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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천대 전망대에서 바라본 낙동강
▲ 경북 상주 경천대 전망대에서 바라본 낙동강
ⓒ 김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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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천대 가는 길
▲ 경북 상주 경천대 가는 길
ⓒ 김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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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휴게소를 빠져나온 버스는 곧 중부내륙 고속도로로 접어들었다. 날씨는 맑지만 쌀쌀하다. 하늘은 구름 한점 없이 파랗고, 고속도로 양 옆에는 붉게 물든 단풍나무들이 우거져 있다. 흔히 상상하는 한국의 가을이 바로 이런 모습일 것이다.

버스의 목적지는 경상북도 상주다. 25인승 버스에는 듬성듬성 사람들 몇몇이 앉아 있다. 모두 낯선 사람들이다. 태어나서 한 번도 상주에 가본 적이 없지만, 그곳에 가면 낙동강이 있고 곶감이 있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 상주에 또 어떤 것들이 있을까. 여행을 통해서 낯선 곳에 익숙해질 수 있다면, 여행을 통해서 모르는 사람들과도 가까워질 수 있지 않을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자다 깨다를 반복하는 사이, 어느새 상주 톨게이트에 도착했다. 시계를 보니 오전 11시 30분. 서울시청 앞을 출발한 시각이 8시 30분이었으니, 상주까지 3시간이 걸린 셈이다. 아니 여주휴게소에서 30분 동안 쉰 시간을 제외하면 고작 2시간 30분이 소요된 것이다.

상주 경천대에서 낙동강을 바라보다

톨게이트를 벗어난 버스는 첫 번째 목적지인 경천대에 이르렀다. 밥을 먹고, 일행은 천천히 걸어서 경천대를 산책하기 시작했다. 경천대 화장실 안쪽에는 '낙동강 1300리에서 가장 경치가 좋은 곳'이라고 써 놓았다. 좋은 경치와 맛있는 음식은 여행을 즐겁게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한다. 날씨는 차갑고 강변이라서 그런지 바람도 많이 분다.

차가운 바람 속을 걸으며 경천대를 둘러본다. 경천대 입구에는 충의공 정기룡 장군의 동상이 있다. 안쪽으로는 산책하기 좋은 길이 있고, 길의 끝에는 드라마 <상도>를 촬영했다는 세트장이 있다. 그리고 그 너머로 낙동강이 흐르고 있다. 맨발체험장도 있고 전망대로 올라가면 낙동강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이 경천대는 상주시의 대표적인 공원이다. 드라마 촬영장에 모여 있는 초가집들도 흥미롭고, 맨발체험장에도 호기심이 생긴다. 나도 신발을 벗고 맨발로 이 체험장을 걸어보고 싶은 충동이 든다. 오늘처럼 쌀쌀한 날씨에 맨발로 걷다가는 발이 얼어붙는 듯한 느낌이 들지 않을까.

"안녕하십니까?"

이때 들려온 소리. 경상도 특유의 억양이 담겨 있다. 우리 일행을 안내해주기 위해서 상주시 관광팀에서 나온 직원이다. 경천대 구경은 이따가 다시 하고, 지금은 기념비 제막식 행사장으로 가자고 한다. 원래 일정에는 없던 것인데 웬 기념비 제막식? 어느덧 시간은 2시 가까이 되었다. 꽤나 급한지 일행들을 재촉한다.

"자, 빨리 가십시다."

일행은 두 팀으로 나뉘어서 승용차를 타고 행사장으로 향했다. 경천대에서 행사장까지는 승용차로 약 10분 정도가 걸린다. 가는 길 오른쪽으로 커다란 상주박물관이 보인다. 이 박물관은 내일(2일) 개관식을 한단다. 기념비 제막식을 하는 곳은 낙동강이 내려다보이는 강변이다. 행사장에는 커다란 기념비가 하얀 천에 싸여 있다.

그 앞으로 많은 사람이 임시로 가져다 놓은 의자에 앉아 있다. 사람들의 주위에는 취재를 나온 지역언론 기자들이 카메라를 들고 있고, 주위의 도로에는 여러 대의 승용차와 버스가 세워져 있다. 현수막도 걸려 있다. '경축 낙동강 칠백리 표지석 제막식'. 우리가 도착하자마자 행사가 시작되었다. 제막식 행사에 관한 경과보고가 있고, 이 지역의 명사들이 나와서 축사를 한다. 강바람 때문에 기념비를 싸고 있는 천과 현수막은 연신 펄럭거린다.

상주에서 낙동강 칠백리가 시작되다

경천대 맨발체험장
▲ 경북 상주 경천대 맨발체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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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강 칠백리 기념비 제막식
▲ 경북 상주 낙동강 칠백리 기념비 제막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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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강은 강원도에서 발원한다. 그리고 천삼백리를 굽이굽이 돌아서 남해로 흘러간다. 그 낙동강이 강다운 모습을 갖추는 장소가 바로 이곳 상주라고 한다. 상주의 예전 지명은 '상낙'. 낙동강은 상낙의 동쪽으로 흐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곳에서 모습을 갖춘 낙동강은 칠백리를 흘러서 남해에 이르는 것이다. 그것을 기념하기 위해 '낙동강 칠백리 이곳에서 시작되다'라는 기념비를 이곳에 세우는 것이다.

조선시대 때만 하더라도 상주는 아주 큰 도시였다. '경상도'라는 지명이 경주와 상주에서 유래한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조선시대 때 상주가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낙동강 물길 때문이다. 삼남지역에서 거두어들인 조세가 모두 상주로 집결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낙동강 물길을 타고 이곳에서 출발해서 문경새재를 넘어서 한양으로 운송되었다.

그전에는 서해에서 해로를 이용해 조세를 운송했단다. 그런데 서해에 출몰하는 해적들 때문에 운송로를 내륙으로 바꾸었다. 그때부터 상주는 조선시대 물류의 요충지로 자리 잡았을 것이다. 하지만 경부철도가 건설되면서 상주의 역할도 점점 작아져 갔다. 철도가 주요교통수단이 되면서 낙동강 뱃길은 점점 사람들에게 잊혀져간 것이다.

기념비 제막식을 마치고 일행은 경천대를 거쳐서 곶감 마을로 향했다. 상주는 곶감으로 유명하다. 상주를 가리켜서 '삼백의 고장'이라고 부른다. 그 삼백은 쌀·누에고치·곶감이다. 곶감이 삼백에 포함되는 이유는, 곶감을 말리면 나오는 하얀 분말 때문이다. 전국 생산량의 60%를 차지하는 상주 곶감은 오래 전부터 이 지역의 특산물이었다.

상주의 곳곳에는 온통 감나무 천지다. 가을이 되면 이 감을 모두 따서 말리기 시작한다. 껍질을 벗겨서 한 달 동안 말리면 반건시가 되고, 두 달을 말리면 곶감이 된다. 일행이 도착한 곶감농원에서는 수많은 곶감을 한창 말리고 있다. 커다란 건물 한쪽에 엄청난 수의 감이 매달려 있다. 다른 한쪽에서는 아주머니들이 감 껍질을 벗기고 있다.

가을마다 상주에서 생산되는 많은 곶감

감을 말리고 있다.
▲ 경북 상주 감을 말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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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을 말리고 있는 농원의 내부
▲ 경북 상주 감을 말리고 있는 농원의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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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커피를 한잔 마시면서 이 광경을 지켜보고 이야기를 들었다. 감 껍질을 벗기는 것은 세 단계로 진행된다. 첫 번째로 말리기에 적당한 감을 선별해서 꼭지의 주변을 도려낸다. 그 다음에 기계로 껍질을 벗기는 박피작업을 한다. 마지막으로 남은 껍질을 제거하는 작업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면 곶감을 줄에 엮어서 매달고 말리기 시작한다.

그렇게 벗겨 낸 껍질도 나름대로의 용도가 있다. 그런 껍질을 모아서 소의 사료로 사용한다고 한다. 사료에 감 껍질을 5-10% 정도 섞는다. 그 사료를 소에게 먹인다. 그렇게 감껍질을 먹은 한우를 가리켜서 '상감한우'라고 부른다. '상주 감을 먹은 한우'라는 의미다. 이 소의 고기는 일반 한우 고기보다 색이 약간 검다고 한다. 워낙 귀하기 때문에 쉽게 맛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곶감으로 만들기에 적당하지 않은 감도 있다. 나무에서 떨어져서 깨진 감이나 무른 감이 그런 것들이다. 이런 감은 모두 모아서 커다란 통에 집어넣고 발효시킨다. 약 6개월 정도 발효시키고 나면 감식초가 된다. 그러니까 상주에서 나오는 감은 어느 곳 하나 버릴 구석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내가 물었다.

"1년에 생산되는 곶감의 양이 얼마나 돼요?"

곶감을 세는 단위가 따로 있다. 곶감 100개를 1접이라고 하고, 100접을 1동이라고 부른다. 1동은 일만개다. 이 곶감농원에서 생산되는 양은 1년에 약 130동 정도란다. 그러니까 곶감과 반건시 합쳐서 1년에 약 130만개를 생산하는 것이다. 이 정도면 꽤 많은 양 아닐까. 상주에는 이런 농원이 많이 있다. 그중에서 이 농원의 생산량은 상위권에 속하는 편이다.

곶감을 말리기 시작하는 가을이 가장 바쁜 시기일 것이다. 봄에는 비료작업을 하고 여름에는 해충을 방지하기 위한 작업을 한다. 그리고 10월 중순부터 말리기 시작해서 11월 중순부터 다음해 설 전까지 대부분의 양이 출하된다. 남은 곶감은 전부 냉동시켜서 보관한다.

나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농원을 둘러보았다. 말리고 있는 수많은 곶감은 보기만 해도 먹음직스럽다. 개인적으로 감을 그다지 좋아하는 편이 아니지만, 주황색 감이 줄지어 매달려 있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자니 나도 모르게 흐뭇해진다.


태그:#가을여행, #낙동강, #곶감, #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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