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마을에 소복이 내린 눈 지난 19일에 이어 간밤(21일)에도 내가 사는 강원 안흥 산골마을에는 눈이 소복이 내렸다. 달력을 보니까 모레가 소설(小雪)이다. 기가 막히도록 정확한 절기다.
아이들이나 스키어들은 눈이 내린 걸 펄펄 뛰며 환호하겠지만 나는 이제 그럴 나이가 아닌가 보다. 마당이고 집 어귀에 눈을 쓸 일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이곳에 온 첫해 겨울은 눈길에 물을 길어오다가 넘어져 골절상으로 서너 달 된통 고생한 전력도 있다.
눈이 반갑지 않은 것은 우리 집 고양이 카사도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집 안팎에 쌓인 눈으로 예사 때와는 달리 아침밥을 주고도 제 집에 가둬뒀더니 시끄럽게 보채서 문을 열어주었다.
그러자 잽싸게 밖을 나온 뒤 안채 현관문 앞에서 어정거리며 계속 울부짖었다. 날씨가 추우니까 집안으로 들어오겠다는 하소연 같았다.
집안에서 기를 때는 사시사철 나가겠다고 문을 찢고 벽을 할퀴더니 이제는 들어오겠다고 아우성을 치니 인생만 그런 게 아니라, 묘생(猫生; 고양이의 삶)도 또한 역전을 거듭하나 보다. 나도 아내도 그 놈의 청을 매정하게 딱 자르고 현관에서 쫓아내자, 그 놈은 온 집안 양지쪽을 찾고자 기웃거렸다.
원래 고양이란 놈은 양지쪽과 따뜻한 곳을 매우 좋아한다. 시인 이장희는 고양이의 이런 점을 잘 그리고 있다.
봄은 고양이로다꽃가루와 같이 보드러운 고양이의 털에
고운 봄의 향기가 어리우도다.금방울과 같이 호동그란 고양이의 눈에
미친 봄의 불길이 흐르도다.고요히 다물은 고양이의 입술에
포근한 봄 졸음이 떠돌아라.날카롭게 쭉 뻗은 고양이의 수염에
푸른 봄의 생기가 뛰놀아라. 아직 겨울의 문턱인데 제 놈이나 나나 추위에서 해방될 봄을 기다리기에는 까마득히 멀다.
나는 요즘 '호남의병 유적지 답사기'를 연재 중인데 그 진도가 매우 지지부진하다. 모든 게 내 탓이지만, 집중해서 글을 쓰려고 하면 이런저런 나들이할 일들이 생겼다. 꼭 필요한 일만 보고서 돌아오지만 그래도 그 후유증은 일주일 이상 가기도 한다.
텔레비전과 신문은 끊은 지는 오래되었는데, 아직 인터넷과 전화는 끊지 못하고 있다. 이마저 끊어버리면 바깥세상과 단절될 텐데 차마 그런 용단은 내리지 못한 채 엉거주춤 살고 있다.
오늘은 이른 아침부터 컴퓨터를 켜놓았지만 유적지 답사기를 한 줄도 쓰지 못하고 궁싯거리다가 오늘 배달된 우편물이라도 있는지 우편함으로 갔다. 그런데 카사란 놈이 거기서 한참 제 몸단장을 하더니 곧 따사한 햇살을 즐기면 낮잠에 빠졌다.
나는 컴퓨터를 끄고는 카메라를 꺼내 와서 그 놈의 귀여운 모습을 담으면서 그 놈과 함께 초겨울의 따사한 햇살을 즐기고 있다. 다시 내 마음이 차분해지면 이 산골 글방에서 이 나라를 목숨으로 지킨 이름없는 영웅, 진짜 애국자 의병장의 위대한 삶을 그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