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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 익----."


떨어져 내리는 나뭇잎이 공간을 가른다. 그 흔적을 찾아보기는 어렵지만, 노인의 마음에는 선명하게 남아 있다. 나무에서 분리되어 지상에 내려앉는 시간이 그렇게 오래 걸릴 것이라고는 예전에는 미처 알지 못하였다. 열정이 넘치던 시절에는 찰나의 짧은 시간이었는데, 어느 날부터인가 그것이 길어진 것이다. 가슴에 깊은 흔적을 남기면서 외로움과 아픔을 동시에 주면서 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힘이 넘치는 사람들에게 단풍은 곱게만 보인다. 울긋불긋 고운 색깔에 취하여 감탄사를 터뜨리게 된다. 혼자 보는 것보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보고 싶어 한다. 우뚝한 빛깔에 취하여 다른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노인의 눈에는 다르게 보인다. 단풍 이파리가 떨어지고 나면 하얀 겨울이 올 것이라는 생각에 몸을 움츠리게 되는 것이다. 불어올 삭풍을 예견하고 또 한 해가 멀어지고 있다는 절박감을 떨쳐버릴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선운사는 단풍으로 단장을 하고 있었다. 어디 하나 흠 잡을 곳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단풍잎은 이파리대로 느티나무는 느티나무대로 독특한 빛깔로 반짝이고 있었다. 거기에다 상사화의 초록 이파리까지 더해져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붉은 색 일색보다 초록이 시너지 효과를 산출하고 있었다. 이루지 못한 사랑의 꽃의 애달픔이 붉은 사랑에 배어져 아름다움을 더욱 진하게 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고운 단풍 이파리가 바람에 떨어지고 있는 모습이 가슴을 자극하여 아픔을 느끼게 한다. 떨어지는 이파리처럼 노인은 추락하는 자신을 발견하는 것이다. 화려하였던 젊은 시절은 이제는 먼 전설이 되어버렸다는 사실을 절감하게 된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은 2007년의 가을을 아쉬워하지 않을 수 없다. 속절없이 늙어가는 육신을 어찌할 수 없이 방관하고 있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무너지게 만드는 것이다.

 

노인이라는 이유로 그렇게 대책 없이 무너진다는 것은 억울하다. 살아온 경륜이 있고 지혜가 있는데, 그렇게 무시당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육신은 세월 앞에서 무기력해졌지만, 마음까지 그런 것은 절대로 아니기 때문이다. 마음은 신체와는 다르게 아직도 왕성하기 때문이다. 당당해져야 한다. 대접받을 권리도 있고 또 그렇게 해야 한다. 노인이기에 존경받을 수 있도록 뭔가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노인의 미학.


노인이 아름다워지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존경받는 일은 결코 다른 사람이 만들어주는 것도 아니다. 스스로 존중받을 수 있도록 영역을 구축하고 스스로 노력해야 한다. 힘은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안으로 충실하고 밖으로 나타냄으로서 힘을 가질 수 있게 되고 매력을 발산할 수 있다. 노인이어서 가지는 독특한 향을 품어낼 수 있을 때 존경과 권위를 가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아름다운 노인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정리정돈을 잘 해야 한다. 머물렀던 자리에 흔적을 남기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스스로 먼저 솔선하여 실천함으로서 우뚝해질 수 있는 것이다. 다음으로는 가식이 없어야 한다. 염색이나 변장으로는 아름다운 노인이 될 수 없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에 청결미만을 유지한다면 존중받을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일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일하는 것이 가장 아름답기 때문이다.

 

 

신언서판(身言書判, 사람이 갖춰야 할 네 가지, 용모 말솜씨 글씨 판단)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품위 있는 말을 써야 한다. 그리고 할 수 없는 것은 빨리 포기하는 것이 좋다. 체념이 결코 나쁜 것이 아니다. 젊은이에게는 독이 되지만 아름다운 노인이 되는 데에는 필수적인 요소다. 그리고 한결 같은 마음으로 배우면서 취미를 살리게 되면 아름다운 노인이 될 수 있다. 마음을 비우고서 다른 사람을 위하여 봉사를 하게 되면 금상첨화라고 말할 수 있다.

 

단풍 이파리가 떨어지는 시간이 길어지게 된다는 것은 노인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떨어지는 궤적을 바라보면서 서글픔과 처연함만이 앞서게 된다면 비관적이 되지만, 그 것을 통해 사유를 깊게 하게 되면 새로움 세상으로 들어갈 수 있게 된다. 열정이 넘치는 젊은이들은 상상도 할 수 없는 경이로운 세상으로 들어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노인만이 가질 수 있는 특권이 아니겠는가?

 

 

고운 단풍을 바라보면서 화려하게 빛나고 있는 현재에 취하지만 말고 함께 어제를 반추하고 내일의 희망까지 볼 수 있게 된다면 인생은 아름다워진다. 노인이기에 가질 수 있는 즐거움을 찾아낼 수 있는 것이다. 노인이 되었기에 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인가? 나이를 먹는다는 것이 결코 슬픈 일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순간부터 행복지수는 가파르게 상승될 수 있는 것이다. 단풍 이파리가 떨어지고 있다. 가을이 멀어지고 있다.<春城>

덧붙이는 글 | 사진은 전북 선운사에서


태그:#노인,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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