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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중순, 우리 학교에서 ‘아버지 학교 방문의 날’ 행사가 있었다. 평소 어머니 중심의 학교 방문을 벗어나 아버지들이 교육 현장을 둘러보고 자녀의 학교 생활 등을 살펴보는 날이었다. 자발적 참여 속에 우리 반 아버지들 다섯 분이 행사에 참가했다.

 

그리곤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하는 ‘부자(父子) 족구대회’ 이야기가 나왔다. 아버지들은 그 자리에서 추진위원장과 간사를 정했다. 당장 11월 3일(토) 오전 일과를 마치고 오후에 족구대회를 열기로 합의했다.

 

11월 3일 토요일 오전 일과를 마쳤다. 대전대신고교 운동장. 쾌청. 그리고 가을 햇살 가득. 교실 밖에 나온 것 자체가 감동. 1학년 9반 소속 아들과 족구대회 참가 의사를 밝힌 아빠들이 운동장에 모였다. 담임 교사인 나는 가볍게 떨고 있었다. 그냥 무조건 좋아서다.

 

부자 족구대회 시작 전에 약간의 의식을 진행했다. 대회에 참가한 아버지들의 덕담이 이어졌다. 부정(父情)이 모여 하얀 구름이 가을 하늘 창공에 두둥실 떠올랐다. 다함께 플래카드에 적힌 문구를 외쳤다.

 

“아들아! 사랑한다! 아버지! 존경합니다!”

 

조별로 음식 준비를 해도 되련만 자식들은 몸만 있으면 된다고 했다. 모든 준비는 아버지들이 책임진다고 했다. 3일 오후, 트럭 짐칸에서, 자동차 트렁크에서 나온 먹을거리들이 풍성하게 진열됐다. 수업을 마친 아들들이 나무 그늘 아래서 아버지의 사랑을 먹고 있었다.

 

아직 족구 경기 규칙을 제대로 숙지하지 못한 고1 학생들을 위해 교사와 아버지들이 시범 경기를 벌였다. 이진용(지구과학), 김근집(생물), 이동원(수학), 홍성철(음악), 이래관(영어) 그리고 필자 여섯이서 아버지들과 경기를 벌였다. 막상막하. 결과는? 아무래도 아버지들보다 젊은 층이 많은 교사들이 우세했다.

 

시범 경기를 지켜 본 아들들은 모두 5개조로 예선과 결승전을 치렀다. 그리고 결승전 승자와 아버지들이 한판 승부를 벌이기로 했다. 우승조인 3조와 아버지들의 대결!

 

‘구관이 명관이고 묵은 솔이 광솔’이랬다. 아빠들은 초반에 간혹 헛발질과 알까기 등 서툰 몸짓을 연출했지만, 이내 위기를 기회 삼아 똘똘 뭉쳤다. 족구 경기 경험이 거의 없는 고1 아들들은 초반 열세를 만회하며 따라잡으려 애썼지만 아버지들의 노련함을 능가하지 못했다. (경기 후 일부 아버지들은 아들에게 이긴 것이 못내 아쉽다고 했다. 아들들이 이 마음을 알까?)

 

 

경기 후 시상식이 이어졌다. 어딜 가나 모임의 회장이나 총무를 맡는다는 형일이 아버지의 아이디어였다. 아버지들은 샤프, 연필, 음료, 과자 등을 상품으로 만들어 전원이 고루 나눌 수 있게 배려했다.

 

이어 경기를 모두 마치며 마무리 인사를 했다.

 

“오늘 아버지와 아들이 모여 부자(父子) 족구대회를 치렀습니다. 아버지와 아들이 모두 부자(富者)가 된 것 같습니다. 저 또한 부자(富者)입니다. 감사합니다!”

 

행사를 마치고 월요일 오전, 나는 담임교사로서 우리 반 아이들에게 글쓰기를 제안했다. 부자 체육대회를 마치고 나서 소감을 적어달라고 했다. 그리고 11월 5일 이후 생활 각오도 써달라고 했다(그 후기를 아래 상자 기사에 담는다).

 

나 또한 각오한다. ‘지금보다 더 치열하게 선생 노릇하리라!’

 

 

우리반 부자족구대회 후기

 

▲ T군 : 부모님은 항상 회사일로 바쁘셨다. 초등학교 때 매년 하는 수업 참관일은 물론 때때로 체육대회 때도 뵐 수가 없었다. 나는 부모님과 함께 한 행사에 대한 기억이 거의 없다. 그런데 이번 고등학교 1학년 때 부자족구대회를 한다고 했다. 많이 겪어본 터라 당연히 못 오실 거라 생각했다.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던 찰나에 아버지께서 시간을 내서 참가하신다고 하셨다. 많이 놀랐다. 아버지와는 항상 주말에 늦게 볼 수밖에 없었고 더더군다나 학교에 오시는 건 현실성 0%였다. 그러나 아버지께선 오셨다. 반 아이들과 아버지들 선생님들이 모두 어울리는 것도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 J군 : 11월 3일 대전대신고등학교 1학년 9반의 단합대회 겸 부자 족구대회가 열렸다. 나름 기대도 했고 걱정도 되었다. 첫 번째 게임은 선생님들과 아버지들의 대결이었다. 아버지팀이 비록 졌지만 열심히 해주신 모습에 감사하였다. 몇 시간의 혈투 끝에 우리 3조가 결승에 올라가게 되었다. 드디어 우리 3조와 아버지팀이 승부를 겨뤘다. 처음에는 비슷하게 진행되다가 역시 아버지의 노련함에 우리 3조는 무릎을 꿇었다. 그 날 저녁 아버지의 팔꿈치에는 멍이 들고 심하게 까져 있었다. 오직 나를 위해 피곤하신 데도 불구하고 와주셔서 저렇게까지 열심히 해주시다니 눈시울이 붉어지면서 어버지께 감사하면서 동시에 죄송한 마음이었다. 아무튼 11월 3일은 잊지못할 1학년 9반의 추억의 날이다.

 

▲ K군 : 족구 대회를 하기 전보다 하고 난 후 반 친구들이 단합이 더 잘 되는 것 같다. 나는 아빠와 아들 사이가 서먹서먹하고 친하지 않은 줄 알았는데 모두가 친해서 정말 부러웠다. 공부 때문에 스트레스 받고 지친 친구를 위해 시간이 있을 때 이런 대회를 해보면 좋겠다. 평소 수업 시간에는 활기차지도 않고 웃지도 않던 친구들이 족구 시간에 즐거워했기 때문이다.

 

▲ G군 : 항상 우리 아들들에게 아버지라는 존재는 엄격하시고 무뚝뚝하고 약간 우리와는 벽이 있는 그러한 존재였지만 부자 족구대회로 얼굴을 마주 하고 한마디라도 대화를 할 정도로 마음의 벽이 허물어진 것 같다. 아버지들께서는 아들들을 사랑하고, 우리 아들들은 아버지를 존경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었다. 어머니께는 좀더 포근하고 따뜻한 사랑을 알 수 있는 날이었다.

덧붙이는 글 | 함께 해주신 학부모님, 동료교사들, 그리고 소중한 1학년 9반 친구들 모두모두 애쓰셨습니다. 감사합니다.


태그:#족구대회, #부자육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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