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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의 선택! 한국과 호주는 지금 선거의 열기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선거제도는 민주주의를 만드는 초석이라는 측면에서 지금 두 나라는 '민주주의 꽃'을 피우는 축제기간이다. 과연 그럴까?

 

한국대선이야 호주에서 끼어들 처지가 아니고, 기자가 지난 20년 동안 호주에 거주하면서 경험한 6번의 호주총선에 대해서 소회를 피력한다면 한 마디로 "아니올시다"이다. 민주주의 축제는커녕 정치혐오감만 키우는 실망의 연속이다.

 

그러나 이런 부정적인 판단이 정보 부재나 편향된 시각에서 비롯된 것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지속적인 현장취재와 인터뷰를 했다. 총선 날짜가 발표되기 전부터 약 1달 동안 2007 호주총선의 링에 오르기 위해 섀도복싱에 여념이 없는 여야 정치인들을 만난 것.

 

무엇보다 먼저 메인이벤트를 치를 존 하워드 총리와 캐빈 러드 노동당 당수를 직접 인터뷰했다. 호주의 저명한 정치평론가 캐리 오브라이언(호주국영 abc-TV)과 데이비드 마(<시드니모닝헤럴드>)와 News Poll 등의 여론조사기관에 소속된 선거분석가들도 인터뷰했다.

 

이런 자료들과 향후 취재를 보태어, 선거가 치러질 11월 24일까지 30여 일 동안 호주총선을 시리즈로 보도할 예정이다. 한국대선과 시기적으로 맞물린 호주총선을 눈여겨 살펴보면 반면교사가 되고 타산지석으로 삼아야할 대목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호주총선 40일 대장정 출발

 

호주는 아직도 엘리자베스2세 영국여왕이 국가수반(head of state)인 입헌군주제 국가다. 또한 영국식 웨스트민스터 정치제도를 기초로 한 내각책임제를 채택하고 있다. 3년 임기의 하원에서 다수 의석을 차지한 정당의 대표가 총리직을 맡는 시스템.

 

그렇다보니 국회를 해산하고 총선을 치루는 일정도 (요식행위에 불과하지만) 현직 총리가 영국여왕의 임명을 받은 연방총독에게 제청하여 결정한다. 지난 10월 13일에도 그런 절차를 밟아서 2007년 호주총선 날짜가 결정됐다.

 

존 하워드 총리가 마이클 제프리 연방총독을 방문해서 총독의 인준을 받아 총선일자를 11월 24일로 확정지은 것. 바로 그 다음날부터 총선운동이 시작됐으니 꼭 40일 동안 치러질 대장정에 나선 셈이다.

 

이를 두고 10월 15일자 <디 오스트레일리안>지는 'Game on!'이라고 부르면서 "2007년 호주총선은 '새로운 리더'와 '올바른 리더'(It's new leader vs right leader)의 대결"이라는 1면 헤드라인을 올렸다.

 

이는 캐빈 러드 노동당 당수가 "호주는 지난 11년 반 동안 하워드 정부의 장기집권으로 정체현상을 빚고 있다"면서 "이제는 새로운 리더가 나와서 호주를 전진시켜야 한다"고 포문을 열자 존 하워드 총리가 "호주는 새로운 리더보다는 현재의 좋은 상황을 계속 이끌고 갈 올바른 리더가 필요하다"면서 맞받아친 것을 인용해서 2007 호주총선의 첫 쟁점으로 삼은 것이다.

 

"현대 선거는 40일도 길다"

 

선거일이 확정 발표되기 이틀 전인 10월 12일 저녁에 존 하워드 총리를 인터뷰했다. 선거일 발표를 자꾸 미루는 하워드 총리의 '꿍꿍이 속'이 궁금했던 시기라서 무엇보다 먼저 선거일정에 관해서 질문했다. 다음은 존 하워드 총리와 나눈 일문일답.

 

- 하워드 총리가 선거일정을 확정하지 않아 많은 국민과 언론에서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마음속으로 대충 언제를 생각하고 있는가?
"지금 특종(scoop)을 하겠다는 건가? (웃음) 미안하지만 조금 기다려 달라. 3년 임기가 끝나는 시점인 12월까지가 법으로 정한 시한이니 대략 11월 중순에서 12월 초를 생각하고 있다. 그 이상은 답변 못 한다."

 

- 12월초라고 해봐야 50여일에 불과하다. 선거캠페인 기간으로 부족하지 않은가?
"그렇지 않다. 짧을 때는 1달 만에 총선을 치른 적도 있다. 특히 현대사회는 정보통신의 발달로 신속하게 정치적 견해를 밝힐 수 있다. 야당의 형편은 잘 모르겠지만 나는 40일도 길다고 생각한다." (웃음)

 

- 한국에서도 12월 19일에 대선을 치를 예정이다. 날짜는 정확하지 않지만 오래 전에 대선 일정이 발표된 것으로 알고 있다.
"나도 지난 시드니 APEC 정상회의에서 만난 노무현 대통령한테서 들어서 알고 있다. 회담이 끝나고 다시 만나자고 했더니 한국은 5년 단임제라서 대통령으로 다시 만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했다. 그래서 특별히 아쉬운 가운데 헤어졌다. 민주주의는 제도이고 선택하는 것이기 때문에 한국과 호주가 다른 것은 자연스런 것이다."

 

- 남북정상회담 소식도 들었는가?
"물론이다. 최근에 그것보다 중요한 국제뉴스가 또 있는가. 진심으로 축하한다. 그리고 남북관계와 북한 핵문제 등이 잘 풀려서 세계평화에 기여하기를 바란다. 한반도의 평화는 아시아태평양뿐만 아니라 세계평화에도 아주 중요한 사안이다."

 

- 하워드 총리는 4연속 집권이라는 호주역사상 타이기록을 이룩했고, 많은 업적도 이루어 이제는 물러날 때가 됐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호주를 위해서 무엇을 더 해야 한다고 생각하나?
"호주는 OECD국가 중에서 가장 안정적이고 성공적인 경제 상태를 유지하는 나라다. 그게 쉬운 일이 아니다. 이런 상황을 더 확고하게 하고 아직 미완으로 남아있는 사안들도 잘 마무리하고 싶다. 더구나 노동당은 지나치게 노동조합에 치우쳐서 경제를 망칠 가능성이 높다."

 

- 하워드 총리가 출마하는 베네롱 지역구에 한국 출신 유권자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다. 그들에게 한마디 한다면?
"베네롱 지역구의 한국인뿐만 아니라 호주에 거주하는 한국인들은 아주 근면하고 훌륭하다는 높은 평판을 얻고 있다. 나는 그들이 이번에 아주 현명한 선택을 해주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 선택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다."

 

 

천국과 나락의 기로에 선 하워드 총리

 

존 하워드 총리는 인터뷰 도중에 몇 가지 곤란한 질문을 받고 답변을 거부했다. 특히 네거티브 선거캠페인과 베네롱 지역구에 출마하는 맥신 맥큐 후보(호주국영 abc-TV 뉴스 및 시사프로그램 앵커 출신)에 대해서는 인상까지 찌푸리면서 "노코멘트"라고 잘라 말했다.

 

거기엔 그럴만한 이유가 몇 가지 있다. 존 하워드 총리는 야당인 노동당으로부터 '네거티브 공포 캠페인의 어머니(The mother of all negative fear campaign)'라고 공격을 당하기 때문이다. 또한 베네롱 지역구 상대후보인 맥신 맥큐의 인기가 하워드 총리를 능가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10월 15일의 여론조사 결과도 노동당 지지율이 약 12% 높게 나왔다.

 

2007 호주총선의 결과에 따라서 존 하워드 총리는 천국에 오를 수도, 나락으로 추락할 수도 있다. 그가 승리한다면 호주 역사상 초유의 5연속집권의 대기록을 수립하게 되지만, 베네롱 지역구에서조차 낙선한다면 1929년 총선에서 낙선한 스탠리 브루스 총리에 이어서 현역 총리가 낙선하는 불명예를 안게 된다.

 

그런 연유 때문일까. 존 하워드 총리는 선거캠페인이 시작되자마자 당연히 주된 메뉴가 되어야 할 정책대결이나 인물대결은 하는 둥 마는 둥 뒷전이고, 각종 네거티브와 상대방 얼굴에 먹칠하기(smear campaign) 등에 목숨을 거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정당의 목적이 집권에 있다고는 하지만 하워드 총리의 행태가 지나치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특히 데이비드 마 <시드니모닝헤럴드> 논설위원(호주의 대표적인 전기 작가)은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그가 지난 3차례의 총선에서 아주 불리한 상황을 네거티브 선거캠페인을 이용해서 막판 뒤집기에 성공했기 때문인지 이번에도 잘못된 버릇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고 맹비난했다.

 

데이비드 마는 이어서 "단기전에 아주 능한 하워드 총리가 선거 때만 이르면 국민들의 허를 찌르는 거짓공약을 만들어서 승리를 쟁취했다"면서 "그 대표적인 사례가 불법난민 문제, 국제테러 문제, 이자율 인상 문제 등인데 전부 거짓으로 판명됐다"고 단정했다.

 

 

민주주의 축제 아닌 정치혐오감만 키우는 선거

 

지난 20년 동안 호주에 거주하면서 6차례의 총선을 경험하고 7번째 총선을 맞이한 기자로서는 2007 호주총선이 '민주주의 축제'이기는커녕 정치혐오감만 불러일으키는 또 한 번의 '정치 난장판'이 될 것 같다는 부정적인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데이비드 마와 인터뷰하던 도중 기자가 "선거가 민주주의를 낳는다는 측면에서 '민주주의 축제' 아니냐?"고 묻자, 데이비드 마는 "권모술수(마키아벨리즘)와 승리지상주의에 함몰된 저급한 선거운동만 횡행하는 오늘날의 선거를 두고 '민주주의 축제' 운운하는 것은 실체적 진실을 왜곡하는 것"이라고 목소리의 톤을 높였다.

 

데이비드 마는 이어서 "눈과 귀가 피로할 정도로 넘쳐흐르는 정치홍보에 시달리다 보면 오히려 '민주주의 늪'에 빠져들어 무력감을 느낄 정도"라면서 "특히 지난 10여 년 동안 체험한 존 하워드 방식의 호주 선거양상이 갈수록 악화되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지난 5월에 열린 시드니작가축제에 초빙된 데이비드 마는 존 하워드 총리가 지난 10년 동안 어떤 거짓말을 했는지, 또 그가 어떻게 호주의 선거문화를 망쳐놓았는지 조목조목 비판하는 강연을 했다.

 

10월 18일 <채널7TV>의 '선 라이스' 프로그램의 진행자 데이비드 코쉬는 한 술 더 떴다.

 

"요즘 신문의 6~7페이지가 몽땅 선거뉴스다. 지나친 것 아닌가. 그러나 어찌하겠는가. 눈 딱 감고 40일만 버티면 악몽에서 깨어날 것이므로 참자!"


#호주총선#존 하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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