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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화정 정자에 날개가 돋아 승천하였다는 우화정. 며칠사이 단풍이 이렇게 들었습니다.
▲ 우화정 정자에 날개가 돋아 승천하였다는 우화정. 며칠사이 단풍이 이렇게 들었습니다.
ⓒ 이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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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가을 나는 내장산으로 아예 출근을 한다. 지난 토요일(11월 3일) 출발하면서 중대한 결심을 했다. 오늘은 꼭 케이블카를 사수하고 말리라, 는 결심이다. 차는 두 대. 손님은 82명. 2호차 가이드는 딸처럼 나이어린 아가씨, 진짜로 그녀의 엄마는 나와 동갑내기란다. 둘이 합심하면 뭔들 못하겠나, 가이드는 무사히 포섭했으니 남은 건 실전뿐.

오늘은 제일 밑에 있는 대형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손님들은 무료 셔틀버스를 이용하기로 한다. 그렇게 되면 셔틀 버스를 두번 이용해야 한다. 물론 걷고 싶으면 그냥 계속 걸어도 된다. 문제는 시간, 난 두세 번 거듭해서 시간을 설명한다. 셔틀을 두 번 타야 하니까, 또 줄을 길게 서 있을 테니까 정해진 시간에 늦지 않게 서둘러야 한다고.

"무료셔틀을 타고 내리면 제 2주차장, 걸어서 5분쯤(노점 구경하면서 가면 10분)가면 매표소. 매표소 안에 들어가서 1000원 내고 또 셔틀버스(이때도 단풍 길을 걷고 싶으면 그냥 걸으시라). 그리고 셔틀 버스 내리는 데서 왼쪽은 케이블카 타는 곳, 오른쪽은 일주문. 일주문에서 왼쪽은 내장사 가는 길, 오른쪽은 벽련암 가는 길. 이 코스를 한바퀴 돌으면 2시간 소요. 자신 없으면 벽련암만 다녀오십시요.

벽련암은 대웅전에서 보면 서래봉을 머리에 이고 있는 것처럼 아주 아름답습니다. 게다가 이 벽렴암의 이름은 본래 내장사였는데 어떤 연유에서인지 이름을 예전 영은사였던 현 내장사에 내주고, 지금은 벽련암입니다. 곧 이름을 빼앗긴 절이된 셈이지요. 벽련암만 다녀오는 데는 30~40분이면 되니까, 거기는 꼭 다녀 오십시요."

그리고 케이블카를 타실 분 손 좀 들어보시라며, 특별 부탁한다. 이곳 케이블카는 예약제가 아니다. 한없이 서서 기다려야 차례가 온다. 그러니까 한꺼번에 가서 줄을 서면 기다리기도 지루하지 않고 좋을 거라고. 우리 같이 합심해서 케이블카 좀 타 보자고. 케이블카 사수를 위해 여차하면 새치기라도 할 양으로 내 자리를 꼭 남겨놓으라고 당부했다.

줄서기 이 줄, 꼭 명절 예매표 사느라 기다리는 줄 같죠.
▲ 줄서기 이 줄, 꼭 명절 예매표 사느라 기다리는 줄 같죠.
ⓒ 이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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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블카 그림의 떡, 내장산 케이블카... 여기도 예약제를 하면 좋을 텐데, 많이 아쉬웠습니다.
▲ 케이블카 그림의 떡, 내장산 케이블카... 여기도 예약제를 하면 좋을 텐데, 많이 아쉬웠습니다.
ⓒ 이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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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차는 중간에 서고 사람들은 미리 다 내렸다. 워낙 정체가 심해 걷는 게 더 빠르기 때문에 취해진 조치. 늦었지만 우린(2호차 가이드랑) 열심히 걸어 케이블카 타는 곳으로 갔다. 그런데 줄은 어마어마, 우리 편 사람들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실망이지만 그래도 미련이 남아 제일 뒤에 가 섰다. 몇 차례 앞으로 가 동정을 살펴보지만 아무래도 불가능, 30분을 기다리고 과감히 포기한다. 가이드임을 망각한다면 조금 늦더라도 감행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오늘은 틀렸다.

그런데 전화가 온다.
"여기 무료 셔틀버스에서 내렸는데요. 이제 어디로 가야 하나요?"
참 이럴 땐 어떡해야 하지. 점심을 드시고 늦게 출발하신 것 같은데 점심드시다 내가 한 말을 몽땅 까먹으신 모양.
"예, 거기서 매표소 쪽으로 걸어가십시요. 잘 모르겠으면 거기 교통경찰에게라도 물어보시고. 걸어서 10분쯤 걸립니다."
아, 참. 내게 전화하는 것과 다른 사람에게 묻는 것 중 어느 게 빠를까?

유치원 소풍 다른 축제에서 본 유치원생 소풍 광경입니다. 단체팀을 인솔하다 보면 문득문득 이 광경이 생각난답니다
▲ 유치원 소풍 다른 축제에서 본 유치원생 소풍 광경입니다. 단체팀을 인솔하다 보면 문득문득 이 광경이 생각난답니다
ⓒ 이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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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발자국 가는데 또 다른 분 전화다.
"여보세요. 저 여기 매표소 안에 들어왔는데 셔틀버스를 타야 하나요, 말아야 하나요?"
우하하! 이건 코미디다. 하지만 웃음을 꾹 누르고 대답해 드린다.
"셔틀버스 줄이 긴가요? 길면 그냥 단풍 구경 하면서 걸어 가세요."

그런데 시간을 보니 이미 1시가 넘었다. 이크 안 되겠다. 갈 때보다 올 때가 더 막히니까 갈 때는 타고 가시라고 해야지. 다시 그분께 전화.
"셔틀버스 줄이 많이 길지 않으면 셔틀버스를 타고 가서 오면서 단풍 구경을 하세요. 시간 늦지 않도록 하시구요."
전화를 끓고 하유, 이거 내가 너무 자세히 설명해 줘서 그런가, 한숨 푹.
개인일 때는 매우 똑똑하던 어른도 이렇게 단체가 되면 순간 유치원생이 된다. 모이는 시간도 몇 번씩 복창을 시켜도 매번 늦기 일쑤, 게다가 딴소리.

한 번은 복창까지(그것도 세번이나) 하면서 다 내리고 우리는 따로 점심을 먹으러 갔다. 점심을 다 먹어가는데 전화가 왔다. 차안에 있는데 차문 좀 열어달라는 전화였다. 그때도 차가 두 대였고 내가 2호차였다. 몇 호차냐고 물으니 2호차란다. 기사님 기겁을 해서 뛰어가셨다. 오뉴월 땡볕에 질식사할 수도 있는데, 큰일났다면서.

그날은 혼자 온 손님이 없었다. 혼자라면 어쩌다 잠이 들어 못 나왔을 수도 있으니까 신경을 쓰지만, 두 명 이상이면 함께 잠들지는 않을 테니 안심하고 그냥 내린 것인데 그만, 다녀온 기사님, 둘이 다 잠이 들어 사람들이 나가는 것도 몰랐단다. 그리고 한 시간 이상을 에어컨도 안 튼 한증막에서 잠을 잤다는 것. 참 대단한 잠이다, 둘씩이나.

길 벽련암 올라가는 길. 여긴 아직 단풍이 덜 들었다.
▲ 길 벽련암 올라가는 길. 여긴 아직 단풍이 덜 들었다.
ⓒ 이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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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천천히 걸어 내려가 쉬고 싶지만, 내 짝꿍(2호차 가이드) 얼굴이 들떠 있다. 여기를 처음 왔으니 그냥 내려가고 싶겠는가. 게다가 가이드 수업도 시켜야 다음에 올 때 안내도 잘 할 것이고. 잠자코 좋은 풍경을 향해 발길을 돌린다. 벽련암, 원적암, 내장사로 한바퀴 도는 코스는 이미 늦어 버렸고, 벽련암이나 보자며 벽련암으로 향한다.

벽련암 벽련암에 반한 내 짝꿍... 어때요? 아주 싱그럽죠!
▲ 벽련암 벽련암에 반한 내 짝꿍... 어때요? 아주 싱그럽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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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련암을 보자 이 아가씨 흥분한다. 그러더니 갖가지 포즈를 취하며 사진을 찍어 달란다. 별 수 없지. 카메라는 내가 들었고, 지난 번 필요한 사진은 다 찍었으니 하라는 대로 할밖에. 그 후로도 계속 난 그녀의 전용사진사로 그녀 곁에 있어야 했다. 벽련암에서 그리고 내장사에서.
감나무 감나무도 단풍의 일종으로 대접 받아야 할 듯.
▲ 감나무 감나무도 단풍의 일종으로 대접 받아야 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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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풍길 발길은 여전히 이어지고...
▲ 단풍길 발길은 여전히 이어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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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은 서둘러 내려와야 했다. 우린 가이드다. 미리 내려가서 차 위치(아까는 차가 자리잡기 전에 올라왔다. 케이블카 사수작전 땜에)도 확인하고 손님들도 기다려야 한다. 그런데 대형 주차장이 너무 넓어 우리 차가 쬐깐한 장난감마냥 작게 보인다. 나는 계속 봐왔던 터라 쉽게 찾았지만 손님들은 아무래도 찾기 어려울 것 같다. 불길한 예감이 허공을 떠돈다.

전화 빗발친다. 그리고 도착 성적은 부진, 비상상태다. 이래서야 언제 서울로 올라갈지. 3시 50분이 정해진 시간이었건만 사람들은 반도 오지 않았고, 나의 짝꿍은 깃발을 들고 나선다. 무료 셔틀 버스 정류장 앞에 서 있겠다며. 난 그제야 명단을 보고 전화를 돌린다. 늦는 손님은 십중팔구 전화를 안 받는다.

겨우겨우 자리가 차 가는데 전화를 안 받던 두 분 손님, 아직 매표소 앞이란다. 그리고 거기가 모이는 장소인 줄 알았단다. 햐, 정말 할 말이 없다. 두 번 세 번 강조해서 말했건만. 게다가 내가 입력하라 했던 전화번호가 틀려서 통화도 할 수 없었고, 자기들은 세 시부터 거기서 기다렸단다. 이쯤 되면 어의 상실. 그때 바로 뒤에 앉아 있던 손님 말씀하신다.

"으응, 난 그분들 입력하는 숫자 보고 입력했는데 전화 잘 되든데."
모르겠다, 어찌 된 건지.
내가 '그럼 택시라도 타고 오시라니까, 무슨 말을 그렇게 하냔다.'
"아니, 왜요? 셔틀 버스가 늦으니까 택시라도 타고 오시라는 건데?"
"아, 네에. 저는 서울까지 택시타고 오라는 줄 알았어요."
이 손님 아무래도 다른 사람과의 의사소통 방식이 다른 분 같다.

시간은 이미 4시 20분. 미리 온 손님들 들썩 거린다. 그냥 가자는 분에, '그럼 되나 같이 왔으면 힘들더라도 기다렸다 같이 가야지' 하는 어르신에. 이쯤되면 난 가만히 있으면 된다. 주고받고 스스로 알아서 다 해결하시니까.

다시 전화, 그냥 가시란다. 택시는 잡을 수도 없고 셔틀버스 줄은 너무나 길고 다른 분들 기다리시는 것도 미안한데 어찌 기다리겠냐고. 내 입장에선 대단히 다행. 왜냐하면 내가 먼저 포기할 수는 없는데 그쪽에서 스스로 포기해 주었으니 말이다.

장내를 수습 4시 반에 출발, 서울로 간다. 간단한 인사말이 끝나는 순간, 버스 안은 잠의 바다다. 깨어 있는 사람은 겨우 한 두 분. 이럴 때 내가 즐겨 쓰는 말이 있다. 이럴 줄 알고 미리 차안에다 수면제를 뿌려놓았지. 차라리 모두 잠을 자는 게 낫다. 자는 동안은 화장실을 안 가도 되니까(잠을 자는 동안에는 뇌에서 소변 보고 싶은 욕구를 억제해 준다고). 난 조심조심 기사님과 이야기를 하면서 간다. 내 임무 중 '기사님 감시'에 충실 하느라. 그분 졸면 우리의 안전에 중대한 문제가 생기니까.

단풍과 여심! 내장사 경내 단풍을 보더니, 내 짝꿍 이렇게 포즈를 잡네요. 정말 효성스런 이 딸, 신통했습니다.
▲ 단풍과 여심! 내장사 경내 단풍을 보더니, 내 짝꿍 이렇게 포즈를 잡네요. 정말 효성스런 이 딸, 신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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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 도착. 내리는 손님에 공손히 인사하고, 기사님 수고비 챙겨 드리고, 오늘 경비 계산하고 마무리. 내 짝꿍, 내 얼굴에 폰카메라를 들이대며 쌩끗 웃는다. 나를 찍으시겠다고? 내 무언의 질문에 이 친구 다시 웃으며 고개를 끄덕끄덕.

"날 왜 찍어? 이젠 예쁘지도 않은 얼굴인데."
"울 엄마, 보여 드리려고요. 울 엄마두 이렇게 젊게 하구 다니라구 보여 드리려고요."

나와 다니면서 엄마 생각이 많이 났단다. 엄마는 슈퍼를 하시는데 여행도 한 번 못하고 매일 장사만 하시는 게 마음 아팠다나. 참 갸륵한 효녀다. 그 엄만 그래도 이런 딸이 있어 행복할 거다.


#내장산#케이블카#단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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