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계속 목을 조여오면 견딜 길이 없다. 옛날 자살도 이런 데서 나온 거다. 양돈업계가 도산할 수밖에 없다."

 

그의 목소리는 격양돼 있었다. 그는 인터뷰 내내 계속 울려대는 전화벨 소리를 무시한 채 업계의 사정을 하나라도 더 전하려 했다. 김동환(58) 대한양돈협회장은 "(한-EU) FTA가 체결되면 농가 중 몇 사람 살아남지 못한다"는 말을 여러 차례 쏟아냈다.

 

한-유럽연합 자유무역협정(한-EU FTA) 4차 협상이 시작된 15일 오후 5시 30분 김 회장을 만났다. 그는 늦은 시간에도 서울 서초동 협회사무실에서 기자를 기다렸다. 이날 오전엔 협상장인 신라호텔 앞에서 'FTA 결사반대'라고 쓰인 빨긴 띠를 두르고 거친 말을 내뱉기도 했다.

 

김 회장은 현재 양돈업계는 곡물가격 상승과 미국산 쇠고기 수입으로 인한 돼지고기 값 하락으로 이중고를 겪고 있다고 토로했다. 한-EU FTA에 대해 묻자 그는 EU의 보조금 문제를 지적했다. "유럽의 농업·수출 보조금은 약 750억 달러로 한국의 45배에 이른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이어 "지금 EU산 돼지고기 가격이 우리의 45%인데, FTA 되면 2014년부터 관세가 0(영)"이라며 "유럽은 이미 이런 방법으로 해서 아프리카 국가들의 양파시장, 양계시장을 초토화시켰다"고 말했다. 다음 차례는 한국 양돈업계라는 게 김 회장의 생각이다.

 

정부에 대한 날선 비판이 이어졌다. 그는 "협상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모른다"며 "국가적으로 꼭 해야 하다면 생산자와 협의를 해야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정부는 이를 뒷전으로 미뤄놓고 FTA를 쭉 밀고나가고 있다, 그래서 농가들이 반발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 회장은 ▲분뇨처리·축사 현대화 시설 자금 지원 ▲돼지고기 가격 안정제 실시 ▲음식점 원산지 표시제 실시 ▲도축세 폐지 등을 요구했다. 그 대신 가격을 내리고 육질을 개선하는 등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하겠다고 했다.

 

한-EU FTA가 사람들의 관심과 시선에서 멀어진 만큼 김 회장의 목소리에는 절박함이 묻어났다. 그의 얘기를 들어보자. 다음은 김동환 대한양돈협회장과의 일문일답이다.

 

협상 진전은? "저희들도 알았으면 좋겠다"

 

- 한-EU FTA 협상에서 돼지고기 개방 문제가 논의되고 있다. 협상은 어디까지 진전이 됐나?
"저희들도 알았으면 좋겠다. 협상단이 그 문제에 대해서 전혀 언급하고 있지 않다. 김한수 FTA 추진단장은 삼겹살이 부족하니까 이미 들어온 다른 외국산과 함께 EU산이 들어와서 경쟁하면 되지 않느냐고 했다.

 

가르시아 EU 협상 대표와 만나보니 '낙농은 EU에서 조건을 제시하고, 돼지고기는 한국에서 제시하기로 했다'고 한다. 그래서 '막판에 돼지고기와 자동차 빅딜하는 것 아니냐'고 물었더니 '아직 예측 할 수 없다'고 말했다."

 

- EU도 돼지고기 개방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이후에 가르시아 대표는 '돼지고기는 절대 양보할 수 없다'고 했다. 자기들은 꼭 돼지고기를 양허에 포함시키겠다는 거다. 반면, 한국 정부에서는 '최대한 농업을 보호하는 쪽에서 협상을 하겠다'는 얘기만 하고 있다."

 

- 양돈 업계의 현재 상황은 어떤가?
"굉장히 어렵다. 우선 미국산 쇠고기가 들어오면서 작년에 비해 20% 정도 돼지고기 값이 하락했다. 또한 곡물가격이 작년에 비해 20% 올랐다. 다른 곳보다 가장 어려운 상황에 처했다. 정부는 FTA를 통해 양돈업계가 살아남든지 구조조정 하든지 알아서 하라고 떠들고 있다."

 

- 한-EU FTA에 대해 어떠한 입장을 가지고 있나?
"한-EU FTA에서 돼지고기를 양허제외 품목으로 하는 것이 양돈 농민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1000두 규모의 농가는 이미 5억~10억원 가량 시설 투자 했다. 계속 목을 조여 오면 견딜 길이 없다. 옛날 자살도 이런 데서 나온 거다.

 

한-EU FTA가 국가적으로 꼭 해야 할 사항이라면 생산자와 협의를 해 지켜야 될 선을 얘기해야 한다. 하지만 정부는 이를 뒷전으로 미뤄놓고 FTA를 쭉 밀고나가는 거다. 그래서 농가들이 반발하는 거다."

 

한-EU FTA, 한미 FTA 2배 이상의 피해... "양돈가 도산할 것"

 

- EU산 돼지고기와의 경쟁이 그렇게 어렵나?
"EU산 돼지고기는 가격이 우리의 45%밖에 안 된다. 이미 현재 수입육의 45%가 EU산이다. 품질도 우수하다. 유럽 쪽은 동물복지 차원까지 가있다. EU산 돼지고기를 '세계에서 가장 안전하고 위생적이고, 동물들이 아주 편하게 사육될 수 있는 환경에서 나온 고기'라고 하면 소비자들은 어떤 걸 먹겠나?

 

유럽은 돼지고기에 대한 농업·수출 보조금이 약 750억 달러다. 한국의 45배다. FTA되면 2014년부터 관세가 0이다. 유럽은 이미 아프리카 국가들과 FTA를 해서 세네갈 양파시장도 망쳤고, 양계시장도 초토화시켰다. 한국 양돈업계를 망치려고 한다."

 

- 한-EU FTA가 현 상태에서 체결됐을 때, 어느 정도의 피해가 예상되나?
"미국산 소고기 수입되면서 관세 0(영)이 될 때 연간 8000억~1조800억원의 피해가 예상된다. 우리업계 1년 매출액이 3조 7000억인데, 피해 규모가 1/3이다. 한-EU FTA는 미국에 개방했던 수준보다 훨씬 높을 것이다. 한-EU FTA 체결되면 한미FTA의 2배 이상의 피해가 올 것이다. 농가 중 몇 사람 살아남지 못한다. 양돈가가 도산할 수밖에 없는 수준일 것이다."

 

- 정부에 요구하는 구체적인 대책은 무엇인가?
"현재 분뇨처리 문제, 소모성 질병 등으로 연간 1조원의 피해를 본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분뇨처리·축사 현대화 시설 자금이 필요하다. 또한 동물 복지차원에서 접근해야 하기 때문에 더 많은 비용이 필요하다.

 

EU산 돼지고기가 들어오면 자급률 낮아지고 가격 떨어지니 돼지고기 가격 안정제가 필요하다. 우린 또한 음식점 원산지 표시제 실시, 도축세 폐지, 종돈장 청정화, 브랜드 계열화 등을 요구한다. 'FTA 특별 이행법'을 만들어서 보장해줘야 한다."

 

- 지난 9월 원정투쟁단으로 유럽에 다녀왔는데, 그쪽 양돈 업계 분위기는 어떤가?
"유럽 양돈 업계 사람들과 대화했다. 그 사람들도 사정이 어렵다. 젖소 60마리, 돼지를 조금 기른다는 농민과 만났는데, 생계가 어렵다고 한다. 벨기에서는 하루에 70여명의 농민이 이탈하고 있다고 한다. 인구가 1000만명인데, 상당히 많은 숫자다."

 

- 유럽 농민에게는 한-EU FTA가 좋은 기회 아닌가?
"그 사람들은 좋은 기회라는 걸 피부로 못 느끼고 있다. 한국에 돼지고기, 육가공 제품 팔아서 자기들 수지가 높아진다고 기대하는 것보다는 자유무역하면 자기들 입지 좁아지지 않겠느냐고 우려를 했다. FTA하면 약자인 노동자와 농민 피해를 볼 것이라는 차원에서 고민하고 있었다."

 

"이 상태 지속되면 농민들 격앙, 11월에 극렬한 투쟁"

 

- FTA로 싼 수입산 돼지고기가 들어오면 소비자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것 아닌가?
"우리도 가격을 높게 하자는 게 아니다. 현재 도매가격이 3200원인데 10년 후에는 2600원까지 생산비를 낮춰 견뎌낼 수 있도록 할 것이다. 그만큼 구조조정 해야 한다는 의미다. 요리 개발을 더 해서, 다른 부위를 조금 비싸게 받으면서 삼겹살을 싸게 할 수 있다.

 

소비자 의향을 물어보면 비싸도 국산을 찾겠다는 사람이 20~30%다. 음식점 원산지 표시제가 이뤄지면 소비자 선택의 폭을 넓힐 수도 있다."

 

- 품질 향상을 위해서 어떤 노력을 하고 있나?
"예전에는 육질개선이 과거에 생산자 중심으로 했는데, 이젠 소비자에 입맛에 맞추고 육질 등급을 개선하겠다. 이미 7월부터 육질등급제가 실시됐다. 후기사료(항생제가 무첨가된 사료) 보급을 하고, 돼지 씨돈을 보급할 때 사료를 잘 먹고 잘 크고 등지방이 적절하게 잘 끼는 돼지를 선택할 것이다.

 

유기농축산물을 찾는 소비자도 있어서 다양한 돼지고기·햄·소시지를 일반 정육점에서 판매할 수 있도록 하겠다. 소비자와 밀착하겠다는 것이다."

 

- 앞으로 대응은?
"이 상태가 지속되면 농민들이 격앙한다. 한-EU FTA 협상에서 돼지고기를 포함시킨다면 11월에 극렬한 투쟁을 할 수밖에 없다."


태그:#한-EU FTA, #돼지고기, #양돈협회, #김대환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마이뉴스 법조팀 기자입니다. 제가 쓰는 한 문장 한 문장이 우리 사회를 행복하게 만드는 데에 필요한 소중한 밑거름이 되기를 바랍니다. 댓글이나 페이스북 등으로 소통하고자 합니다. 언제든지 연락주세요.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