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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의 어느 토요일, 친구와 함께 훌쩍 길을 떠났다. 목적지는 정선. 주말을 맞아 어디론가 떠나볼까 하던 차에, 때마침 회사 동료의 부모님이 도시생활을 정리하고 정선으로 내려가 민박을 하고 계시니 한 번쯤 놀러 가보라는 권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지인이 있다고 무조건 내딛는 발걸음은 아니었지만, 그곳이 다름 아닌 정선이었기에 난 별다른 갈등 없이 계획을 실행에 옮겼다. 정선은 내게 너무도 익숙한 곳이었기 때문이다.

 

나의 정선에 대한 기억은 10년 전 여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학생으로 처음 여름 방학을 맞았던 그해, 난 아버지와 단둘이 여행을 떠났다. 비록 휴가 때였지만 동생은 수험생이었고 어머니는 그 뒤치다꺼리를 하고 계셨던 터라 부자가 단둘이 서로를 친구 삼아 돌아다니게 된 것이다.

 

그때 아버지와 함께 갔던 곳이 바로 영월과 정선이었다. 당시 그곳은 아직까지 개발의 손길이 채 미치지 못한 곳이었으며 덕분에 오지의 흔적을 간직한, 매우 아름다운 곳이었다. 그리고 그때의 기억이 얼마나 인상적이었던지 이후 영월, 정선은 우리 식구의 단골 여행지가 되었다. 상황이 이러하니 정선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가벼울 수밖에.

 

토요일이었음에도 다음날 비가 올 것이라는 예보 때문인지 영동고속도로는 그다지 막히지 않았다. 덕분에 우리는 원래 계획했던 중앙고속도로의 단양, 영월을 거쳐 정선으로 향하는 길 대신 영동고속도로의 진부에서 정선으로 들어가는 길을 선택했다. 내 머릿속은 이미 예전 5월 어머니 생신을 맞아 봉평에서 정선 가던 그 아름다운 길로 가득 차 있었다.

 

진부에서 내려 정선가는 길. 그러나 아름다운 길에 대한 환상은 금세 악몽으로 바뀌었다. 차들이 조금 막히는가 싶더니 아예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었다. 결코 차가 많아서가 아니었다. 수해의 결과로 강변을 달리던 2차선 도로가 유실되어 1차선이 되어버린 것이다.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수해복구 공사. 그곳에서 일하던 인부들에게 물어보니 수해는 2년 전에 일어났지만 복구할 만하면 비가 오고, 태풍이 오고 해서 아직까지 공사가 끝이 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게다가 올해는 마치 우기인 양 비가 왔었으니 여름 동안 길을 복구하기는 요원한 일일 수밖에. 안 그래도 오지의 한 곳인 정선이 막심한 수해피해로 더 고립되어 있는 형국이었다.

 

현대에도 비가 오면 이 정도인데 과연 과거 정선은 어떤 곳이었을까? 아마도 정선은 중앙권력의 손길도 쉬이 닿지 않는 그런 오지로서 그 명성을 날렸을 것이다. 다른 지역도 아니고 정선에 아리랑이 남아 있는 건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것은 그만큼 정선 오고 가는 길이 지난했음을 보여준다.

 

가까스로 수해복구 현장을 빠져나와 정선에 도착하니 이미 늦은 시각이었다. 정선의 최고 자랑 아우라지야 이미 예전에 다 둘러본 터라 우리는 그대로 민박집으로 직행했고, 짐을 부린 뒤 그 주변의 오장폭포와 구절리역 등을 둘러본 후 잠을 청했다.

 

모험영화 속 주인공이 되어

 

 

다음날 아침, 회사 동료의 부모님은 그 전날 밤에 이어 우리에게 정선 레일바이크를 꼭 타라고 적극 권유했다. 1년 내내 사람이 북적이고 성수기 때는 표가 없어 타지 못하는 레일바이크인데, 오늘은 비가 온다는 일기예보가 있었던 터라 예매하지 않고도 자리가 있는 절호의 기회라는 것이었다. 그것을 타기 위해서 일부러 여기까지 찾아오는 사람들도 많은데, 정작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는 우리가 이해되지 않는 눈치였다.

 

서둘러 아침을 먹고 등 떠밀려 민박집을 나섰다. 그냥 갈까도 싶었지만 오전 시간 딱히 갈 곳도 없었고 동료 부모님이 워낙 간곡하게 부탁했던 터라 내친김에 레일바이크를 타 보겠다고 쭈뼛쭈뼛 구절리 역사로 가 표를 끊었다. 가격은 두 사람에 1만8천원으로 결코 적지 않은 금액이었다. 물론 동료 부모님은 돈이 하나도 아깝지 않을 것이라며 호언장담을 했지만 두고 볼 일이었다.

 

 

레일바이크 출발. 체질적으로 많은 이들이 좋아한다면 의심부터 하는 버릇 때문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유치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어차피 같은 기찻길에 같은 풍경일 텐데 무에가 그리 좋다는 건지. 그러나 이와 같은 의심은 출발하자마자 곧 말끔히 사라졌다. 레일바이크가 상상 이상의 즐거움을 선사했던 것이다.

 

레일바이크가 움직이자 발밑으로 철로가 빠르게 지나갔다. 그것은 인디아나 존스와 같은 모험 영화를 보면 으레 등장하는 그런 장면이었다. 오래 전 구니스, 태양소년 에스테반, 인디아나 존스 등을 보면서 동경해 왔던 모험이 펼쳐지고 있는 듯했고 나는 그 모험의 주인공이 되었다.

 

 

 

레일바이크는 결코 여러 놀이공원의 청룡열차 등과 비교가 되지 않았다. 후자가 매우 한정된 공간에서 고만고만한 풍경을 배경으로 기계에 실려 움직이는 인위적인 모험을 선사한다면, 전자는 그 모든 것을 뛰어넘고 있었기 때문이다.

 

양 옆으로 펼쳐지는 실제 풍경과 과거 석탄을 부지런히 실어 날랐을 철로의 이용은 내가 행하는 모험에 사실성을 부여하고 있었으며, 내가 발을 구르는 횟수에 따라 달라지는 레일바이크의 속력은 모험의 주체가 단순히 기계가 아닌 나임을 증명하고 있었다. 시커먼 터널 안으로 들어갈 때의 그 긴장감과 환한 터널 밖으로 빠져나올 때의 그 해방감이란.

 

그 많던 광부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그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레일바이크는 나를 영화 속 주인공으로 만들 뿐만 아니라 60~70년대 이곳에서 부지런히 탄을 실어 날랐을 산업전사로도 만들었다. 그것은 문경, 태백 등의 석탄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그 당시 생활상에 대한 재현 코너보다도 더한 사실성을 가지고 있었으며 자연스레 그 당시의 지난한 일상을 떠올리게끔 했다. 과연 그 많던 광부들과 그들의 자식들은 지금 어디쯤 무엇을 하고 있을까.

 

레일바이크를 타기 전 들었던 어른들의 말씀으로는 정선이 예전이나 지금이나 부유한 시도군 중의 하나라고 한다. 이야기인즉 예전에는 탄광으로 부자였던 탓에 개도 만 원짜리 한 장을 물고 다녔고, 지금은 정선 카지노로 많은 수입을 올리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과연 그 부유함의 기준이라는 것이 누구에게 맞춰진 것일까? 실제로 60~70년대 광부들은 부를 쌓아 도시로 나갔을까? 광부라는 직업이 위험하고 고단한 대신 돈은 많이 벌 수 있었던 직업이었던가? 또한 그들의 자식들은 넉넉한 아버지의 살림살이로 좀 더 나은 일상을 영위하고 있을까?

 

아닐 것이다. 지역의 부와 개인의 부가 꼭 비례하지는 않는다. 물론 군의 세원이 늘면 그만큼 그 지역의 복지가 좋아질 가능성이 높아지겠지만, 그것이 절대적일 수는 없다. 시스템에 따라 그리고 그 수입구조에 따라 분배구조의 왜곡은 언제든지 가능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현재 많은 군들은 카지노, 스키장, 골프장 등의 유치로 인해 많은 세금을 거둬들이고 있겠지만 실제로 그곳 대부분의 수입은 서울 강남으로 흘러들어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정작 그 지역민들은 스키장이나 골프장 주변에서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의 환경오염을 안고 자신의 농지를 빼앗긴 채 비정규직 노동자로 살아가고 있다. 국가는 끊임없이 제2의 새만금을 개발하려 하지만 정작 새만금을 골프장으로 만들어 얻을 수 있는 것은 지역민들의 나은 삶이 아니라 대규모의 비정규직 노동자와 부유해지는 지자체인 것이다.

 

이는 지금의 우리 사회 전체의 모습과 비슷하다. 아무리 국가가 개인당 소득 3만 불, 4만 불을 외친다 한들 그 부는 많은 이들에게 공염불에 지나지 않는다. 지금과 같은 무한경쟁에 독점자본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시스템에서는 오히려 양극화의 골이 깊어져 갈 것이며, 국가도 그것을 알고 있기에 끊임없이 ‘국익’이라는 이데올로기를 내세울 것이다. 예전에는 개들도 만 원짜리 한 장을 물고 다녔다는 정선 지역민들의 전설 아닌 전설은 어쩌면 예전보다 못한 현실에 대한 자조일지도 모른다.

 

 

 

계속 이어지는 레일 바이크. 철로 주위의 풍경은 이제 여름을 마치고 막 가을로 접어들고 있었다. 벼들은 익기 시작했고 한여름 뜨거운 태양을 한껏 안았을 해바라기는 그 수명을 다해 고개를 늘어뜨리고 있었다. 과연 이 아름다운 풍경이 한미 FTA의 통과 후에도 지켜질 수 있을까? 지금 저들이 있는 자리는 무엇으로 채워질까?

 

온갖 단상에 빠져 있다가 쫓아오는 기차 소리에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본다. 아우라 지역에서 내려 다시 구절리로 돌아올 때 타게 될 기차가 뒤를 바짝 따르고 있었다. 공상을 현실로 만드는 건 나의 의지와 끈기일 터, 녀석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당장 발을 굴러야 되는 게 나의 현실임을 주지시키고 있었다.

 

드디어 저 멀리 보이는 레일바이크의 종점. 양 옆으로는 메밀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이곳이 이효석의 봉평과 머지않은 곳임을 말해주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정선 갈 때와 마찬가지로 도로변에 가장 눈에 띄는 건 평창 동계 올림픽에 대한 열망이었다. 벌써 두 번이나 떨어졌음에도 끊임없이 동계올림픽을 열망하는 어구들. 올림픽이 열리면 그 모든 것이 해결되기나 하는 듯 그 욕구는 염치도 없어 뵌다. 과연 올림픽이 그들의 삶을 얼마나 다르게 만들 수 있을까?

 

레일바이크를 타고 각 계절의 풍경을 모두 보고 싶다는 소박한 소망을 품은 채 서울로, 서울로 차를 몰았다. 정선에 가시는 분들은 꼭 한 번쯤 레일바이크를 타시기를.

 

그리고 귀띔 하나, 갓 시작된 연인일 경우 레일바이크의 행렬 중 끝머리가 좋다는 거.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유포터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정선, #레일바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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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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