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주당 수업시수…아 이거 돈 더 달라는 얘기네…보니까!"
"저는 뭐 돈으로 해결하는 방법이 가장 쉬운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만일 이 수당을 법제화해서 교육의 질을 높일 수 있다면 반대할 이유가 없다고 봅니다. 어차피 줄 것 확실하게 주고 선생님들도 확실히 해야 하죠.… (교장, 교사들 박수)"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후보가 그동안 밝힌 교육공약을 한마디로 정리해주는 확실한 발언을 내놓았다. 지난 23일 한국교총 토론회 답변자로 참석한 이명박 후보가 "주당수업시수를 법제화할 의향이 있는가?" 라는 한 교사의 질문에 이같이 대답한 것이다.

 

그러나 이날 이 후보가 수업시수 법제화 찬성 입장을 밝힌 것까지는 좋았는데, 무심코 던진 답변 속에서 지금까지 애써 감추고 싶었던 자신의 속내를 들켜버린 듯하다. 즉, '우수한 학생에게 투자하고 교사를 경쟁시키면 교육은 살아날 것'이라는 신자유주의적 교육관이 바로 그것이다.

 

이 후보의 발언은  '수업시수 법제화'의 해법을 '수업 많이 하는 교사들이 수당을 올려달라고 하는 것' 쯤으로 여기면서 교사들을 금전적 욕심을 부리는 집단인 것처럼 치부하고, 돈으로 쉽게 설득되는 존재로 깎아내리는 심각한 오류를 범한 것이다. 대통령을 하겠다고 나선 후보가 이런 정도의 교사관을 가져도 되는지 의아할 따름이다.
 
수업시수 법제화는 수업의 질을 높이자는 것
 
수업시수 법제화란 '아이들에게 가장 질 높은 수업을 제공하기 위해서 필요한 교사 1인당 주당 최대 수업 시수를 법으로 정하고, 이 법의 기준에 따라 '교원의 수급과 배치 계획을 수립하자'는 의미이다. 이 내용은 노무현 대통령의 대선공약이었으며 정권 초기 교육부가 몇 차례 추진하다가 예산 부족을 이유로 차일피일 법제화를 미루고 있는 사안이다.
 
현재 대학교수의 경우 고등교육법 시행령에 따라 년간 30주를 기준으로 매주 최대 9시간 수업을 하도록 법제화되어 있다. 그러나 유치원과 초·중·고를 관장하는 초중등교육법에는 이러한 법조항이 없기 때문에 주당 수업시수가 20시간이 안 되는 교사가 있는가 하면 30 시간 가까이 수업하는 교사가 발생하고 있다.
 
특히 초등학교의 경우 교사 한명이 최대 11과목을 주당 30여 시간씩 가르치고 있기 때문에 제도적으로 질 높은 수업을 보장하기 위해서 ▲외국어 과목과 음악 미술 체육 등의 예체능 과목, 과학 및 실업 과목 등에 전문성을 갖춘 전담교사를 추가로 채용하여 ▲일반교사 주당 수업시간을 20시간 정도로 줄이고 수업의 질을 높이자는 내용이다. 즉, 교사 수를 늘려서 수업의 질을 보장하자는 게 핵심이지 수업 많이 하는 교사에게 수당을 주자는 것이 핵심이 아니다.
 
그러나 이명박 후보는 23일 토론회에서 수업 많은 교사들이 수업 초과수당을 달라고 요구 하는 것처럼 왜곡하는 발언을 내놓았다.  더군다나 선심 쓰듯 "어차피 줄 것 확실하게 주겠다"고 말한 것은 교사들의 자존심에 심각한 상처를 주는 발언이다. 수업시수 법제화의 핵심은 수당이 아닌 정원 확보인데다 마치 교사의 요구는 돈이면 다 해결된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교권은 권력자가 아닌 스스로가 지키는 것
 
이 뿐만이 아니다. 정작 더 큰 문제는 이번 토론회 주최자들과 참석자들에게서도 발견된다. 한국교총이 주최한 이명박 후보 토론회가 교육의제와 관련된 사안이기는 하나 공무원이 일과 중에 학교를 비워놓고 나와서 정치적인 행사에 참여하는 것이 과연 맞느냐 하는 점이다.

 

이는 법적으로 따져서 조치해야 할 문제이다. 이에 대해 서울교육청은 진상 조사를 진행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더구나 이들 중 상당수는 출장비를 받고 참석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날 이 후보가 EBS를 빗대어 던진 '실력 없는 강사론'이 자신들을 빗대어 말하고 있다는 사실도 모른 채 박수를 유도하는 이 후보를 향해 열렬하게 화답하던 참석자들, 사진 한 장 찍으려고 이리 뛰고 저리 뛰던 교장들, 그리고 어떻게라도 자신의 명함을 건네려 애쓰던 교육계 인사들의 낯 뜨거운 모습이 국민들에게 어떻게 비춰졌을지 걱정이 앞선다.
 
교권은 외부 권력자가 아닌 자신들 스스로가 지키는 것이고, 진정한 교육은 돈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란 것을 정말 모르고 계시는지 답답하기만 하다.
 
2007년 10월 23일 참으로 슬픈, 교육 코미디 영화 한편을 보았다.

덧붙이는 글 | 이정희 기자는 현직 교사입니다. 


태그:#이명박교육정책, #한국교총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7,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