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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준 귀국설'이 <한겨레>의 8일자 보도에 의해 다시 불이 붙었습니다. 사실,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후보와 관련된 '김경준'이나 'BBK' 같은 키워드는 주식투자를 하는 사람들에게는 예민한 문제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알아도 그만, 몰라도 그만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죠. 과거와 달리 이명박씨는 여론조사 결과 지지율이 50%가 넘는  '유력한' 한나라당 대선후보가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가조작사건'에 대통령 후보가 연루되었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 자체가 문제되는 것입니다.

 

이명박 후보는 지난 8월 20일에 <한겨레>를 상대로 50억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습니다. "<한겨레>가 'BBK의 실소유주는 이명박 후보'라는 김경준씨의 인터뷰 내용을 검증없이 보도해 심각한 명예훼손을 당했다"는 것이 소송의 이유입니다.

 

그러면서 "나는 BBK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주장을 지속적으로 반복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과거 보수언론과 경제언론의 '이명박 보도'를 살펴보면 아주 재미있는 기사들이 등장합니다.

 

중앙·동아, '이명박'과 '김경준' 그리고 'BBK'

 

"올 초 이미 새로운 금융상품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엘케이이뱅크와 자산관리회사인 BBK를 창업한 바 있다. …BBK를 통해 이미 외국인 큰손들을 확보해둔 상태"

- 2000년 10월 16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2000년 10월13일 이비케이가 증권업 예비허가를 받아낸 직후의 인터뷰

 

"나는 어차피 정치방학이 2~3년 갈 것으로 보고 그 기간에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심각하게 고민했습니다. 새로운 금융기법을 내가 익혀야겠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이를 경험한 사람으로서 지난해 초에 벌써 비비케이라는 투자자문회사를 설립해 펀드를 묻고 있는 상태입니다"

- <월간중앙> 2000년 3월호 인터뷰, 이상 <한겨레>가 보도

 

"이 대표가 꼽는 흑자비법은 아비트리지(차익) 거래. 미국계 살로먼스미스바니에서 99년 초 연 수익률 120%대를 기록한 김경준 BBK 투자자문 사장(34)을 영입했다. 이 대표는 김 사장에 대한 기대가 몹시 큰 눈치다. '김 사장이 지난해 BBK 설립 이후 한국증시의 주가가 60% 빠질 때 아비트리지 거래로 28.8%의 수익률을 냈다'고 소개하면서 연방 김 사장의 어깨를 토닥였다."

- <동아일보> 2000년 10월 15일자 기사 '이명박 "사이버금융에 승부 걸겠다"'의 일부

 

"지난 1998년 선거법 위반문제로 국회의원직을 반납했던 이 회장은 증권사 설립을 위해 지난해 김경준씨와 공동으로 e-뱅크코리아를 설립했으며 BBK투자자문은 e-뱅크코리아의 자회사이다"

- <머니투데이> 2001년 11월 6일자 기사 '"이명박 전회장-김경준 옵셔널벤처 이사 고발"'의 일부

 

"그러나 BBK 측이 작성한 홍보 브로슈어에는 '이명박 회장' '김경준 사장'의 사진이 나란히 인쇄돼 있어 읽는 이로 하여금 이 전 의원을 BBK의 회장으로 받아들이게 하고 있다. 이 전 의원은 이에 대해 e-뱅크코리아의 홍보물에 사진이 상하로 게재된 것은 알고 있으나 BBK의 홍보물은 보지 못했다고 밝혔다. 결국 김씨가 이 전 의원 의사와 상관없이 그를 내세워 자금을 유치했다는 설명이다. 이 전 의원은 또 심텍이라는 회사가 BBK에 투자한 과정에 대해서도 잘 알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도 심텍 측의 입장은 다르다. 애초부터 이 전 의원을 믿고 돈을 맡겼으며 계약서도 작성하지 않은 상태에서 50억원을 BBK에 온라인 송금한 것도 이 전 의원이 '회장'으로 있었기에 가능했었다는 주장이다. 심텍측은 지난해 9월 27일 자사 직원이 BBK를 방문, 투자를 결정하는 자리에도 이 전 의원이 동석 '김경준은 유명한 미국 변호사(대한항공 괌 참사 사건 유족대표 변호사를 맡았던) 에리카 김의 동생이며, 내가 대주주이고 회장으로 있으니 아무 걱정말고 투자하라'고 말했다고 주장했다"

- <머니투데이> 2001년 11월 7일자 기사 '옵셔널 전대표 피소... 풀려야 할 의혹'의 일부

 

"심텍은 지난 4월 이 전 의원이 설립한 이뱅크증권(가칭)의 자회사로 편입된 BBK투자자문이 운용 전문인력 부족, 회사자금의 유용 등의 사유로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인가를 취소당하자 지난 5월 이 전 의원과 김 이사에게 투자원금에 대한 환매를 요청했다. 그러나 BBK투자자문이 투자원금의 일부인 20억원만 지급한 채 잔여금 지급을 9월로 미뤘다는 것이 심텍측 주장이다.

 

반면 이 전 의원과 김 이사는 'BBK투자자문이 파산했기 때문에 원금과 이자를 지급할 의무가 없다'며 '이미 지급한 20억원은 환매에 따른 투자금 반환이 아니라 선의로 빌려준 것이므로 이를 다시 반환해야 한다고 반박했다"

- <국민일보> 2001년 11월 7일자 기사 '벤처경영 이명박 전 의원 사기혐의로 고소당해'의 일부

 

"김경준 스캔들은 대선 가도를 달리는 이명박 시장에게 장애물 중 하나다. 2000년 당시 이시장은 국회의원도 아니고 행정가도 아닌 자유인이었다. 이시장은 인터넷을 통한 금융 벤처 사업을 구상중이었고 금융전문가를 파트너로 삼았다.

 

이 시장은 언론 인터뷰나 사업자들과의 만남에서 동업자 김씨를 '믿을 만한 사람이다' 'BBK투자자문(김씨가 운영하던 투자 회사)은 내가 대주주이고 회장이니 아무 걱정 말고 투자하라'라며 보증을 섰다. 'LK이뱅크' '이뱅크증권중개' 'BBK투자자문'을 삼각편대로 한 벤처 회사들이 이명박-김경준 금융 그룹의 토대였다. 만약 이 프로젝트가 성공했다면 지금쯤 이명박 서울시장이 아니라 '금융그룹 CEO 이명박'이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 <시사저널> 2006년 6월 22일자 기사 '이명박 힘들게 할 그 사나이 돌아올까'의 일부

 

<한겨레>는 과거에 보도된 것을 다시 다뤘을 뿐

 

'심텍' 측이 이명박·김경준 양자를 사기혐의로 고발하던 2001년 11월 초, 그리고 그 이전의 기사를 여러 언론에서 검색한 결과이며, 이명박 후보의 대선가도 직전에 'BBK'를 다룬 기사들을 검색한 결과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이미 <한겨레>가 보도한 <중앙일보>의 기사 말고도 <동아일보>에서도 '이명박'이 '김경준'을 극찬하면서 'BBK'를 언급하고는 흐뭇해 하는 모습을 다룬 기사를 게재했다는 것입니다. 재미있지 않습니까? <중앙일보>와 <동아일보>는 공공연하게 이명박 후보를 지지하는 언론입니다.

 

특히 심텍 측이 이명박·김경준 양자를 고발한 시점에서의 경제신문 보도 검색결과에서도 'BBK'를 아주 인상적으로 언급하고 있습니다.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는 본인의 입으로 '창업' 뉘앙스를 풍겨놓고도 '홍보물을 안 봤다'는 것이 말이 될까요? 안 봤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됩니다.

 

물론 안 본 상태에서 누가 알려줬을 가능성도 있습니다만, 인간의 심리라면 궁금해서라도 일단 한 번은 보게 되지 않을까요? 'BBK'가 정말 자신과 관련이 없다면, 그런 이야기가 나오자마자 "그 홍보물에 내가 왜 나와 있느냐. 당장 빼라"고 호통을 치게 되는게 더 자연스럽습니다.


어쨌든, 이명박 후보는 <한겨레>가 아니라 <중앙일보><동아일보> 등, 앞서 언급한 기사를 다룬 언론들을 상대로 '명예훼손' 고발을 해야 합니다. <한겨레>는 과거에도 충분히 보도된 바 있는 점을 다시 다뤘을 뿐입니다.

 

이명박, 왜 'BBK'를 극구 부인하는가

 

2가지 이유일 것입니다.

 

만일, 김경준의 주장 "BBK는 이명박이 실소유주였고 나는 그 밑에서 일했다"는 이야기가 세간에 확산되고 수사결과에 따라 그게 사실로 드러나면 이명박 후보는 '주가조작사건'에 연루되었다는 의혹에서 헤어나올 길이 없어집니다.

 

물론 김경준의 주가조작사건은 김씨의 '역외펀드 운용 보고서를 위·변조한 사실'을 금융감독이 밝혀내고 비비케이의 투자자문업 등록을 취소하는 과정에서, 그해 4월 18일에 이명박 후보가 엘케이이뱅크 공동대표직에서 물러난 이후에 일어난 일입니다.

 

그럼에도 그런 김경준을 영입했고 그가 주가조작사건을 일으킨 회사의 실제 소유주라고 알려지면, 이명박 후보의 책임도 피할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당시 김경준의 주가조작사건은 수백억의 피해를 내면서 5000여 명이 넘는 사람들이 피해를 입었고, 심지어 자살한 사람까지 있었던 사건입니다.

 

하지만, 이명박 후보가 정말 두려워할 만한 '의혹'은 따로 있습니다. 이명박 후보는 자신이 '단순 피해자'라고 주장하는데, 정치적으로는 이게 더 치명적일 수도 있는 거죠.

 

아무리 돈 버는 재주가 빼어나고 주가조작하는 솜씨가 귀신 같다 해도, "아들뻘 되는 새파랗게 어린 청년에게 속아 피해를 당한 사람이 어떻게 경제를 일으키겠느냐"는 인식을 줄 수도 있는 것입니다. 대통합민주신당의 관련 논평을 보니 역시 이 부분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명박 후보는 김경준의 귀국에 긴장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 사건을 정면으로 다룬 김진명의 <킹메이커>는 "미국이 이명박을 당선시키기 위해 김경준을 붙잡아두고 있다"는 주장도 펼쳤습니다만, 만일 그게 사실이라고 해도 지금의 부시 정권 상황, '면담 좌절' 등으로 봤을 때는 미국도 굳이 '반드시 이명박'이어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미국은 일찌감치 선언했죠. "미국은 한국의 대선에 개입하지 않겠다"고. 물론 전적으로 믿기는 어렵습니다만, 최소한 한국의 국권까지 침해하면서 개입하는 일까지는 없다는 이야기일 것입니다. 법적으로도, 김경준은 한국으로 돌아오겠다며 미국 법원에 항소취하서를 냈습니다. 법적으로는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거죠.

 

이명박을 긴장시킬 또 하나의 키워드 '에리카 김'

 

'에리카 김'은 김경준의 누나로서, 이명박 후보에게 김경준을 소개시킨 장본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면서 불거진 소문이 '염문설'입니다. 'LK-e 뱅크'라는 공동창업한 회사 이름도, 이명박·김경준·에리카 김의 이니셜을 한 글자씩 따온 것이라는 소문도 있습니다.

 

정치인, 특히 선거를 앞둔 정치인이 특히나 조심해야 할 것은 '소문'입니다. 대중은 뉴스를 보면서 '수사과정' 따위는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소문' 자체가 확산되고 발 없는 말이 되면서 입는 타격이 더 큰 것입니다. 게다가 두 사람의 나이 차이도 사람들이 입방아를 찧기에 딱 좋을 나이 차이입니다.

 

게다가 이 '소문'이 최초로 알려진 근원지도 다름아닌 김유찬의 '이명박 리포트'였습니다. 국회 정무위 국정감사에서는 '에리카 김'을 아예 'BBK 주가조작사건'의 증인으로 신청해놨습니다. 그녀가 한국에 나타나면 소문이 더욱 확산될텐데, 그렇다면 세인의 입방아질도 점점 늘어날 것입니다.

 

여성 유권자들이 특히 민감해 할 수도 있는 소문이죠. 과거, 이회창씨도 '병역비리 의혹'이 바로 군대 간 아들, 그리고 앞으로 가야 할 아들을 둔 아주머니 계층의 마음을 움직이면서 낙선했던 측면도 큽니다.

 

가장 중요한 부분은 5200명의 피해자를 양산해 수백억원의 피해를 냈으며, 심지어 자살자까지 있었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의미심장한 것은, 이명박 후보가 극구 부인하는 'BBK 연루설'이 '주가조작사건 발생' 전에는 이명박 후보를 지지하는 보수언론에 의해 보도됐다는 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김경준 귀국설'을 바라보는 보수언론, 예전에도 '귀국'을 몇 번이나 언급했다가 실천에 옮기지 않았던 김경준이 정말로 11월초에 귀국할 경우, 그들의 반응을 긴밀하게 관찰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여파가 커질 수 있기 때문에 그에 따른 정국 변화 역시 한치 앞도 예상하기 어렵습니다.

 

대통령 선거는 앞으로 71일을 남겨두고 있지만 '김경준'이라는 뇌관이 다시 등장하면서 그 71일이 결코 짧지 않을 것 같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미디어다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이명박, #김경준, #BB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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