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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 오세요!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콧대는 높으나 담 너머 마을을 두루 껴안고 있는 멋진 한옥 한 채를 두루 살펴보고 있던 참이었는데, 마침 잘 오셨습니다. 무거운 짐을 잠시 풀어놓고 저와 함께 집안을 둘러보시죠.

 

너른 마당이야 조금 있다 찬찬히 보시고 우선 방으로 들어가 볼까요? 안 그래도 날이 차가운데 방 온기가 이렇게 반가울 수가 없네요. 자, 한 번 누워 보시겠습니까? 진짜 온돌방이 얼마나 따스하고 아늑한지 그대로 온 몸에 전해질 겁니다. 암요, 그렇다마다요.

 

“온돌은 아궁이에 불을 때서 방바닥 밑의 구들을 데워 그 열이 인체에 직접 전달되는 방식이다. 아궁이로 들어가는 불기는 실내를 따뜻하게 하고 연기는 굴뚝을 통해 밖으로 나가게 되어있다. 즉 열의 전도, 복사, 대류를 이용한 한국 고유의 난방방식이었던 것이다.”(<한옥>, 57)

 

온돌, 정(情)을 키우지요

 

전통 한옥에서 느껴보는 온돌이라 느낌이 다르지 않으십니까? 그러고 보니 들어오기 전 귓가를 스치던 찬바람도 참 맑았지요? 암요, 그러셨을 겁니다. 뭐, 하실 말씀이라도 있으신가요? 네 그렇습니다, 구들을 휘감아 도는 온기가 발끝부터 온 몸에 걸쳐 느껴지는 게 당연하지요. 원래 온돌이란 그런 것입니다. 아시다시피, 우리가 흔히 양반다리라고 하는 생활방식에도 온돌이 큰 몫을 했지요. 

 

“온돌이 생활에 자리 잡음에 따라 우리 생활의 여러 요소들도 파생되었다. 우리의 양반앉음새, 즉 둔부와 다리를 바닥과 최대한 접촉하는 앉음새는 이러한 온돌습관에서 나온 것이다.”(같은 책, 60)

 

이렇게 따뜻하고 세월 묻은 온돌방에 앉아 있자니, 그 놈의 그 정(情)이 뭔지 괜히 그립군요. 저 역시 복잡한 세상에서 의심도 늘고 또 되레 의심을 받는 일도 간혹 있습니다만, 괜스레 살 부비며 산다는 게 갑자기 뭐 그리 그리운지. 다, 살기 바빠 그런 것이거늘.

 

근데요, 만약 “우리 민족의 인정과 접촉본능은 바로 온돌에서 연유한 것”(같은 책, 59)이라고 누가 말하면 어떠시겠습니까? 그런 것 같습니까, 좀 지나친 생각이지 싶습니까? 글쎄요, 그 온돌 한 가지 가지고 민족성 운운 한다는 게 좀 지나치다 싶기도 하겠지만, 온돌에서 나고 자란 것에는 우리 몸 뿐 아니라 우리 마음도 우리 역사도 있다는 걸 알고 나면 모르긴 몰라도 온돌을 좀 더 많이 문질러보고 싶으실 겁니다. 전 그 말이 그리 밉지 않네요.

 

“확실히 서구인들과 비교할 때에도 우리나라 사람들은 인정이 많고 정에 약하다. 이규태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정을 ‘접촉본능’으로 표현하고 있다. 부모와 아이들의 정은 말할 것도 없고 아는 사람끼리의 악수도 유난히 그 흔드는 폭이 큼과 동시에 양손으로 상대방의 손등을 잡고 그것도 모자라 상대방의 어깨까지 두드린다. 귀한 물건이나 새롭고 신기한 것이 있으면 눈으로 확인하기보다는 꼭 만져봐야 직성이 풀린다.”(같은 책, 59-60)

 

그렇다고, 선뜻 시골에 와서 살기는 쉽지 않습니다. 이렇게 멋진 전통 한옥을 접하기도 쉽지 않고 실제로 살 기회는 얻기는 더더욱 힘드니까요. 그래도 이렇게 멋진 한옥에 잠시나마 들러 온돌을 온 몸으로 느끼다보면 생각하는 게 있습니다.

 

온돌이 많이 사라진 만큼 온돌문화에 깃든 한국적 정서도 많이 사라진 게 아닌가하는 조금은 서글픈 못난 생각이 든답니다. 알아요, 꼭 그렇게까지 생각할 필요는 없다는 걸 알지만 그래도 저 역시 각박한 세상에 한 몫을 하고 있지는 않은지 술술술 고백하게 되네요. 따뜻한 온돌 위에 앉아 몸도 맘도 저도 모르게 확 풀려서 그런가봅니다.

 

어쨌거나, 온돌이 많이 사라짐도 아쉽지만 “온돌방 그 속에 담겨있는 우리들의 전통적인 가족관계와 따뜻했던 인정, 그리고 우리들의 모든 생활이 농축된 투명한 결정체와 같은 정신마저도 사라짐은 더더욱 아쉬움이 아닐 수 없”(같은 책, 64)습니다. 네 네, 그만하죠. 모처럼 좋은 경험을 하는 자리에서 못난 소리를 너무 많이 했군요. 음, 우리 마루로 다시 나가볼까요? 마루에 대해서도 나눌 얘기가 꽤 많거든요. 아, <한옥>도 챙기고.

 

마루, 마당을 끌어안고 바람을 실어나른다

 

아직 바람이 그런대로 시원하죠. 조금 있으면 바람도 많이 차지겠죠. 아직은 그런대로 좋네요. 옛날 사람들은 여기 마루에서 참 많은 것을 보고 느꼈겠다싶어요. 한옥은 참 담장도 야트막한 것이 꼭 주변 산들을 닮았어요. 다들 고만고만한 게 높지도 낮지도 않잖아요. 하긴 한국 산들이 다 야트막하고 아기자기한 맛이 있죠. 한옥은 거기에 절로 어우러지고 말이죠.

 

지금은 좀 쌀쌀하지만, 여름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곳이에요. 지금도 이렇게 바람이 시원하게 느껴질 정도이니 온갖 것이 제 마음껏 활기차게 드나드는 여름철에 이런 대청마루에 누우면 참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았을 거예요. 그러고 보니, 무더운 여름철이나 조금 한가로워 경치를 맘껏 느낄 수 있을 때 옛 사람들은 이곳에서 도대체 무엇을 느꼈을까요?

 

“그럴 때에 어른들은 항상 삼베적삼을 걸쳐 입고 대청마루에 깐 자리 위에 목침을 베고 누워 부채로 바람을 일구며 여름 한낮의 무더위를 달래곤 했다. 앞마당에서 불어오던 서늘한 한 가닥의 바람이 마루를 통해 대발을 드리운 뒤쪽 바라지창으로 나갈 때는 바닥의 매끄럽고 서늘한 촉각과 시끄럽게 울어대던 매미의 울음소리와 함께 어우러져 가히 환상적이었다. 그곳에서 앞마당에서 끓어오르던 삼복열기를 식혔고 자연을 음미하고 자연에 함양되고 자연을 관조하고자 했던 정신성을 길렀다. 마루는 그런 곳이었다.”(같은 책, 65)

 

참, 저건 누마루라고 하는 거예요. 아마 전통한옥을 찍은 사진에서 많이 보셨을 거예요. 집 한쪽으로 쭉 뻗어나와있죠? 삼면이 개방되어 있고 각 면으로는 난간이 있어서 누가 떨어져 다치지 않도록 되어있죠. 저 누마루가 집 전체적으로 입체감을 살리는 데 큰 몫을 한답니다. 생각해보세요, 밖에서 이 집을 볼 때 저 누마루와 이 집 전체를 보면 양 옆으로도 보고 앞뒤로도 보게 되니 시각적으로도 실제 공간적으로나 집을 더 돋보이게 해준답니다. 옛날에는 어르신들이 함께 둘러앉아 자연을 벗 삼아 즐겁게 담소를 나누기도 했을 테고요. 어찌 보면, 집 안에 정자를 들여놓은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누마루는 형태상으로는 고상식이고 기능적으로는 여름에 습기를 피하면서 조망, 휴식을 위한 공간이다. 대청마루가 대개 한 면이나 두 면이 개방되는 데 반해 누마루는 세 면이 개방되어 외부의 수려한 풍광을 집안으로 끌어들이는 공간이 된다. 따라서 누마루가 있는 공간은 안에서 밖으로 바라보는 경관임과 동시에 밖에서 보면 전체 집모양의 수평성과 아울러 수직적인 요소를 제공하는 상승공간이 된다. 따라서 외부에서 보이는 지붕선은 수직과 수평으로 이루어진 지붕에 크기가 다른 합각부분이 전후좌우에 중첩되어 있어 전체적인 조화를 이루는 공간이 되기도 한다.”(같은 책, 72)

 

자연을 벗 삼아 사는 방식은 한국사람 누구에게나 자연스러운 생활방식이었습니다. 지금 얘기한 누마루는 물론이고 너른 마당, 앞뒤로 열려있어 바람도 드나드는 마루가 모두 자연을 그대로 품고 있지요. 한옥을 경험하기 어려운 요즘 세상에는 마루가 앞뒤로 열린 공간이라는 생각을 잘 하지 못합니다만, 보시다시피 마루는 원래 마당을 향해 환히 열려있는 곳이죠. 그리고 때때로 마루 뒤쪽으로 난 문을 열어젖혀 흐르는 바람을 그대로 맞아들이면 정서적으로도 좋거니와 뒤뜰이 그대로 앞마당으로 연결되는 느낌도 받게 됩니다. 집 전체가 두루 연결되어 있고 주변 경관에 그대로 안겨 있는 것이죠.

 

“자연의 운치라고 하면 마당의 경계 너머에 광활하게 펼쳐져있는 대자연의 풍광만한 것이 없을 것이다. 그래서 선조들은 이러한 수려한 풍경을 정원의 일부로 생각하고 대자연의 법도를 생각하고 마음으로 느끼면서 자연의 운치를 집안으로 끌어들였는데, 이를 차경(借景)이라 했다.”(같은 책, 29)

 

한옥, 우리도 한 채 지어볼까요?

 

이렇게 얘기하고도 할 얘기가 아직 많습니다. 이렇게 넓은 한옥 한 채를 다 구경하기도 벅찬데 주변 경관과 더불어 집을 두루 살펴보려면 할 얘기가 참 많을 수밖에요. 이 얇은 책 한권을 가지고 참 많은 얘기를 했습니다. 네, 다 이 책을 보며 얘기한 것입니다. 사실 저도 한옥에 대해 그리 아는 게 많지 않습니다. 거의 몰랐다고 해도 될 정도이죠. 그래도 이런 책 한 권만으로도 한옥에 관해 많은 것을 알고 느낄 수 있으니 보기보단 꽤 묵직한 책이죠.

 

말이 나온 김에, 이 책 저자가 한옥을 두루 살펴보고 맘에 가득 남은 이야기 한 편을 들려드리겠습니다. 저로서는 더 이상 드릴 말씀이 없네요. 말씀드렸듯이 저 역시 한옥에 대해 아는 게 부족하긴 마찬가지거든요. 어쨌거나 저자는 이 책을 짓기 위해 한옥을 두루두루 살펴보다가 생각하기를 지금은 아니더라도 꼭 이렇게 살아보리라 다짐한 것 같아요. 한국인이란 한결같게 집을 땅에 짓기 전에 마음에 지었나봅니다. 마음에 터 닦고 땅에 기초를 놓았다고나 할까, 뭐 그런 셈이죠. 잘 들어보시고 마음에라도 이런 집 한 채 지어보시지요.

 

“내가 태어나고 자란 그곳에 주위 자연을 쏙 빼닮은 집을 짓고, 자연에서 재료를 얻고 사람에게서 지혜를 얻어 공간을 구성하고 기능에 맞도록 가다듬는다. 산이 높아 그늘은 앞마당에 그득하고 흐르는 시냇물 소리가 집안을 메우고 높은 곳에서는 새들이 지저귄다. 안채는 사랑채보다 약간 높게 올려 항상 양명한 기운이 담기도록 한다. 안채 뒤로는 옹기종기 장독대를 두고 그 옆 작은 텃밭에는 상추, 쑥갓을 심는다. 그 뒤 둔덕에는 사시사철 지치지 않는 싱그러움으로 출렁이는 대숲을 만든다. 담은 높일 필요가 없이 사랑대청에서 밖을 볼 수 있으면 된다. 그곳은 치열한 삶의 무게를 비켜난 한적함이 묻어날 것이고, 반백의 머리를 한 나는 살아온 인생을 그 집에서 회상할 것이다. 또한 넉넉함으로 세상을 관조하며 욕심을 털고 마음을 비울 것이다.”(같은 책, 92-3)

덧붙이는 글 | 1. <한옥> 박명덕. 서울: 살림, 2005.
2. 두 번에 걸쳐 소개합니다. 한국 전통 주거양식에 대한 전반적인 소개를 하고, 그 다음으로 마루, 온돌과 같은 집 내부 공간을 살펴봅니다. 이전 기사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3. 이 책은 아주 얇은 책이지만 내용은 읽을수록 깊은 멋이 서린 책입니다. 왜냐하면 초가, 한옥이란 말 자체가 세월과 전통 그리고 삶이 배인 산 역사이기 때문이죠. 이 책을 소개하는 이유는, 처음부터 전부 소화하기 힘든 그 넓은 ‘한옥’ 이야기를 이 얇은 책 한권에서 시작해보시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이 책에 담긴 내용들을 바탕으로 한국 전통 주거문화에 대해 더 많이 살펴보고 관련도서들을 읽으시기를 바랍니다. 집은 땅에 짓기 전에 마음에 짓습니다.
4. 책 한 권을 빨리 소화해내는 것도 좋지만 천천히 음미하며 마음에 담는 것 역시 중요합니다. 그리고 얇지만 깊은 내용을 담은 좋은 책이 많습니다. 좋은 책 있으면 알려주세요.


한옥

박명덕 지음, 살림(2005)


태그:#한옥, #박명덕, #살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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