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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라는 기록 속에는 기록자의 생각이 담겨 있다. 그건 기록자 개인의 생각일 수도 있고, 사회나 국가, 민족, 계급의 생각일 수도 있다.

 

생각이 단지 생각으로 끝난다면 좋겠지만 그것이 일정한 의도가 되어 역사 기록을 남길 경우 날선 비수가 되기도 하고 핵무기보다 무서운 가공할 폭력을 정당화하기도 한다.

 

영국이 아편전쟁을 일으켰을 때 들고 나왔던 명분이 자유무역이었다고 한다. 중국인들이 아편 중독에 쓰러지건 말건 영국의 부를 가져올 수 있는 무역이면 그것이 선이었다.

 

멜더스는 인구론에서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데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 늘어나기 때문에 인류는 파멸한다고 겁을 주면서 인류의 파멸을 막기 위해 노동자들의 저임금을 정당화했다.

 

노동자들이 많은 임금을 받으면 더 많은 아이를 낳아 파멸을 앞당긴다는 명분에서였다. 멜더스가 추구했던 것은 자본가들의 많은 이윤 창출이었다.

 

제국주의이나 자본가의 눈으로 보면 아편전쟁이나 인구론은 지극히 정상적인 전쟁이고, 경제이론이 될 수 있다. 실제로 제국주의 침략을 정당화했던 역사도 멜더스 등의 자유무역론을 옹호했던 역사도 주류 세계사의 이름으로 기록되어 끊임없이 확대되고 재생산되고 있다.

 

크리스 브래지어는 주류 중심의 세계사에서 벗어나 새로운 관점에서 출발한다. 제국주의가 아닌 식민지의, 강대국이 아닌 약소국의, 남성이 아닌 여성의, 자본가가 아닌 노동자의 눈으로 세계사를 이야기하고 있다.
 
세계사의 중심은 세계

 

노예는 해방되었지만....

19세기 서양 여러 나라들은 노예제를 폐지했다. 수세기 걸쳐 노예제에서 나오는 이익을 거둬들인 뒤였다. 예로부터 영국의 윌리엄 윌버포스 같은 양심있는 개인들이 노예제 폐지에 공헌했고 열정적으로 노예제에 반대했던 자유주의 행동주의자들도 한몫 거들었다.

 

그러나 정부가 노예제를 금지한 것은 순전히 실용적인 이유에서였다. 노예들을 잘 돌보지 않더라도 편의 시설과 음식을 제공해야 했고 감시도 해야했다. 산업혁명과 함께 공장이 생겨나자 이런 번거로운 일이 필요없어졌다. 임금노동자들은 생활에 필요한 것들을 스스로 '자유롭게' 찾으면 그만이었다. 세계 최초로 산업화된 국가였던 영국이 노예제 폐지를 선도한 이유이기도 했다.

 

가장 극적으로 노예제가 폐지된 곳은 미국이었다. 남부의 주들은 아프리카 노예를 기반으로 세워졌고 면화를 재배해 뉴잉글랜드와 유럽의 공장에 팔아넘겼다. 그러나 북부의 주들은 산업혁명을 받아들였고 유럽에서의 이민으로 점차 생기를 찾아갔다. 그러므로 북부의 주들은 노예가 필요없었고, 남부는 막대한 이익을 남겨주는 노예를 필요로 했다.

 

노예제 확대에 반대했던 링컨이 선거에서 승리했다. 취임 연설도 하기 전에 남부의 일부 주민들은 연방에서 탈퇴했고 사실상 전쟁을 선언했다. 남북전쟁은 노예제를 폐지하기 위한 십자군에 비유되기도 했고, 노예제 폐지에 대한 열정 때문에 연방 군대에 자원해서 싸운 사람들도 분명 있었다. 흑인들도 다수 참여했다. 그러나 링컨과 북부의 주들에게는 미합중국의 보존이 더 중요한 문제였다.

 

전쟁은 4년을 끌었고 백만 명의 사상자를 낳았다. 1865년 남부는 항복했고 노예제는 폐지되었다. 그러나 인종차별주의 자체는 사라지지 않았기 때문에 이후 백여 년간 남부의 흑인들은 매우 가난했고 천대받으며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 책 속에서 -

주류 미국인들은 세계의 중심을 미국에 놓고 생각한다. 미국만이 힘이고 정의라고 믿고 있다. 그러다보니 미국의 뜻에 거슬리는 나라는 악의 축이 되기도 하고 테러국 또는 테러 지원국이 되기도 한다. 세계사의 중심이 미국이라는 착각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살았던 사람들은 또 있었다. 천하의 중심을 자처하던 중국인들은 중화를 내세워 중국 이외의 국가는 오랑캐로 여겼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던 로마인들에게 이방인들은 야만인일 뿐이었다. 그리스인들도 그리스인이 아니면 노예나 야만인 정도로 여겼다고 한다.

 

시간도 흐르고 역사도 흘러 현재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중국도 로마도 그리스도 세계의 중심이 아니었다. 당대에도 그렇고 세력이 급격히 약화된 이후에도 그렇고 세계의 중심은 특정 국가나 민족 또는 인종이 사는 지역이 될 수 없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미국 또한 예외일 수 없다.

 

'세계사의 중심은 세계다'라고 크리스 브래지어는 말한다. 인종이나 민족 국가를 가릴 것 없이 모든 인종, 민족, 국가가 사는 터전이 모두 중심이라는 뜻이다. 주변이라 해서 소외되고 약탈되고 희생되는 것을 정당화했던 세계사에 반기를 든 것이다.

 

아편전쟁을 일으켰던 영국인들의 건강만큼이나 아편무역을 강요당했던 중국인의 건강도 중요하고, 인구론을 이용해 끝없는 이윤을 추구했던 자본가들의 삶만큼이나 그 때문에 저임금을 강요당했던 노동자들의 삶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아주 특별한 상식, 세계사

 

지난 날 학교에서 배웠던 세계사는 따분하고 재미없었다. 수많은 국가와 민족과 인물들이 복잡하게 등장하고 교과서 한 페이지가 수백 년은 물론이고 수천 년을 넘나드는 상황에서 세계사에 흥미를 느낀다는 건 극히 어려운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사 교과서에서 주워들은 기억들 중에서 대부분이 침략의 중심과 약탈의 중심에 섰던 국가들의 역사였다. 그들의 침략과 약탈 행위를 포장지로 가린 채 그들의 영광과 힘을 부각한 세계사였다.

 

크리브 브래지어의 <세계사, 누구를 위한 기록인가?>는 주류 중심의 세계사가 아닌 비주류 중심의 세계사를 이야기하고 있다. 저자의 의도는 목차만 살펴봐도 금방 확인된다.  

 

▲ 태초에 ▲ 파라오와 여사제 ▲ 강대국과 야만국 ▲ 신과 정신과 삶 ▲ 그리스와 라틴세계 ▲ 생겨나고 또 생겨나는 종교 ▲ 동방의 빛 ▲ 십자군 전쟁 ▲ 신세계에서 누린 영광과 그곳에서 저지른 살인 ▲ 숨겨진 대륙 ▲ 태양왕의 그늘 ▲ 미국의 길 ▲ 아시아의 권력과 풍요 ▲ 자유, 평등, 박애 ▲ 혁명 ▲ 세계를 나눠 먹다 ▲ 총력전 ▲ 노동자의 힘 ▲ 자본주의와 파시즘 ▲ 급진적인 20세기


교과서를 떠난 뒤 만난 세계사는 참 매력적인 것이었다. 네루의 <세계사 편력>, 유시민의 <거꾸로 읽는 세계사>, 전국역사교사모임의 <살아있는 세계사 교과서>에서 만난 세계사는 꿈틀대는 세계사를 생동감 있게 느낄 수 있게 해주었다.

 

좋은 기억 속에서 만난 읽을만한 세계사 책으로 <세계사, 누구를 위한 기록인가?>를 즐겁게 추가했다. 태초에서 출발해서 9·11 테러 이후의 현대사까지 촘촘히 엮어나간 이 책을 읽다보면 세계사를 바라보는 새로운 눈이 열렸다는 기쁨을 맛볼 수 있다.

 

'세계의 중심은 미국도 중국도 일본도 아닌 우리가 숨쉬며 살고 있는 곳이다.'

 

책을 덮으며 떠오른 생각이다.

덧붙이는 글 | 크리브 브래지어 지음 / 추선영 옮김 / 도서출판 이후 / 2007년 7월 27일 / 11,000원


세계사, 누구를 위한 기록인가? - 세계사 World History

크리스 브래지어 지음, 추선영 옮김, 이후(2007)


태그:#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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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서 있는 모든 곳이 역사의 현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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