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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회 전국중학생 편지쓰기 경진대회  서울중앙우체국 신청사에서 열렸던 제8회 전국중학생 편지쓰기 경진대회 개회식
▲ 제8회 전국중학생 편지쓰기 경진대회 서울중앙우체국 신청사에서 열렸던 제8회 전국중학생 편지쓰기 경진대회 개회식
ⓒ 최정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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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토요일(20일) 우리 동네에 사는 중학생 네 명을 데리고 서울 명동 나들이를 했다. 명동 중앙우체국 신청사에서 열렸던 제8회 전국중학생편지쓰기대회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경기도 부천에서 출발한 우리는 오후 2시부터 열린 행사에 참석하려니 시간이 빠듯했다. 이날은 노는 토요일이 아니어서 학생들 수업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황급히 행사장으로 향했다.

처음 이 대회 참여를 권했을 때 아이들 반응은 시큰둥했다. 놀토가 아닌데다 글 쓰는데 자신이 없고, 중간고사가 막 끝난 주라 친구들과 PC방, 찜질방 가기로 약속을 했다는 등 이유가 분분했다. 또 “수상을 못하면 창피하고 시간이 아깝다. 명동은 처음 가보기 때문에 길 잃어버리면 안 된다”는 이유도 들었다.

“수상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런 대회에 참가해 보는 데 의의가 있다. 또래들이 편지 쓰기에 응하는 모습만 보고와도 추억이다. 멋진 선물도 준단다.”

어떤 말을 하면 아이들의 귀가 솔깃해질까 강변을 토하며 설득했다. 결국 4명의 남자 아이가 가겠다고 나섰다. 그것도 자장면을 사달라는 조건을 붙이면서. 그래도 담배 연기 자욱한 PC방보다 편지쓰기대회를 택해준 아이들이 고마웠다.

“편지쓰기를 통해 사라져가는 편지쓰기 활성화와 학생들의 정서함양, 웃어른을 공경하고 남을 배려하는 마음씨를 갖게 한다. 또 문장력 향상을 통한 학업능력 신장 및 건강한 면학분위기 조성에 기여하고자 한다.”

이와 같은 이 대회의 목적처럼 편지 쓰는 과정을 거치면서 주위를 돌아보고 자신을 성찰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졌다.

행사장에 도착하니 여드름이 보송보송 난 학생들의 열기로 가득 찼다. 이번 대회는 전국 중학생 편지쓰기대회를 위한 예선으로 서울체신청이 주최하고 (사)한국편지가족 서울·경인지회가 주관한 행사로 서울·경인지역 학생 400여 명 참여했다.

글제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쓰는 글이었다. 나와 함께 간 학생들은 편지 쓸 대상을 미리 정해 온 모양이었다. 최근 읽은 책 주인공에게 또는 자기를 괴롭히는 친구, 형한테 쓰기로 마음을 먹었단다. 그런데 주제가 ‘사랑하는 사람에게’로 발표되는 순간 눈이 둥그레지며 사랑하는 사람 찾기에 바빠졌다.

진범이라는 학생이 먼저 보물이라도 찾은 듯이 소리쳤다. 투병 생활을 하고 있는 큰아버지에게 쓴다는 것, 여기에 힌트를 얻었는지 지환이는 지방 근무를 하고 있는 어버지께 고백할 게 있다며 글을 쓰기 시작했다.

 책상이 아니어도 좋다. 바닥에 엉덩이를 깔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편지를 쓰고 있는 중학생들.
 책상이 아니어도 좋다. 바닥에 엉덩이를 깔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편지를 쓰고 있는 중학생들.
ⓒ 최정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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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사장 로비에서 엉덩이를 바닥에 깔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글을 쓰는 모습이 기특했다. 편지지 두 장을 받아들고 한 장만 쓰고 내겠다던 아이들은 어느새 한 장을 훌쩍 넘겼다.

아이들의 마음을 훔쳐보고 싶었다. 백지 위에 어떤 그림을 그렸을까? 진범이는 오랜 군 생활을 하다 암에 걸려 전역한 큰아버지께 위로를 담은 내용이었다. 가족에게 편지를 쓰는 일은 처음이란다. 부산에 있는 큰 댁 주소를 몰라 전화로 물었다. 진범이 큰 어머님께 자초지종을 설명하자 정말 보고 싶은 편지라며 고마워했다.

지환이의 고백은 의미심장했다. 중3인 형이 방황한다는 고백이었다. 내용인즉 “가족을 위해 지방에서 열심히 일을 하고 계신 아버지께 형 이야기를 하면 아버지의 마음을 아프게 할 수 있다. 그러나 어머니가 해결하지 못하는 부분을 아버지가 해결하여 근본적으로 우리 가족의 행복을 찾자는 뜻에서 글을 쓴다”는 어른스런 논리에 가슴 뭉클했다. 형의 모습을 보며 자신은 절대 그러지 않아야겠다는 지환이를 보며 로비를 꽉 메운 아이들의 생각도 건전할 것이라고 믿었다.

 (사)한국편지가족회원들과 학부모, 인솔 교사들이 학생들이 편지를 쓰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사)한국편지가족회원들과 학부모, 인솔 교사들이 학생들이 편지를 쓰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 최정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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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하버드대 사상 여성으로는 최초로 최근 취임한 파우스트 총장이 취임사에서 강조한 말이 떠오른다.

“교육은 사람을 목수로 만드는 것이라기보다는 목수를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다.”

편지쓰기대회도 아이들을 올곧게 자라도록 하는 큰 교육이라는 느낌을 받으며 행사장을 나왔다. 선물로 받은 간식, 야광 펜을 들고 나오며 지환이가 한마디 던졌다.

“몇 백 명의 아이들에게 선물을 주려면 돈 많이 들겠다. 수상하면 상금도 있다던데 이 비용 다 누가 내요?”

세금의 필요성을 일러주며 국민이 낸 세금이 유용하게 쓰이는지 감시하는 일도 중요하다는 말도 덧붙였다.


#한국편지가족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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