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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시험을 마친 친구들한테

아침부터 날이 따뜻합니다. 지금은 가을이 아닙니다. 겨울도 아닙니다. 미친 날씨 탓에 뒤죽박죽이 된 철없는 아침입니다. 그러면 이 아침은 왜 철없는 아침이 되었을까요. 그냥 날씨가 미쳤기 때문일까요? 흔히 말하는 지구온난화 때문일까요? 지구온난화 때문이라면 지구온난화는 왜 일어날까요?

지난해까지만 해도, 어린 친구들이 대학교 들어가는 시험을 치르는 날은 모질게 추웠습니다. 열 해쯤 앞서는 더 추웠고, 스무 해쯤 앞서는 훨씬 추웠고, 서른 해나 마흔 해쯤 앞서는 대단히 추웠으리라 봅니다. 하지만 올 11월은 안 춥습니다. 안 추울 뿐 아니라 낮에는 덥기까지 해서 모기와 파리가 잠들지 않습니다.

친구들은 시멘트로 지은 학교 건물에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갇혀 지내면서 이런 미친 날씨를 느껴 보았나요? 요즈음 햇볕이 어떠한지, 요즈음 하늘은 파란빛 없이 뿌옇기만 한 빛깔인지, 도시고 시골이고 백 미터 앞도 또렷하게 드러나 보이지 않는 먼지 띠가 드리웠는지, 겨울이 코앞인데 안 추운지, 여름이 한창인데 비만 퍼붓는지를 살갗으로 느껴 보았나요? 산성비와 산성이 아닌 비가 어떻게 다른지 맞아 본 적이 있나요?

지금은 열두 시. 친구들은 한창 연필이나 볼펜을 놀리며 문제풀이를 하고 있겠군요. 수학능력시험을 치르지 않는 친구들도 있겠지요. 모든 친구들이 대학교에 갈 수 있지 않은 한편, 꼭 대학교에 가야 하지는 않으니까요. 대학교에 가서 학문을 깊이 갈고 닦을 수 있지만, 학문을 갈고 닦는 길은 반드시 대학교만이 아닙니다. 대학교에 다니며 앞으로 자기가 다니고 싶은 회사에서 쓰일 만한 실무를 익힐 수 있으나, 대학교에 안 가고 곧바로 ‘고졸’ 또는 ‘중졸’ 또는 ‘학력 없음’인 채로 세상을 부대끼며 일손을 하나하나 익힐 수 있습니다.

오늘 저녁, 친구들이 수학능력시험을 다 치르고 난 뒤(또는 시험을 안 치르고 보낸 뒤), 어떻게 하루를 마감할까 궁금합니다. 시험을 치르고 난 이튿날부터는 어떻게 하루하루를 보낼까 궁금합니다. 여태껏 하고 싶었어도 못한 꿈을 펼치려는지, 여태껏 보고 싶어도 못 본 영화를 보려는지, 여태껏 사귀고 싶었어도 못 만나고 지낸 이성친구(또는 동성 친구)를 만나려는지, 여태껏 다니고 싶었어도 먼나들이(여행)를 떠나지 못한 아쉬움을 풀고자 신나게 길을 나서려는지.

벌써 술 맛을 들인 친구도 있을 테고, 술하고는 멀리 떨어진 채 지내는 친구도 있겠지요. 어떠하든 좋습니다. 오늘 저녁에는 아버지나 어머니한테 ‘저, 술 한 잔 사 주셔요’ 하고 말씀드리며 알딸딸한 채로, 마음에만 담고 있던 온갖 이야기를 풀어놓으면 어떨까 싶습니다. 내일 하루쯤, 또는 이틀쯤 학교를 빠지고 고향땅에서 멀찍이 떨어진 곳으로 뚜벅뚜벅 걸어가며 여행을 떠나 보면, 시외버스나 기차를 타고 바람을 쐬러 나가 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개근상을 반드시 타야 하지는 않으니까요. 오토바이를 타고 싶다면 헬멧은 꼭 쓰셔요. 우리들 푸른 친구들 소중한 목숨은 하나이니까요. 자전거를 타고 우리나라를 한 바퀴 돈 다음 학교로 돌아가도 괜찮겠지요. 자기 몸뚱이로만, 자기 두 다리로만 페달질을 하면서 홀로 노래도 부르고 중얼거리기도 하면서 옴팡 땀으로 범벅이 된 채로 이 나라 구석구석을 밟으며 우리네 이웃사람들 삶터와 발자취를 마음껏 느껴 보아도 참으로 좋으리라 생각합니다.

제가 대학교 입학시험을 치른 해는 1993년입니다. 그때 수학능력시험이 처음 치러졌고, 저는 11월 6일과 한 달쯤 뒤에 다시 한 번 해서, 두 번 치렀습니다. 덕분에 마음을 놓고 느긋하게 쉴 수 없었고, 홀가분하게 나들이를 떠날 수도 없었어요. 다만, 제 살가운 너나들이네 집에 놀러 갔더니, 동무 아버님께서 손수 고기를 구우시면서, “너희들도 이제 어른이 되었으니 술을 마셔도 돼!” 하면서 냉장고에서 소주를 꺼내 뿅 따서 내리 일곱 잔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한 잔을 마시면, 당신이 구운 고기를 젓가락으로 손수 집어서 입에 넣어 주시고. 이렇게 거푸 일곱 차례.

이튿날 학교에 갔더니 열두 시 즈음 끝내더군요. 뭐, 이 나라 고등학교는 ‘대학교 들어가는 시험 치르기’가 끝나면, 우리 친구들한테 아무것도 가르쳐 줄 수 없으니까 그렇겠지요. 친구들 다니는 학교도 비슷하지 않을까요? 친구들이 초등학교 여섯 해, 중학교 세 해, 그리고 고등학교 세 해, 모두 열두 해 동안 배운 교과서란 무엇입니까? 한낱 대학입학시험 치르는 연장일 뿐 아닌가요. 대입시험을 치르면 찢어버려도 되는 종이뭉치, 대입시험을 치르면 헌책방에 내다 팔아도 되는 종이 덩이, 대입시험을 치르면 신발로 마구 마구 밟거나 종이비행기 접어서 던져도 되는 종이꾸러미….

아무튼, 제 고3 때를 더듬어 보면, 두 번째 수능이 끝난 뒤부터는 아주 자유로워졌고, 학교도 일찍 끝냈기에, 저는 곧바로 제 고향인 인천에 있는 모든 책방을 샅샅이 누비고 다녔습니다. 대한서림, 동인서관, 시민서점, 동아서림, 한겨레문고, …, 그리고 배다리에 있는 헌책방들, 부평에 있던 헌책방 광장서점 들….

책을 좋아해서라기보다, 여태까지는 ‘진짜 책이라 할 만한 책’은 한 권도 제대로 읽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교과서는 책이 아닌데, 교과서 아니면 아무것도 볼 수 없도록 묶여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삶을 담은 책, 우리 이야기를 엮어낸 책, 우리 생각과 뜻과 마음을 이끌어 주거나 북돋워 주는 책, 진짜 책을 만나고 싶어서 새책방이고 헌책방이고 낮 열두 시부터 저녁 여덟아홉 시까지 박혀 지냈습니다. 나중에는 서울에 있는 교보문고와 영풍문고와 종로서적에도 먼 나들이를 가 보았습니다. 그런 데는 얼마나 책이 많은가 싶어서.

<2> 교과서는 가짜 책

우리 푸른 친구들한테 여덟 가지 책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이 여덟 가지 책은 제 나름대로 참 괜찮다고 느낀 책들인데, 친구들한테도 괜찮다고 느껴질는지, 그저 그렇네 하고 다가갈는지, 지루하거나 따분하게 받아들여질지 모르겠습니다. 진짜 책, 친구들 마음을 움직이거나 울리는 책은, 어찌 되었든 친구들 두 손으로 고르거나 찾아내야 합니다. 저는 제 두 손으로 이 여덟 가지 책을 찾아냈고, 읽어냈고, 가슴으로 녹여냈습니다.

아무쪼록, 가벼워진 몸과 마음을 채울 거리는 친구들 스스로 찾아보시면 좋겠어요. 그 거리는 책이 될 수 있고, 자전거가 될 수 있으며, 살가운 벗이 될 수 있습니다. 사진기가, 붓이, 인터넷이, 술이, 오토바이가, 또는 호미나 낫이 될 수 있겠지요. 종이접기가, 장구와 북이, 피리와 기타가 될 수 있고요.

두 친구가 거친 세상을 헤쳐 나가는 이야기를 담습니다.
 두 친구가 거친 세상을 헤쳐 나가는 이야기를 담습니다.
ⓒ 양철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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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두 친구 이야기
안케 드브리스 씀, 박정화 옮김
양철북, 2005.11.18, 8500원

“엄마가?” “놀랄 줄 알았다. 그 여자는 대낮에 별이 보일 정도로 호되게 자식을 팼다. 그 애가 지르는 비명소리가 가끔 여기까지 들렸지.” “그… 그런데….” 미하엘은 말을 더듬었다. “왜 아무 일도 하지 않으셨어요?” “괜히 남의 일에 간섭하는 법이 아니란다.” 할아버지가 중얼거렸다. “저 양반 때문에 못했다! 그 불쌍한 꼬마를 도와야 한다고 말해도 우리 일이 아니라고 영감이 한사코 말리잖아!” 할머니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실제로 우리 일이 아니잖아. 이 세상은 골칫거리로 가득하다고. 그걸 다 당신이 해결할 수는 없잖아. 아무도 당신더러 참견하라고 부탁하지도 않았고.” 미하엘은 그들의 말을 듣고 있지 않았다. 유디트 등의 멍과 부은 자리만 생각났다. 엄마가 그랬다니! 왜 유디트는 나한테 숨겼을까? 거짓말까지 하면서. 난 유디트의 남자친구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는 말인가? (257쪽)

경제 성장을 파헤쳐 본 책.
 경제 성장을 파헤쳐 본 책.
ⓒ 녹색평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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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경제성장이 안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
더글러스 러미스 씀, 김종철ㆍ이반 옮김
녹색평론사, 2002.12.10, 7000원

매년 몇 십만의 사람들이 살인훈련을 받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대단히 큰 살인학교가 있어서, 미국에서 몇 백만 명의―주로 남자들― 사람들이 그 살인학교를 졸업하였습니다. 그 살인학교라는 것은 물론 군대입니다. 나도 군대에 있었기 때문에 잘 알지만, 군대의 훈련 중에서 이런저런 기술도 가르치지만, 그 이외 군대의 훈련에는 큰 목표가 있습니다.

보통, 사람은 사람을 죽이지 못합니다. 저항이 있어서, 그리 간단히는 되지 않습니다. 적이라고 해도 실제로 인간의 몸을 겨냥해서 공격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군대에서는 그 저항을 없애는 훈련을 하는 것입니다. 죽이지 못하는 인간을 죽이는 인간으로 훈련시킵니다. (42쪽)

제국이란 무엇인가 알려줍니다.
 제국이란 무엇인가 알려줍니다.
ⓒ 이후(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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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ㄷ) 보통 사람들을 위한 제국 가이드
아룬다티 로이 씀, 정병선 옮김
시울, 2005.9.29, 8500원

일단 시민사회가 자유를 넘겨주고 나면 투쟁 없이는 되찾을 수가 없습니다. 자유를 회복하는 것보다 자유를 포기하는 것이 훨씬 더 쉽습니다. 우리의 자유가 비록 변변치 못하다고 할지라도 정부가 결코 하사한 게 아니라는 점을 깨닫는 게 중요합니다. 자유를 얻어낸 것은 우리의 투쟁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게 중요합니다.

우리가 자유를 사용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때때로 자유를 시험해 보지 않는다면 자유는 위축되고 맙니다. 우리가 끊임없이 자유를 수호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자유를 빼앗기고 말 것입니다. 우리가 더욱더 많은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면 우리에게는 초라하고 빈약한 것만 남게 될 것입니다. (24∼25쪽)

우리 아이들은 농사꾼은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살까요?
 우리 아이들은 농사꾼은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살까요?
ⓒ 그물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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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ㄹ) 백성백작―농부는 백 가지 일을 하고 백 가지 작물을 기른다
후루노 다카오 씀, 홍순명 옮김
그물코, 2006.7.22, 8000원

국산 밀이라고 상표가 붙은 밀가루가 이따금 팔리지만, 내가 알기로는 화학비료, 제초제, 농약을 일체 사용하지 않는 밀가루는 거의 없는 것 같다. 퇴비만으로 키운 밀가루에는 미묘한 맛의 차이가 있다. 부추를 썰어 넣고 프라이팬에 기름을 쳐서 굽기만 해도 정말 맛이 있다. 조미료를 넣을 필요가 전혀 없다.

원래 밀에는 밀의 맛이 있고, 쌀에는 쌀의 맛이 있고, 무에는 무의 맛이 있다. 그 맛을 내는 농법과 요리법, 즉 자연과의 관계가 중요하다. 수입 농산물이 아무리 있어도, 사람은 진정한 풍요로움을 실감할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자연의 은혜를 실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유기농업의 가장 좋은 점은, 가족들이 함께 일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78∼79쪽, 165쪽)

바닷가에서 살아가던 어머니와 아들, 둘이 엮어내는 이야기를 담은 책.
 바닷가에서 살아가던 어머니와 아들, 둘이 엮어내는 이야기를 담은 책.
ⓒ 눌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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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ㅁ) 블루백
팀 윈튼 씀, 이동욱 옮김
눌와, 2000.2.25, 7000원

아벨은 어머니의 편지에서 이런 이야기들을 읽고는, 자기가 그곳에서 어머니를 돕지 못한다는 사실에 화가 났다. 밤이면 뜬눈으로 어머니와 롱보트 만을 생각했다. 사람들이 아무리 많은 돈을 내놓든 어머니는 꺾이지 않는다는 것을 아벨은 알고 있었다. 어머니는 한 그루 나무처럼 완강하고 또 굳건했다. 하지만 그런 일들이 얼마나 어머니를 지치게 하고 어머니의 시간을 허비하며 어머니의 신경을 곤두서게 했을까. 사람들은 그 땅이 단순한 부동산이 아니라는 것을 알 리 없었다. 그들은 롱보트 만이 아벨의 어머니에게는 한 생애이자 친구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그리고 이 땅이 어머니에게 남편 같은 존재였다는 것도 역시 몰랐을 것이다.

날마다 그 박하나무 아래서 어머니는 아벨의 아버지를 생각하며 서 있곤 했다. 사람이 어떻게 하면 해가 지고 달이 가도록 변함없이 그럴 수 있는지 아벨은 당혹해 하곤 했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아벨은 그 모든 것들―바다, 관목숲, 집, 그리고 아버지에 대한 추억―에 대한 어머니의 사랑이 얼마나 강한지 알게 되었다. 어머니를 외로움으로부터 지켜준 것은, 그리하여 어머니를 굳건하게 만들어 준 것은 바로 그 사랑이었다. 그것은 어머니에게 양식과도 같은 것이었다. 아벨은 그 어머니의 사랑 덕택에, 줄곧 숨죽이는 생활을 해야 했던 도회지에서의 무미건조한 학교 생활을 견뎌내고 마침내 얼굴에 바다의 푸르름을 적시게 될 수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100∼101쪽)

온삶을 바쳐 환경운동을 했던 한 사람 이야기를 담은 책.
 온삶을 바쳐 환경운동을 했던 한 사람 이야기를 담은 책.
ⓒ 달팽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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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ㅂ) 희망은 있다
페트라 켈리 씀, 이수영 옮김
달팽이, 2004.11.15, 8000원

유럽평화운동을 하는 일원으로서 서유럽에 사는 우리는 미국의 미사일 배치를 막기 위해 시민불복종과 적극적인 비폭력운동을 통해 가능한 모든 일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합법성과 정당성의 차이가 무엇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정부가 저지른 도덕적으로 잘못된 결정에 대한 마지막 대응수단으로 우리는 불법이라 하더라도 정당한 행동을 비폭력적인 방법으로 지속해 나가고 있습니다. 법적 권리와 도덕적 권리가 항상 일치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우리는 깨달았습니다. 이제 우리는 불복종할 시민의 의무(!)가 있음을 실감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토 미사일 배치에 반대하는 비폭력 시민저항이 도덕적으로 정당하다고 우리는 믿습니다. 이러한 무기들이 배치되고 나면 돌이킬 수 없는 새로운 상황으로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전쟁으로 이어질 확률이 훨씬 높아지고, 또 미래 세대의 생존기회가 줄어들 것이 뻔합니다. 시민불복종운동이 법을 어기는 행위라는 사실을 우리는 압니다. “소련이 쳐들어오면 어떻게 하지?”라는 질문뿐 아니라, “미국이 이곳에 머물면 어떻게 하지?”라는 질문, 점차 급박해지는 이 질문에도 비폭력행동으로 해답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우리는 전 세계에 주둔하고 있는 ‘모든’ 외국군대를 반대합니다. 소련은 아프카니스탄에서 떠날 것을 요구하며, 미국은 그레나다에서 떠날 것을 요구합니다. (69쪽)

마음 가벼이 푸근하게 즐길 수 있는 이야기책입니다.
 마음 가벼이 푸근하게 즐길 수 있는 이야기책입니다.
ⓒ 우리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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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ㅅ) 깜둥바가지 아줌마
권정생 씀
우리교육, 1998.11.20, 6000원

“나도 뚝배기 마음을 잘 알고 있어. 그리고 사기 접시랑 오목탕끼들이 우리를 무척 업신여기고 있는 것도 잘 알고 있단다.” “그러면서, 그러면서 왜 그 애들을 미워하지 않는 거예요? 꾸짖지 않는 거예요?” 뚝배기는 너무 서러워 목이 꺽꺽 막히었습니다. 깜둥바가지는 여전히 상냥스레 타일렀습니다. “그건 잘못된 생각이야.” “나쁜 짓 하는 것을 꾸짖는 게 무슨 잘못이에요?” “그게 아니란다. 사기 접시랑 오목탕끼는 아직 어려서 그런 거야. 만약 내가 무섭게 그 애들을 꾸짖고 욕하면 되레 우리를 더 미워할 게 아니니? 전보다 더 나쁜 짓을 하면서 대들는지도 모를 거야. 그래, 이 좁은 부엌 안에서 매일 싸움만 하고 서로 미워한다면 얼마나 불안스럽겠니?”

깜둥바가지는 잠시 말을 그쳤습니다. 된장 뚝배기는 가만히 귀담아듣고 있습니다. “… 그러니까 어느 한쪽이 참아야 하지 않겠니? 쬐그만 할 때는 누구라도 다 장난꾸러기인 거야. 그걸 탓하지 말고 사랑해 주면 언젠가는 스스로 깨닫게 된단다. 그러니까 그냥 꾹 참고 지내면 앞으로는 사기 접시도, 오목탕끼도, 수저들도 모두 뉘우치고 우리랑 친할 거야.” 된장 뚝배기는 어느새 눈물을 말끔 씻고 있었습니다. (40∼41쪽)

우리 말뿐 아니라 삶을 가꾸는 이야기를 담은 책입니다.
 우리 말뿐 아니라 삶을 가꾸는 이야기를 담은 책입니다.
ⓒ 아리랑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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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 우리 말 살려쓰기(셋)
이오덕 씀
아리랑나라, 2005.8.25, 15000원

초등학교란 이름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만하다. 보통학교, 소학교, 어린이학교, 그밖에도 몇 가지 의견이 나왔던 모양인데, 왜 온 나라 사람들의 교육을 하게 되는 학교 이름을 붙이는데 일반 백성들의 생각을 물어 보지 않고, 행정관청에서 마음대로 붙이나? 몇 천 명인가를 상대로 알아보기는 한 모양인데, 그래서는 안 된다. 내 눈에는 어떤 직위에 있는 사람이 어떤 이름을 바라나 하는 것이 훤하다. 그러니 이런 여론조사는 조사 대상을 어떤 사람으로 하나 하는 데 따라서 얼마든지 바라는 결과를 얻어낼 수 있다.

내 생각에는 ‘어린이학교’가 가장 좋다. 그러나 어린이학교로 되리라고는 바랄 수가 없었기에 내 생각을 한 번도 내놓지 않았다. 어린이학교가 되려면 아이들 생각을 들어 봐야 하는데, 일반 교사보다 교감, 교장의 생각을 더 잘 듣는 지금의 행정당국이 아이들 생각에 귀를 기울여 주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그 정도로 될 줄 알았지. 우리가 하는 정도가 그저 이런 정도밖에 안 되니까. 초등학교가 되더라도 좋으니 부디 교육이나 좀 달라졌으면, 하고 바랄밖에 없다. 국민학교, 아, 그 몸소리나는 국민, 국민, 국민총동원, 총후국민, 비국민, 황국민, 국민정신작흥주간, 대일본국민체조, 국민독본, 국민복, … 이제 그 왜정 때의 그 지긋지긋한 국민이란 말에서 벗어나게 되려나. (78쪽)


태그:#책읽기, #대입시험, #수학능력시험, #교과서, #수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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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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