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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의 북방한계선(NLL) 관련 발언을 놓고 논란이 증폭되고 있다.

 

노 대통령은 11일 기자간담회에서 "그 선이 처음에는 우리 군대의 작전금지선이었다, 이것을 오늘에 와서 영토선이라고 얘기하는 사람도 있는데 이렇게 되면 국민을 오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더불어 "남북간 합의한 분계선은 아니라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한나라당은 매우 격앙된 분위기이다. 보수언론도 예외는 아니어서 <조선일보>는 10월 12일자 사설에서 "노 대통령의 논리는 북측의 주장과 같은 것이다"고 비난하고 나섰다.

 

"당시 바다를 나누는 선은 NLL이 유일했고 그 후 북측은 20년간 단 한번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1963년 군사정전위에선 이를 해상분계선으로 인정하기도 했다, 북측이 NLL 도발을 시작한 1970년 이후에도 북측이 이를 사실상 해상분계선으로 인정한 사례는 적지 않다"는 것이 <조선>의 요지이다.

 

<조선>은 이런 역사를 모르고 대통령이 북측의 주장을 좇아 국가적 사안을 위태롭게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후 북한과의 국방장관 회담에 대해 "지난 54년간 국민이 지켜온 지금의 NLL이 실질적인 해상분계선이란 기본 원칙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충고한다.

 

그런데, 이 사설의 인터넷판에 재미있는 댓글이 붙었다. "이 신문 이상하네요. 1996년에는 같은 내용에 대해 NLL은 영토선이 아니라고 기사를 썼는데요. 무슨 기준이 이렇게 맘대로 바뀌나요?"

 

11년 전, <조선일보>를 들춰봤더니...

 

이 댓글이 지적한 것은 <조선>의 1996년 7월 17일자 '[해상북방한계선 파문] '합의된 선' 없어 논란 무의미'라는 제목의 기사로, 국회 본회의에서 있었던 사건을 보도하고 있다.

 

기사에 따르면, 당시 국방장관이던 이양호 전 장관이 국회 본회의에서 국민회의 의원으로부터 "4·11 총선 전 북한군의 DMZ 침범사건 때와 달리 총선 후 북한함정의 서해상 도발에 대해 우리 대응이 왜 소극적이었느냐"는 질문을 받고, "북방한계선은 어선 보호를 위해 우리가 그어놓은 것으로 정전협정 위반은 아니다"고 답변했다.

 

이에 일부 의원들이 "그렇다면 침범해도 문제가 아니냐"라며 계속 추궁하자, 이 장관은 "(북한이 NLL을 넘어온다 하더라도) 상관하지 않겠다"고 답변했고, 파장은 더욱 커졌다.

 

그런데 <조선>은 여기서 NLL에 대해 다음과 같이 친절한 해설을 덧붙인다.

 

"우선 논란이 된 해상의 북방한계선(NLL)은 지상의 군사분계선(Military Demarcation Line:MDL)과 개념상으로나 법적으로나 의미가 다르다. 휴전선으로도 불리는 군사분계선은 1953년 7월27일 남-북간에 정전협정이 체결될 때 규정된 남북간의 지상경계선을 말한다. 때문에 서로 간에 상대방 지역을 침범하면 명백한 정전협정 위반이다.

 

그러나 바다의 경우는 남-북간에 의견이 엇갈려 지금까지 정해진 경계선이 없다. 바다에 말뚝을 표시할 수도 없는 입장으로 각기 양측에서 관행적으로 인정해온 수역을 경계로 교통을 통제하고 있는 실정이다. 서해상의 북방한계선은 휴전 한달이 지난 1953년 8월30일 사측이 최접경수역인 백령도 연평도 등 6개 도서군과 이를 마주하는 북한측 지역과의 중간지점 해상에 임의로 설정한 것이다.

 

때문에 서로간의 수역을 침범했을 경우 정전협정 위반사항이나 국제법상으로 제소할 수 있는 입장은 아니다. 무력충돌을 우려해 양측이'힘의 균형'을 통해 자제하고 있을 뿐이다. 이 점에서 이 국방장관의 'NLL 침범이 정전협정 위반사항은 아니다'라는 답변은 맞는 것이다."

 

같은 날 '[국방부] “북방한계선 넘어오면 강력대응'이라는 관련 기사에서도 <조선>은 국방부의 공식 입장을 보도하며 "국방부는 그러나 서해 북방한계선은 휴전협정에 규정된 군사분계선과 달리 서해상의 군사적 긴장을 방지하고 우리 어선의 보호를 위해 지난 53년 8월30일 군사령관이 일방적으로 설정한 것이어서 측과 공산측이 합의, 서명한 정전협정상의 군사분계선과는 성격이 다른 것이라고 덧붙였다"고 맺고 있다.

 

적어도 NLL에 대해선 북한과 <조선> 뜻이 같았다

 

1996년이면 김영삼씨가 대통령으로 있던 시절이다. 당시의 국방부는 서해 NLL을 군사분계선이 아닌 것으로 파악하고 있었음이 확실하며 여기에 대해 <조선>은 매우 친절하게 전후맥락을 설명해 주고 있다.

 

그런데 11년이 지난 지금 조선일보는 노무현 대통령이 NLL은 영토선이 아니라고 한 것에 대해 "이는 'NLL이 해상분계선의 역할을 해 왔다'는 국방부의 입장과 명백히 다르고"라고 쓰고 있다.

 

사실 이 주장만 놓고 보아도 <조선>이 노 대통령의 발언을 문제삼은 것 자체에 문제가 있어 보인다. "해상분계선의 역할을 해 왔다"는 말은 곧 "해상분계선은 아니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11년 전 서해에서 문제가 생겼을 때 <조선>은 NLL이 군사분계선과는 성격이 다른 것이라는 국방부의 공식입장을 분명하게 전달했다. 이 때에는 국방부의 주장이 북측의 주장과 같다고 논란을 증폭시키지는 않았다. 적어도 NLL에 관한 한 당시 <조선>도 북한의 입장과 같았던 셈이다.

 

<조선>이 이처럼 정권에 따라 똑같은 사안에 대해 입장을 바꾼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언론이 권력화하고 있는 우리 사회에서 자신의 권력욕에 눈이 멀어 국가적 대사를 두고 국민적인 혼란을 가중시키는 것이 과연 결과적으로 누구를 이롭게 하는지 따져보아야 할 일이다.

 

서해교전에서 소중한 목숨을 잃은 장병들의 숭고한 뜻을 <조선>은 오히려 자신의 사욕을 위해 능멸하고 있는 셈이다.

 

언론은 사회의 공기와도 같다. 공정성과 객관성과 진실의 전달이 그래서 무엇보다 중요하다. 언론이 언론이기를 포기하고 권력투쟁에 나서게 되면 그들의 사욕에 따라 여론이 조작되고 민심이 휩쓸리게 된다. 무서운 일이다.


태그:#NLL, #북방한계선,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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