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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지금은 밤 9시 30분. 우리 마을 들어가는 시골버스 막차 시간이다. 허겁지겁 버스에 올라탔다. 맨 뒷좌석에 까무잡잡한 청년이 앉아 있다.

 

“아니, 왜 이리 늦게 집에 들어가?”

“이제 일이 끝났어요.”
“그래?”

 

바로 우리 집 옆에 사는 총각 얼굴이 아주 피곤해 보인다. ‘락스’ 공장에 다닌다는 이야기는 익히 들어 알고 있다. 왜 있잖은가, 강력세제. 화장실 막힌 거 뚫을 때나 심하게 찌든 때를 벗길 때 쓰는 염산 같은 액체 세제 말이다.

 

 

“한 달에 얼마 받아?”
“예. 잔업 몇 번 하면 110만원 받고요, 잔업 못 하면 100만원 조금 안 돼요.”
“근무 시간이 어떻게 되는데?”
“아침 8시에서 7시요. 잔업하면 9시에 끝나고요.”
“그렇군. 오늘이 잔업 하는 날이라 이거지.”

 

총각이 손을 보여 준다. 손바닥이 장난이 아니다. 껍질이 군데군데 일어나고, 손이 약간 부었다. 자세히 보니 얼굴도 약간 부었다.

 

“얼굴과 손이 왜 그래?”
“아, 예. 이거 독한 염산 때문이죠. 하루 종일 ‘락스’와 생활하다 보면 손과 얼굴이 이렇게 돼요.”
“힘들지?”
“하루 종일 세제를  상자에 담고 옮겨 쌓고 하면 몸도 뻐근하지만, 무엇보다 견디기 힘든 것은 독한 세제 때문에 코가 따갑다 못해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오거든요.”
“그럼 혹시 사고라도 나면 어떡해?”
“잘 몰라요. 아마도 저는 정규직이 아니라 힘들 걸요.”

 

이 말을 듣던 내가 잠시 숙연해진다. 저토록 많은 시간에 저토록 고되고 험한 노동을 하면

서 그나마 잔업을 몇 번 해야 겨우 버는 돈이 110만원이라니.

 

“그만두고 싶지 않니?”
“왜요, 매일 그만두고 싶죠.”
“그런데, 왜 그만 두지 못해?”
“그거야, 여기 그만두면 갈 데가 없잖아요.”

 

사실 이웃집 총각은 29세. 사회성이 약간 떨어지는 것 말고는 멀쩡한 총각이다. 장애를 가지고 있는 홀어머니와 함께 산다.

 

“아니 그토록 힘들면 그만두지 그래?”
“안 돼요. 차를 사야 돼요.”

 

‘어라, 이 녀석 봐라 고작 돈 힘들게 벌어서 차나 산다고. 쯧쯧’ 이라는 쓸데없는 편견이 잠시 끼어든다.

 

“차는 사서 뭐하려고?”
“출퇴근할 때도 쓰겠지만, 어머니 태워드려야죠.”

 

사실 그렇다. 우리 마을이 시골마을이다보니 총각의 어머니가 안성 시내로 한 번 나가려면 집 앞에 겨우 나와서 전동휠체어를 타고 10분 정도 버스정류장으로 나와야 한다. 여름이야 괜찮지만 겨울 되면 시골 들 바람이 장난이 아니다.

 

그런 말 하면서 머리를 긁적긁적 하는 총각이 측은하기도 하고 하도 사랑스러워서 내가 대뜸 제의를 한다.

 

“야, 너 나에게 형이라 불러라.”
“아, 예. 그동안 제가 아저씨라고 불렀었죠?”
“그래.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지금 한 번 불러 봐라.”
“혀~~형 님.”

 

흔들리는 시골버스 안에서 비정규직 이웃집 총각과 내가 형제애를 맺는 순간이다.

 

그러는 동안 라디오에서는 ‘삼성 로비 비자금 의혹 사건’과 ‘이명박 김경준의 BBK 사건’ 그리고 대선 후보들의 동정을 다루는 뉴스가 요란하다.


태그:#비정규직, #이웃집 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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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서 목사질 하다가 재미없어 교회를 접고, 이젠 세상과 우주를 상대로 목회하는 목사로 산다. 안성 더아모의집 목사인 나는 삶과 책을 통해 목회를 한다. 그동안 지은 책으로는 [문명패러독스],[모든 종교는 구라다], [학교시대는 끝났다],[우리아이절대교회보내지마라],[예수의 콤플렉스],[욕도 못하는 세상 무슨 재민겨],[자녀독립만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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