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BBK 주가조작 사건의 핵심 인물인 김경준씨의 송환 문제로 오늘(23일) 신문 지면이 뜨겁다. 그동안 침묵을 지켜왔던 신문들까지 김경준씨 송환 문제에 한마디씩 거들고 나섰다.

 

이명박 후보 측의 이중적 플레이가 유발한 측면이 크다. 김씨가 조속히 귀국해 법의 처벌을 받아야 한다는 이명박 후보의 ‘소신 발언’과는 달리 정작 미국 현지에서는 이 후보의 대리인들이 김씨의 송환을 연기해달라는 송환유예신청을 잇달아 냈기 때문이다.

 

이 후보 측의 처신은 누가 보더라도 이중적이다. 이 때문인지 <조선일보> 조차도 오늘 사설에서 ‘이 후보, 똑 같은 일로 국민 인내심 시험하느냐’고 역정을 냈다. “지금처럼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 똑같이 반복되면 진실 여부와 관계없이 이 후보만 다치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이 후보측 이중적 처신 문제 삼은 언론들

 

BBK 주가조작 의혹 이 후보 연루설을 집중적으로 보도해온 <한겨레>는 물론 <경향신문>과 <서울신문> 그리고 <국민일보>와 <세계일보>까지 일제히 사설을 쓰고 이 후보 측의 이중적인 처신을 문제 삼았다. <국민일보> 사설은 “자동차가 우회전 깜빡이를 켜고 좌회전하는 모양새니 이 후보의 진실성을 의심하는 국민들이 있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그러나 오늘 이명박 후보 측의 이중적 처신과 관련한 신문 사설 가운데 가장 주목되는 것은  <한국일보> 사설이다. <한국일보>는 사설에서 김경준씨 귀국 문제에 대해 이명박 후보와 한나라당 지도부의 ‘분명한 입장’을 촉구했다. 하지만, <한국일보> 사설이 주목되는 것은 그 다음 대목 때문이다. <한국일보>는 김경준씨의 조속한 송환의 필요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외국에 머물고 있는 범죄인은 조속히 송환돼 재판을 받아야 한다는 게 원칙이다. 그러나 솔직히 이번 경우에도 과연 원칙이 그대로 적용되어야 하는지 의문이다. 대선이 두 달도 남지 않았다는 시기적 특수성 때문이다. 5년 전의 ‘병풍 사건’에서 보았듯, 국민 모두가 알고 싶어 하는 ‘실체적 진실’은 대선이 끝난 한참 뒤 최종 판결을 통해서야 비로소 드러난다. 반면 일단 수사가 시작되면 범죄인의 진술은 모두 사실인양 보도되고 대선에 커다란 영향을 준다.”

 

한마디로 김경준씨가 대선 전에 귀국할 경우 검찰 수사를 통해 사건의 실체적 진실이 가려지지 않은 상태에서 김경준씨의 ‘주장’만 사실로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과연 그의 조속한 귀환이 필요한지 의문이라는 것이다.

 

나름 조리에 맞는 <한국일보> 그러나...

 

<한국일보> 사설은 “대선 전에 재판이 끝날 수 없음을 알면서 ‘진실’을 이유로 무조건 조기 송환을 주장하는 것은 무조건 반대와 다를 바 없는 거짓말”이라고도 했다. “따라서 검찰은 진실과 동떨어진 정치적 부수효과를 차단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한 후 김씨 송환에 나서는 것이 맞다”고도 했다. 지금 이 상태로는 김 씨 송환을 해서는 안된다는 이야기다.

 

결과적으로 이명박 후보와 한나라당의 걱정을 이처럼 분명하고 훌륭하게 대변한 ‘사설’도 없을 것이다.

 

<한국일보>의 사설이 이명박 후보와 한나라당의 입장을 두둔하기 위한 것이라고 지레 예단할 필요는 없다. 나름대로 조리가 맞는 대목이 있기 때문이다. 김경준씨가 귀국한다고 해도 ‘실체적 진실’은 대선이 끝난 한참 뒤 ‘최종 판결’을 통해서야 비로소 드러날 것이라는 예상은 크게 빗나간 것은 아닐 것이다.

 

실제 검찰 수사가 과연 대선 전에 끝날 수 있을 것인지도 의문이며, 검찰 수사가 어떤 결론을 내든 대법원까지 가 형사적 재판의 결론이 나기까지는 한참 걸릴 것은 분명하다. 따라서 “‘실체적 진실’은 대선이 끝난 한 참 뒤 ‘최종 판결’을 통해서야 비로소 드러날 것”이라고 보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한국일보> 사설 내용처럼 또 “그 과정에서 ‘범죄인의 진술’이 모두 사실인양 보도되고 대선에 큰 영향을 줄 수"도 있다. 하지만 <한국일보>의 이런 분석과 주장에는 함정이 있다.

 

먼저 이런 주장에는 ‘실체적 진실’의 규명은 곧 사법적 판단에 의해서만 가능하다는 사법만능주의가 깔려 있다. 또 사법부에 대한 ‘절대적 믿음’을 전제로 해야 한다. 사법부의 판단이 곧 ‘실체적 진실’이라는 등식도 성립해야 한다.

 

언론들이여, 좀 더 '집요한 관심'을 갖자

 

그런데 과연 그러한가? 한국의 사법부는 ‘실체적 진실’을 가리는 ‘최종 심판관’이 될 수 있는가. 그렇게 믿을 수 있는가?

 

물론 사법부가 현실 제도 속에서는 그나마 ‘사회적 정의’의 심판기구임을 부정할 수 없다. 법의 테두리 안에서 실체적 진실을 가리는 ‘제도적 역할’도 수행한다. 하지만, 모든 제도와 법이 그렇듯이, 또 모든 사회시스템이 그렇듯이 사법부 또한 완결 무결할 수는 없다. 특히 법적 판단이나 판결은 ‘실체적 진실’과는 거리가 먼 때가 적지 않다.

 

사법부가 실체적 진실을 전혀 밝혀낼 수 없다는 주장을 펴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실체적 진실 규명의 몫을 모두 사법부의 책임으로 떠넘기거나, 사법부에서만 실체적 진실을 규명할 수 있다고 하는 주장은 실체적 진실 규명을 회피하거나, 오도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자 할 뿐이다. <한국일보> 사설은 그래서 위험하다.

 

BBK 주가조작 의혹과 관련해 김경준씨의 귀국이 주목되는 것은 검찰의 수사 때문이기도 하지만, 김씨가 주장하고 있는 이명박 후보 연루설에 대한 의혹을 해소할 수 있는 직접적인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점 때문일 것이다.

 

김씨 주장의 사실 여부는 검찰 수사를 통해서 밝혀질 수도 있겠지만, <한국일보> 같은 언론이 조금만 더 관심을 갖고 실체적 진실 규명에 나선다면 그 전모를 의외로 쉽게 파악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굳이 드레퓌스사건까지 언급할 필요도 없다. 요즘 논란이 되고 있는 이른바 권력형 사건들만 하더라도 언론의 ‘집요한 관심’이 거둔 성과가 아니던가. 진실을 밝혀내고, 진상을 드러내는 힘은 바로 ‘당신’, 그리고 ‘우리’한테 있다.


태그:#BBK의혹, #김경준, #이명박, #한국일보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