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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시도유형문화재 제65호.화장루 낮은 마루에 앉아 바라보았다.
▲ 화계사 대웅전 -서울시 시도유형문화재 제65호.화장루 낮은 마루에 앉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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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계사 대웅전은 앞은 물론 뒤쪽까지 조선 후기 건축 요소를 충분히 살린 전각이다. 산그늘 아래에서도 눈이 부실만큼 뒤쪽의 겹처마 공포가 화려하다.
 화계사 대웅전은 앞은 물론 뒤쪽까지 조선 후기 건축 요소를 충분히 살린 전각이다. 산그늘 아래에서도 눈이 부실만큼 뒤쪽의 겹처마 공포가 화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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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광종 때 법인대사 탄문이 지금의 화계사 인근인 부허동에 보덕암을 창건하였다. 이 암자를 조선 중종 때 신월 스님이 지금의 자리(당시에는 화계동)로 이건하면서 '화계사'라 이름을 바꾼다. 화계사(서울시 강북구 수유동)의 밋밋한 창건 내력이다.

삼각산 한줄기, 작은 터전에 대웅전, 명부전, 삼성각이 몇 걸음 간격으로 서 있어서 절구경은 아주 짧게 끝난다. 이들 전각을 모두 참배해도 10여 분 남짓 걸릴 뿐이고, 찬하 거사가 20년 동안 조국광복을 염원하며 조성했다는 천불오백성전의 생김새가 저마다 다른 500나한을 찬찬이 보아도 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

이런 화계사를 제대로 만나려면 대웅전 맞은편에 있는 화장루(華藏樓) 낮은 마루에 앉아 봐야 한다. 대웅전과 명부전, 천불오백성전과 삼성각이 한눈에 들어와서 이들 전각의 특징을 비교해볼 수 있다. 앞면 3칸, 옆면 3칸의 다포계 팔작지붕인 대웅전은 가장 화려하게 장엄하고, 명부전은 대웅전을 향하여 합장하고 서 있는 듯 배치하였다.

일제강점하, 한글 맞춤법 통일안 집필한 대웅전

서울특별시 시도유형문화재 제65호인 화계사 대웅전 현판은 광화문 현판을 쓴 조선 후기 명필인 정학교가 썼고, 주련(기둥 글씨)은 추사 김정희의 수제자인 신관호가 썼단다.

하지만 두 명필의 글씨가 서예를 모르는 내겐 다른 절에서 보았던 현판들과 거의 같을 뿐, 아무리 봐도 모르겠다. 그보다는 일제강점기 우리말을 지키려는 올곧은 학자들의 소신이 깃든 곳을 마주하고 있다는 사실이 더 의미 있을 뿐이다.

1933년, 조선어학회 주관으로 최현배, 이희승 등의 국문학자 9명이 이 대웅전에 기거하면서 한글 맞춤법 통일안을 집필한다. 그리하여 같은 해 10월 29일 한글 맞춤법 통일안을 발표하게 된다. 오늘날 우리들이 누리고 있는 말과 글의 풍성한 혜택은 이분들의 노력이 있어서 가능한 것이다.

오늘날 '한글학회'인 '조선어학회'는 1908년 8월 31일에 '국어연구학회'로 창립되었으며, 처음부터 국어 연구만을 목적으로 하지 않고 우리말을 통하여 민족사상을 고취하고자 하였다. 일제는 당연히 조선어학회 사람들 모두를 민족주의자로 생각했고, 어떤 빌미로라도 해체하려고 감시하였다. 일제의 이런 감시를 피하기 위해 찾은 곳이 화계사 대웅전이다.

-흥선대원군의 친필 현판과 친필 주련이 걸린 명부전이 대웅전 옆면을 향해 있다.흥선대원군의 왕업에 대한 발원이 깃든 곳이다. 특별한 사연의 지장 보살과 시왕을 비롯, 무독귀왕, 도명 존자 등 명부 권속들을 모신 곳이다.
▲ 대웅전과 명부전 -흥선대원군의 친필 현판과 친필 주련이 걸린 명부전이 대웅전 옆면을 향해 있다.흥선대원군의 왕업에 대한 발원이 깃든 곳이다. 특별한 사연의 지장 보살과 시왕을 비롯, 무독귀왕, 도명 존자 등 명부 권속들을 모신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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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서울 인근의 원찰에서 주로 볼 수 있는, 대웅전을 우러러 합장하듯 대웅전 정면 낮은 마당에 주로 지어지던 전각이다.
▲ 대웅전 옆에서 바라본 화장루 -조선 서울 인근의 원찰에서 주로 볼 수 있는, 대웅전을 우러러 합장하듯 대웅전 정면 낮은 마당에 주로 지어지던 전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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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원찰의 특징을 가지고 있는 10칸 건물. 흥선대원군과 조선 후기 명필 신관호의 친필 현판과 주련이 걸려 있다.
▲ 화계사 화장루 -조선 시대 원찰의 특징을 가지고 있는 10칸 건물. 흥선대원군과 조선 후기 명필 신관호의 친필 현판과 주련이 걸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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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대웅전을 바라보고 있는 화장루는 서울 근교 왕실의 원찰에서 주로 볼 수 있는 건물이다. 일반 사찰에서 대웅전 맞은편에 범종각이나 누하식 출입 누각을 두는 것과 달리 원찰에서는 왕실 사람들이 기거하면서 예불을 올리고 기도할 수 있는 건물을 지었다.

흥선대원군이 아들이 왕위에 오르기를 염원한 화계사. 그래서 그 염원이 가장 절실하게 깃든 명부전의 현판과 주련이 흥선대원군의 친필이고 머무르며 기도했을 화장루에도 친필이 2점이나 남아 있다. 

화장루 옆 2층 범종각에는 그 유명한 사인 비구의 종인 '화계사 동종'(보물 제11-5호)이 걸려 있다. 화계사 대웅전과 함께 꼭 만나고 싶었던 종이다. 사인 비구는 조선 숙종 무렵에 경기도와 경상도에서 활동한 장인이자 승려인데 현재 8기의 종을 경상도와 경기도 몇 곳에 남기고 있다. 모두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유곽 옆에 위패모양을 조각했고 종신에 200자의 명문을 새겼다. 용뉴의 쌍룡과 하대의 당초문도 이 종의 특징이다. 불전사물인 범종·법고·목어·운판 모두가 걸려 있다.
▲ 화계사 동종(보물 제11-5호) 유곽 옆에 위패모양을 조각했고 종신에 200자의 명문을 새겼다. 용뉴의 쌍룡과 하대의 당초문도 이 종의 특징이다. 불전사물인 범종·법고·목어·운판 모두가 걸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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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계사 동종이 걸려 있는 육모지붕의 범종각 뒤로 대적광전이 보인다.
▲ 화계사 범종각 -화계사 동종이 걸려 있는 육모지붕의 범종각 뒤로 대적광전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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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인 비구의 종들은 신라종의 전통을 충실히 따르면서 자신만의 독창성을 풍부하게 살리고 있어서 특별하다. 흥미로운 것은 모든 종의 조각이 다르다는 것이다. 어떤 종에는 비천상이나 보살상 대신 불경을 기록하였고 화계사 동종처럼 명문을 새기기도 했다. 우리나라 종에서 흔히 볼 수 있는 9개의 유곽 대신 1개, 혹은 5개의 유곽을 넣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유곽 옆에 위패 모양을 조각한 것도 있고 대좌, 혹은 용뉴에 변화를 준 것도 있다. 이처럼 사인이라는 한사람이 조성했지만, 저마다 독특하고 우리나라 종이 가질 수 있는 요소들을 각각 갖추고 있어서 조선의 종, 우리나라의 종을 연구하는데 없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자료이다. 사인 비구는 종을 통하여 무엇을 이루고자 하였을까?

언뜻 작은 규모만 보고 그리 볼 것 없는, 그래서 30분가량이면 볼 것 다 보았다며 쉽게 떠나고 말지도 모르는 화계사지만 이처럼 전각마다 나름대로 간직하고 있는 이야기들을 따라 참배하다보면 훨씬 의미 있고 특별한 곳이 서울 화계사라고 말하고 싶다.

국적·종교 초월, 참 종교인들이 수행하는 화계사 국제선원

석가모니불을 주존불로 모신 전각인 대웅전은 절마다 오직 한 곳이다. 때문에 금당이라고도 부른다. 하지만 화계사에는 대웅전이 두 곳이다. 원래 있던 대웅전을 두고 1992년에 대적광전(7칸 이상의 대웅전)을 지었기 때문이다.

화장루나 범종각에서 보면 1층인 이 전각은 경사진 지형을 특징을 살려 지은 4층 건물이다. 1층과 2층은 공양간과 요사, 3층은 대적광전, 4층은 외국 스님들만 공부하는 국제선원이다. 

앞면 7칸에 옆면 4칸인지라 어지간히 큰데 4층이다보니 언뜻 생각하기를 ‘이렇게 큰 건물이 필요할까?’란 생각이 들기도 한다. 화계사의 근래 내력과 역할을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불자들의 시주금을 털어 무리하게 지은 거대한 건물'로만 보일지도 모른다. 생각 없이 거창하고 큰 것만 좇는 그런 산물처럼 말이다.

하지만 좀 더 알고 보면 화계사의 역할에 대해서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만드는 그런 건물이다. 불자들에게나 알려진 화계사가 일반인들에게 유명해진 것은 <만행, 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현각 스님, 열림원)라는 책 때문이다. 저자인 현각 스님은 하버드대학생 폴. 숭산 스님을 만나 불교에 귀의, 그 이야기와 숭산 스님의 이야기다.

-경내에서 보면 1층이지만 화장루 아래쪽에서 보면 4층 건물
▲ 화계사 대적광전 -경내에서 보면 1층이지만 화장루 아래쪽에서 보면 4층 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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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산 스님(2004년 입적)은 35년 전 미국으로 건너가 동양의 선(禪)을 서양인들에게 가르치며 한국의 문화를 알리고 한국의 전통 불교를 포교하는데 전념하였다. 이런 숭산 스님의 외국인 제자 5만여 명은 국적과 종교를 초월한, 학생, 교수, 박사 등 다양하다.

숭산 스님의 오랜 포교와 노력으로 30개국에 120여 곳의 선원이 세워지고 화계사에 국제선원이 창건된다. 외국 수행자들이 한국 사찰에 머물며 수행할 공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한국 사찰에서 한국 불교를 공부한 외국 스님들은 자신의 나라로 돌아가 한국 불교를 전파하는 역할을 한다. 우리나라 문화재 대부분이 우리의 전통 불교와 관계되고 보면 화계사의 이런 역할은 무척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지난 가을에 불교방송에서 우연히 현각 스님이 강의하는 금강경을 듣게 되었습니다. 금강경을 듣던 그때의 편안함과 설명하기 힘든 그 순간의 미묘함은 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화계사에 꼭 한 번 와보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마침 3개월 과정 불교 기초 강의 안내문이 있어서 바로 접수하고 매주 화요일마다 와서 공부하고 있습니다."

20년째 종교 생활(아마도 신부님?)을 하고 있다는 어떤 분이 내게 들려 준 이야기다. 천주교라는 종교를 가졌지만 불교를 알고 싶어서 공부하는 중이라고도 덧붙였다. 화계사와, 화계사 대적광전은 바로 이런 곳이다. 화장루에서 화계사 신도회 등의 법회가 주로 이루어진다면 대적광전에서는 종교와 국적을 초월한 종교인들의 배움과 발원이 움트는 곳이다.

화계사를 알고, 화계사에 잠시라도 머물렀던 사람들은 내 종교만이 높고 잘났다고 우기지도 않을 것이며, 내 종교만을 위하여 다른 종교를 헐뜯거나 질시하지도 않을 것이다. 화계사가 특별한 이유다.

국경과 종교를 초월한 화게사의 행사 3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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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화계사에선 3가지 행사가 13일과 20일, 28일에 열린다. 성격은 다르지만 모두 국경과 종교를 초월한 행사들이다.

①제8회 종교연합 사랑의 대 바자회(10월 13일, 토요일) - 화계사 입구 오른쪽 한신대학교 교정에서 열리는 이 바자회의 수익금은 모두 인근 어려운 사람이나 난치병 어린이 돕기에 쓰인다. 화계사, 수유1동 성당, 송암교회 공동 주최이다.

②제2회 화계 단풍 음악회(10월 20일, 토요일) - '두 손 꼭 잡은 종교, 함께 나누는 평화'라는 제목의 종교와 국적을 초월한 음악회가 열린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종교간의 대립과 갈등을 해소하고 전쟁과 인종 차별을 극복하고자 하는 발원으로 기독교·불교·천주교·이슬람 및 세계 평화 단체들이 이날 한 마음을 모을 예정이다. 출연진도 국악인 김영동·세계적인 티벳 명상 음악가인 나왕케촉·경동 교회 성가대·문정동 성당과 원불교·화계사 합창단 등 다양하다.

③이주 사망 노동자를 위한 천도재(10월 28일, 일요일)-15년 사이 국내에서 소리 소문 없이 죽은 이주노동자는 3천여명이라고 한다. 이들을 위한 추모제가 화계사에서 열린다. 각국의 종교 단체에서 직접 와서 우리나라의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다가 죽은 3000 이주 노동자들의 넋을 추모한다.

※ 이 모든 행사는 화계사(02-902-2663, 903-3361) 홈페이지  http://www.hwagyesa.org/에서 자세하게 볼 수 있다. 화계사 찾아 가는 길:4호선 수유역 3번 출구에서 마을버스 2번 타고 화계사에서 하차, 도보로 5분 가량. 시내버스는 홈페이지 참고



태그:#화계사, #숭산스님, #현각스님, #화계사 대웅전, #화계사 동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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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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