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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기훈씨. 강기훈씨가 14일 유서대필 사건에 대해 소감을 밝히고 있다.
ⓒ 안윤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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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의 '조작 사건'이 진실을 드러내고 있다. 노태우 정권 시절, 민주화운동세력의 도덕성에 상처를 입혔던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이 국가 기관에 의해 조작된 것임을 보여주는 증거가 나온 것.

최근 국립과학수사연구소(국과수)는 '1991년 분신해 숨진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전민련) 김기설씨의 필적과 유서의 필적이 같다'는 결론을 내놨다. 이는 "김씨의 유서는 같은 단체 동료인 강기훈씨가 대신 작성한 것"이라는 당시 국과수의 감정결과를 뒤집는 내용이다. 

이에 따라 자살방조죄로 검찰에 기소돼 징역 3년의 유죄 판결을 받았던 강씨는 억울한 누명을 일부 벗을 수 있게 됐다.

강기훈 유서대필 조작사건 진상규명 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 공동대표 함세웅)는 14일 서울 중구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교육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당시 사건 조작에 가담한 관계자들의 사과를 촉구하는 한편 사법부에 재심을 청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앞서 국과수의 감정 결과를 통보 받은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이하 진실화해위원회, 위원장 송기인)는 지난 13일 "국가는 종전 국과수의 필적 감정, 검찰의 기소 및 재판부의 유죄 판결에 대해 피해자와 가족에 사과하고 화해를 이루는 조취를 취하라"고 권고한 바 있다.

'강기훈 유서대필' 조작 증거 드러나...강씨 "재심 요청 할 것"

강기훈씨.
 강기훈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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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기훈 유서대필 사건'은 그간 끊임없이 조작 의혹이 제기돼 왔다. 노태우 정권이 수서지구 특혜분양사건, 국회의원 뇌물외유사건 등 각 종 부패·비리 사건 등으로 궁지에 몰린 상황에서 이를 타개하기 위해 꾸민 사건이라는 주장이었다.

이 사건은 같은 해 4월 26일 명지대생 강경대씨가 경찰(백골단)의 쇠파이프에 맞아 숨을 거둔 것으로부터 시작됐다. 당시 분노한 민주화 운동 세력은 정권을 상대로 총공세를 가했다. 대학생 및 민주화 인사들의 항의 분신도 잇따랐다.

5월 8일에는 강기훈씨의 전민련 동료였던 김기설씨도 정권의 폭압에 항의하는 뜻으로 목숨을 끊었다. 그날 오전 8시께 서강대 옥상에서 분신한 후 투신한 것.

앞서 7일 정부가 치안관계기관대책회의를 열어 연이은 분신 자살의 배후를 추궁하겠다고 밝힌 가운데, 검찰은 이를 서울중앙지검 강력부에 배당해 김씨와 강씨의 필적을 광범위하게 수집했다. 분신의 배후를 밝히겠다는 의도였다.

또 검찰은 국과수에 필적 감정을 의뢰, 강씨와 김씨의 필적이 동일하다는 결과를 받아냈다. 검찰은 이 자료를 유일한 증거로 삼아 강씨에 자살방조죄를 덧씌었다.

그러나 당시 국과수의 감정은 김기설·임무영·이동진 등 세 명이 작성한 전민련 업무일지를 한 명이 작성한 것으로 결론 내릴 정도도 신뢰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또 당시 국과수 문서분석실장 김형영씨는 이 사건의 재판이 진행되던 1992년 초 뇌물을 받은 혐의로 구속되기도 했다.

게다가 사건이 일어난 지 16년 6개월만에 국과수가 필적 감정 결과를 사실상 번복함으로써 이 사건이 조작됐을 가능성은 그만큼 높아진 것이다. 앞으로 사건 조작이 사실임을 밝히려면, 국과수에 대한 검찰의 외압 사실 및 사건을 기획한 정부·국과수·검찰 등 관계자들의 증언 등이 추가로 드러나야 한다.

강기훈 유서대필 조작사건 진상규명 대책위원회(공동대표 함세웅)는 14일 서울 중구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교육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당시 사건 조작에 가담한 관계자들의 사과를 촉구하는 한편 사법부에 재심을 청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강기훈 유서대필 조작사건 진상규명 대책위원회(공동대표 함세웅)는 14일 서울 중구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교육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당시 사건 조작에 가담한 관계자들의 사과를 촉구하는 한편 사법부에 재심을 청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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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과수 감정 결과 번복..."유서 필적, 김씨 필적 같다"

당시 노태우 정권은 이 사건을 계기로 '운동권은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동료의 죽음을 조장하고 유서 대필도 서슴지 않는다'며 민주화 세력의 도덕성을 공격했다.

그러나 애초 강씨는 재판이 진행될 당시 '검찰 출두 성명서'를 내고 "나는 진실하기 때문에 떳떳하면서도 한편으로 억울함과 무거운 마음이 교차한다"고 토로했다. 또 "결백한 내게 유서대필자·자살방조범이라는 범죄자의 굴레를 씌우려드는 공권력에 맞서 양심을 지키는 일이 쉽지 않을 것"이라며 사실상 혐의를 부인한 바 있다.

이에 대해 대책위는 "법원에 재심 결정이 있기 전이라도 국가는 피해자에 사과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또 "이 사건의 기획과 조작의 책임자를 끝내 밝혀 다시는 국가폭력의 희생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진실을 향한 행진'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또 대책위는 진실화해위원회의 활동에 대해 "당시 필적 감정에 가담한 국과수 감정인들이 자신의 잘못을 고백했다. 높이 평가한다"면서도 "유서대필 감정에 대한 외압 부분은 밝히지 않았다"며 한계를 지적했다.

강씨는 이날 기자회견을 마치고 기자와 만나 "16년이 지났지만 사건은 현재 진행형이다"면서 "필적 감정이 잘못됐다는 게 드러나 재심의 근거를 마련했다. 이제 시작이다"고 말했다.


태그:#강기훈 유서대필 사건, #강경대, #분신, #노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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