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곱게 익어가는 작고 노란 열매들
 곱게 익어가는 작고 노란 열매들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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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열매들 좀 봐! 작아도 먹음직스럽지 않아요? 한 번 따먹어 볼까."

오늘 아침 뒷동산 산책길에서였다. 역시 산책을 나온 노인들 세분이 걷다 말고 길옆의 나무로 다가섰다. 나무가지에는 작은 열매들이 촘촘히 열려 있었다.

어떤 것은 노란색을 띠고 있었고, 또 어떤 나무 열매는 아주 빨간 색이었다. 그 옆에 서 있는 나무는 노란색과 빨간색 중간쯤의 색을 띠고 있는 열매를 매달고 있었다. 노인들은 우선 아주 빨간색을 띤 나무열매를 한 개씩 따서 입에 넣고 오물오물 씹어본다.

역시 새빨갛게 익은 열매가 맛이 있어 보이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다음 순간 노인들은 하나같이 맛이 별로라는 표정을 짓는다.

"왜 맛이 없으세요?"

내가 곁으로 다가서면서 물어보았다.

"역시 열매가 너무 작아서 그런지 보기와는 달리 별맛이 없는데요."

그 사이 다른 노인은 다시 옆에 있는 노란 열매를 몇 개 따서 입에 넣는다.

"어! 이것도 별맛이 없기는 마찬가진데."

노인들은 실망했다는 표정을 짓는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하얀꽃
 눈부시게 아름다운 하얀꽃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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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빨갛게 익은 열매가 먹음직스럽다
 역시 빨갛게 익은 열매가 먹음직스럽다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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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하지, 뭘 그래! 이렇게 작은 열매는 사람이 따먹으라고 열린 것이 아니거든, 이건 종자 번식용이기도 하지만 까치나 박새 같은 작은 날짐승이나 다람쥐 같은 동물들이 따먹으라고 열린 것이니까."

다른 노인 한 분이 작은 열매를 따 먹어보고 맛이 없다고 하는 노인들에게 하는 말이었다. 듣고 보니 그럴듯한 말이었다. 곡식도 아니고 저렇게 작은 열매를 사람들이 다 따 먹어서야 되겠는가, 작은 새나 다람쥐 같은 작은 짐승들도 먹고 살아야지.

"에이! 작은 열매라고 새나 짐승들만 먹으라는 법이 어디 있어? 더 작은 잣이나 산수유 같은 약용 열매도 있는데."

그러나 다른 노인은 그 말에 쉽게 수긍이 가지 않는 모양이었다.

"아니야, 그렇지 않아, 하찮은 풀이나 나무열매도 다 임자가 따로 있는 법이야, 그게 바로 조물주의 뜻이지."

노인은 여전히 사람들과 짐승들이 먹을 수 있는 것이 따로따로 정해져 있다는 주장이었다.

흐드러진 하얀꽃밭
 흐드러진 하얀꽃밭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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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랗게 익은 꽃사과
 노랗게 익은 꽃사과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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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 말씀이 맞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저 작은 열매들은 사람들의 입맛에 맞지 않겠지요?"


내가 슬쩍 끼어들어 맞장구를 쳐주자 노인이 금방 힘이 나는지 한 마디 더하고 나섰다.

"요즘 같은 가을철에 너도나도 산에 올라가 산밤이며 도토리를 모두 주워오는 사람들, 그거 문제가 있는 거야. 그런 걸 사람들이 모두 먹어버리면 짐승들은 도대체 겨울동안 뭘 먹고 살라는 거야."
"그건 그려! 암! 짐승들도 먹고 살 것은 남겨 놓아야지,"


어느새 다른 노인들도 맞장구를 치며 저만큼 걸어가고 있었다.

산책로 옆에는 작은 열매를 촘촘히 매달고 서 있는 나무들이 몇 그루나 되었다. 하나같이 빨갛고 노란 열매가 익어가는 모습이 여간 귀엽고 앙증맞은 것이 아니었다. 작은 열매들도 가을은 역시 눈부시게 아름다운 계절이었다.

운동시설이 갖춰져 있는 곳에 가서 이런저런 운동으로 몸을 풀고 돌아섰다. 하늘은 희부연 모습이었지만 그래도 공기는 상쾌했다. 배드민턴장에서는 중년 남녀들의 경기가 한창이었다. 아침마다 하는 운동이어서 특별할 것이 없겠지만 일단 경기가 시작되면 게임에 이기려고 최선을 다하는 것이 사람들의 기본 심성이다.

빨간 여뀌밭도 고운 모습이다
 빨간 여뀌밭도 고운 모습이다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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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갛게 익은 산딸나무 열매
 빨갛게 익은 산딸나무 열매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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땀을 뻘뻘 흘리며 경기를 하는 그들의 모습에서 건강미가 넘쳐난다. 그들을 잠깐 구경하다가 발길을 돌렸다. 그런데 일주일이면 몇 번씩 오르내리는 길가가 오늘따라 눈부시게 하얗다. 꽃밭이었다. 언뜻 보면 메밀꽃이 연상될 정도로 하얀 꽃들이 지천으로 피어 있었다.

족히 몇백 평은 되어 보이는 약간 경사진 골짜기가 온통 하얀 꽃으로 뒤덮여 있었다. 그런데 꽃 이름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주변에 있는 몇 사람에게 물어보았지만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그래 바로 그 꽃이야!"

한 십여 년 되었을까. 지하철 신답역 근처 청계천 둑을 하얗게 뒤덮었던 외래종 꽃이었다. 어떻게 들어왔는지 경로를 알 수 없는 외래종 꽃이 한 지역을 뒤덮었다고 방송과 몇 개의 신문에 보도되었던 바로 그 꽃이었다.

"꼭 메밀꽃 같지요?"

내가 꽃밭을 사진으로 담고 있는 것을 보고 아주머니 한 사람이 다가와 묻는다.

"외래종인지 뭔지 모르지만 참 예쁘고 곱네요."

앙증스러운 모습의 나팔꽃
 앙증스러운 모습의 나팔꽃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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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분 배추밭과 도라지꽃
 화분 배추밭과 도라지꽃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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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여 년 전에는 신답역 근처에서만 서식하던 외래종 꽃이 언제 이 먼 곳까지 날아와 군락을 이루었을까? 이 꽃들도 이미 이 땅에 뿌리를 내렸으니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으리라, 더구나 저렇게 새하얀 빛깔로 눈부시게 아름다운 모습인 것을.

조금 더 내려오자 이번에는 빨간 꽃들이 무더기무더기 흐드러졌다. 여뀌들이었다. 아주 작은 꽃술들이 모여 길쭉하게 꽃자루를 이룬 모습이 여간 예쁜 모습이 아니었다. 길옆의 개나리를 타고 올라간 나팔꽃도 개나리 줄기 사이에 숨어들어 남색과 붉은색의 작은 꽃을 수줍게 피우고 있었다.

우리 아파트로 내려오는 길가의 연립주택 마당에는 화분에서 튼실하게 자란 배추포기 옆에서 도라지도 몇 송이 꽃을 피우고 있는 모습이 귀엽기 짝이 없다. 바로 옆 담장 사이에는 작은 구멍으로 얼굴을 내민 넓은 호박잎 틈새로 살짝 내다보는 작은 애호박 하나가 역시 귀여운 모습이다.

담장 틈새로 나온 호박잎과 살짝 엿보는 애호박
 담장 틈새로 나온 호박잎과 살짝 엿보는 애호박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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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실의 계절 가을은 오늘 아침의 맑은 하늘만큼이나 모든 것이 찬란하고 눈부시다. 서울 강북구 산동네 뒷동산 오동공원길에서 만난 작은 열매들과 작은 꽃, 화분 한 개의 작은 밭 전부를 차지한 튼실한 배추 한 포기까지 눈부신 가을이었다.


태그:#이승철, #작은꽃, #작은 열매, #다람쥐, #애호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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