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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열한 인권위와 법무부의 충돌

 

인권위와 법무부의 의견 대립이 치열하다. 법무행정을 담당하는 법무부와 헌법에서 보호하는 인권의 최소기준을 지키고자 하는 인권위가 서로 대립하는 것이다. 일주일 간의 대립장면을 보자.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보자. 

 

지난 18일 국가인권위원회(위원장 안경환)는, 소년법 적용 연령을 현재의 12살 이상에서 10살 이상으로 낮추자는 법무부(장관 정성진) 개정안에 대해 현행대로 12살 이상으로 유지해야 한다고 했다. 15일에는 수용자를 폭행한 교도관을 징계하라는 인권위 권고를 교도소 측이 거부하자 인권위는 안양교도소 수용자 폭행장면이 담긴 폐쇄회로TV 화면을 공개하기로 결정했다. 당시 법무부 관계자는 “인권위의 모든 권고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했다. 

 

뿐만 아니라 지난 11일 국회 행정자치원회 김정권 의원(경남 김해갑)의 보도자료에 따르면 법무부 인권국은 "법무행정과 관련된 인권침해사건 조사 및 구제업무를 수행하고 있고, 국가인권위의 기능이 일부 유사한 측면이 있기 때문에 통합시켜달라"고까지 요청했다고 한다. 국가기관 간의 사활을 건 듯 보이는 일주일간의 충돌장면이다. 

 

 

2007년 2월 여수, 멀기만 한 출입구

 

시계바늘을 거꾸로 돌려 지난 2월 11일로 돌아가보자. 

 

지난 2월 새벽 여수에서는 살기 위한 처절한 비명소리가 진동했다. 체불된 임금을 받기 위하여 여수외국인보호소에서 대기 중이던 불법체류자 등 55명의 목소리였다. ‘보호’를 받고 있던 55명의 외국인은 방화로 인해 일어난 불과 연기를 피하고자 했으나 그럴 수 없었다. 

 

보호소 각 동의 출입문은 이중자물쇠로 잠겨있고, 자물쇠의 열쇠는 다른 곳(2층 상황실 열쇠보관함)에 보관되어 있었으며, 그 열쇠보관함의 열쇠는 휴게실에서 쉬고 있던 상황실장이 보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화재 등 비상상황에서 제대로 ‘보호’받기에는 너무나 길고도 긴 과정다.

 

법무부에게는 생명보다 소중한 수용자의 '보호'

 

보호소 직원이 뒤늦게 열쇠를 가져온 이후에도 그들은 불이 난 곳을 빠져나갈 수 없었다.  뜨거운 열기와 매캐한 연기 속에서 ‘생명을 구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수용자의 보호’, 말하자면 그들이 ‘도망가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법무부가 중요시하는 ‘수용자의 보호’를 위해 수용자 중 9명은 사망했고, 18명은 중-경상을 입었다. 이 화재사망사건은 이후 치료과정과 강제출국, 강제부검 등 후속조치 과정에서도 역시 인권에 취약한 한국사회의 문제점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이제 여수 외국인보호소사망사건이 발생한 지 8개월이 지났다. 인권위의 이번 사건에 대한 권고(4월 9일)가 내려진 지도 벌써 6개월이 지났다. ‘인권위 권고나 의견을 수용하라’는 노무현 대통령의 지시(8월 21일)가 있은 후로도 2개월이 지났다. 이번 사건에 대한 인권위의 권고결정의 이행정도를 봄으로써 경제규모 세계 12위 국가인 한국의 현실을 보자.

 

인권위 권고를 미수용한 유일무이한 곳, 법무부

 

인권위는 지난 4월 법무부, 노동부 등 7개 기관에 대해 출입국관리법의 개정을 포함하여 외국인보호소 시설전반의 안전성을 증진시키고, 외국인노동자들의 임금체불 등에 대한 실질적 권리구제 체계 수립 및 근로감독업무를 강화할 것 등을 권고했다. ‘인권위의 권고나 의견을 수용하라‘는 대통령의 지시가 있어서인지 각 기관에서는 인권위의 권고수용보고를 신속히 통보했다. 

 

유일하게 법무부 1곳을 제외하고 6월 22일 노동부의 권고수용통보를 시작으로 여수경찰서장(2007. 7. 3. 회신), 여수출입국사무소(2007. 7. 19. 통보), 광주지방노동청여수지청(2007. 7. 23.), 소방방재청장(2007. 7. 30. 회신)의 인권위 권고수용통보가 이어졌다. 인권위의 ’여수출입국화재사고 직권조사 권고 수용보고‘를 보면 법무부는 현재 <출입국관리법> 법률안 개정 진행중으로 개정 후 권고수용여부를 통보하기로 했다고 한다.

 

다시 재발할 수밖에 없는 외국인보호소 화재사망사건

 

법무부는 지난 9월 24일 우리나라에 체류중인 외국인 수는 모두 100만 254명으로 사상 처음 100만명을 돌파했다고 발표했다. 중소기업중앙회가 국회 산업자원위원회 소속 이성권 의원(한나라당)에게 제출한 ‘최근 10년간 외국인 인력수급현황 및 송출국가별 이탈자 현황’ 자료에 의하면 지난 97년부터 올해 3월까지 국내에 들어온 외국인 산업연수생은 15개국 23만4261명이며, 이중 14.3%인 3만3500명이 불법 체류자로 이탈한다고 한다. 

 

종합해 보면 한국 내에서 거주하는 외국인의 숫자는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늘어날 것이며, 불법체류자 또한 증가할 것이다.  불법체류 등으로 보호소에 수용되는 외국인은 여전히 존재할 것이며, 여수에서 발생한 화재사건의 발생가능성 또한 상존하는 것이다.

 

다시 인권이다

 

오늘(19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최재천 의원(대통합민주신당, 서울 성동 갑)의 보도자료를 보자. 최 의원은 인권위의 권고를 수용하지 않은 법무부에 대해 “지난 2월 여수에서의 참사의 시작은 ‘방화’가 아니라 외국인 불법체류자에 대한 마녀사냥식 단속이 바로 그 시작”이며, 이어 “수용자 보호와 감독, 그 이후의 제대로 된 치료와 보상을 제대로 하지 못한 법무부에 총괄적인 책임이 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또한 최 의원은 “법무부는 다시는 이와 같은 사건이 재발하지 않도록 외국인 노동자 보호정책에 대한 근본적인 검토를 해야 하며, 경제선진국으로서뿐만 아니라 인권선진국으로서 국격(國格)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제선진국으로서의 한국의 위상을 법무부가 인권후진국이라는 오명으로 덮고 있다는 법무부에게는 뼈아픈 지적이다.

 

철창에 갇힌 인권을 석방하라!

 

과이불개 시위과의(過而不改 是謂過矣), ‘잘못하고도 고치지 않는 것을 잘못이라 한다’는 논어 위령공(衛靈公) 편에 나오는 공자의 이야기이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법무부는 제대로 된 ‘보호’를 위해 인권위의 권고를 수용하여 조속히 출입국관리법 개정안을 마련하여 국회에 제출해야 한다.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것, 잘못을 고치지 않는 것은 또다른 참극을 부르는 또 하나의 시작점이 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한상범 기자는 최재천 의원실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태그:#여수, #법무부, #인권위원회, #최재천, #불법체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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