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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납치사건에 대한 진실위의 발표 이후 일본 정부는 한국의 공권력에 의해서 일본의 주권이 침해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한국 정부의 사과와 재발 방지를 요구하였다. 그리고 진상규명이 제대로 되지 못한 것에 대한 책임이 일본 정부에도 있다는 진실위 보고서의 대해서 비판적 입장을 함께 밝혔다.

그런데 그 동안 이 사건 처리 과정에서 보여준 일본정부의 행동을 돌이켜보면 위와 같은 일본 정부의 입장은 참으로 적반하장적 태도라고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과연 무엇이 문제라고 할 수 있는가? 지금부터 역사적 사실을 추적해가면서 일본 정부의 모순된 행태를 밝히고 이를 비판하고자 한다.

우선 일본정부의 책임에 있어서 가장 먼저 지적할 부분은 김대중에 대한 정치테러 가능성을 사전에 인지하고 있었을 가능성이다. 이 부분이 사실이라면 일본 정부는 합법적인 절차에 의해서 일본에 체류 중이던 김대중에 대한 신변 보호 의무를 다하지 않은 것으로서 한국 중앙정보부에 의한 주권침해를 논하기 앞서 일본 정부의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것에 대해서 피해자인 김대중에 대해서 사과를 하는 것이 순서다.

그런데 납치사건 전반에 걸쳐서 상세하게 파악하고 있는 재일교포 민주화 운동 인사인 곽동의는 "당시 경찰청장이 주일공사 김재권씨를 불러다가 납치사건을 사전에 탐지하고 그만두라고 권고했다는 말이 본인 입으로 나온 적이 있다"라고 증언을 하고 있다. 이 외에도 납치사건 준비 과정 및 실행 과정 등을 볼 때 일본 내 유착세력이 없이 한국 정부 단독으로 하기 힘들다는 정황은 수 없이 많이 지적되어 왔고 일본 내에서도 많은 논란이 있었던 사안이다.

적어도 '김대중 납치'에 대한 일본내 협력자는 존재했다

이를 두고 일본 정부의 공모가 있다고 단정하는 것은 대단히 무리라고 할 수 있으나 적어도 일본 내 협력자가 있다는 정도의 해석은 충분히 가능한 상황이다. 그렇다면 일본 국민을 대표하는 일본 정부는 아무런 거리낌 없이 한국 정부에게만 사과를 요구하고 재발 방지를 요구할 수 있다고 보는가? 우선 일본 정부는 스스로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런 점에서 이 사건을 접근하는 일본 정부의 기초 자세에 문제가 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납치 이후의 대처 과정을 보면 일본 정부의 문제점은 극명하게 드러난다. 우선 일본 정부는 용의자의 지문을 채취했으면서도 이를 포기하였고 출국를 용인하는 등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행동을 하였다. 이는 일본 정부가 진상규명을 위한 의도가 처음부터 없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대표적 사례이다.

대신 일본 정부는 한국 정부와의 정치공모를 통하여 이 사건을 해결하는 역사적 과오를 범하고야 말았다. 납치사건 이후 당시 김종필 총리가 일본을 방문하게 되었는데 3개항으로 된 외교절충의 내용을 갖고 이 사건을 종결하려고 하였다. 이처럼 당시 한국 정부와 공모하여 사건을 은폐하고 피해자인 김대중의 인권을 외면한 일본 정부가 지금 와서 마치 일본이 피해자인 것처럼 주장하는 것에 대해서 누가 납득할 수 있겠는가?

더군다나 일본은 이처럼 문제투성이인 정치공모의 합의 사항의 내용조차도 지키지 않아서 김대중이 전두환 신군부에 사형선고를 받는 데에 일조하였다는 또 다른 역사적 과오를 저질렀다. 당시 정치공모의 내용 중에는 ‘김대중의 해외에서의 언동을 문제삼지 않는다’라는 것이 있었다. 그런데 1980년 전두환 신군부는 김대중을 제거하기 위하여 1973년 일본 망명 중에 김대중이 조직한 한민통 일본본부 문제를 갖고 김대중에게 국가보안법을 적용하여 사형을 선고하였다.

이는 한일정치공모의 합의사항을 한국 정부가 위반한 것이기 때문에 일본 정부는 정당한 자격으로 외교적 항의 및 압박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 부분은 당시 일본에서 크게 발생한 김대중 구명 운동 과정에서도 지적된 것으로서 일본 정부가 제대로 대처했으면 신군부가 김대중의 망명 기간 중 활동을 갖고 사형 선고를 하는 것은 무척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당시 이에 대해서 침묵으로 일관하였는데 이는 결국 신군부의 김대중 제거 음모에 동의한 것으로서 역사적 지탄을 면할 수 없는 중대한 과오를 저지른 것이다.

일본의 범죄 행위 방조, 비판받아 마땅하다

일본은 박정희 정권 이후 형성되고 강화된 한일간 검은 유착 관계를 지속시키기 위하여 한국 독재 정권의 범죄 행위를 방조하였다는 역사적 사실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김대중 사건을 두고 발생한 한국 독재 정부와 일본 정부의 음험하고 허위에 찬 결탁 및 공조는 양국의 진정한 화해와 협력을 갈망하는 양심적 양 국민의 여망을 저버리는 행위인 것이다. 이는 근대 이후 한일 간에 전개된 어두운 그림자의 잔영이 현재에까지도 미치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일본 정부는 과거사 반성이라는 측면에서 주변 국가 및 세계의 양심들로부터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다. 일본의 과거사 왜곡은 일제강점기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김대중 납치사건 및 정치공모 등 오래되지 않은 현대사의 과정 속에서도 일본의 음침한 태도는 끈질길 정도로 빛이 바래지 않은 채 지속되고 있다.

그리고 한국이 민주화되고 세계화의 물결 속에서 각종 교류가 광범위하게 전개되는 현 시점에서도 일본의 자세 변화의 징후는 보이지 않는다. 김대중 납치사건에 대한 일본의 적반하장은 위와 같은 우려를 더욱 깊게 만드는 한 가지 사례일 것이다.

진실과 고백에 약한 일본, 그 오명에서 벗어나기 위한 자정 능력이 과연 일본 내에는 없는 것인지 걱정이 된다.

덧붙이는 글 | 장신기 : 연세대학교 김대중도서관 연구원, 연세대학교 사회학과 박사과정 재학중이며 '김대중 정치노선'을 주제로 박사 학위 논문 준비중. 어제 진실위 보고서에 대한 비판글에 이어 이와 관련된 두 번째 글입니다.



태그:#김대중, #박정희, #납치사건,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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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학 박사이며 연세대학교 김대중도서관에서 사료연구 업무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김대중에 대한 재평가를 목적으로 한 김대중연구서인 '성공한 대통령 김대중과 현대사'(시대의창, 2021)를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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