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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관령 국사성황당에서 각자의 가슴에 품었던 소원을 빈 뒤 대관령 옛길 답사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성황당에서 선자령 길로 다시 올라와 성황당 반대편 길로 내려가면 반정에 도착한다고 답사를 기획한 찬기 형이 얘기했다.

 

옛길 답사를 기념하는 사진 한 장을 찍고 반정을 향해 걸음을 내디뎠다. 낙엽 쌓인 길의 포근한 감촉이 옛길을 걷는 정취를 한층 더해주었다. 도심 한복판에서 견고한 포장도로 위를 걸으며 느꼈던 이물감을 전혀 느낄 수 없다. 길을 걷다 문득 위를 올려다보면 길 따라 사방을 에워싼 단풍이 지천으로 타오르고 있다.

 

대관령 길. 자동차로 찾은 사람들은 가속페달 밟을 힘만 있으면 넘을 수 있고, 터널도 뚫려 굳이 넘지 않더라도 짧은 시간에 지나칠 수 있는 길이 되었다. 하지만 예전에는 이 고개 넘는 일이 쉽지만은 않았다. 아흔아홉 구비라 불릴 정도로 힘들고 고통스런 길이었다.

 

그래도 이 고개를 넘어 영동과 영서가 연결되었다. 영동의 해산물이 대관령을 넘었고, 영서의 농산물도 대관령을 넘어 영동으로 갔다.

 

산물뿐 아니라 사람들도 넘나들었다. 힘 있는 양반들은 가마 타고 넘었고, 돈 있는 권세가들은 말을 타고 넘었다. 힘도 돈도 없던 사람들은 비지땀 흘리며 넘었다. 양반이 탄 가마를 들고 넘기도 했고, 권세가가 탄 말을 끌고 넘기도 했다. 소금 짐이나 곡식 짐 짊어지고 가쁜 숨 몰아쉬며 넘나들었다.

 

아들과 함께 걷던 길, 늙은 어머니 두고 떠나던 길

 

낙엽 쌓인 길, 단풍 물든 길을 걷는 여행에 즐거운 건 아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우희태 선생님의 쌍둥이 아들 윤찬이, 윤철이는 둘이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뛰어 내려갔다. 넘어져 다칠까 염려하는 엄마, 아빠의 걱정은 아랑곳없었다. 낙엽이 많이 쌓인 길이라 크게 위험하다는 생각은 안 들었지만 우희태 선생님 부부는 안심이 안 돼 함께 뛰며 아이들 주변을 맴돌았다. 덕분에 우리 일행의 발걸음도 빨라졌다.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즐거운 아이들과 그 뒤를 종종걸음으로 따라 내려가는 젊은 부부의 모습이 가을 단풍과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이 되었다. 과거에도 이 길을 걸었던 사람들의 모습이 저리 아름다울 때도 있었겠지.

 

"찬기 형, 이순원이 쓴 <아들과 함께 걷는 길>이란 책 읽어봤어?"

"아니. <19세>란 책은 감동적으로 읽었던 기억이 나는데…."


"작가가 아들과 함께 대관령 길을 걸어 내려간 이야기를 쓴 소설인데. 그 책 읽고 나서 나도 아들들과 그 길 걸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렇단 말이야, 나중에 꼭 읽어봐야겠다."

 

그 소설은 한 폭의 그림이었다. 아들과 함께 꼬불꼬불 굽이진 길 걸어 내려가며 한 굽이에 하나씩 가슴에 담긴 얘기 보따리를 풀어내던 솜씨 좋은 작가의 글이 그림이 되어 되살아나고 있었다.

 

"이 고개 넘어간 이들이 남긴 애달픈 사연도 많았을 거야."
"신사임당도 이 고개를 넘었지."

 

신사임당은 대관령을 넘어 서울로 향하며 친정 강릉에 남은 늙은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시를 남겼다.

 

늙으신 어머니를 강릉에 두고
외로이 서울 길로 떠나는 이 마음
때때로 고개 돌려 북평 쪽 바라보니
흰 구름 아래로 저녁 산이 푸르구나.

- 대관령 넘어 친정을 바라보며

 

결혼하고 집을 떠나 사는 여성들에게 고향과 친정은 어머니의 품이었다. 강릉을 떠나 영서 지방에 사는 신사임당도 예외는 아니었다. 하지만 고향 강릉은 산 첩첩 가로막힌 천릿길 너머에 있었다. 그리운 고향 보고 싶은 어머니 곁에 앉아 바느질을 하고픈 마음도 시에 잘 나타나 있다.

 

 

산 첩첩 내 고향 여기서 천리
꿈속에서도 오로지 고향 생각 뿐
한송정 언덕 위에 외로이 뜬 달
경포대 앞에는 한 줄기 바람
갈매기는 모래톱에 헤어졌다 모이고
고깃배는 바다 위롤 오고 가겠지
언제쯤 강릉길을 다시 밟아가
어머니 곁에 앉아 바느질할꼬.

- 신사임당 '어머니를 그리며'

 

현모와 양처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신사임당이지만 그런 치장 벗겨내면 동시대를 살다 간 다른 여성들과 다를 바 없다. 힘든 시집살이에 눈물지으며 옛 시절을 그리워하고, 어머니의 품에 안기고 싶은 건 너나없이 같은 마음이었을 터. 애틋한 신사임당의 시 구절을 생각하며 문득 바라본 붉은 단풍이 예전과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동학 농민군의 핏빛 함성 단풍 되어 타오르다
 
"아는 사람들이 많진 않지만 강원도 동학농민군도 이 고개를 넘었어."
"그래요?"

 

"동학농민전쟁하면 전라도, 경상도, 충청도 정도로 알고 있지만 강원도에서도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어."
"그 얘긴 들은 적 있어요."

 

 

강원도의 동학농민전쟁은 두 지역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홍천, 횡성 일대를 중심으로 전개되었던 서석 풍암리 전투, 영월, 평창, 정선의 농민군 연합부대를 중심으로 전개되었던 강릉부 점령 등이었다.

 

"강릉 동헌을 점령한 뒤 어떻게 되었는데?"
"삼정의 폐단을 없앤다는 방문을 내걸고 개혁을 선포했지."


"대단하네요. 강원도에서도 그런 일이 있었다니."
"하지만 얼마 가지 못했어."

 

"정부군의 공격을 받았나요?"
"그게 아니라, 강릉 토호였던 이회원이 조직한 민보군에 패퇴한 거야."

 

"아쉽군요."
"퇴각한 농민군은 다시 대관령을 넘어 정선, 평창, 영월 등지에서 최후의 격전을 벌였지."

 

사람들의 발길이 닿는 모든 곳에는 수많은 삶의 흔적이 남아 있다. 대관령 옛길 또한 마찬가지다. 지금은 연인들끼리, 가족들끼리 오순도순 얘기하며 걷는 정겨운 길이 되었지만 옛 선조들의 눈물겨운 사연과 핏빛 함성이 남아 전하는 길이었다.

 

 

동학농민군의 핏빛 함성을 생각하며 내려가다 바라본 단풍은 유난히 붉었다. 삼정의 폐단을 제거하리라 억센 주먹 불끈 쥐고 이곳을 넘던 농민군의 핏빛 함성이 단풍이 되어 붉게 타오르고 있었다.

덧붙이는 글 | <'테마'가 있는 나만의 여행> 응모글 

10월 28일 대관령 옛길 답사 과정을 쓴 기사입니다.


태그:#대관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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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서 있는 모든 곳이 역사의 현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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