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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가 곧 생활이라면 얼마나 단아(端雅)한 시간의 연속일까. 아무래도 꿈꾸는 이야기인 것 같다. 仙界에서나 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복합적으로 어려움이 많은 현실은 그렇게 나를 詩만 붙들고 있도록 그냥 두지는 않는다." 김송배 시인의 말이다. 


그것은 곧 한 사람의 시인에게, 아니 어쩌면 우리 시대 모든 시인들에게 공통적으로 해당되는 시와 생활의 상관관계를 대변하는 말일 듯도 싶다.
 
이에 대해 김 시인은 다음과 같이 덧붙인다.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며 살아가는 나를 측은한 눈빛으로 바라보면서 달래기도 하고 채찍도 가하는, 영원히 동행하지 않으면 안 되는 그 무엇이 항상 나의 내면에 가득하다. 그와 동행한 이래 그에게 어떤 증표라도 보일 요량으로 여덟 권의 시집을 묶고 '시선집'도 엮었다. 언제나 모자람이 많지만, 스스로 자위自慰하는 수밖에 없었다." <여백시편(餘白詩篇)>(시원刊)이란 시집을 내면서 토로한 그의 심정이다.
 
<여백시편>의 서두에서 그는 또 "지금까지 두서도 없이 어지러져 있는 모든 것들은 정리되어야 한다. 추억도, 사랑도, 책도, 사진도 그리고 사유의 향방도 정리해서 여백을 두어야 한다. 모두가 꽉 찼지만 비어있는 그 여백의 함의(含意)를 새겨야 한다."라고 강조하면서 시집을 엮은 배경을 밝히고 있다. 그러면서 그는 "아직도 어눌(語訥)하기 짝이 없다."는 인상적인 말을 남기고 있다.


이 또한 어느 분야를 막론하고 우리 사회의 모든 구성원이 공통적으로 안고 있는 내재적 고민거리 혹은 해결과제가 아닐까 한다.
 
핸드폰이 울린다
아무 소리도 못들은 듯
아니, 들었더라도 모른 척 하기로 한다
이승과 저승 사이
어쩌면 저쪽으로 먼저 건너갔거나
아니면 아직 이쪽에서 허우적거릴
병든 영혼들
오늘도
들리지 않는 신호음으로
궁금한 안부를 묻고 있다.
  ― <여백시·9> 전문
 
이 시집에는 79편의 시편이 담겨 있는데, 각 시편마다 표현을 달리하는 통상적인 시제목이 아니라, 모두가 '여백시(餘白詩)'로 제목이 부여되어 있다. 각 시편이 구분된다면 여백시·1, 여백시·2, 여백시·3 등으로 일련번호만 달리할 뿐이다. 이런 시작법詩作法은 흔히 발견되는 전례가 아니다.
 
시집의 후미에 나오는 시인의 에스프리에서도 그는 "나는 한평생을 아무 뜻도 없고 이룬 것도 없이(원래 본바탕이 부실했으므로 여한은 없지만) 흐리멍텅하게 살아온(醉生夢死) 느낌이다. 실제로 좀더 솔직히 말한다면 현실적 갈등과 비굴함까지도 감내하면서 먹고 사는 일에 너무나 많은 시간을 소비했다. 이런 현상을 나의 사유는 주체라고 억지 분류를 한다. 그러면 객체는 무엇인가. 그 객체는 주체가 차지하고 남은 변두리, 혹은 짜투리에 있는 여백이라고 할 수 있다"라며 그의 성찰적 심경을 토로하고 있지만, 그것은 우리시대의 모든 사람들을 향한 일침일 수도 있겠다.
 
그러면서 그는 "이 여백은 나의 상상력으로 채워야 한다. 이미 주체는 주체로서의 소임이 다한 것 같다. 왜냐하면, 주체 그 중심에는 비굴함과 동반된 허욕 그리고 이의 성취 를 위한 시기, 질투 등이 오래전부터 일정한 한계를 추월하여 인간과 인생의 진실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이 여백, 그것은 이제 남은 나의 여생과 동행해야 한다. 변방에 무용(無用)의 공간일지라도 적절하게 활용해야 한다. 이삭 줍는 마음으로 차분히 마름질해야 한다"면서 여백의 의미부여와 실천의지를 적고있다.
 
김송배 시인은 경남 합천 출생(1943)으로서 1984년에 <심상>지를 통하여 등단한 뒤 한국문인협회 편집위원·사무처장, 월간 <예술세계> 주간, 한맥문학가협회 수석부회장 등을 역임하였으며, 현재 심상시인회 회장과 한국시인협회 상임원, 서대문문인협회 부회장 등을 맡고 있다. 저서로는 <서울허수아비의 수화> 등 9권의 시집을 비롯하여 시선집, 시론집, 시창작법, 산문집 등 21권이 있고, 윤동주문학상, 탐미문학상, 평화문학상 등을 수상하기도 했다.(도서정가 8천 원)


태그:#김송배, #여백시, #여백, #심상, #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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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수필가/문학평론가 △연세대 행정대학원 언론홍보전공 석사. 고려대 언론대학원 최고위과정, 서울대 국제대학원 최고경영자과정 수료 △한국문인협회 홍보위원. 한국현대시인협회 중앙위원·홍보위원회부위원장. △ http://www.goodpoet.com △ poet@hanmail.net △ 010-5151-14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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