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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침체된 한국 가요계에 활력을 불어 넣겠다"는 당찬 포부로 막을 연 <쇼바이벌>이 결국 해를 넘기지 못하고 6개월만에 막을 내린다. 폐지 사유는 저조한 시청률.

 

초반 정체성을 찾지 못해 어수선하던 프로그램이 현장의 열기 가득한 라이브 공연에 힘입어 차츰 입소문이 나기 시작, S-1 그랑프리를 기점으로 새로운 형식의 가요 프로그램으로 완전히 자리잡는 듯 보였지만 끝내 저조한 시청률에 발목이 잡혀 아쉽게 막을 내리게 된 것이다.

 

그러나 쇼바이벌 폐지가 공식화되자 인터넷에선 폐지 반대 서명 운동이 일어나는 등 불만의 목소리가 확산되고 있다. 비록 시청률은 낮지만 프로그램의 취지에 공감하는 시청자들이 의외로 많다는 얘기다.

 

사실 국내 가요 프로그램 중에서 가수들의 라이브 공연을 만끽할 수 있는 무대는 손으로 꼽을 정도로 적다. 더구나 라이브도 그냥 라이브가 아닌 배틀 형식의 라이브를 추구하는 프로그램은 <쇼바이벌>이 유일하다.

 

물론 전례 없는 배틀 형식의 라이브 무대를 소화해야 하는 가수들 입장에선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란 자조가 나올 만도 하지만, 오히려 주어진 기회에 감사하고 공연을 즐기는 가수들의 모습에서 가슴 뭉클함을 느낀 적도 한두 번이 아니다.

 

<쇼바이벌>과 <아메리칸 아이돌>

 

따지고 보면 <쇼바이벌>은 한국판 <아메리칸 아이돌>이라 할 수 있다. 프로그램 자체의 틀도 그렇고, 독설에 가까운 심사평을 하는 캐릭터가 공통적으로 등장한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차이가 있다면 이미 가요계에 입문한 가수들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과 <아메리칸 아이돌> 외에도 K-1 방식을 차용했다는 점이다.

 

그러나 만일 <쇼바이벌>이 단지 "<아메리칸 아이돌>을 K-1식으로 변주해 만든 미메시스(모방)"에 불과했다면 네티즌들의 자발적인 폐지 반대 서명 운동으로까지 이어졌을까? 틀림없이 개편 때마다 되풀이되는 베끼기 논란을 재연하다 소리 없이 사라졌을 것이다. 그렇다면 <쇼바이벌>만의 차별화된 장점이 시청자의 마음을 움직였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사실, <쇼바이벌>은 처음부터 한계가 보이는 기획이었다. 우선 <아메리칸 아이돌>에서처럼 독설가 캐릭터를 전면 배치하기 어려운 구조적 한계를 들 수 있다. 아마추어가 아닌 신인 가수들을 상대로 신랄한 독설을 뿜어낼 괴력의 소유자를 찾기도 힘들 뿐더러 설령 있다 한들 온정주의와 각종 기획사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얽힌 한국 가요계의 현실에서 비난의 수위는 자연히 낮아질 수밖에 없다. 이같은 문제로 인해 <쇼바이벌>은 프로그램을 장기적으로 끌고 나갈 캐릭터 구축에 실패했고, 이는 곧 프로그램의 흥미를 반감시켜 저조한 시청률로 이어졌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이미 가요계에 입문한 가수들끼리 배틀을 벌인다는 발상 자체의 생소함, 위험성에 있다. 마이클 잭슨, 브리트니 스피어스, 비욘세, 보이즈 투 맨, 블랙 아이드 피스 등이 <아메리칸 아이돌>의 라인업이 될 수 없듯이 이미 가요계에 입문한 가수들끼리 노래 실력을 겨룬다는 발상 속엔 일종의 금기가 내포되어 있다. 실제로 <쇼바이벌>을 발판으로 재기에 성공한 가수들도 있지만 반대로 냉정한 심판에 가로막혀 입지가 좁아진 가수들도 있다. 

 

<쇼바이벌> 시즌제로 전환하라

 

그럼에도 <쇼바이벌>이 침체의 늪에서 허덕이는 한국 가요계와 매너리즘에 빠져 있는 한국 가요 프로그램에 한 줄기 신선한 바람을 불어 넣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특히 기존의 가요 프로그램에서 볼 수 없었던 참신한 시도들-이를테면 베이지가 장윤정의 '어머나'를 재즈풍으로 부른다든지 아카펠라 그룹 '스윗 소로우'가 댄스를 시도한다든지-은 <쇼바이벌>만이 가진 매력이었다. 그런 모습은 수십 년 동안 천편일률적인 장면을 연출해 온 가요 순위 프로그램과 립싱크 공연에 식상해 있던 시청자들에게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또한 <쇼바이벌>은 패기 넘치는 신인들의 도전 정신을 부각하는 동시에 그 이면에 감춰진 모습들 - 도전자들의 솔직한 감정 표현, 화려한 무대 뒤의 땀과 눈물 등 - 을 세심하게 대비시킴으로써 자칫 겉멋에 치우칠 수 있는 화면을 한국적 정서로 물들이는 데 성공했다.

 

그런 의미에서 <쇼바이벌>은 비록 고정 프로그램으로 자리잡는 데는 실패했지만, 기존의 획일적인 가요 프로그램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을 뿐만 아니라 라이브 공연에 목말라 있는 팬들과 무대를 갈망하는 신인가수들에게 이상적인 만남의 장(場)을 제공했다는 점에서 대안 프로그램의 역할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쇼바이벌>의 아름다운 도전은 여기까지다. 이번에도 역시 고질적인 시청률 지상주의에 발목이 잡혔다. 시청률 지상주의 앞에선 1만3천명이 동참한 폐지 반대 서명 운동도 무용지물이었다.

 

그래서 한 가지 제안을 할까 한다. 굳이 고정 프로그램이 아니어도 좋으니 <쇼바이벌>을 시즌제나 K-1처럼 일정 기간 동안 대회를 개최하는 방식으로 전환하는 것은 어떨까?

 

인순이와 양희은, 송대관과 태진아, 보아와 비, 소녀시대와 원더걸스의 맞대결. 생각만 해도 재미있지 않은가? (물론 그와 같은 매치가 실제로 성사되기는 어렵겠지만.)

 

아무쪼록 <쇼바이벌>, 그 화려한 무대의 막이 다시 열리길 기대한다.


태그:#쇼바이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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