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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수 장인이 직접 만든 장작 가마에서 장작을 태워 옹기를 굽고 있다. 가스와 기름 가마보다 장작 가마가 훨씬 불길이가 길어서 옹기를 잘 구워준다고 한다.
▲ 불가마 박민수 장인이 직접 만든 장작 가마에서 장작을 태워 옹기를 굽고 있다. 가스와 기름 가마보다 장작 가마가 훨씬 불길이가 길어서 옹기를 잘 구워준다고 한다.
ⓒ 박의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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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5대조 할아버지(1820년 생·천주교인)가 천주교 박해를 피해 경기도 광주로 숨어들어서 최초로 배우신 게 옹기 만드는 일이었죠. 그 일이 자그마치 180년이나 이어오며 5대째 해오고 있어요. 5대조 할아버지로부터 광주, 공주, 천안, 안성 등지를 전전하며 그 맥이 끊이지 않고 이어져 오고 있지요. 경제적 안정이 보장되지 못하여 옹기공장이 자꾸 망해버린 탓입니다. 허허허허.”

박민수(61)씨는 집안의 옹기 역사를 이렇게 설명한다.

흔히 5대째라면 한 자리에서 대대로 이어져 올 거라 생각되는 선입견부터 여지없이 깨지게 만드는 옹기장인들의 180년 역사다.

선입견 파괴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옹기는 당연히 장독 등 실생활에 쓰이는 실용적인 용기로만 사용된다는 것도 박 장인에겐 선입견에 불과했던 것. 옹기도 얼마든지 예술 작품(박 장인은 굳이 예술 작품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는다)이 될 수 있다는 것을 40년 그의 옹기장인 인생이 말해주고 있다.

그의 수준은 이미 예술가의 경지에 이르렀건만, 그는 한사코 예술인보다는 장인이라고 불리기를 바란다. 그만큼 5대째 이어오는 장인정신을 소중히 여긴다 하겠다.
▲ 박민수 장인 그의 수준은 이미 예술가의 경지에 이르렀건만, 그는 한사코 예술인보다는 장인이라고 불리기를 바란다. 그만큼 5대째 이어오는 장인정신을 소중히 여긴다 하겠다.
ⓒ 송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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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만든 옹기 작품들은 세계에서 단 하나뿐이지요. 옹기 흙에다가 안성 지방 특유의 흙을 섞어 색깔을 내니 세계에서 유일할 밖에요.”

그렇다. 그의 작품은 말 그대로 세계 유일의 작품이다. 안성 특유의 흙이 다른 데 또 있을 리 만무하다.

그의 선입견 파괴는 이 정도에서 머물지 않는다. 그의 학력은 국졸, 지금으로 말하면 초등학교 졸업이다. 하지만 그의 실력은 적어도 옹기 분야에선 단연 세계 제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학교에서 이론으로 배운 게 아니라 5대째 내려온 생생한 경험으로 배운 알토란같은 실력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실제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대학에 가서 가끔 ‘옹기 특강’을 했을 정도다. ‘학력 위조’로 흔들리는 우리 사회에 보석 같은 사람이라 아니 할 수 없다.

옹기로 만든 등잔의 빛깔을 보라. 어찌 옹기의 빛깔이라 할쏘냐.
▲ 옹기 등잔 옹기로 만든 등잔의 빛깔을 보라. 어찌 옹기의 빛깔이라 할쏘냐.
ⓒ 송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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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적 할아버지가 옹기공장을 하면서 옹기 만드시는 걸 보고 컸습니다. 부친에게 직접 전수를 받은 후 더 수준 높은 옹기 제작을 위해 스승을 찾아가 배웠지요. 그 스승님이 바로 옹기계의 전설적인 분이셨던 오승팔 선생님이셨죠.”

이런 그가 순수한 우리 옹기가 점점 사라져가는 안타까움을 토로한다.

“요즘 대량 생산되는 옹기는 순수한 우리 전통옹기라고 하기엔 많이 부족하죠. 옹기는 흙에 ‘숨구멍’이 생겨서 음식물 등을 담아 저장하고 숙성시키는데 적합해지는 게 생명입니다만, 대량생산을 하다 보면 옹기의 생명인 ‘숨구멍’이 제대로 살아나기가 힘들죠. 우리 조상님들이 옹기를 장독으로 많이 사용한 것은 다 그 때문인데 말입니다.”

태국, 중국 등에도 옹기를 만들지만 단연 우리나라의 옹기가 세계 제일이라고 자부하는 박 장인이 우리 옹기의 진가를 설명해준다. 시장 논리 때문에 자꾸만 사라져가는 우리의 전통 옹기가 누구보다도 한스러운 사람이 바로 그다.

실용적인 용도보다는 관상용으로 만들어졌다는 주전자.
▲ 옹기 주전자 실용적인 용도보다는 관상용으로 만들어졌다는 주전자.
ⓒ 송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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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히 같은 옹기인데 이렇게 빛깔이 다를 수가.
▲ 옹기 주전자 분명히 같은 옹기인데 이렇게 빛깔이 다를 수가.
ⓒ 송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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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자기 등은 일본과 교류하기도 했기에 도자기 용어 중 상당수에 일본어가 섞여 있지만, 옹기 용어는 오롯이 순수 우리말로 되어 있습니다. 누군가 나서서 우리의 소중한 문화를 이어 갈 이유 아니겠습니까?”


그의 이런 애타는 심정은 바로 두 가지 비전으로 이어진다. 첫째는 옹기에 관한 책을 저술하는 것. 옹기 흙 채굴과정, 옹기 제작 비법, 전통적인 옹기판매 풍습, 옹기장이의 생활 등에 이르기까지 옹기에 관한 일생일대의 책을 저술하여 남기고 싶은 것이다. 둘째는 우리 조상들이 사용했던 둘레 4m 30cm의 초대형 옹기를 재현해보는 것이다. 이것은 그만한 크기의 대형 가마와 인력, 그리고 대형 작업실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옹기로 만든 자기이다. 옹기만의 자연스럽고 투박한 맛은 도자기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맛이다.
▲ 옹기 자기 옹기로 만든 자기이다. 옹기만의 자연스럽고 투박한 맛은 도자기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맛이다.
ⓒ 송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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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말로만 하지 않는다. 꿈을 꿈으로만 놓아두지 않는 게다. 그래서 요즘 그는 오전에는 옹기작업에 몰두하고 오후에는 옹기 서적 제작에 필요한 자료들을 수집하고 연구하며 발로 뛰느라 여념이 없다. 오죽하면 전국에 있는 옹기 흙 분포지역과 흙 성분까지 머리에 다 외우고 있을까. 그렇게 토질 조사하러 다니다가 간첩으로 오해받아 경찰서에 잡혀갔던 적도 있다니 두말해서 무엇하랴.

이런 그가 요즘 고민이 있다. 수백 년 내려온 이 옹기 제작 비법을 전수받을 사람이 아직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수없이 많은 제자가 거쳐 갔지만, 쉽지 않은 옹기 제작 비법에 두 손 들고 떠나갔단다. 이 시대에 진정한 장인으로서의 책임을 아는 사람의 나지막한 외침을 들어보라.

“이 일에 뼈를 깎는 고통을 감내하면서도 평생을 들여 옹기 제작에 몰두할 사람이 있다면 내 기꺼이 그 사람을 제자로 삼아 전수하고 싶어요. 내 대에서 사라지게 할 수는 없잖아요.”

옛날 우리 조상이 기력 없는 할아버지를 위해 만들었다는 남성용 요강을 재현한 것이다.
▲ 할아버지 요강 옛날 우리 조상이 기력 없는 할아버지를 위해 만들었다는 남성용 요강을 재현한 것이다.
ⓒ 송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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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인터뷰는 지난 1일 박민수 장인 작업실(031-673-5229)에서 이루어졌다.

*작품 상설 전시와 옹기 체험은 박민수 장인 작업실(안성 청룡사 입구)에서 하지만, 10월 5일~16일까지 한시적으로 안성 보개면 아트센터 마노(안성 남사당 전수관 옆)에서 전시를 하고 있다.



태그:#박민수, #박민수 장인, #옹기, #옹기장인, #5대 옹기장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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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서 목사질 하다가 재미없어 교회를 접고, 이젠 세상과 우주를 상대로 목회하는 목사로 산다. 안성 더아모의집 목사인 나는 삶과 책을 통해 목회를 한다. 그동안 지은 책으로는 [문명패러독스],[모든 종교는 구라다], [학교시대는 끝났다],[우리아이절대교회보내지마라],[예수의 콤플렉스],[욕도 못하는 세상 무슨 재민겨],[자녀독립만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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