서조차 낙선하면 1929년 총선에서 낙선한 스탠리 브루스 총리에 이어서 현역총리가 낙선하는 불명예를 안게 된다. 5연속 집권 성공의 신기록이 아닌 78년만의 희귀한 기록과 함께 정치계를 떠나게 된다. 이래저래 풍성한 기록이 예상되는 2007 호주총선이다.

 

서민-노동자 계층을 위한 '스타 탄생'

 

누가 뭐래도 싸움구경은 예측불허의 막상막하일 때 흥미진진한 법. 거기에다 챔피언을 위협하는 강력한 도전자가 나타나면 보나마나 '흥행 대박'이다. 세상은 '스타 탄생'을 고대하고 시대는 '새로운 영웅'을 기다리기 때문이다.

 

하워드 총리는 강경보수를 지향하는 정치인이다. 그런 그가 무려 11년 반 동안이나 장기 집권했으니 노동당을 지지하는 서민-노동자 계층에서 '스타 탄생'을 학수고대한 것은 당연지사. 그런 가운데 패기 넘치는 캐빈 러드 당수가 등장했다.

 

2006년 12월 노동당 당수로 선출된 러드 당수는 '해리 포터'라는 별명이 붙을 만큼 젊음이 넘치는 외모와 매사에 최선을 다하는 '범생이'로 소문났다. 그는 노동당 리더답지 않은 부드러운 말투를 사용하지만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는 결단력으로 젊은 층과 여성 유권자의 인기를 모으고 있다.

 

퀸즐랜드 출신인 러드 당수는 11살 때 교통사고로 아버지를 여의고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는 최근 <데일리텔레그래프>와의 인터뷰를 통해서 "중고등학교 시절에 나는 쓸모없는 존재(I was nerd)였다"고 토로했지만, 사실은 학생대표를 맡고 토론그룹 리더를 이끌었던 수재였다.

 

"불우했던 어린 시절에 경험했던 일들이 사회에 대한 정의를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다"고 고백한 러드 당수는 외교부 공무원과 퀸즐랜드 지방정부 관리를 거쳐 1988년 하원의원에 당선되어 정계에 입문했다. 그는 호주국립대 중국어과 출신으로 만다린어를 능숙하게 구사한다.

 

'교육총리' 꿈꾸는 케빈 러드 당수

 

러드 당수는 '새로운 리더십(New leadership)'의 기치를 높이 들고 "과거의 낡은 가치에 머물러 있는 존 하워드 총리의 시대를 청산하고 호주의 밝은 미래를 이끌기 위해서 내가 왔다"면서 40일 선거운동의 대장정에 오른 바 있다.

 

그는 "호주가 지속적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교육혁명이 최우선의 과제"라면서 "노동당이 승리하면 교육총리(Education Prime Minister)가 되겠다"고 선언했다. 그는 선거운동 내내 수많은 교육 관련 공약을 발표했고 틈만 나면 학교를 방문했다.

 

러드 당수는 선거를 사흘 앞둔 11월 21일, 기자클럽에서 행한 연설을 통해서 "호주가 중국경제의 빠른 성장으로 예상치 않았던 지하자원 붐을 맞았고, 그 덕분에 OECD국가 중에서 지속적인 경제호황을 누리고 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빈부 격차가 더 커지는 상황'이라면서 "그 해결책은 교육혁명을 통한 기회균등을 부여하는 길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서 "내 목표는 호주의 미래를 짊어질 학생들이 세계적인 수준의 교육(world class education)을 받도록 하는 것"이라면서 "강자가 유리할 수밖에 없는 자본주의의 특성상 빈곤의 대물림을 막을 방법은 공평한 교육밖에 없다"면서 교육총리가 되려고 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러드 당수는 특히 "중고등학교 과정의 모든 학생이 기술을 하나씩 터득하도록 하겠다"면서 "도회와 농촌의 구별 없이 모든 학생이 자신의 컴퓨터로 공부하게 만들겠다"는 공약을 기자들에게 밝혔다.

 

하워드, '경제총리' 기득권 잃어

 

하워드 총리가 고전하는 이유 중 하나는 선거 이슈가 '국가안보와 경제안정'에서 '환경과 노사관계 및 교육'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또한 진보정당인 노동당이 '경제 보수주의(Economic conservatism)'를 선언하는 바람에 더욱 입지가 좁아진 탓도 있다.

 

대표적인 신자유주의 신봉자인 존 하워드 총리는 지난 11년 반 동안 경제우선정책과 국가이익우선정책을 고집스럽게 밀어붙였다. 그 덕분에 대부분 고전을 면치 못한 OECD국가들 중에서 호주는 우수한 경제성적표를 기록할 수 있었다.

 

21일 저녁 호주국영 abc-TV 시사프로그램 '7:30 리포트'에 출연한 하워드 총리는 "이번 총선으로 호주정부가 바뀌는 것은 경제의 지속적 성장에 해가 된다"면서 "그건 별로 반갑지 않은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정부교체가 잘 나가는 경제를 망칠 수 있다는 경고였다.

 

그러나 호주국민들의 생각은 다르다. 그동안 하워드 정부가 얻은 경제적 과실이 모든 국민에게 골고루 돌아가지 않고 오히려 빈부 격차만 늘렸다고 판단하는 것. 그래서 유권자들은 "그가 입만 열면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말하지만 그건 하워드의 전유물이 아니다, 더구나 부자들만 더 부유해지는 경제성장은 원치 않는다"고 말한다.

 

"하워드씨, 이번엔 무슨 거짓말인가?"

 

또한 호주국민들이 정서적으로 싫어하는 조지 부시 미국대통령과 밀착하여 몰염치하게 얻은 성과라는 비판을 면치 못하고 있다.

 

특히 '부시의 세컨드 푸들'이라는 비아냥거림을 당하면서까지 이라크전쟁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맡는 등 지나친 친미외교로 일관한 하워드에게 염증을 느끼고 있는 것.

 

국익에 보탬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부시 대통령과 함께 교토의정서에 서명하지 않은 것도 크게 비판받고 있다. 지구온난화 방지를 위한 전 세계적인 노력을 외면하여 그동안 환경선진국으로 인정받았던 호주의 이미지를 실추시켰다는 것.

 

더욱이 그가 지난 세 번의 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는 요인이었던 이라크 전쟁, 난민문제, 이자율 인상 등이 모두 거짓으로 드러났기 때문에 노동당으로부터 "이번엔 무슨 거짓말이냐?(What is the next)"라는 비아냥거림을 당하고 있다. 그건 위에 인용한 "다음 선수는 누구냐?(Who is the next)"에 대한 패러디이기도 하다.

 

하워드 총리는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 토니 블레어 영국총리와 함께 이라크에 대량살상무기가 있다는 날조된 정보를 근거로 이라크전쟁을 일으켰고, 전쟁난민이 호주입국을 위해서 어린이를 바다에 던졌다고 허위정보를 유포했으며, 지난 선거에서는 이자율 상승을 막겠다고 공약했지만 3년 동안 무려 6차례나 이자율이 인상됐다.

덧붙이는 글 | 기사예고 : '호주총선 리포트 ②'에서는 '95%의 투표율과 50%+1표를 위하여'를 리포트 할 예정이다. '호주총선 리포트 ③'은 '2007 호주총선에서 상전대접 받는 한인동포 유권자들'이다.


태그:#호주 총선, #존 하워드, #캐빈 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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