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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입구에서 보초를 서고 있는 갈론 사람들에게 있어 요즘이 한철인 송이는 일 년을 살아갈 수 있는 생계수단입니다.
 마을입구에서 보초를 서고 있는 갈론 사람들에게 있어 요즘이 한철인 송이는 일 년을 살아갈 수 있는 생계수단입니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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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어떡혀? 이렇게라도 해야 먹고 사는 걸. 젊은이가 이해 좀 해."

짜랑짜랑한 햇살 속에서 할머니가 길을 막아섭니다. 중요시설물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번잡한 동네도 아닌 첩첩 산골마을로 들어가는 입구, 좁은 포장도로 옆 대추나무 그늘에 놓여 있는 의자에 앉아 있던 할머니가 벌떡 일어나더니 길을 막아섭니다.

차를 세우고 창문을 내리니 무슨 검문이라도 하듯 "무슨 일로 어디를 가려고 하느냐"며 꼬치꼬치 캐묻습니다.

할머니가 지나가는 차를 막는 이유

추석날 오후, 초등학교를 다닐 때 가을만 되면 소풍을 가던 고향마을 옆 동네, 갈은구곡으로 들어가는 마을입구에서 조금은 황당한 일을 경험했습니다. 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갈 수 있는 아스팔트길에 의자를 놓고 앉아계시던 할머니가 무턱대고 길을 막아 선 것입니다.

널찍한 바위가 있어 '마당바위'라고 불리는 곳, 맑은 물과 시원한 계곡바람이 있어 잠시 머물다 가기에는 더없이 좋은 곳인 마당바위에 가려고 한다고 해도 막무가내로 안 된다고 합니다. "마당바위에 간다고 하고서는 산으로 들어갈게 뻔하니 절대 안 된다"며 차 앞을 막아섭니다. 참 난감한 일입니다.

최씨 할머니는 겨우 차한대가 지나갈 수 있는 마을입구에서 보초를 서고 있었습니다.
 최씨 할머니는 겨우 차한대가 지나갈 수 있는 마을입구에서 보초를 서고 있었습니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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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랫동네에 사는 누구누구라고하며 알 만한 이름들을 대도 ‘어떡혀, 이래야 우리가 먹고 사는데’하며 좀체 길을 열어주지 않습니다.

어머니뻘쯤 되는 할머니랑 실랑이를 할 수도 없어서 마당바위로 가는 것을 포기하고 바람도 쐴 겸 할머니 곁에 앉았습니다. 자연스레 할머니의 말동무가 되어 초병 아닌 초병이 되어 보초를 서야 하는 할머니의 사연, 산골마을에서 살아가는 할머니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최씨 할머니(최동근, 77세)가 살고 있는 마을은 첩첩산골, 지금은 세인의 관심에서조차 멀어졌거나 희미해진 '산골소녀 영자'의 삶을 떠올리게 할 만큼 두메산골 산동네입니다.

할머니가 보초를 서고 있는 갈론 마을은 첩첩 산골마을

지금이야 댐 가장자리를 이루고 있는 산모퉁이를 따라 겨우 차 한 대 정도는 다닐 수 있을 만큼의 포장도로라도 생겼지만 그 옛날, 제가 초등학교를 다니며 소풍을 다닐 때는 계곡물을 건너고 고개를 넘으며 한 시간쯤을 걸어야 하는 오솔길 끝 오지였습니다.

'반공'과 '승공'이라고 써진 커다란 간판이 학교교문을 장식하고 있었던 그 때, 전기도 들어오지 않아 호롱불을 밝히며 살았지만 전화기만은 어느 곳보다 먼저 설치되었던 곳이 그곳입니다. 워낙 산골이다 보니 혹시라도 나타날지 모를 간첩을 신고하라고 다른 동네에 우선하여 동네 이장 댁에 딱 한대의 전화기가 설치되었던 그런 곳입니다.

마을 쪽으로 차가 들어오면 얼른 차를 세웁니다.
 마을 쪽으로 차가 들어오면 얼른 차를 세웁니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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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일로 마을에 들어가는지 꼬치꼬치 캐묻습니다.
 무슨 일로 마을에 들어가는지 꼬치꼬치 캐묻습니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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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발 948m나 되는 가파른 산벼랑 밑에 자리해 있는 동네, 젖꼭지를 닮았다고 해서 유두봉이라고 부르는 마을 앞 산봉우리도 고개를 조금은 뒤로 젖혀야만 끝이 보일 정도로 협곡에 자리한 산골마을입니다. 산이 높으니 계곡 또한 그만큼 깊고, 그 깊은 계곡에 자리해 있다 보니 한 겨울이면 하루 중 햇빛을 받을 수 있는 시간이 고작 너덧 시간밖에 안 되는 그런 마을입니다.

마을사람들의 주된 수입은 농산물이 아니라 나물이나 버섯과 같은 임산물입니다. 농토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동네 주변에 있는 다랑이 논 몇 뙈기와 돌덩이가 성글성글한 비탈밭이 전부니 동네 사람들은 근거리 산에서 얻을 수 있는 임산물에 생계를 의지하게 됩니다.

봄이 되면 앞산이나 뒷산으로 들어가 돌을 헤치며 야들야들하게 돋아 오르는 봄나물들을 채취합니다. 홑잎 나물은 물론 다래나무 순이나 새싹두릅과 같이 맛나고 먹을 수 있는 나물들을 아침저녁으로 뜯어 나릅니다. 그렇게 뜯어온 봄나물은  3일과 8일에 서는 괴산읍내 5일장에 내다 팔기도 하고, 햇볕에 잘 말려 묵나물로 만들어 팔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산나물만을 뜯는 것은 아닙니다. 전문적으로 약초를 캐러 다니는 것은 아니지만 나물을 뜯다 보면 약초도 캐고 지네를 잡기도 합니다. 산속에 들어가 나물을 뜯는 그들만의 특혜는 갓 뜯어 낸 새순을 싱싱하게 맛보는 것으로 새순의 맛은 가히 별미라고 합니다. 봄 향기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나물 싹을 입에 넣고 우물우물 씹다 보면 거기서 배어나오는 달착지근하고도 상큼한 맛에 산골생활의 고단함도 다 잊을 수 있다고 합니다.

할머니가 보초를 서는 건 송이버섯 때문

마을을 지나야만 이렇듯 널찍한 바위사이로 맑은 물이 흐르는 마당바위에 갈 수 있습니다.
 마을을 지나야만 이렇듯 널찍한 바위사이로 맑은 물이 흐르는 마당바위에 갈 수 있습니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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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는 아예 의자를 옮겨 짜랑짜랑한 햇살아래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할머니는 아예 의자를 옮겨 짜랑짜랑한 햇살아래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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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씨 할머니는 40년 전에 이사를 와 이 동네에 살며 자식들을 길러왔다고 하였습니다. 40년을 살아오면서 근래 들어 이렇게 마을입구에서 보초를 서는 것은 제철을 맞은 송이버섯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작년엔 가뭄과 무지막지한 늦더위 때문에 제대로 된 송이 하나 따지 못했지만 매년 송이채취로 600만~700만 원 정도는 벌어들이는 베테랑급 송이꾼이라고 하였습니다.

산골마을에는 가을바람도 일찍 불어옵니다. 한낮이면 아직 더위의 끝자락이 남아 있지만 조석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초가을이 되면 산골마을의 하루는 한층 일찍 시작됩니다. 일 년 수입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송이버섯을 따기 위해서는 아침부터 서둘러야 하니 사람들 또한 부지런해지게 마련입니다.

사람들은 새벽같이 집을 나섭니다. 바랑에 점심 끼니를 때울 밥 한 덩어리와 된장이나 고추장쯤을 챙겨 불어오는 산바람을 거스르며 버섯을 찾아 산으로 산으로 발길들을 옮겨갑니다. 산에서 나는 버섯이란 게 먼저보고 먼저 따는 사람이 임자니 좀 더 일찍, 좀 더 빠르게 찾아나서야 한 겨울을 먹고 살 수 있으니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버섯을 찾아다니다 보면 등골이 오싹해지고, 머리카락이 삐죽 서도록 간담이 서늘해지는 그런 일들을 겪는 경우도 다반사라고 합니다. 인기척에 놀란 산짐승이 후다닥거리는 뜀박질소리에도 놀라고, 발을 헛디뎌 비탈길에라도 미끄러질 때는 산세의 험준함을 알기에 눈앞이 캄캄해지기도 한답니다.

'나 잡아봐라' 하며 약이라도 올리는 듯 아슬아슬한 벼랑 끝에 삐죽하게 얼굴을 내밀고 있는 송이를 발견하면 딸까 말까를 놓고 많이 갈등하게 된다고 합니다. 그냥 지나치자니 너무 아깝고, 다가가 따자니 너무 위험하고…. 그럴 때는 거의 동물의 본능으로 판단을 하게 된다고 합니다.

산골마을 커다란 바위에는 커다란 호박이 누렇게 익어가고 있었습니다.
 산골마을 커다란 바위에는 커다란 호박이 누렇게 익어가고 있었습니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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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활짝 핀 버섯은 상품가치를 인정받지 못해 송이 장아찌를 담그거나 염장을 했다 반찬으로 먹는다고 하였습니다.
 이렇듯 활짝 핀 버섯은 상품가치를 인정받지 못해 송이 장아찌를 담그거나 염장을 했다 반찬으로 먹는다고 하였습니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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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이 보기엔 힘들지 않게 휘적휘적 산길을 오르는 듯 싶겠지만 산골사람들도 남들 만큼이나 힘이 든다고 합니다. 다만 나름대로 터득한 지혜가 있다면 절대 서두르거나 감당하지 못할 만큼은 욕심을 내지 않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채워지는 바랑은 점점 어깨를 짓누르고, 헉헉거리는 숨소리는 가슴을 옥죄어와 통증으로 다가오기도 하며, 팽팽하게 당기던 뒷다리에는 알이 배거나 쥐가 나는 경우도 있다고 하였습니다.

이른 새벽부터 바짓가랑이에 이슬을 묻혀가며 반나절쯤을 돌아다니다 허기가 찾아오면 바랑 속에 있던 밥덩이와 된장을 꺼내 갓 따낸 버섯이나 약초뿌리를 반찬삼아 허기를 달랜답니다.

꾹꾹 된장을 찍어 먹는 나물에선 아삭아삭 씹히는 맛과 달콤함이 진하게 우러나고, 싱싱한 버섯에선 솔향이 가득하다고 합니다. 이따금은 식사를 마치고 노랫말에 나오듯 다래나 머루를 따서 먹는 경우도 있으니 이보다 더한 후식은 없을 거라고 합니다.

힘들게 산비탈을 올라도, 어렵게 벼랑길을 타며 버섯 하나를 딸 때도 집에서 기다리고 있는 자식들, 일 년을 살아갈 생계가 된다는 것을 떠올리면 조금도 피곤하지 않던 마을사람들과 최씨 할머니에게 몇 년 전부터 이렇듯 보초를 서야 하는 숙제가 주어졌다고 하였습니다.

마을입구 보초는 동네사람들 공동의 몫

마을입구를 지키는 보초는 비단 최씨 할머니만의 몫이 아니라 동네사람 공동의 몫이라고 하였습니다. 송이 철이 되며 산으로 들어가 무분별하게 송이를 채취하려는 사람들을 막기 위한 자구책이며 몸부림이라고 하였습니다.

사실 몇 년 전까지는 산림조합에 얼마의 돈을 내고 입찰을 봐 떳떳하게 사람들 출입을 막을 수 있었지만 지금은 입찰제가 없어지면서 억지춘향이처럼 반쯤은 떼로 길을 막으려니 몸도 힘들고 마음은 화끈거린다고 하였습니다.

최소 수십 년, 길게는 조상대대로 수백 년 동안 마을을 지키며 살아온 사람들에게 가을 한철 딸 수 있는 송이버섯은 한 해를 살아가는 긴요한 생계수단이지만 당일치기로 버섯을 따려는 사람들 대부분은 호기심이거나 재미일 뿐이니 버섯에 대한 생각도 다르고 행동도 다르다고 하였습니다.

마을사람들이야 다음을 위해 송이 밭이 훼손되지 않게 조심하고, 덜 자란 애기송이는 자랄 수 있게 내버려 두지만 그냥 1회성으로 다녀가는 사람들은 '내가 언제 또 오랴'는 생각으로 따서는 안 될 작은 송이까지 싹쓸이를 하듯 따고, 그대로 내버려두어야 할 송이밭을 갈기갈기 파헤쳐 쑥대밭으로 만드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송이버섯을 따가는 것도 당장의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무분별한 사람들로 인해 그들의 생계수단인 송이 밭이 무지하게 파손될 수 있어 송이철만 되면 이렇듯 마을 사람들이 순번을 정해 보초를 서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런저런 이야길 나누다 보니 경계심으로 가득하였던 할머니의 눈빛도 어느덧 이웃집 할머니처럼 자애한 눈빛입니다.
 이런저런 이야길 나누다 보니 경계심으로 가득하였던 할머니의 눈빛도 어느덧 이웃집 할머니처럼 자애한 눈빛입니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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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영청 밝아오던 추석 달처럼 할머니와 마을사람들 마음에도 밝은 생계수단이 휘영청 떠오르면 좋겠습니다.
 휘영청 밝아오던 추석 달처럼 할머니와 마을사람들 마음에도 밝은 생계수단이 휘영청 떠오르면 좋겠습니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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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법적인 근거로 출입을 막느냐"고 따지면 궁색한 답변에 얼굴이 화끈거리기도 하지만 그들에겐 여가(餘暇)고 재미이지만 당신들에겐 지켜야 할 생계수단이니 이렇듯 막무가내로 보일지라도 막을 수밖에 없다고 하였습니다.

이런저런 이야길 나누다 보니 경계심으로 가득하였던 할머니의 눈빛도 어느덧 눈에 익숙한 이웃집 할머니처럼 자애한 눈빛입니다.

산나물 뜯어 허기 채우고, 계곡물로 입가심을 하던 산골사람들조차 이렇듯 생계를 위해서라면 각박해질 수밖에 없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지만, "어떡혀, 그 사람들에겐 여가고 재미일지 모르지만 이래야만 우리가 먹고 사는걸"하며 미안해 하는 할머니의 주름 가득한 얼굴에서는 송이버섯 향만큼이나 진한 인간미와 삶의 고뇌가 배어 있었습니다. 


태그:#송이버섯, #갈은구곡, #보초, #추석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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