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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초등학교가 버젓이 코앞에 있는 자리에 너비 50미터짜리 산업도로를 놓겠다는 인천시장 계획입니다. 이 공사는 지역시민들 반대운동으로 잠깐 멈춰 있지만, 잠깐 멈추었다뿐, 인천시장과 인천종합건설본부에서는 언제 다시 삽날을 들이밀지 모릅니다.
▲ 초등학교 앞 산업도로 예정지 초등학교가 버젓이 코앞에 있는 자리에 너비 50미터짜리 산업도로를 놓겠다는 인천시장 계획입니다. 이 공사는 지역시민들 반대운동으로 잠깐 멈춰 있지만, 잠깐 멈추었다뿐, 인천시장과 인천종합건설본부에서는 언제 다시 삽날을 들이밀지 모릅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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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볕이 맑은 날을 골라 나들이를 나섭니다. 햇볕을 느끼고 싶고, 햇볕 담은 바람을 느끼고 싶고, 햇볕 내리쬐는 하늘을 보고 싶고, 햇볕이 내리쬐는 땅을 밟으며 걷고 싶어서.

앞쪽으로 보이는 아파트 옆에는, '수도국산 달동네 박물관'이 있습니다. 아파트가 올라선 자리에 있던 송현동 사람들이 쫓겨나면서 그나마 하나 얻어낸, 당신들 발자취를 모셔 놓은 곳입니다. 그런데 이 박물관 밑으로 구멍을 내어 산업도로를 지나가게 하려고 합니다.
▲ 굴과 이어지는 길 앞쪽으로 보이는 아파트 옆에는, '수도국산 달동네 박물관'이 있습니다. 아파트가 올라선 자리에 있던 송현동 사람들이 쫓겨나면서 그나마 하나 얻어낸, 당신들 발자취를 모셔 놓은 곳입니다. 그런데 이 박물관 밑으로 구멍을 내어 산업도로를 지나가게 하려고 합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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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볕을 느끼며 걸으려고 하지만, 어쩔 수 없이 ‘너비 50미터 산업도로’를 놓는다며 파헤친 길옆을 지나야 합니다. 보기 싫게 파헤쳐져 벌겋게 드러난 맨땅. 이 벌건 땅에 살았던 서민들, 보통사람들, 가난한 집 사람들은 어디로 떠났을까요. 어디로 살림을 옮겨서 자리를 잡았을까요. 이제 그들은 무슨 일을 하며 살까요.

골목집 계단. 골목집 빨래.
▲ 골목집 계단 골목집 계단. 골목집 빨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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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널목을 건넙니다. 찻길 하나로 갈리는 금곡동과 송림동. 송림동에는 ‘수도국산 달동네 박물관’이 있습니다. 이 언덕배기를 중심으로 다닥다닥 모여 살던 자그마한 집이 거의 뜯겨나가고 쫓겨나면서 남은 발자취를 몇 가지 모아서 열어 놓은 자리입니다.

그나마 이 달동네 사람들 자취는 ‘박물관’으로 남았으니 다행인 셈일까요. 우리나라 수많은 달동네는 이름 몇 글자도 남기지 못한 채 모두 날카로운 삽날에 찍혀서 이슬이 되었으니까요.

낡은 문을 떼어내고 스테인레스 문으로 갈아 붙인 집.
▲ 골목집 문 낡은 문을 떼어내고 스테인레스 문으로 갈아 붙인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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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좋을까요. 한국사람들은 모두 연봉 일억이니 이억이니, 또는 삼천오백이니 육천이니 하는 돈을 받으며 살아가는 회사원이 되어야 하나요. 아니면 게임산업에 몸바치는 디지털 전사가 되어야 하나요.

우리는 학교에 다니면서 무엇을 배워야 하나요. 학교 교사는 아이들한테 무엇을 가르쳐야 하나요. 학교는 지식만 배울 수 있으면, 졸업장만 딸 수 있으면 좋은 곳인가요. 학교에서는 사람을 가르치면 안 되는가요. 우리 아버지 어머니들은 딸과 아들한테 사람을 물려주면 안 되는가요.

학교 울타리를 따라 지붕 낮은 1층짜리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습니다. 이 가운데 절반 넘게 헐리며 높직높직 아파트로 바뀌었고, 얼마 안 남은 골목집도 모두 헐릴지 모릅니다. 아니, 헐려고 하는 시 정책입니다.
▲ 학교 울타리를 따라 학교 울타리를 따라 지붕 낮은 1층짜리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습니다. 이 가운데 절반 넘게 헐리며 높직높직 아파트로 바뀌었고, 얼마 안 남은 골목집도 모두 헐릴지 모릅니다. 아니, 헐려고 하는 시 정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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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제법 넓은 길로 트였습니다. 이 트인 길을 밟으며, ‘그래, 내 어릴 적 이 달동네에서 놀며, 또 우리 부모님이 이 동네에 셋집 얻어 겨우 깃들이며 지내던 때’에는 얼마나 길이 좁았던가. 한두 해도 아닌 수십 해, 어쩌면 수백 해 동안 조용히 살아오던 사람들 집터였을 땅인데. 이제는 트여 버린 길이 되었구나.

어쩌면 이 땅에서 농사꾼들이 민란을 일으켰는지 모르지. 어쩌면 이 땅에서 왜구와 맞서 싸우던 백성들이 피 흘리며 죽었는지 모르지. 어쩌면 이 땅에서 미 함대 폭격(한국전쟁 때 인천상륙작전)을 맞아 소리 소문 없이 스러진 사람들이 있었는지 모르지.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아이가 걷는 골목길은, 자동차가 씽씽 달리지 않기에 아늑하고 조용합니다.
▲ 골목길 아이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아이가 걷는 골목길은, 자동차가 씽씽 달리지 않기에 아늑하고 조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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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에서 고등학교에 다니던 1991년이었나, 1992년이었나, 아니면 중학교에 다니던 1989년이었나, 그때 동인천에 있던 축현초등학교 건물을 헐었습니다. 시에서. 구에서. 몇 해 앞서, 화도진도서관 옆에 있던 대건고등학교 건물을 헐었습니다. 시에서. 구에서.

고등학교가 있던 자리에는 높직높직 아파트가 들어섰습니다. 초등학교가 있던 자리에는 시멘트와 대리석으로 빚은 청소년회관이 들어섰습니다.

책 껍데기가 낡았다고 하여 책 알맹이가 낡을 리 없겠지요. 집이 조금 허름하다 해서, 그 집에 사는 사람이 허름하다거나 그 집에 살기에 나쁠 리 없겠지요.
▲ 골목집은 책 껍데기가 낡았다고 하여 책 알맹이가 낡을 리 없겠지요. 집이 조금 허름하다 해서, 그 집에 사는 사람이 허름하다거나 그 집에 살기에 나쁠 리 없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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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대였던가요, 70년대였던가요. 서울 종로구에 있던 수많은 고등학교가 학교 터와 건물을 팔고 강남으로 옮겼습니다. 90년대 인천에서는, 동인천에 있던 학교들이 학교 터와 건물을 팔고 연수동으로 옮겼습니다. 앞으로는 더 옮길지 모릅니다. 교회도 건물을 연수동에 새로 짓고 옮겨갑니다.

앞으로는 연수동 말고 송도 신도시로도, 청라 신도시로도, 그리고 영종도에 엄청나게 올려세우려는 또 다른 아파트 숲으로 학교를 옮겨갈 테지요.

골목길을 따라 볼일 보러 오가는 사람들은, 길을 느끼고 이웃 집을 느끼고, 길을 따라 흐르는 바람과 햇살을 느낍니다.
▲ 골목길 걷기 골목길을 따라 볼일 보러 오가는 사람들은, 길을 느끼고 이웃 집을 느끼고, 길을 따라 흐르는 바람과 햇살을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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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에는 인천에서 아시아경기를 치른다는데. 그때까지 저 같은 사람이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굽이굽이 골목길은 남아날 수 있을까요. 지도회사에서 만드는 ‘인천 길그림책’을 펼치면, 조금 묵은 도심지는 모두 ‘재개발 대상’과 ‘도심지 정화사업 대상’ 구역으로 나옵니다.

제 살림집과 도서관이 깃든 창영동도 마찬가지입니다. 글쎄, 그러면, ‘정화사업’ 대상 터에 사는 사람들은 ‘깨끗하게 되어야 할’ 사람, 그러니까 ‘지금 보기에 더러운’ 사람이라는 소리일까요. 아파트에 살면 ‘깨끗한’ 사람이고, 골목길 지붕 낮은 집에 살면 ‘더러운’ 사람인 셈인가요.

햇볕에 빨래를 널고, 바람에 빨래를 말립니다.
▲ 골목집 빨래 햇볕에 빨래를 널고, 바람에 빨래를 말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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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을 다녀온 사람들 이야기를 더러 듣습니다. 프랑스를, 체코를, 독일을, 네덜란드를, 유고를, 이탈리아를, 벨기에를, 덴마크를, 노르웨이를, 핀란드를, 헝가리를, 스페인을, 영국을, 포르투갈을 ….

유럽을 다녀온 사람들은 한결같이 말합니다. ‘중세풍 아름다운 옛 건물들’. 유럽 다녀온 사람한테 묻습니다. ‘우리나라 옛 건물들도 보기 좋으신가요? 어떤가요?’

창문과 문에 줄을 매달아 빨래를 내겁니다.
▲ 골목집 빨래 2 창문과 문에 줄을 매달아 빨래를 내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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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길을 걷다가 다리쉼을 한다며 여느 집 계단참에 앉기도 합니다. 공동 뒷간 있는 마을이라면 볼일도 봅니다. 큰집 하나 없지만, 이 작은 집들이 서로 어깨동무를 하고 담벼락을 이루어 주어서, 큰 길가 차 소리를 모두 막아 줍니다. 높직높직 아파트에서는 지붕 낮은 집을 모두 굽어보지만, 지붕 낮은 집에서는 트인 하늘을 올려다보며 별을 헤아리고 구름을 느끼고 빗소리를 다닥다닥 듣습니다.

골목집 텃밭은 조그마한 골목길에 놓여 있습니다.
▲ 골목집 텃밭 골목집 텃밭은 조그마한 골목길에 놓여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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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길을 걷다가 낮길을 걸으면서, 살그머니 골목 집 창문 쪽으로 귀를 기울여 보곤 합니다. 발소리도 죽인 채 가만가만 골목길 꽃 그릇 앞에 쪼그려앉아 살그머니 볼을 꽃잎에 대어 보곤 합니다.

엊저녁, 이웃집 아주머니가 우리 집에 찾아와서 능금 한 알 건네면서, “돈은 많아도 가슴이 가난한 이들에게도 복지가 필요하지 않을까” 하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돈이 없어도 행복한 사람들이 있고, 돈이 많아도 행복하지 않은 사람들이 있다면서.

골목집 우체통은 집집마다 모양도 다르고 생김도 다르고.
▲ 골목집 우체통 골목집 우체통은 집집마다 모양도 다르고 생김도 다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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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복지’? ‘경제’?

우리 삶을 숫자로 매길 수 있을까요. 1987년이었나, 1989년이었나,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라는 영화를 인천 주안동에 있던 ‘시민회관’에서 보면서, 사람이 꽉 차 빼곡한 그 극장 계단에 겨우 끼인 채로 서서 보면서, 왜 저런 멋진 말은 영화에서만, 책에서만 쓰일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행복이 성적순이 아니라면, 행복은 숫자로 매길 수 없다는 소리이고, 숫자로 매길 수 없는 행복이라면, 돈이 많다 해서 더 즐겁게 꾸리는 삶이 아니라는 소리이며, 우리 삶에서 경제지표가 높아진다고 하여 더 나은 사회가 되지는 않는다는 이야기일 테지요.

골목길 어디도 시멘트뿐이지만, 이 땅에 꽃밭을 이루어 놓습니다.
▲ 골목집 꽃밭 골목길 어디도 시멘트뿐이지만, 이 땅에 꽃밭을 이루어 놓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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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엔피나 지디피가 떨어지면 좋겠습니다. 아니, 신문이고 방송이고 인터넷이고, 숫자 이야기를 안 하면 좋겠습니다.

잘 읽히고 사랑받는 책이 ‘몇십만 권’ 팔리는 일이 중요한가요? 잘 팔리고 사랑받는 영화를 ‘몇백만 사람’이 구경하는 일이 중요한가요? 경제활동 인구가 많으면 무엇하나요. 우리 사회에서 비정규직은 셀 수 없이 늘어나는데.

골목집이란, 골목에 깃든 집이요, 골목을 이룬 집입니다.
▲ 골목집이란 골목집이란, 골목에 깃든 집이요, 골목을 이룬 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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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한 번 올려다보고, 땅 한 번 내려다보고, 하늘과 땅 사이 집을 짓고 살아가는 골목집을 옆으로 죽 둘러보고 한 걸음 내딛습니다. 새만금을 살리려는 분들은 세 번 절을 하고 한 걸음 내디디셨다는데, 저는 하늘과 땅과 집을 한 번씩 둘러보고 한 걸음을 내딛습니다.

골목길에서 올려다보는 하늘은 파랗습니다. 구름은 하얗습니다. 골목길에서 내려다보는 땅은 온통 시멘트바닥입니다. 그러나 시멘트바닥을 꾸역꾸역 메우고 있는 꽃 그릇이 있고 스티로폼 그릇이 있습니다. 이 그릇들에는 골목집 사람들이 퍼 옮긴 흙이 담겼습니다.

골목길에서 왼쪽 오른쪽으로 둘러보는 집마다 창문과 창문으로 이은 빨랫줄이 보이고, 자잘한 살림살이가 보이며, 여러 세대에 걸쳐 온몸으로 부대끼며 일해 온 사람들 손자취와 발자취가 느껴집니다. 모진 삽날이 이 집 벽을 무너뜨리면 한낱 건축폐자재로 나뒹굴겠지만, 따순 손길이 이 집 벽을 쓰다듬으면 오래오래 사람냄새가 짙게 배는 도시 문화로 뿌리내리겠지요.

덧붙이는 글 | 지금 인천시는, 중ㆍ동구 둘레를 놓고 '도심정화사업'을 벌여 골목 집과 재래시장을 몰아내고, 동구 배다리 둘레는 '너비 50미터짜리 산업도로'를 골목 집 한복판에 놓으려는 정책을 밀어붙이고 있습니다. 대단한 이름이나 많은 돈벌이나 큰 힘 하나 없이 조용히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는 동네가 이곳 인천 중ㆍ동구입니다. 경제개발과 경제성장하고는 조금도 안 어울릴 수 있겠지만, 온 삶을 바쳐 땀흘려 일하고 조그마한 몸뚱아리 드러누울 작은 집 한 칸이나 방 한 칸 마련하여 살아가는 사람들한테도 '내 집에서, 내 땅에서, 조용하면서도 자유롭고 평화롭게 살다가 숨을 거두어 흙으로 돌아갈 권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라님 정책을 한 번도 거스르지 않고 허리 구부정할 때까지 살아온 사람들 숨결을 사랑합니다. - 배다리 골목길 이야기를 띄우면서.



태그:#골목집, #골목길, #송림동, #배다리, #산업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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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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