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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의 쇼핑몰
▲ 안타나나리보 시내의 쇼핑몰
ⓒ 김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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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다가스카르의 수도 안타나나리보(타나)에는 한인식당이 몇 개 있다. 정확히는 모르지만, 아마 2~3개 정도 될 것이다. 조용주 사장님과 함께 향했던 곳은 '미소'라는 이름을 가진 한인식당이다. 타나의 중심가에서 북쪽으로 조금 올라간 곳에 위치한다.

최명천(49) 사장님이 식당을 운영하고 있다. 최 사장님은 부인, 딸과 함께 마다가스카르에 거주 중이다. 최 사장님도 여행하듯이 세상을 돌아다니면서 살고 있다. 프랑스, 캐나다, 러시아에서도 오랫동안 거주했고, 지금은 마다가스카르에 와서 식당을 운영 중이다. 조 사장님이 말한다.

"맥주 한 잔 할까요?"
"예. 좋죠."


아쉽게도 최 사장님은 술을 하지 못한다. 그래서 김치찌개를 먹으면서 나는 조 사장님과 함께 맥주를 한 잔 마셨다. 벌건 대낮에 식당에 앉아서 맥주를 마시는 기분. 이거야말로 느긋한 여행 중에 맛볼 수 있는 즐거움일 것이다. 다방면에 관심이 많은 최 사장님은 이 식당의 실내 인테리어도 직접 했다고 한다. 벽에 붙어 있는 한국그림과 문양도 모두 직접 만든 것들이다.

한인식당 '미소'를 운영하는 최명천 사장님

최명천 사장님(좌측)과 조용주 사장님
▲ 미소식당 최명천 사장님(좌측)과 조용주 사장님
ⓒ 김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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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 가진 부모들이 모두 그렇듯이, 최 사장님도 자녀 교육에 관심이 많다. 최 사장님이 이곳에 거주하고 있는 것도 어쩌면 자식교육 때문일지 모른다. 최 사장님의 딸과 조 사장님의 딸은 모두 타나에 있는 프랑스 학교에 다니고 있다. 한때 프랑스의 식민지였기 때문인지, 마다가스카르에는 여러 개의 프랑스 학교가 있다. 돈이 많이 들어가는 고급학교부터 학비가 비교적 싼 학교까지 선택의 폭도 여러 가지다.

"마다가스카르는 한국에서 파리로 유학 가기 위한 징검다리 역할을 할 수 있는 곳이에요. 파리는 생활비하고 물가가 비싸잖아요. 그런데 프랑스유학 계획을 가진 우리나라의 중고등학생들이 마다가스카르에서 프랑스 학교를 다닌다고 생각해 보세요. 상대적으로 적은 비용만 가져도 프랑스로 유학 가기 위한 준비를 할 수 있거든요."

그럴 것도 같다. 마다가스카르는 프랑스식의 제도와 문화가 남아있는 곳이다. 프랑스어와 말라가시어를 공용어로 사용하기 때문에, 프랑스어를 자연스럽게 배울 수 있다. 그러면서도 물가와 생활비가 프랑스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싸다.

게다가 치안도 안정되어 있다. 이 정도면 프랑스어와 문화를 배우려는 사람들이 선택하기에 좋은 나라 아닐까. 이곳에 있는 프랑스 학교에서 프랑스어를 통한 프랑스식의 교육을 받고 프랑스로 유학 간다면, 비용절감과 동시에 시행착오를 줄이는 효과도 있을 것이다.

밥을 먹고 나서 나는 조용주 사장님과 함께 식당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버스 터미널로 향했다. 내일 오전에 타마타브로 가는 버스표를 구하기 위해서다. 타나에서 타마타브고 가는 미니버스의 요금은 1만5천 아리아리다. 우리 돈으로 약 7500원 정도다. 내일 아침 7시에 출발하고, 타마타브 도착은 오후 3시가량이다. 조 사장님이 말한다.

"저녁에 별일 없으면 같이 미소식당에서 술 한잔해요."
"미소식당에서요?"
"예. 어차피 내일 아침에 일찍 터미널에 가야되니까. 술 한잔 먹고 미소식당에서 자도 되거든요."


그래서 나는 호텔에서 짐을 몽땅 챙겨서 나왔다. 마다가스카르에 처음 도착해서 며칠 신세졌던 김기권 사장님 댁에 들러서 인사를 하고, 김 사장님의 소개로 공항 옆에 있는 악어농장에서 오후 시간을 보냈다. 악어농장은 이름 그대로 엄청나게 많은 악어들을 사육하고 있는 곳이다. 악어도 있고 타조도 있고 카멜레온, 도마뱀도 있다.

점심때 시간에 맞춰서 온다면 악어고기를 맛볼 수도 있다고 한다. 악어를 사육해서 팔기도 하고, 악어가죽으로 만든 허리띠, 샌들, 핸드백, 지갑 등도 전시판매하고 있다. 하지만 워낙 비싸서 살 엄두가 나지 않는다. 저녁이 돼서 나는 다시 미소식당으로 향했다.

악어농장에서 오후의 한때를 보내다

모여있는 악어들
▲ 악어농장 모여있는 악어들
ⓒ 김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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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어
▲ 악어농장 악어
ⓒ 김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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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소식당에는 최 사장님과 조 사장님 그리고 윤상선 교수님 내외가 있었다. 윤 교수님은 한국에서 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다가 약 8년 전에 이곳으로 이주했다고 한다. 최 사장님과 동갑인 윤 교수님은 타나에서 '잉크나라'라는 프린터 잉크관련 업체를 운영 중이다. 왜 한국에서 교수라는 신분을 포기하고 이 먼 섬으로 왔을까.

"게으르게 살고 싶어서요."

윤 교수님의 대답은 짧지만 핵심을 찌르는 것이었다. 하지만 윤 교수님의 이곳 생활도 그다지 게으른 것 같지는 않다. 자신의 업체를 꾸려가랴, 이곳에서 해부학 강의하랴 바쁠 것이다. 게다가 최근에는 최 사장님과 함께 타나에 한국문화원을 만들기 위해서 노력 중이라고 한다. 윤 교수님도 술을 그다지 잘하는 편이 아니다. 나하고 조 사장님만 열심히 술잔을 비우고 있다. 우리는 맥주와 이곳의 럼주인 '망고스탄'을 마시면서 이야기했다.

마다가스카르에는 한국인이 그다지 많지 않다. 살고 있는 사람도, 이곳으로 여행오는 사람도 많은 편이 아니다. 그래서인지 이곳에는 한국대사관도 없고 영사관도 없고 아무것도 없다. 이곳에서 뭔가 급한 일이 발생할 경우, 예를 들어서 여행 중에 여권을 분실하기라도 하면 남아공에 있는 한국대사관으로 연락해야 한다. 여간 불편한 일이 아니다.

그런데도 이곳의 현지인들은 한국에 대해서 많은 호의를 가지고 있다. 여기에는 2002년 월드컵이 큰 몫을 했다. 마다가스카르의 현지인들이 한국에 대해서 많은 관심을 두게 된 계기 중 하나가 그 월드컵이었을 것이다. 게다가 현재 마다가스카르의 대통령도 한국을 방문하고 싶어한단다. 이번 기회에 마다가스카르에도 한국을 알릴 수 있는 어떤 기관을 설치하면 어떨까.

물론 이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윤 교수님과 최 사장님이 직접 이 일에 뛰어들었을지 모른다. 윤 교수님이 구상하고 있는 한국문화원은 약 30칸 정도의 초당건물이다. 현재 부지는 마련해두었다고 한다. 이곳에서 한국의 전통문화를 소개하고 한국에 관한 많은 정보를 이곳 현지인들에게 알릴 계획이다. 이런 노력이야말로 진정한 민간외교일 것이다.

윤 교수님은 98년도에 마다가스카르를 처음 방문했다. 그때는 이 나라의 국제공항이 꼭 우리나라의 고속버스 터미널 같았다고 한다. 시내도로도 엉망이어서 '뭐 이런 데가 다 있나'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단다. 현 대통령이 들어서면서 전국적으로 포장도로를 건설하려는 노력이 계속되고 있다.

한국문화원을 만들려는 윤 교수님, 최 사장님

윤상선 교수님 내외
▲ 미소식당 윤상선 교수님 내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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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의 날씨는 한여름에 30도 이상으로 올라간다. 하지만 습도가 없기 때문에 선풍기나 에어컨은 거의 필요가 없다. 이곳에서 오래 살다 보니까 한국의 찜통더위가 상상이 안 될 정도라고 한다. 타나의 기후는 열대고원성 기후다. 고지가 높은데다가 공기가 좋고 기온이 1년 내내 온화한 편이다. 그래서 심장병이나 관절염, 고혈압 환자에게 이곳은 좋은 장소가 된다. 이곳에 살다 보면 그런 증상이 많이 완화되는 것을 볼 수 있다고 한다.

게다가 기후처럼 이곳의 현지인들도 온화하기만 하다. 물가와 인건비가 싸서 자신의 집에 현지인들을 여러 명 고용할 수도 있다. 난 여행 중에 내가 느꼈던 현지인들의 인상을 말해보았다. 내 말을 듣고 나서 윤 교수님의 부인이 말한다.

"이곳 현지인들은 절대 소리 안 질러요. 우리나라 사람들은 평소에 말을 하면서도 말을 크게 하는 버릇이 있잖아요. 여기서 한국인들이 그렇게 크게 말하는 모습을 보면, 여기 현지인들은 질겁을 해요."

윤 교수님의 딸들도 타나에서 프랑스 학교를 다니고 있다. 타나의 프랑스 학교는 한 반에 보통 15~25명 정도로 구성된다. 학교의 분위기가 약간 보수적이고 엄한 면이 있다. 체벌은 없는 대신에, 낙제제도가 있다. 성적이 안 좋다고 낙제되는 것은 아니다. 사정회의를 열어서 낙제학생에 관한 최종결정을 내리는데, 성적이 아니라 인성 등의 종합적인 평가가 더 큰 비중을 차지한다.

이곳에서 살다 보면 가족 간의 대화가 많아지고 가족 구성원간의 결속력이 더 커질 것이다. 낯선 곳에 와서 살다 보면 아무래도 가족에 대한 의지가 그만큼 더 커질 수밖에 없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이곳에는 한국과 같은 자극적인 놀이시설은 없다. 대신에 저렴한 비용으로 넓은 자연에서 승마와 레저활동을 즐길 수 있다.

한국에서처럼 심한 경쟁이 없기 때문에 학생들이 학업과 입시로 받는 스트레스도 훨씬 덜 할 것이다. 이곳에서 몇 년간 생활한 아이들도 한국에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없단다. 한국의 치열한 입시교육과 경쟁을 도저히 견디지 못할 것 같다고.

너무 좋은 이야기들만 들은 것 같다. 사람 사는 곳이 좋은 면도 있으면 나쁜 면도 있는 법 일텐데. 마다가스카르에 살면서도 불편한 점은 있다. 처음에 이곳으로 이주해서는 말이 안 통하고 제도와 문화가 달라서 힘들었을 것이다. 인터넷은 느리고 고급의료시설도 많지 않다.

한국처럼 동네에 편의점이나 마트가 있는 것도 아니다. 우기에는 타나에 엄청난 비가 퍼붓기도 한다. 몇 년 전에는 이곳에서 내전이 일어나서 일상생활이 마비될 정도였다고 한다. 윤 교수님의 부인도 그때가 가장 힘들었다고 회상한다. 물론 지금은 정치정세가 안정되어서 그럴 염려는 없다.

이런 이야기들을 하다 보니까 어느덧 밤이 깊었다. 내일은 아침 일찍 일어나서 터미널로 가야한다. 윤 교수님 내외는 집으로 돌아갔고 나는 최 사장님, 조 사장님과 함께 잠자리를 만들었다.

이곳에 한국문화원을 만들겠다는 계획이 참 대단한 것 같다. 그것도 그렇지만 나는 '게으르게 살고 싶어서'라는 윤 교수님의 말을 계속 떠올린다. 게으르게 사는 삶은 어떨까.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꽤나 매력적인 삶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이 마다가스카르는 그렇게 살기에 적당한 장소처럼 보인다.

시내에는 호치민의 흉상이 있다.
▲ 안타나나리보 시내에는 호치민의 흉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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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2007년 여름, 한달동안 마다가스카르를 배낭여행 했습니다.



태그:#마다가스카르, #안타나나리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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