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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극화 해소를 위한 진보 대연정은 가능한가'. 2주 전 이 같은 물음을 던졌었다. 정동영· 문국현·권영길 등 진보개혁진영의 후보들 사이에서 '가치'가 회자될 즈음이었다. '가치논쟁'을 통해 '가치연대'가 가능한지 '가치전쟁'을 벌여보자는 흐름이 존재했다.

 

하지만 싹 사라졌다. 이회창이 대선판에 등장하면서다.

 

이명박 독주에 브레이크를 건 '이회창 변수'로 관심은 보수로 옮아갔고, 진보개혁진영은 선거구도조차 잡지 못하고 있다. 경제냐, 이념이냐. 양강 구도냐, 3자 필승론이냐. 어지럽고 복잡하다. 주도권 다툼도 치열해 전선을 치기도 어렵다.

 

심각한 문제는 의제와 정책을 논의하는 공간이 실종됐다는 점이다. 다자구도의 선거판에서 어떻게 헤쳐모일 것이냐는 공학적 계산만 분주하다.

 

이회창 변수에 복잡해진 진보개혁... 정책 사라진 자리에는 정치공학만

 

그래서일까? 이른바 '양극화 대연정'이 가능할지 그 정책과 의제 논의를 위한 모임을 이어가자는 제안을 각 후보 캠프에 던졌을 때, 모두 난색을 표했다. 민주노동당이 가장 민감하게 반응했다. 어찌어찌 날짜까지 잡혀 성사가 되는 듯했지만, 모임을 한 시간여 앞두고 불참 통보를 전했다.

 

7일 낮 12시, 이회창의 대선 출마 선언을 앞두고 <오마이뉴스> 사무실에선 정동영 캠프의 임채원 정책기획단 제1실장, 문국현 캠프의 고원 전략기획단장, 권영길 캠프에선 정종권 서울시당위원장, 사회당의 안효상 부대표가 패널로 참석하는 토론회가 열릴 예정이었다.

 

하지만 민주노동당은 "당 진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안"이라며 급작스럽게 참석 불가를 통보했다. 정동영·문국현 후보측과 마주하는 것 자체가 권영길 후보를 '3자 틀'에 묶어놓는다는 경계의식이다.

 

민주노동당은 정동영 후보가 제안한 '반부패 미래세력 연석회의', 문국현 후보가 제안한 '반부패 연대 3자 회동'을 사실상 거부했다. 다만 "삼성관련 비리조사를 위한 특별검사제 도입이 단일 의제로 전제돼야 한다"는 수준에서 여지를 남겼을 뿐.

 

이 때문에 민주노동당 내에선 어제 오늘 심각한 내홍을 겪고 있다. 선대본 지도부 사이에선 "삼성 비자금 문제를 대선 의제화하기 위해 누구라도 함께 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다수지만, 실무를 담당하는 특보단의 핵심인사들은 "사실상 후보단일화 들러리를 서게 된다, 여권은 삼성 대선자금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이유를 들어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특검 문제는 국회 차원에서 논의하고, 민주노동당은 삼성 비자금 사태를 고리로 선명성과 독자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게 내부 강경파의 논리다.

 

그리하여 기사 방향을 틀었다. 오프라인에서 얼굴을 맞댈 수 없다면, 지면으로라도 머리를 맞대보자. 당초 준비한 논의 과제들을 가지고 각 패널을 인터뷰했고, 이를 재구성하는 형식을 취했다.

 

[질문①] 이회창의 출마, 진보세력에겐 위기인가 기회인가

 

고원 창조한국당 전략기획단장 "예상보다 이회창의 출마 무대 효과가 강력하다. 보수 대 보수의 대결 구도로 가면서 개혁진영의 무대가 축소되는 점에서 큰 위기다. 이명박 독주였을 때는 '체념의 선택구조'였다면 지금은 부패와 수구, 부패와 냉전 중에서 선택해야 하는 '절망의 선택구조'로 바뀌었다.

 

다만 기회의 요인이라면 첫째, 철옹성으로 보이던 이명박의 경제프레임과 대세론이 무너졌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보수층의 분열이다. 그런 상황에서 개혁진영이 대비 효과를 내는 무대를 만들어내면 위기를 기회로 전환할 수 있을 것이다."  

 

안효상 사회당 부대표 "이회창의 등장은 10·4 남북공동성명으로 53년 정전체제가 더 이상 지속될 수 있는 없는 흐름에서 저항세력을 만난 것이다. 냉전보수와 실용보수로 분화할지 한국의 보수세력이 시험대에 올랐다. 범개혁진영이 이회창과의 대립구도로 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지금 사회 의제가 되고 있는 양극화 문제에 적절한 대답을 내놓아야 하고, 97년 체제의 한계에 답해야 한다."

 

임채원 대통합민주신당 정책기획단 제1실장 "이회창의 출마는 일반적 추세와 다르다. 반발이 일면서 이명박의 표가 정동영이나 문국현으로 일부 가야 하는데 오히려 저쪽은 60%가 되었다. 당분간 이회창의 지지율은 이어질 것이라 본다. 문제는 이 쪽이다. 지난 20년의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 87년 이후 가장 큰 위기가 온 것 같다. 국민과 호흡하는 담론을 만들지 못하면 일본의 자민당처럼 1.5체제가 될 수 있다."

 

고원 "이명박은 심지어 보수층도 불안해하는 후보다. 50%의 지지율을 호가했지만 2002년 노무현이 국민에게 주었던 감동을 한번도 주지 못했다. 콘텐츠 자체도 빈약하다. 보수층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국가 지도자로서의 품격에 비추어서도 마뜩치 않은 인물이다. 그런 불안심리가 과거에 이미 두 번이나 심판받은 후보(이회창)를 통해 투사되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

 

소위 범개혁 진영의 근본적인 한계를 드러낸 것이다. 지난 10년 동안 정권을 이끌어 왔던 세력에 대한 극도의 불신과 식물상태에 다름없는 세력으로 전락했다는 냉엄한 현실을 인정하는 것에서 출발했어야 했다. 그런데 항상 세력 통합으로 위기를 탈출하고자 하는 시도들이 이어져왔다. 꼼수로 비춰졌다. 국민들은 더 밟고 싶은 충동을 낼 수 있다. 아직 용서하지 않은 것이다. 대선이 촉박하지만 희망의 프로그램을 만들어 내야 한다."

 

정종권 민주노동당 서울시당 위원장 "원인은 두 가지다. 우선 집권세력에 대한 반발이 크다. 정동영 후보는 노무현 정권의 계승자로서 본다. 그 결과가 보수개발주의 세력에 대한 기대심리로 나타났다. 다른 한 가지는 민주노동당이 현 정권에 대한 실망 세력에 대해 대안 세력으로 자리잡지 못한 현실이다. 자성할 부분이다. 하지만 집권 무능 세력의 대안은 진보진영(민주노동당)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질문②] 이회창 지지율엔 진보개혁세력에 대한 심판의 의미가 담겨있나

 

임채원 "선거가, 누가 좋아서 찍는 것보다 누가 미워서 가는 게 있다면, 지금이 바로 그런 전형인 것 같다. 10년 민주화 세력에게 맡겨놨는데 우리의 실질적인 사회경제적 문제를 해결해 준 게 없다는 것이다. 서민중산층을 지지기반으로 해왔지만 97년 이후 정책들을 보면 신자유주의라는 세계적 경향에 따라 왔다. 지지층에 대한 이율배반이다. 오히려 반대쪽의 사람이 수혜자가 되는 결과가 되었다."

 

고원 "이회창의 현재 지지율에는 전통적인 보수 지지표가 상당수 갔다. 다만 무당파적인 층에서 일부가 '제3후보'(무소속)로 위치된 이회창에게 갔다. 이명박이 자기 약점이 적었다면 이회창을 구태 세력으로 몰아붙이면서 진보 표를 일부 가져갈 수도 있었겠지만 워낙 약점이 많아서 흡수가 안됐다. 하지만 보수 양자 대결에서 이회창이 이명박을 넘어서기는 쉽지 않다. 이회창의 효과를 지나치게 크게 볼 필요는 없다."

 

한귀영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연구실장은 이에 대해 "일부 언론에서 진보의 일부가 이회창을 선택하는 기류가 있다고 보도했지만 진보진영이 남을 교란하기 위해 '역선택'을 할 만큼 여유가 있나? 그렇지 않다고 본다. 현재 이명박-이회창 지지율은 경선 당시 이명박과 박근혜의 지지율이 극대화 되었을 때 수치와 맞먹는다. 정동영이나 문국현에서 이회창으로 간 것은 극히 미약하다"고 설명했다.

 

[질문③] 이회창과 이명박, 단일화 가능성은 없나.

 

고원 "비한나라당 세력이 아주 왜소한 형태로 남으면 합칠 이유가 사라진다. 만약 이쪽이 커지면 위협적인 세력이 되기 때문에 정세가 달라질 수 있지만 그렇다 해도 분열은 현실이다. 단일화 자체가 시너지가 나야 하는데 앞으로 이회창-이명박 구도가 이전투구 양상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단일화가 쉽지 않을 것이다."

 

안효상 "서로 다른 지형을 나누어 가졌다. 이회창의 기반은 이념과 지역이다. 단일화는 세력의 통합인데 극우를 포괄하는 이회창의 지지 기반이 대동단결할 소지는 별로 없어 보인다. 이회창은 '3자 필승론'으로 버틸 것이다."

 

정종권 "가능성을 염두해 둬야 한다. 보수의 정권교체가 위협적인 상황이 되면 단일화 압력이 강해질 것이다. 문제는 이회창이든 이명박이든 조기에 무너뜨려야 한다. 비보수 진영의 표가 일부라도 이동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 보수진영의 파이가 커지는 것을 막아야 한다."

 

[질문④] 진보개혁세력,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임채원 "솔직히 괴롭다. 전에는 좋은 얘기를 하면 지지층이 믿어줬다. 그런데 다시 담론을 만들어낸들 국민이 과연 믿어줄까? '공약은 좋다, 그런데 말뿐이지 않냐' 그런 생각을 가지는 것 같다. 신뢰의 위기다. 다른 한 가지 가치측면에서 보면, 진보와 보수는 민주세력과 반민주세력으로 갈라져 왔다. 과거 진보세력은 집권은 못해도 '바람'으로 표현되는 헤게모니(주도권)를 쥐었다. 정당성·도덕성·역사성을 지녔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은 그 헤게모니가 무너지고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기존의 진보 세력은 새로운 가치로 재조직 되어야 한다."

 

안효상 "리셋, 포맷을 다시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선거는 인격과 세력으로 표출되는데 주도세력에 대한 극도의 불신을 어떻게 넘어갈 것인가. 이명박이 아닌 것 같지만, 차라리 정동영이라도 하는 심정도 있지만 정동영도 뭔가 아닌 것 같다. 또 참신함으로는 따지면 문국현인데 세력의 관점에서 보면 현실적으로 어렵지 않냐는 판단이 든다. 선거 국면에서 경쟁과 연대가 어떻게 가능할까."

 

고원 "상당정도의 단절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갖지만 청산주의 관점은 위험하다. 우리에겐 87년 체제의 자산이 있다. 그 때문에 신자유주의적 가치 일방향으로 가는 것을 넘어서겠다는 대중의 움직임이 작동하고 있다. 그 점을 봐야 한다. 87년 체제를 승화하고 97년 체제의 한계를 넘어서면서 2008년 체제로 종합하느냐의 관점이 건강하다고 본다."

 

[질문⑤] 이번 대선에서 실현해야 할 진보의 가치는 무엇인가

 

고원 "우선 국가의 책임을 재규정해야 한다. 사회 양극화를 겪으면서 헌법에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이 많이 무너졌다. 가장 중요하게는 교육·인권·환경·노동 등 사회적 기본권에 대해 국가의 책임을 강화하고 재규정하는 것이다. 또한 여전히 지켜지지 않고 있는 절차적 기본권에 관한 문제다. 국가 공동체의 선을 만들어가는 데 있어 정치엘리트가 독점하고 시민은 배제된다. 한미FTA와 대연정 논란이 대표적이다. 국민들이 어디서 어디까지 국가 통치자에게 위임했는지 그 위임의 범위가 충돌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진보가 분명한 가치를 제시해야 한다."

 

임채원 "정동영 후보는 교육과 가족 문제를 중요하게 보고 있다. 기회 균등과 패자부활의 가능성을 제공해야 한다. 자원이 부족해 사람에 투자해온 우리 실정과도 잘 맞는다. 지금은 지식사회의 인적투자라는 개념과 잘 결합해야 한다. 그리고 재생산을 담당하는 가족은 30·40대의 핵심적 관심사다. 기존의 우파담론이었던 가족 문제에 대해 진보가 적극적으로 발언할 소지가 많다. 한부모·국제결혼·노인 문제 등이 그렇다."

 

고원 "세계화 흐름 속에서 살아남는 기업은 고용안정, 평생학습, 가족친화라는 세 가지 요소를 갖추고 있다. 사회도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선 사람에 투자해야 한다."

 

임채원 "우파의 세계화와 무엇이 다르냐 했을 때 인재육성 뿐만 아니라 글로벌스탠다드 즉, 규범을 지키는 것이다. 기업의 반부패, 투명성은 여전히 개혁해야 할 문제다."

 

고원 "헌법의 제1조에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고 명시되어 있다. 민주공화국은 ▲특권층이 자의적 지배를 혐오하는 것 ▲국가가 모든 시민에게 책임을 지는 것 ▲모든 시민이 국가의 공동선을 함께 만들어 가는 것을 핵심으로 한다."

 

안효상 "한국판 신자유주의 대안체제가 필요하다. 차별 없는 성장, 사람중심 진짜경제, 그리고 노동사회 혁신을 통해 '좋은 성장'으로 가야 한다. 그리고 복지의 개념을 너무 협소하게 봐선 안된다. 인간의 생애주기에 따라 건강, 양육, 교육, 노동을 책임지는 개념으로 봐야 한다."

 

고원 "한나라당은 국민의 권리 문제는 개인의 영역으로 돌리면서 복지는 선거공약으로 대단히 인기영합적으로 만들어낸다. 복지 강화를 말하면서 감세를 주장하는 게 말이 되나."

 

[질문⑥] 진보세력의 연대는 어떤 조건과 상황에서 가능한가
  

역시 이번 대선에서 진보진영이 추구할 핵심 가치는 '사람'이라는 열쇠말로 모아졌다. 아울러 국가의 책임을 강조하면서, 기업도 더 이상 소유의 개념이 아니라 공동체의 개념으로 봐야 한다는 점에서 공감대를 이뤘다. 하지만 더 나아가진 못했다. '연대'의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선 격앙되거나 말을 아꼈다. 

 

정종권 "다 좋은 얘기지만 정치적 디자인을 어떻게 할 것인가의 문제다. 집권세력에 대한 심판이 이성을 넘어서 감성의 수준이다. 대중의 이성에 호소하는 토론과 경쟁이 있어야 한다. 가치와 정책의 경쟁이 필요하다. 하지만 누가 5년에 대한 해법을 만들 것인가 했을 때 결국 이회창·이명박·권영길의 길을 놓고 경쟁하게 될 것이다. 문국현·정동영 등과 한자리 앉는 것은 대중의 정서에 맞지 않는다. 이른바 범여권과 한 묶음으로 비춰지는 것이 우리에겐 대단히 불리하다."

 

진보개혁, 가치경쟁을 통한 연대는 가능한가

 

민주노동당은 여전히 통합신당에 대한 불신이 컸다. "정동영 후보가 언제 우리를 인정한 적이 있었냐"는 불만도 터져 나왔다. 또 문국현 후보와의 회동에는 긍정을 표하면서도 "범여 세력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하라"고 주장했다.

 

정동영·권영길 후보와의 3자 회동을 제안한 문국현 후보측은 "최소한의 공통분모에서 출발하자"고 전제한 뒤, 정동영 후보측을 향해 "부패 문제를 추상적으로 접근하지 말고 삼성 비자금 사건에 대해 협력의 가능성을 구체적으로 제시하라"고 압박했다.

 

"두루뭉수리하게 '반부패' 연대를 얘기하니까 마치 과거의 '민주 대 반민주' 프레임으로 인식하고 민주노동당이 안 들어오는 것 아닌가. 후보단일화라는 정략적 계산이 숨겨져 있다는 의구심과 불안을 갖는 것이다. 그런 소지를 없애야 한다."

 

정동영 후보는 민주당 이인제 후보과의 세력 통합을 우선에 놓고 있다. 그런 뒤 문국현, 권영길 후보와는 정책·가치 연대를 염두하는 모습이다. 임채원씨는 함구했다.

 

당초 이번 토론회의 목표는 가치 연대가 가능한 5가지 의제를 모아보자는 것이었다. 사실 이래저래 각 후보가 내놓은 정책을 토론하다 보면 그리 어렵지 않게 도달할 수도 있는 목표였다. 하지만 문제는 내용보다 '형식'이었다. 마주앉는 것조차 힘들어 보였다.

 

"현재의 상황에서는 좌파 혹은 중도적 대안의 성공 가능성 보다는 우파적 대안의 정치적 분열만이 관건일 뿐"(윤상철 교수. 한신대 사회학)이라는 우울한 전망도 나온다. 그렇다면 이회창 출마는 '기회'일까?

 

40여일 남은 대선, 진보개혁진영이 가치경쟁을 통해 연대를 하게 될지, 분열을 향한 주도권 다툼을 벌이다 그냥 그대로 끝나게 될지,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는가?


태그:#정동영, #문국현, #권영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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