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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지다."

우리 눈으로 보기에 이 말은 옳은 것 같다. 누가 땅을 둥글다고 하겠는가? 이 우주관은 인간의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것이다. 아직도 우리들은 '해가 뜬다' '해가 진다'고 말한다. 우리가 중심이라는 의식이 강하게 자리 잡고 있다. 천문학은 지구가 자전 한다고 규정하지만 아직도 우리는 해가 돈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문득 떠오른 생각 하나 우리 조상들은 우주를 어떻게 생각했을까? 서구문명에 젖어들어버린 우리 의식은 우주에 '무지'했던 조상으로 단정해버리는 잘못을 범할 수 있다. 그 때 책세상에서 나온 정성희가 지은 <우리 조상은 하늘을 어떻게 이해했는가>를 접했다.

정성희는 우리나라 고대 천문학은 주로 천문 형상이나 역법에 관한 것이 대부분이라 우주론과 직접 관계되는 것은 거의 없다고 말한다. 즉, 중국의 개천설인 하늘은 둥글고 마치 덮개와 같으며 땅은 네모져서 마치 바둑판 모양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이는 혼천설의 등장으로 자리를 내주고 만다. 혼천설은 계란과 같으며 하늘은 탄환과 같이 둥글며, 하늘을 회전하는 고정된 구로 보는 우주구조론에 별 관심이 없었다.

왜 우리 조상들은 우주구조론보다는 천문현상과 역법에 관심을 가졌을까?

"천문현상으로 국가의 장래를 예측하고자 하는 점성적 기능이 고대 천문학에서는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천문학은 창조적인 연구보다는 천체 현상의 관측과 역법의 정비에만 치중되었으며 그 밖의 천문학 분야는 외면당했다."(본문32쪽)

물론 중국도 우리와 별다르지 않았다. 우주구조론에 관심을 가졌지만 역법과 천문현상에 관심을 더 가진 것이다. 절대왕권 국가에서 왕이 백성을 다스리고, 백성을 다스리는 근본이 하늘에 있음을 강조하고 수없이 일어나는 천문현상은 백성을 다스리는데 매우 중요한 열쇠가 되었고 지배층은 이를 적절히 이용했을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우리 조상들은 개천설과 혼천설에 대한 이해를 했으면 성리학 우주구조론인 "무형의 우주공간은 태허(太虛)로서 이 태허에는 기가 가득 차 있으며, 테허는 기와 가르지 않다"라는 장횡거의 주장은 우주론에 전환을 이루게 된다.

"하늘이 끊임없는 기의 회전이라고 본 장횡거의 우주론에 따르면, 그 동안 당연히 믿어왔던 하늘의 고체성은 부정되고 마는데 이는 고대 우주론으로부터의 탈피를 의미하는 것이다."(본문 40쪽)

이 성리학 우주구주론을 구체적으로 제시한 인물이 장현광이다. 그는 '천원지방론'을 주장했는데 <역학도설>에서 위아래의 천지 개념이 아닌 중앙의 땅과 이를 둘러싼 바깥쪽의 하늘, 즉 기의 구조를 제시함으로써 고대 중국의 전통적인 우주 구조론이 보여주는 상하 관념을 극복했다고 정성희는 말한다.

서양천문학과 만남은 조상들이 생각했던 우주관에 격변이 일어난다. 개천설, 혼천설, 성리학우주론에 머물러 있던 우주구조론은 변화를 겪지 않을 수 없었다. 서양천문학에 역법의 정확성에 훨씬 앞섰기 때문에 서양 우주구조론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특히 역법 중심의 우주관으로 인하여 중국에 예속되었던 우리 조상들은 중국 중심의 역법에서 탈피하려고 했다. 조선 유학자들에게 '12중천설' 우주론은 일대 충격을 준다.

"가장 중심에 움직이지 않는 지구가 위치하고, 가장 바깥의 제일 높은 곳이 제12중천으로서 이곳은 상제와 여러 신들이 있는 거룩한 곳 이른바 천당이라고 불린다. 그 다음의 제11천이 천 회전의 기둥력을 갖춘 중동천이고, 거기서부터 안쪽으로 차례로 열숙천, 전성천, 세성천, 태양천, 금성천, 수성천, 태음천이 동심구 형태로 배치되어 있다."(본문 71쪽)

쉽게 말한면 천동설이다. 성호 이익같은 이가 12중천설을 지지했는데 조선 유학자들에게는 새로운 우주구조론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땅이 둥글다'는 지원설을 성호 이익은 받아들인다. 당시까지 하늘은 둥그로 땅은 평평하다는 천원지방설을 믿었던 이들에게 지원설은 충격 그 자체였다.

이 때 홍대용이 등장한다. 그는 <의산문답>에서 지전설을 주창했다.

"지구는 회전하면서 하루에 일주한다. 땅 둘레는 9만리고 하루는 12시다. 이 9만 리의 거리를 12시간에 달리기 때문에 그 움직임은 벼락보다 빠르다."(본문 98쪽)

특히 홍대용의 우주관에서 가장 주목할 점은 지전설보다는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는 '무한우주론'이다.

"우주의 뭇 별들은 각각 하나의  세계를 가지고 있고 끝없는 세계가 공계에 흩어져 있는데 오직 지구만이 중심에 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본문 99쪽)

역법 중심에서 우주를 의식했고, 12중천설에서 충격을 받았던 조선 선비들에게 홍대용의 지전설과 우주무한론은 충격 그 자체였을 것이다. 12중천설도 지구 중심 우주론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특히 홍대용의 무한우주론은 중국 중심, 중화주의에 매몰되어 있던 조선 선비들의 의식에 그 충격을 던져 주었을 것이다. 중심은 특정 국가가 아니라 바로 자신이라는 사실이다. 단순히 우주관의 변화가 아니라 역사와 국가, 세계관의 변화가 이루어졌다.

홍대용이 사대주의에 뿌리를 내리고 있던 조선 선비에게 도전을 했는데 아직 우리는 그 사대성을 완전히 벗어던지지 못하고 있다. 홍대용이 우리보다 훨씬 자주성에서 앞섰다고 볼 수 있다.

덧붙이는 글 | <우리 조상은 하늘을 어떻게 이해했는가> 정성희 | 책세상



태그:#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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