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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는 천황이라는 것이 있다. 우리도 그 사실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는 정확히 모른다. 상징적인 존재일까, 아니면 권력을 지닌 존재일까. 우리는 그것에 큰 관심을 두지 않는다.

 

하지만 <일본인과 천황>을 보면 이야기가 좀 달라질 것 같다. 이 책은 일본인이 쓴 것으로 일본인을 위한 것이다.

제목과 작가만 본다면 무엇 때문에 이 책을 번역했는지 쉽게 갈피를 잡기 어렵다. 하지만 내용을 알고 나면 우리에게도 의미하는 바가 남다르다. 우리의 허를 찌르는 책이기도 한데, 그 내용으로 보나 시사하는 점으로 보나 우리가 외면해서는 안 되는 책이라 할 수 있다.

 

외면해서는 안될 일본인을 위한 책

 

<일본인과 천황>은 전일본 대학축구 대회 결승전 풍경으로 시작하고 있다. 도토 대학의 주장 스미카와 진 선수는 결승전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팀의 우승에 일조한다. 아나운서나 동료들은 그가 세계 대학축구 대항전 국가대표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경기가 끝나자마자 그에게 들려온 소식은 예상 외의 것이다. 그것은 대학축구계에서 추방당할지도 모른다는 소식이다.

 

왜 이런 일이 생긴 것일까? 그가 국가제창과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해명하지만 소용없는 일이다. 그의 학교 부학장은 그에게 ‘교육칙어’를 외우라고 소리친다. 교육칙어란 무엇인가? 근대천황제 국가의 교육이념을 제시한 것으로 천황에게 충성을 다하는 인간이 되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것은 단순히 말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사실과 동떨어진 내용으로 일본인의 삶을 속박하고 있다. 만화 속 누군가의 말처럼 ‘근대일본이 저지른 모든 잘못의 근원’인 셈인데 학교에서는 반성하는 뜻으로 그것을 외우라고 말하고 있다.

 

<일본인과 천황>은 이것을 시작으로 모두 7장에 거쳐 천황의 의미와 그것이 일본인들의 삶을 어떻게 속박해왔는지를 밝히고 있다. 그 시작으로 교육칙어를 삼은 것은 의미심장하다. 그것은 “천황을 신격화하려고 국민들더러 신화를 사실이라고 믿을 것을 강요”함으로써 실상 천황을 살아있는 신으로 여기게 하고 대대로 덕을 쌓아왔으니 감사해하고 공경하라고 하는 것임을 공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가장 쉽게 믿을 수 있는 것을 직설적으로 공격하는 셈이다.

 

이어서 <일본인과 천황>은 천황이 어떻게 생겨났는지를 짚어보며 그것의 악영향을 공개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엄격한 상하관계’다. 일본의 군대를 보면 1882년 메이지 천황이 ‘상관’의 명령은 곧 자신의 명령처럼 여기라고 지시한 것이 눈에 띈다. 하급자가 상급자에게 반대하거나 항의할 수 없도록 조치를 취한 것이다. 그렇게 한다면 신격화된 천황에 반대하는 셈이 된다.

 

물론 처음부터 모두가 그걸 받아들이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일본인과 천황>에 따르면 그 당시 사람들은 천황이 갖는 권위 같은 건 잘 알지 못했다. 천황의 명령을 절대적으로 복종해야 하는 이유도 몰랐다. 당연히 의심할 수밖에 없고 회의적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권력자들은 납득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무엇을 했는가?

 

책 속에 “설명할 수 없는 걸 납득시키는 데에는 폭력이 제일 쉽지. 천황숭배를 의심하는 사람은 철저하게 구타하면 되는 거야”라는 말이 있다. 군대가 특히 그러했을 것이다. 잔혹한 폭력은 사람의 이성을 마비시킨다. 의심하지 못할 때까지 때릴 수도 있다. 권력을 쥔 사람들이 그것을 도와주고 있다.

그런 상황에 지금처럼 고발할 방법도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것이 군대에서만 그러했을까? 일본 사회 전체로 뻗어나가지 않았을까? 이 책이 하나의 모습만 보여준 것이라 할지라도, 이것이 하나의 일본 사회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등골이 오싹해진다.

 

그런데 이상하다. <일본인과 천황>을 보고 있으면 그것과 다른 공포심이 느껴진다. 이것은 일본의 이야기인데 왜 그런 것일까? 상당부분 우리네 현실과 많은 것이 닮았기 때문이다. 상하관계의 조직문화를 시작으로 무언가를 맹신하면서 그것을 의심하거나 맹신하지 않으면 폭행하는 것은 물론이고 어느 것을 상징화해 놓은 다음에 그것을 이용해 권력을 얻고 사용하는 무리들의 모습이 꼭 일본의 것처럼만 보이지 않는다. 우리 역사에서도 보이는 문제다. 어쩌면 오늘날에도 보이는 일일 수도 있다.

 

그런 이유로 <일본인과 천황>은 일본인을 위한 책이라고 하지만 우리를 위한 책이라고도 할 수 있다. 책의 내용은 물론이고 시사하는 바까지, 이 책은 한국인도 읽어봐야 할 책이 분명하다.


일본인과 천황

카리야 테츠 지음, 슈가 사토 그림, 김원식 옮김, 이미지프레임(2007)


태그:#천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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