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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서 일을 하다 보니 재미가 없었다. 신성한 노동이 신성하기는커녕 고리타분했고, 살림의 노동이 살리기는커녕 죽을 맛이었다.

 

 

나름대로 대한민국 최고의 밥맛을 추구한답시고 낫으로 나락을 베어 나락단을 세워 말렸는데 힘들어 죽을 지경이었다. 

 

 

타작하는 날. 혼자서 탈곡기를 트럭에 싣고 와서 논바닥으로 끌고 가면서 이래서는 안되겠다 싶었다. 이 좋은 전통 타작마당 체험을 어찌 나 혼자 독차지하랴 싶었다.

 

 

이때 퍼뜩 떠오르는 인물이 있었다. 탈곡기 돌리는 걸 멈추고 전화를 걸었다.

 

"진○아. 나야."

"아, 예. 형님. 접니다. 어머님 안녕하시구요?"

 

자, 여기서부터가 중요하다.

 

"그럼 그럼. 덕분에 어머니 잘 계신다. 그래 너 요즘 바쁘지?"
"아이고, 뭐 그렇지요. 가을걷이 다 끝나고 밭 정리해야 하는데 손도 못 대고 있습니다."

"그래? 내가 좀 도와줄까?

"아입니다. 뭐 괜찮아요. 바쁜 거 없습니다."

"아냐 아냐. 힘들 때는 아래위 마을에 살면서 서로 도와주고 그래야지 어려워할거 머 있노. 내가 도와줄게."

"괜찮습니다. 형님도 바쁠 텐데 뭘요."

 

이 친구 감개가 무량한지 목소리까지 감격에 떨린다. 병원에서 십수 년 근무하다 '하늘소 마을'로 귀농한 후배다. 아내는 간호사인데 요즘도 옛날 살던 도시로 가서 간호사 교육 등을 한다.

 

"그렇다면 말이다. 진○아, 니가 나 좀 도와주라."

"네?"

 

이 친구 갑자기 긴장하는 모습. 다른 사람을 긴장시키며 살 수야 없는 일. 얼른 긴장을 풀어주었다.

 

"그래. 니가 좀 도와줘야겠다. 우리 집에 멋진 술꾼 손님들이 술 가지고 오는데 니가 와서 좀 마셔주라 응?"

 

이렇게 해서 이 친구를 우리 집 논으로 끌어 드리는 데 성공했다. 이 친구는 타작한다는 말을 듣고 막걸리를 한 상자(10병)나 가져오기까지 했다.

 

 

이렇게 하나 둘 끌어 모았더니 제법 일꾼이 생겼다. 하늘소 마을 후배는 탈곡기 밟는 솜씨 하며 나락단 훑어 내는 솜씨가 완전 프로급이었다. 그동안 나를 최고의 농부로 알던 친구들이 이 친구의 솜씨를 보고는 입이 벌어지면서 내 주가가 폭락했다. 뿐만 아니라 막걸리 마시는 솜씨, 걸쭉한 입담 하며 무엇하나 내가 견줄만한 게 없었다.

 

 

우리는 야무지게 밟았다. 돌리고 돌렸다. 나락이 튀고 '뿍띠기'가 날았다.

 

 

생각지도 않던 아들이 친구까지 하나 달고 왔다. 타작 이틀째 되는 날이었다. 한빛고등학교 다니는 아들이 1주 전에 학교를 뛰쳐나와 여기까지 걸어서 왔단다. 파출소에서도 자고, 순경 아저씨가 안내해 주는 찜질방에서도 자고, 할머니가 홀로 사시는 농가에서 밥을 얻어먹기도 하면서 애비 타작 해 주러(?) 왔던 것이다.

 


저녁 밥상을 들이기 전에 오징어 전을 부쳤다. 사흘간 계속된 타작이 끝났다.


태그:#타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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