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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복을 입은 헤이의 어릴 때 모습.
 한복을 입은 헤이의 어릴 때 모습.
ⓒ abc-TV 화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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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3일자 <오마이뉴스>는 '3살 한국계 어린이의 어이없는 생이별'이라는 제목의 해외리포트를 게재했다. 호주 이민부의 실수로 5년 동안 불법이민자 강제수용소에 강제 억류되었던 토니 트란(35)의 스토리였다. 지난 11월 12일과 13일, 호주국영 abc-TV는 이 스토리를 크게 보도한 바 있다.

그런데 토니 트란과 한국인 부인 사이에서 출생한 헤이 탄 트란(Hai Thanh Tran, 이하늘)은 2001년 한국으로 강제추방 될 때, 주 시드니 대한민국총영사관에서 발급한 대한민국 임시여권을 이용했다.

abc-TV는 헤이의 대한민국 여권이 발급되는 과정에서 친권자인 트란의 동의를 받지 않은 상태에서 호주 이민부의 의도대로 업무가 진행됐다고 보도했다. 그렇다면 호주 이민부는 왜 당사자도 아니면서 시드니 주재 대한민국총영사관에 헤이의 여권발급을 요청했을까?

1992년에서 2007년까지

베트남에서 출생한 토니 트란은 어렸을 때 가족을 따라 미국으로 건너가서 전쟁난민으로 지내다가 1992년 호주에 입국했다. 트란은 미국으로 재입국할 수 있는 법적 기간이 만료되자 1993년 호주 이민부에 영주권을 신청했다.

이민부는 그의 영주권 신청을 심사하는 동안 호주체류를 허용하는 브리징 비자(bridging visa)를 발급했다. 트란은 14년이 지난 지금까지 브리징 비자 범주에 속해 있다.

브리스베인에 정착한 트란은 방사선학을 전공하면서 성실하게 일해서 집을 구입할 정도로 탄탄한 기반을 닦았다. 그러던 중 1997년에 한국여성을 만나서 결혼하고 아들을 낳는 등 꿈같은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트란의 가족에게 갑작스럽게 불행이 밀려왔다. 브리징 비자 자격이 상실됐다는 이유로 토니 트란이 이민경찰에 체포되어 강제수용소에 갇힌 것. 그날 시작된 트란 가족의 불행이 2007년까지 이어지고 있다. 다음은 토니 트란의 아들 헤이(1998년생, 현재 9살)의 스토리다.

'헤이 탄 트란'에서 '이하늘'로

세 살이던 2001년, 헤이는 한국으로 추방되는 과정에서 호주 이민부의 협조(서류작성 등)로 대한민국 임시여권을 발급받았다. 이름도 이하늘(Lee Ha Neul)로 바뀐 상태였다.

그러나 abc-TV에 출연한 이민전문가 데이비드 마네는 "헤이의 이름이 바뀐 것과 한국으로 강제추방된 것이 호주법에 어긋난다"고 주장했다. 헤이의 친권자인 토니 트란의 동의를 얻지 않았기 때문이다. 트란은 이런 상황을 전혀 몰랐다가 나중에 이민 에이전트를 통해서 알게 됐다.

 트란씨 사건을 호주 당국이 덮어버리려고 했다는 사실을 보도한 abc-TV 웹사이트.
 트란씨 사건을 호주 당국이 덮어버리려고 했다는 사실을 보도한 abc-TV 웹사이트.
ⓒ abc-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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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공관에 물었더니

그 당시의 사정을 알아보기 위해서 기자는 11월 14일 오전 시드니총영사관의 영사업무 담당 채승희 영사를 전화로 인터뷰했다. 그 후 시드니총영사관에 서면질문서를 보내서 다음과 같은 내용의 답변서를 받았다. 답변서에는 시드니 주재 총영사의 인장이 찍혔다.

 시드니총영사관에서 보내온 인터뷰 답변서.
 시드니총영사관에서 보내온 인터뷰 답변서.
ⓒ 시드니총영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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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bc-TV에서 이틀 동안 보도한 토니 트란 가족의 뉴스를 시청했나? 베트남 태생의 아버지와 한국 태생의 어머니 사이에서 출생한 이하늘이라는 이름의 아이가 등장하는데.
"abc뉴스 및 <오마이뉴스>에 보도된 트란 가족의 사연은 시드니총영사관에서도 파악하고 있다."

- 그 당시의 서류를 확인해 볼 수 있나? 호주 이민부에서 신청한 하늘이 여권발급신청서 말이다.
"이하늘군은 2000년 1월 어머니의 호적에 등재되었으며 시드니총영사관에서는 이하늘군에게 2000년 2월에 여행증명서(임시여권)를 발급한 것으로 파악된다."

- 비록 전임자가 한 일이지만, 그 당시 담당영사가 이하늘군이 처한 저간사정을 파악하고 재외국민 보호차원에서 어떤 노력을 했을 것으로 추정하나?
"이하늘군과 어머니가 한국인이므로 공관에 도움을 요청했다면 당연히 도움을 주었을 것이나 당시 상황을 추측하여 답변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 결과적으로 하늘이의 권익에 반해서 대한민국 여권이 발급되었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미성년자의 경우 부모의 동의 없이는 여권을 발급해주지 않고 있으며 여권발급 신청은 반드시 본인(미성년자의 경우 부 또는 모)만이 할 수 있다. 이하늘군의 권익에 반하여 여권이 발급되었는지 여부와 관련, 여권발급이 본인(미성년자의 경우 부 또는 모)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점을 고려할 때 시드니총영사관은 어머니의 의사를 존중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 이하늘은 호주에서 태어났고, 호주거주 비자를 지닌 베트남계 아빠의 성을 따라서 호주당국에 출생등록을 했기 때문에 한국인이 아니라고 생각하는데(호주 이민법전문가도 똑같이 주장) 시드니총영사관의 의견은 어떤가?
"이하늘군이 출생에 의해 외국국적을 보유하고 있었다고 할지라도 2000년 1월 어머니가 본인의 호적에 입적함으로써 22세(병역법 규정에 따라 제1국민역에 편입되는 자는 편입된 때부터 3개월 이내)까지 이중국적을 허용하는 현행 국적법에 따라 한국국적을 보유할 수 있다. 또한 이하늘군은 2001년 6월 국내에서 적법하게 정식여권을 발급받은 바 있다."

행정 절차만 놓고 보면 한국공관에서 크게 잘못한 부분은 없어 보인다. 하지만 생이별의 비극을 막기 위해 한국공관에서 더 적극적으로 움직일 여지는 없었을까 하는 아쉬움은 남는다.

호주는 혈통주의 나라 

호주는 출생지주의(속지주의)가 아니고 혈통주의이기 때문에 자녀의 국적은 부모의 국적에 따라 결정된다. 부계혈통주의나 모계혈통주의가 따로 정해지지 않았기 때문에 부모의 선택과 동의에 의해서 국적이 결정되는 방식이다.

호주는 1986년 이전까지는 미국, 캐나다, 뉴질랜드 등의 영어권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출생지주의였다. 그러나 호주는 1986년 '부모 한쪽이라도 호주 시민권 또는 영주권자여야만 출생 자녀가 시민권자로 인정된다'고 이민법(migration laws)을 개정했다.

1998년 브리스베인시에서 태어난 헤이는 호주당국에 등록된 법적인 이름(legally registered name)으로 출생등록을 마쳤다. 또한 아빠가 합법적인 호주 거주 비자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헤이도 자동적으로 호주 거주 비자를 갖고 태어난 것이나 다름없다. 생득권(生得權)에 의한 권리다.

"이민부 역사상 최고의 보상금 받을 것"

생지옥 같은 나날을 보내던 2005년, 호주 이민부는 토니 트란에게 석방통지서를 보냈다. 이민부는 트란의 석방과정에서도 비인도적인 모습을 보였다.

"그들은 무려 5년 동안 불법 억류해놓고 사과의 뜻을 단 한 줄도 밝히지 않았고, 수용소로 찾아와서 공문을 전한 이민부 직원은 마치 불법주차통지서를 전달하는 듯한 오만한 태도를 보였다"고 방송에 출연한 이민법전문가 데이비드 마네가 밝혔다.

 트란씨에게 전달되지 않고 이민부로 되돌아온 통보편지.
 트란씨에게 전달되지 않고 이민부로 되돌아온 통보편지.
ⓒ abc-TV 화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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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년 불법감금 후에 이민부에서 트란씨에게 보낸 편지에 1993년 이후의 브리징 비자가 유효하다고 적혀 있다.
 5년 불법감금 후에 이민부에서 트란씨에게 보낸 편지에 1993년 이후의 브리징 비자가 유효하다고 적혀 있다.
ⓒ 김덕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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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c-TV에 출연한 트란은 "석방 첫 주를 어떻게 보냈는지 기억조차 할 수 없을 정도다, 헤이와 밤늦도록 똑같은 얘기를 반복해서 주고받다가 마치 아기처럼 끌어안고 잠들었다"고 말했다.

현재 트란과 하늘이는 멜버른에 거주하면서 제2의 인생을 설계하고 있다. 트란은 신체와 정신을 치료하고 방사선학을 다시 공부하면서 '호주당국의 사과와 보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빅토리아주 고등법원에 제기한 상태다.

소송을 돕고 있는 변호사는 "트란은 호주 이민부 역사상 가장 많은 액수의 보상금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트란의 소송이 끝나면 바로 하늘이의 소송이 이어질 것"이라고 밝혔다. 

 마침내 함께 살고 있는 트란씨와 헤이.
 마침내 함께 살고 있는 트란씨와 헤이.
ⓒ abc-TV 화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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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이민부의 처사 비난여론 높아

호주의 치부를 드러내는 곤혹스런 상황에서 abc-TV는 사건의 실체적 진실에 접근하기 위해서 많은 전문가를 인터뷰했다. 그 중에서 중요한 대목들을 요약했다.

▲ 토니 버크(노동당 이민부 대변인, 집권하면 자동적으로 이민부 장관이 된다)

- 왜 이런 일들이 자꾸 발생한다고 생각하나?
"지도자(존 하워드 총리 지칭)와 이민부 장관의 업무스타일이 호주 이민부의 특별한 문화가 되고 있다. 시치미떼기 문화(a culture of assumption), 부정하기 문화, 나중엔 은닉 문화(a culture of cover-up)로 발전한 결과다. 게다가 자유-국민 연립정부의 오만함까지 작용했다."

- 호주 이민부는 트란에게 아직까지 한 번도 사과하지 않았고, 지금도 이민지옥의 상태(migration limbo)에 놓여있다. 노동당이 11월 24일 선거에 승리해서 당신이 이민부 장관이 되면 어떻게 할 예정인가?
"이민부가 그의 호주 체류가 합법이라는 걸 알고 있으면서 그를 수용소에 불법적으로 억류했기 때문에 그건 잘못(That's wrong)이다. 불법억류에 대해서 사과하는 건 당연한 것 아닌가."

▲ 존 맥밀란 교수(Ombudsman, 연방정부 민원조사관)
"토니 트란을 강제수용소에 억류한 이민부의 조치는 부분적으로 혹은 전체적으로 불법(unlawful)일 개연성이 있다. 지난 7월에 조사를 마치고 정부의 적절한 조치를 촉구한 바 있다."

▲ 앤드류 바틀러(민주당 소속 상원의원)
"현행법이 허용하는 강제 억류법(mandatory detention laws)은 문제의 소지가 많다. 민주당은 상원을 통해서 이민법 개정을 위한 압력행사를 계속할 것이다."

 방송에 출연한 토니 버크 야당 이민부 대변인.
 방송에 출연한 토니 버크 야당 이민부 대변인.
ⓒ abc-TV 화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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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추방#이민#호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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