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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우리 동네(부산 해운대구 좌동)는 목욕탕 옆에 이발관이 있고, 이발관 옆에 미장원이 있고, 미장원 옆에 세탁소가 있고, 세탁소 옆에 오래된 복덕방이 있어요.
 
그중에 가장 오래된 곳은 목욕탕 옆에 이발관이랍니다. 아니 이발관 곁에 목욕탕이랍니다. 요즘은 누구나 너무나 인테리어가 잘 꾸며진 목욕탕과 이발관을 이용하지만, 그래도 아직은 이런 목욕탕과 이발관을 편해서 찾고, 싸서 찾는 우리 동네 사람이 있어 35년씩이나 한자리에 문을 열고 있답니다.
 
그러나 곧 밀고 당기는 싸움처럼 연장되었던 주공 아파트 재건축으로, 오늘내일 어디론가 장소를 옮겨야 할 이발관과 목욕탕과, 그리고 미장원 옆에 꼭 있어야 할 동네 약국은 문을 닫은 지 몇 년이 되었지만, 모두 문 닫고 떠나는 마당에 동네 사람들이 다 이주할 때까지 그래도 문을 열어 놓고 있는 목욕탕도 이발관도 손님이 없어 너무 조용합니다. 
 
저는 여자라서 우리 동네 명물 '미림이용원' 앞을 지나다녀도 전혀 관심이 없었는데, 우리 동네 산수목욕탕 아주머니 말씀은 "성씨 이발사 아저씨를 모르면 우리 동네 사람이 아니지… 이발사 경력이 50년이야… 정말 아까운 이발 실력 볼 수 없어 안타까워…" 하시네요.
 
아주머니 발음은 분명 성씨 이발사 아저씨라고 했는데, 내 귀에는 왜  "세실리아 이발사"로 들리는지요? 아름다운 가곡이 마침 낡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고, 전 활짝 열린 이발관 안을 기웃기웃거렸습니다.
 
그런데 이발관 안은 정말 옛날식 그야말로 60년대식 이발관이고, 이발기구들도 1950년대 것들로, 시간의 타임캡슐 속으로 들어온 듯 약간 어리둥절했습니다. 그래서 바보같이 물었습니다. 
 
"아저씨, 이발 솜씨 진짜 괜찮아요?"
 
"허허허…. 이발을 하러 온 게 맞는가?" 하고 웃으시네요. 그러나 이미 산수목욕탕 아주머니의 정보를 듣고 와서, 아저씨 이발 경력이 50년이 넘어서 가위질할 때 가위가 안 보인다고 하니, 이발을 내가 직접 안 해 봐도 알 듯은 했어요.
 
수더분한 인상과 그리고 실내가 어수선해 보이지만 그래도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는 이발관 바닥에는 사실 머리칼 하나 흘러 있지 않았습니다. 시간의 때가 묻고 세월의 흔적이 깃든 이발기구와 이발소 낡은 간판과 그리고 이발하는 등받이의자가 낡았지만 말입니다.
 
그런데 곧 재개발이 되면 35년 된 목욕탕도 이발관도 사라질 터라 괜히 슬픈 생각이 듭니다. 오래된 포도주와 오래된 친구가 오래될수록 좋다고 하는데, 왜 이렇게 낡은 집과 오래된 풍경은 자꾸 새것으로 바뀌는지요?
 
세월의 흔적을 전혀 찾을 수 없는 새 동네가 되면, 정말 그립고 보고 싶은 이웃들이 운영하던 낡은 간판의 이름처럼, 생각날 우리 동네 명물들이 하나 둘 별처럼 사라지고 있답니다. 정말 소중하고 귀한 것은 새것이 아닌 옛것이라는 생각 버릴 수가 없네요.

태그:#이발관, #목욕탕, #사라지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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