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회견을 앞두고 스포츠들이 100인 선언을 위해 모였다. 기자회견에는 장재근, 박찬숙씨와 같은 유명인사도 참여했다.

▲ 기자회견을 앞두고 스포츠들이 100인 선언을 위해 모였다. 기자회견에는 장재근, 박찬숙씨와 같은 유명인사도 참여했다. ⓒ 이호영


우리는 1986년 아시안게임 남자 육상 200m에서 20초41로 한국최고기록을 수립한 금메달리스트 장재근을 기억한다. 또한 1984년 LA 올림픽 농구 은메달리스트인 박찬숙의 이름도 전혀 낯설지 않다.

"그저 안타깝습니다." 박병주 전 프로축구 안양 LG 감독은 동대문운동장 철거에 대해 깊은 아쉬움을 표했다.

▲ "그저 안타깝습니다." 박병주 전 프로축구 안양 LG 감독은 동대문운동장 철거에 대해 깊은 아쉬움을 표했다. ⓒ 이호영

이들은 30일 오전 11시 서울시 중구 태평동 한국프레스센터 7층 레이첼카슨룸에서 '동대문운동장 보존을 위한 스포츠인 100인 선언' 기자회견을 했다.

이번 기자회견은 무엇보다 동대문운동장과 인생을 함께 했던 스포츠인들이 전면에 나섰다는 데 큰 의의가 있다. 주최 측인 체육시민연대는 이미 지난 8월 20일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동대문운동장 철거 반대 각계각층 100인 선언' 기자회견을 한 바 있다.

허정훈 체육시민연대 사무총장(중앙대 교수)의 사회로 진행된 기자회견은 김영환 한국체육학회 회장, 김강남 한국축구지도자협의회 회장, 박병주 전 프로축구 안양 LG 감독, 장재근 전 국가대표 육상선수, 박찬숙 전 국가대표 농구선수, 이영숙 전 국가대표 육상선수, 허현미 체육시민연대 집행위원(경인여자대학 교수), 나진균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 사무총장, 김상범 체육시민연대 집행위원(중앙대 교수)이 발언자로 나섰다.

월드컵 4강 진출, 벌써 잊었나

발언권을 얻은 박병주 전 감독은 "나는 나이가 많지만 이런 일에는 앞장서야 된다고 생각해 나섰다. 동대문운동장은 80여년의 역사 속에서 스포츠인과 국민의 환희와 애환이 얽혀있는 곳이다. 이런 체육인들의 터전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는 것이 너무나 안타깝고 가슴 아프다. 처음 축구장이 철거 발표되고 폐쇄됐을 때 축구협회가 저지했어야 함에도 불구, 그렇게 하지 못했다.

앞으로 동대문운동장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는 사실은 국민들을 위해서도 절대 용납되어서는 안 된다. 체육인들이 최선을 다하겠다. 시민들께서도 이런 점을 이해하고 지원해 주셨으면 한다"고 호소했다.

"월드컵 4강 잊었습니까?" 김강남 한국축구지도자협의회 회장은 월드컵 4강 진출을 들며 동대문운동장의 가치에 대해 말했다.

▲ "월드컵 4강 잊었습니까?" 김강남 한국축구지도자협의회 회장은 월드컵 4강 진출을 들며 동대문운동장의 가치에 대해 말했다. ⓒ 이호영

김강남 회장도 박 전 감독의 말을 거들었다.

"축구가 이만큼 관심을 받았던 적도 없는 것 같다. 2002년 월드컵 4강 신화가 컸다. 이런 성과는 동대문운동장이라는 한국 축구인들 공통의 뿌리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박지성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경기를 뛸 때마다 한국선수라는 부가가치가 엄청나다. 스포츠에 대한 가치를 모르는 사람들이 무턱대고 한국 체육의 산실 동대문운동장을 철거한다는 사실은 말도 안 된다.

최근 6년 동안 아마추어 축구는 전국대회를 서울에서 열지 못하고 있다. 서울시는 이를 외면하고 있다. 2002년 월드컵의 환희는 위와 같은 문제가 개선될 때 재연될 수 있을 것이다. 동대문운동장을 기초로 축구장이 여러 군데 만들어져야 전국대회를 적극적으로 유치하고 진정 축구를 살릴 수 있다"고 주장했다.

동대문운동장 없었다면 지금의 박찬숙도 없었다

"동대문운동장 없었다면…." 전 국가대표 농구선수 박찬숙씨는 동대문운동장이 없었다면 지금의 자신도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 "동대문운동장 없었다면…." 전 국가대표 농구선수 박찬숙씨는 동대문운동장이 없었다면 지금의 자신도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 이호영

70~80년대 여자농구를 주름잡았던 박찬숙씨도 그간 마음속에 담아두었던 얘기를 꺼내놓았다.

"어렸을 때 동대문에서 살았는데 단지 키가 크다는 이유로 육상대회를 나갔다. 나는 운동신경이 있는지도 몰랐다. 당시 체육 선생님이 '너는 할 수 있다'고 말해줬을 뿐이다.

그때 첫 경기를 동대문운동장에서 했다. 비록 좋은 성적을 내지는 않았지만 '나도 뛸 수 있구나' 생각하며 잠재적인 운동신경을 알게 됐다. 그래서 자신을 얻었다. 이후 농구선수로 뛰게 된 것도 이런 계기가 없었으면 불가능했다.

만약 동대문운동장이 없었다면 현재의 박찬숙은 없었을 것이다. 동대문운동장은 내가 태어난 곳이고 땀 흘렸던 곳이라 더욱 보존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동대문운동장이 철거된다면 아주 슬플 것 같다"며 진한 아쉬움을 남겼다.

여자 육상 100m 기록(11초49)을 가진 이영숙씨도 "처음에 한국 기록을 낸 곳이 바로 동대문운동장이었다. 동대문운동장이 없어진다니 내 몸이 아픈 것처럼 슬프더라. 내 모든 꿈과 삶이 이 동대문운동장에 있었다. 동대문운동장 철거가 기정사실화돼가는 현실이 너무 슬픈 나머지 이 자리에 섰다"고 말하며 잠시 감회에 젖었다.

청계천 복원 40년 걸렸으니 동대문운동장도 40년?

"동대문운동장 철거하면 안 됩니다." 전 국가대표 육상선수 장재근씨는 체육이 다른 분야와 같이 균형있게 다뤄졌으면 하는 바람을 밝혔다.

▲ "동대문운동장 철거하면 안 됩니다." 전 국가대표 육상선수 장재근씨는 체육이 다른 분야와 같이 균형있게 다뤄졌으면 하는 바람을 밝혔다. ⓒ 이호영


예전부터 동대문운동장 수호에 적극적이었던 나진균 프로야구 선수협 사무총장은 "한국시리즈를 이승엽(요미우리 자이언츠)과 같이 관람했다. 이승엽과 같은 선수도 멀쩡한 운동장을 왜 허무나, 훨씬 더 잘사는 나라도 체육시설은 유지, 보수하려고 한다고 말하더라"며 일본 프로야구에서 뛰고 있는 이승엽과 나눈 이야기를 소개했다.

"제가 더 아프네요." 전 국가대표 육상선수 이영숙씨는 동대문운동장 철거에 대해 자신의 착잡한 심정을 여과 없이 말했다.

▲ "제가 더 아프네요." 전 국가대표 육상선수 이영숙씨는 동대문운동장 철거에 대해 자신의 착잡한 심정을 여과 없이 말했다. ⓒ 이호영

이어 나 총장은 "그간 지켜왔던 동대문운동장은 후손들에게 물려줘야 하는데 수천억을 들여 혈세를 낭비하면서 이런 식으로 꼭 해야 하나. 동대문운동장은 오세훈 시장이나 서울시의 것이 아니다.

동대문운동장은 체육인과 국민들이 공유한 삶의 역사 현장이고 보존해야 할 가치가 충분한 만큼 꼭 지켜져야 한다. 동대문운동장이 없어지는 슬픈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시민 여러분께서 도와달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육상 스타와 방송인으로 널리 알려진 장재근씨도 발언 기회를 가졌다.

"청계천 복원이 40년 걸렸으니 동대문운동장도 없애면 40년이 걸리지 않을까 생각해봤다. 청계천 복원은 우리의 역사를 보존하고 재연하고 알리기 위해 진행된 것으로 알고 있다. 이를테면 시민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곳으로 재탄생한 셈이다.

항간에는 동대문운동장과 같은 체육시설이 혐오시설로 변했다는 주장이 있는데 이는 옳지 않다. 동대문운동장을 외국에 있는 오래된 운동장처럼 사용하면 좋지만 그렇지 못한다면 박물관과 같이 유지해서 후세까지 보존해야 하지 않겠는가. 과거의 역사는 고이 간직해 미래를 제시하는 방향으로 개선해야 된다"고 주장했다.

"완전 반대는 아닙니다." 허정훈 체육시민연대 사무총장은 단지 동대문운동장을 보존하고 소통형 공원을 건설하는 쪽으로 주장할 뿐 서울시 정책에 완전히 반대하는 것은 아님을 밝혔다.

▲ "완전 반대는 아닙니다." 허정훈 체육시민연대 사무총장은 단지 동대문운동장을 보존하고 소통형 공원을 건설하는 쪽으로 주장할 뿐 서울시 정책에 완전히 반대하는 것은 아님을 밝혔다. ⓒ 이호영

이어 장씨는 "모든 분야는 골고루 발전이 되고 골고루 대접을 받아야 한다. 체육이 도태되고 다른 부분이 대접받는 것보다 골고루 발전이 되었으면 좋겠다"며 자신의 소신을 밝혔다.

마지막으로 체육시민연대의 입장도 간단히 소개됐다. 김상범 집행위원은 "동대문운동장 문제가 몇몇 이익단체에 의해 호도되고 있다는 얘기가 나오는데 이번 기자회견이 이를 해명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사회를 맡은 허정훈 사무총장도 "무작정 서울시의 계획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대안을 가지고 있다. 동대문운동장은 리모델링을 통해 '소통형 공원'으로 만들 수 있다. 역사는 보존해서 발전시켜야 한다. 오래됐다고 해서 없애는 것은 한국 스포츠의 역사를 말살시키는 것과 다름이 없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한편 체육시민연대와 문화연대를 비롯한 시민단체는 "향후 동대문운동장 철거 반대를 위해 다각적인 노력을 할 것"이라 밝혔다. 또한 이날 스포츠인들이 뜻을 모았던 것처럼 1인 시위 및 시민들을 대상으로 적극적인 홍보를 통해 동대문운동장 수호를 위해 가진 역량을 모두 쏟아내겠다고 다짐했다.

덧붙이는 글 필자 블로그
http://aprealist.tistory.com
동대문운동장 스포츠인 100인 선언 체육시민연대 문화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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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당 동작구위원장. 전 스포츠2.0 프로야구 담당기자. 잡다한 것들에 관심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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