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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만에 강원도 정선에 있는 민둥산을 갔다. 오늘은 모객 손님 32명. 지난해 나는 민둥산 전문 가이드였다. 열 번도 넘게 갔다.

 

우리는 능전마을에서 올라간다. 30분 정도는 시멘트 포장길, 그리고 40분 정도는 가파른 산길로 간다. 해발 1118.8m로 높지 않은 산이지만 만만하게 생각했다가는 큰코 다친다. 그러나 어쩌나 정상을 올라가야 억새를 볼 수 있으니. 명성산이나 사자평처럼 산 중턱에 억새가 있으면 힘들지 않을 텐데 여긴 꼭 정상에 올라가야만 억새가 있다. 

 

시멘트길이 끝나는 지점에 발구덕 마을이 있고 조그마한 장이 형성돼 있다. 간이 휴게소처럼 간단한 식사와 술, 그리고 농산물을 판다.

 

가는 길 내내 밭이 있다. 고랭지 채소를 재배하는 밭이다. 10년 전 처음 이곳을 방문했을 때는 좋은 배추는 뽑아서 팔고 좋지 않은 배추만 군데군데 남아 있었다. 관광객들이 그냥 지나칠 리 없다. 특히 우리 대한민국 아주머니들은 정말 위대하다. 모두 한 아름씩 뽑아서 가져갔다. 그러나 지난해 와 보니 버려지는 배추라도 가져가면 벌금을 물게 된다고 곳곳에 플래카드를 붙여 놓았다. 그런데 올해는 잦은 비로 그 마저도 없는 텅빈 밭이다.

 

14만평의 민둥산 억새라니, 가을바람에 나부끼는 모양이 얼마나 장관일까? 그러나 한 가지 짚고 넘어 가야할 게 있다. 민둥산 사진이나 TV 화면 다 믿을 게 못 된다. 억새가 좋은 곳만 가려서 찍고, 또 사진이 잘 나오는데서 각도 맞춰 찍어 놓고는 보는 사람들을 유혹하는 것이다.

 

지난해에도 '민둥산 억새, 민둥산 억새'하며 노래를 하다 왔노라고, 그런데 정작 보니 실망했다고 말하는 손님들이 많았다. 민둥산 억새, 10년 전에는 정말 가슴이 시릴 정도로 환상적이었다. 그런데 올해는 작년보다도 못하다. 내년에는 아마 더 할 것이다. 이젠 사람들한테 시달리는 억새가 가여울 정도다.

 

우리가 꼭 명심해야 할 건, 자연의 천적은 인간이라는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식물은 화장품 냄새와 자동차 냄새(기름 냄새)를 싫어한다는데, 떼로 밀려오는 사람들을 그 가녀린 식물이 어찌 감당하겠는가. 그뿐이 아니다. 아무 데나 들어가 사진을 찍고, 그렇게 사람들이 드나든 자리는 아주 수세미처럼 망가져 버린다.

 

지난해에는 민둥산 정상에서 단속하는 분이 있었다. 정상에서 사진 촬영을 해주면서, 관광객이 길 옆에 쳐놓은 선 안으로 들어가면 어서 나오라고 야단을 치던 숲을 아끼는 분이었다. 그런데 올해는 전혀 단속도 하지 않는다. 한 술 더 떠서, 장사가 한창이다. 아이스크림, 음료수, 커피에 사발면까지, 탁자에다 보온물통까지 갖춰 놓고 장사를 하고 있다.

 

우리는 지금 축제 딜레마에 빠졌다. 지자체를 하면서 자기 고장을 알리겠다고 시작한 축제가 이젠 뒤로 물러설 수도 앞으로 나아갈 수도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지금 와서 격년제로 한다든가 쉬었다 한다고 하면, 축제 때문에 생겨난 모든 시설물들과 축제로 콩고물이라도 챙겼던 지역주민들이 들고 일어날 건 뻔한 일이기 때문이다. 

 

등산객은 넘쳐난다. 빨주노초파남보, 완전 무지개 빛깔로 온산을 물들이고 있다. 억새는 사그라지고 그 대신 사람들의 기세가 울긋불긋하게 산을 수 놓고 있는 격이다. 억새 구경보다 사람 구경에 정신을 팔아야 할 지경이다.

 

민둥산으로 오르는 길은 세 가지다. 증산초교에서 올라오는 길, 우리처럼 능전마을에서 발구덕 마을로 올라오는 길. 그리고 화암약수에서 올라오는 길이다. 길이 세 군데나 되니, 자칫 잘못하면 다른 길로 갈 수도 있다. 한 번은 노인 부부가 화암약수 쪽으로 가는 바람에 아주 혼이 난 적이 있었다.

 

오늘도 두 분이나 내게 길을 물어왔다. '이리로 가면 어디가 나오나요?' 하고. 나는 그분들에게 길에 대해 설명하고 다시 전화통화를 한 후에 움직이라고 말해 주었다. 그런데 산에서는 휴대폰 통화가 원활하지 않다. 여러 명이 같이 가는 거라면 꼭 길에 대해 알아보고 약속을 잘해야 한다. 나는 우리 손님들에게 몇 번이나 길에 대해 설명하고 꼭 올라간 길로 내려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내려올 때는 시멘트 길이 아닌 산속으로 난 지름길을 선택해서 왔다. 시간을 좀 넉넉하게 잡았더니 모두 일찍 내려와서는 막걸리 파티를 한 모양. 이제 문제는 화장실이다. 출발을 하고 얼마 안 돼서 앞에 앉은 여자 분이 신호가 왔단다.

 

길은 굴곡이 심한 커브길이고 변변한 주유소도 휴게소도 없는 상황. 하지만 볼 일이 급한 사람 심정은 오죽할까? 단체 여행길에는 늘상 있는 화장실 문제. 사람은 한 끼 밥은 건너뛸 수 있는데, 배설은 한 번도 참아 내지 못한다.

 

사람에게 배설처럼 이기적인 행위가 있을까? 가장 가까운 사람(부모나 자식, 남편의 것도)의 것도 대신해 줄 수 없는 행위. 기사님은 내 부탁에 남자냐 여자냐를 물었다. 훨씬 복잡한 여성의 몸 구조. 20분쯤 가서야 휴게소가 나왔고 차를 세웠다.

 

한 번은 단체 여행에서 남자들이 어찌나 마셔댔던지 국도변에 차를 세워 놓고 차 옆에서 일렬로 서서 단체로 해결한 적도 있었다. 여행은 길 위에서 해결해야 하는 일들이 많아, 그만큼 에피소드도 많다. 그래서 가이드의 첫 번째 임무는 말썽이 일어나지 않게 수습을 잘하는 것이다. 

덧붙이는 글 | 민둥산에는 지난 21일에 다녀왔습니다.


태그:#사람, #억새, #민둥산, #가을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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