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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분 남짓한 시간 동안 그 법당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알지 못한다. 다만 그이를 배려하는 스님의 손짓만 보았을 뿐이다.

 

2006년 11월 16일 오전 10시 45분경, 강원도 일대를 휩쓴 2005년 4월 5일 산불에 전소된 원통보전 낙성식이 열리는 낙산사에는 아주 특별한(?) 인사들도 참석하였다. 얼마 남지 않은 대선 후보 부인들,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의 부인 김윤옥씨와 통합민주신당 정동영 후보의 부인 민혜경씨다.

 


먼저 단상에 올랐던 민혜경씨는 소개가 끝난 뒤 법당(원통보전)에 들렀는지 들르지 않았는지를 보지 못했다. 조금 늦게 도착해 늦게 소개를 한 이명박 후보의 부인 김윤옥씨가 소개와 인사가 끝나고 원통보전으로 들어가는 것을 봤을 뿐이다.

 

법당 안에서의 5분, 무슨 일이 있었을까?

 

포털 등에서 검색해 본 결과 이들, 민혜경씨와 김윤옥씨는 불자가 아닌 것으로 소개되고 있다. 불자가 아닐지언정 종교나 종파를 초월해 배타적이거나 편협한 신앙심을 가진 일부사람들을 일갈하듯 통큰 마음으로 불교계의 커다란 행사에 참석한 거겠지만 때가 때인지라 그들의 방문(참석)이 단지 불교계의 커다란 행사를 축하하기 위한 순수함만이라고 믿어지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공식적인 행사를 20여분 앞둔 10시 40분경, 낙산사 주지 정념스님의 안내와 소개로 단상에 오른 김윤옥씨는 수만의 참석자들에게 간단하게 인사를 하고 정념스님의 안내로 새로 복원된 원통보전(법당)으로 들어갔다.

 

 


최소한의 인원, 김윤옥씨 일행으로 보이는 대여섯 명 정도가 법당으로 들어갔을 때 이들을 안내하던 정념스님은 더 이상의 사람들이 법당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제지하고는 문고리를 거는 소리가 덜컹 들리도록 법당문을 잠갔다.

 

편협한 종교관을 가진 일부 사람들이 예민하게 반응할 수도 있는 자리, 기독교인 그이가 부처님께 절(합장일지라도)을 했느니 안했느니 하며 구설수가 따를 수도 있다는 판단에서 스님은 문을 걸어 잠그고 불필요한 사람들을 만류하였을 거다.

 

김윤옥씨 일행이 사람을 차단시켜 달라는 요구가 있었을지도 모른다고 추측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몰염치하거나 속 좁은 사람들은 아닐 거라고 믿고 싶다. 오로지 구설수의 대상이 될 수도 있는 김윤옥씨의 입장을 배려한 정념 스님 배려며 자비심의 발로라고 생각된다.

 

어찌 되었건 기독교인인 김윤옥씨가 낙산사의 대표적 법당, 새로 복원된 원통보전에 들어가서 어떻게 예를 갖췄고 어떻게 행동했는지는 보지 못했지만 불자들이 예경하는 불상을 그냥 조형물쯤 구경하듯 둘러보지만은 않았을 거고, 후보 부인이라는 입장을 차치하더라도 지성인답게, 남의 집을 방문한 손님으로 걸맞게 행동하였을 거라 기대한다.

 

안 보여, 안경 좀 줘

 

원통보전 참배(?)를 끝내고 식장에 참석한 김윤옥씨와 민혜경씨는 야단법석으로 치러지는 낙성식에 참석한 여느 불자들과 마찬가지로 합장을 하고 삼귀의(부처님, 부처님의 가르침, 스님들께 귀의함을 다짐하는 예)도 하였다.

 

안경 좀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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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윤수


법회가 진행되며 한국불교 조계종의 최고 지도자인 총무원장 지관스님의 법어가 시작된 때, 김윤옥씨는 안내책자에 실린 법어를 읽으려는 듯 안내책자를 펼쳤더니 장갑 낀 손으로 눈을 비비기 시작한다. 나이를 먹으니 점차 침침해지는 눈은 어쩔 수 없나 보다.

 

잠시 눈을 비비던 그이는 몸을 오른쪽으로 틀더니 뒤쪽에 있는 누군가를 향해 ‘안경 좀 줘’하고 속삭이듯이 말했다. 뒤에서 누군가가 안경을 건네주기 전까지 김윤옥씨는 맨눈으로 법어집을 보고 있는 옆 사람이 부러운 듯 옆 사람을 응시하기도 한다.

 

잠시 후 안경이 건네지고, 안경을 쓴 김윤옥씨의 시선은 지관스님의 법어가 끝날 때까지 법어집(안내책자)에만 머물러 있었다. 지관 스님이 한 법어의 마지막은 동참하신 모든 분들의 심신청안을 빌며, 앞으로 낙산사사 더욱 발전하여 모든 국민의 정신적 의지처가 되기를 간절히 기원드리는 바입니다’로 끝을 맺었다.

 

 



귀로 들었을 뿐 아니라 안경까지 끼고 또렷하게 읽었으니 심신이 청안해지고 낙산사를 정신적 의지처로 받아들였을 거라고 기대된다.

 

해수관음상도 그들이 했던 좋은 말을 들었다

 

교계와 사회지도자들의 격려사와 축사에 맞대어 두 사람의 축사가 있었다. 좋은날, 좋은 자리에서 벌어지고 있는 좋은 일에 참석하고 있으니 그들 역시 좋은 말들만 한다. 그들이 들려주었던 좋은 말들은 수많은 참석자들뿐 아니라 행사장 저만치로 보이는 해수관음상도 듣고 있었다.

 


입장을 배려해 준 정념스님의 자비심에 감응되어서라도 종교와 종파를 초월해 정말 좋은 생각, 좋은 일들만 하는 그런 후보 부인들이 되길 바랄 뿐이다.

 

들여다보지 못한 법당 안 5분이 자꾸 궁금해지는 것이야말로 편협하고 배타적인 마음 때문이겠지만 그래도 우선적으로 남을 배려하는 손길을 보게 되어서 다행한 순간이었다.


태그:#낙산사, #김윤옥, #민혜경, #이명박, #정동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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